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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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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in Weltb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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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한국어 번역판을 내면서

ch 1 사상과 견해

아인슈타인의 생애

내가 보는 세상
선함과 사악함
부에 대해
사회와 개성
인터뷰의 해독
...

자유에 대하여

학문의 자유에 관해
파시즘과 과학
자유에 대해
현대판 이단 심문소
인권

종교에 대하여

종교와 과학
과학의 종교적 정신
과학과 종교
...

교육에 대하여
사고의 독자성을 길러 주는 교육
교사와 학생
고전 문학에 관해
...

친구에 대하여
마리 퀴리를추모함
마하트마 간디
아놀드 베를리너의 70회 생일을 기리며
.....

ch 2. 정치와 정부 그리고 평화주의

과학의 국제성
작별을 고하면서
....

소수민족
시대의 계승자
전쟁은 이겼지만 평화는 얻지 못했다
....

국가 안보
문화, 국제적 이해 증진의 밑바탕이 되어야
전쟁 위협의 제거에 의해

ch 3. 유대인에 대해
국무장관 헬파크 박사에게 보내는 서한
팔레스타인 재건에 관한 일련의 연설
반유대주의와 청년 학도들
...

ch 4. 과학에 대한 공헌
아인슈타인의 과학 연구
이론 물리학의 원리들
연구의 원리들
상대성 이론이란 무엇인가?
기하학과 경험
....

이탈리아 과학진흥학회에 보낸 메시지
코페르니쿠스 서거 4백10주년 기념 메시지

저자 소개 3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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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Einstein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아버지 헤르만 아인슈타인과 어머니 파울리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뮌헨에 전기공장을 세우고 일을 시작하자 그곳으로 이주해 학업을 시작했으나 19세기 독일의 엄격하고 현학적인 교육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성적 부진으로 김나지움을 졸업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 부진으로 가족들이 밀라노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에서 독학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수학 성적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아버지 헤르만 아인슈타인과 어머니 파울리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뮌헨에 전기공장을 세우고 일을 시작하자 그곳으로 이주해 학업을 시작했으나 19세기 독일의 엄격하고 현학적인 교육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성적 부진으로 김나지움을 졸업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 부진으로 가족들이 밀라노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에서 독학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수학 성적에 주목한 학장의 배려로 아라우에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고등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 후 마침내 연방공과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1900년 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스위스 시민이 되었고, 2개월간 수학 가정교사로 일하다 베른에 있는 특허사무소 심사관으로 채용되었다. 5년간 특허사무소에 일하던 아인슈타인은 1905년 독일의 『물리학연보Annalen der Physik』에 5개의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분자 차원의 새로운 결정」이라는 논문으로 연방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다른 논문들에서는 유명한 광전효과, 브라운운동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을 제시했다. 특히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모든 좌표계에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고 모든 자연 법칙이 똑같다면, 시간과 물체의 운동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이론을 제기하면서 그때까지 인간이 가지고 있던 우주관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또한 그는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원리를 확립했는데, 이에 따르면 ‘물질이 갖는 에너지는 그 물질의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과 같다’고 한다. 이것이 유명한 공식 E=mc2이다.

특수상대성이론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1914년 독일 프로이센과학아카데미에 자리를 얻어 그곳에서 연구하면서 때때로 베를린대학교에서도 강의를 하였다. 그리고 1916년 마침내 『물리학연보』에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를 발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뉴턴이 말한 힘이 아니라 ‘시공연속체 속에 있는 존재에 의해 생긴 굽어진 장(場)’이다. 그의 이론으로 시공간에 대한 개념은 완전히 바뀌었으며, 그때까지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우주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919년 런던 왕립학회가 프린시페 섬에서 행한 과학탐사에서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예측한 계산값을 증명하는 일식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21년, 아인슈타인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1905년에 발표한 ‘광전효과’에 대한 공로 때문이었다. 이 이론을 설명하는 광양자 가설은 훗날 양자역학을 낳는 시금석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양자역학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고 거리를 두며 말년에는 주로 통일장이론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시민권을 포기하고 독일을 떠난 그는 이후 20여 년 동안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거의 변화 없는 생활을 유지했다. 1939년,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핵무기 연구에 관한 유명한 서한에 서명함으로써 ‘맨해튼 계획’ 수립에 영향을 끼쳤지만,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충격을 받아 핵무기 폐기를 위한 운동에 동참했으며, 비무장 세계정부 수립을 위한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한편 1940년, 아인슈타인은 마침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을 유럽인으로 생각했다. 1952년 이스라엘의 2대 대통령을 제안받기도 했던 그는 이를 정중히 거절하고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1955년 대동맥류 파열로 프린스턴 병원에 입원한 뒤 그해 4월 18일 그곳에서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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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외신부 기자와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을 거쳐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중국의 붉은 별》 《메가트렌드 아시아》 《세계 없는 세계화》 《제국의 패러독스》 《소프트파워》 《진보의 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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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물리학 학사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과학과 음악의 관계, 과학 수사학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주요 수상으로 2010년 제1회 한국창의연구논문상 장려상(한국연구재단) 수상, 2010년 연구개발사업 기초 연구 우수성과(교과부 장관상), 2012년 인문사회 기초학문육성 10년 대표성과(한국연구재단)로 선정 수상하였고, 마르퀴즈 후즈후(Marquis Who’s Who), 국제인명센터(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re), 미국인명연구소(American
서울대학교 물리학 학사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과학과 음악의 관계, 과학 수사학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주요 수상으로 2010년 제1회 한국창의연구논문상 장려상(한국연구재단) 수상, 2010년 연구개발사업 기초 연구 우수성과(교과부 장관상), 2012년 인문사회 기초학문육성 10년 대표성과(한국연구재단)로 선정 수상하였고, 마르퀴즈 후즈후(Marquis Who’s Who), 국제인명센터(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re), 미국인명연구소(American Biographial Institute)에서 편찬하는 다수의 인명사전에 2009년부터 연속 등재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Alfred M. Mayer and Acoustics in Nineteenth-Century America」 Annals of Science 70 (2013), 229-256., 「Uses and Forms of Instruments: Resonator and Tuning Fork in Rayleigh’s Acoustical Experiments」 Annals of Science 66 (2009), 371-395., 「British Acoustics and Its Transformation from the 1860s to the 1910s」 Annals of Science (2006) 등이 있다.

주요 저서에는 『공생적 조화: 19세기 영국의 음악 과학』(서강대학교 출판부/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음악과 과학의 만남: 역사적 조망』(경성대학교 출판부/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음악과 과학의 길: 본질적 긴장』(한국문화사/2014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소리의 얼굴들』(경북대학교 출판부/2015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음악적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아서』(경성대학교 출판부/2016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세종도서), 『Landmark Writings in Western Mathematics, 1640-1940』(2005, Elsevier, 공저),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 19세기 음향학의 수사학적 분석』(서강대학교 출판부), 『쉬운 과학사』(이담북스), 『앨프레드 메이어와 19세기 미국 음향학의 발전』(한울), 『호모 무지쿠스는 뇌로 음악을 듣는다』(경북대학교 출판부/2019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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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07쪽 | 153*224*30mm
ISBN13
9788989524274

책 속으로

문화에 가치를 두고 있는 한 인류는 이 같은 불모화를 방지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인류는 당장의 위기 상황에서 가능한 도움의 손길을 뻗치게 될 것이고, 지금은 민족적 이기주의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한층 높은 수준의 정서적 공동체를 다시 일깨우게 될 것이다. 정서적 공동체에 있어서 인류의 제반 가치가 정치과 국경에 관계없이 타당성을 지닌다. 그렇게 되면 정서적 공동체는 앞으로 모든 나라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고 문화적 결실을 가져올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해 주게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때때로 학교를 자라나는 대에게 지식을 퇴대한 전수하는 도구쯤으로 생각한다.그러나 이런 생각은 옳지 않다. 지식은 생명이 없지만 학교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학교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학교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공동체의 복리에 유익한 자질과 능력을 계발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개성을 파괴하고 개개인은 벌이나 개미처럼 공동체의 한낱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창의성과 목표 의식이 없는 규격화한 개인들로 이뤄진 공동체는 발전 가능성이 앖는 메마른 공동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봉사를 인생의 가장 값진 일로 생각하게끔 교육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영국의 교육제도가 이 같은 이상의 구현에 가장 근접해 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1. 사려 깊은 철학자이자 뛰어난 문필가
사실 아인슈타인이 탁월한 철학자라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가 평생의 과업으로 추구해온 ‘물리적 실재(Physical Reality)’를 탐구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과학과 철학의 영원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상대성 원리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인식론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철학적이다. 과학과 물리학은 바로 철학과 맞닿아 있으며 위대한 과학자는 위대한 철학자인 동시에 독실한 종교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의 글은 보여주고 있다.

그는 과학과 종교는 그 영역이 서로 분명하게 구별되고 있지만 양자간에는 호혜적 관계와 상호 의존성이 상당히 강하게 남아 있다고 말한다. 과학은 진실과 지식에 대한 열망이 몸에 철두철미하게 밴 사람만이 이뤄낼 수 있지만 그런 열망의 원천은 종교의 영역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라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글은 짧은 문장 속에서도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또한 그 속에서 그가 대단한 문필가임을 보여주고 있다.

“항상 물리적인 힘의 행사에 조소를 보낸 승리의 투사, 소박한 인간의 존엄성으로 유럽의 야만성에 맞서 언제나 그 우월성을 돋보이게 만든 인물. 아마 앞으로 다가올 세대들은 이 지구상에 육신을 가진 이런 인물이 걸어다녔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1939년 간디의 70회 생일에 붙여 아인슈타인이 쓴 글 가운데 한 구절이다.

2. 세속적인 욕망을 초월한 인도주의자
아인슈타인은 모든 세속적인 욕망-출세, 재산, 사치-을 경멸했으며 자신이 이룩한 ‘작은 과학적 업적’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나치게 칭송 받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 겸양의 인물이었다. 이러한 겸양은 그의 글 곳곳에 배어있다.

“나는 매일 골백번씩 내 자신의 내면의 삶과 외형적 생활이 살아 있거나 이미 숨진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에 의지한다는 점과, 따라서 내가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것만큼 돌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스스로 되새기고 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의 노고를 지나치게 많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을 때로는 강박감을 느끼면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과학자들이 원자폭탄이라는 신무기의 탄생을 도운 것은 인류의 적들이 이 무기를 획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히고 2차세계대전 종전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이겼지만 평화는 얻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아인슈타인은 인류의 미래에 희망과 동시에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 과학의 이율배반적인 역할에 대해 고뇌하며 인간의 손에 들려 있는 과학이라는 이 도구가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는 전적으로 인류가 품고 있는 목표의 성격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일단 이 목표가 존재하면 과학적 방법은 그것들을 실현시킬 수단을 제공할 뿐 과학적 방법이 목표 자체를 제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단의 완전성과 목표의 혼란이 우리 시대의 특징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3. 전쟁의 영원한 종식을 꿈꾼 평화주의자
아인슈타인은 의무병역제도와 군대를 극도로 혐오하고 전쟁의 영원한 종식을 위해 세계정부 수립을 촉구한 평화주의자였다.

“어떤 사람이 밴드의 선율에 맞춰 4열 종대로 행진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그를 여지없이 경멸할 것이다. 이런 사람이 큼직한 두뇌를 갖게 되었다면 이는 오로지 실수 때문이다”

2차대전 종전 후 아인슈타인은 무제한적인 주권을 가진 개별 국가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으며 이제 무기의 발달과 핵무기의 출현으로 전쟁은 곧 인류의 파멸을 뜻한다면서 전쟁을 영원히 종식시키고 핵무기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세계정부의 수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정부는 각국의 무력을 통합해서 관리하고 세계정부의 결정은 주권 국가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가져야 하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세계정부가 무력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세계정부는 지금 실현되지 않더라도 인류가 또 한차례의 전쟁을 겪게 된다면 결국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세계정부 수립을 둘러싼 아인슈타인과 소련 과학아카데미 간의 장문의 서신 논쟁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대단히 흥미롭다.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 2천년에 걸쳐 박해를 받은 사실에 대해 심히 탄식하면서도 “내가 인식하는 유대교의 본질적 특성은 국경과 군대, 얼마간의 세속적인 권능을 지닌 유대인 국가 수립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치적 의미의 국가 조직으로 복귀한다는 것은 우리 선지자들의 천재성이 우리에게 남겨준 공동체의 영성화를 외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주권을 지닌 유대인 국가의 수립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1952년 아인슈타인이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 제의를 거부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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