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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일러두기 1. 깍깍대는 물수리는 │ 「국풍國風」 「주남周南·관저關雎」 2. 촘촘한 토끼그물 │ 「주남周南·토저兎」 3. 축축하네 길 위의 이슬 │ 「소남召南·행로行露」 4. 저 들에 죽은 고라니 │ 「소남召南·야유사균野有死」 5. 제비가 날아가네 │ 「패풍風·연연燕燕」 6. 얌전한 아가씨 예쁘기도 하네 │ 「패풍風·정녀靜女」 7. 담벼락에 자라는 납가새 풀 │ 「용풍風·장유자牆有茨」 8. 봐라! 쥐도 가죽이 있거늘 │ 「용풍風·상서相鼠」 9. 훤칠하고 커다란 여인이여 │ 「위풍衛風·석인碩人」 10. 숙맥 같은 그 사내 │ 「위풍衛風·맹氓」 11. 남편이 전장에 나갔는데 │ 「왕풍王風·군자우역君子于役」 12. 저기 칡넝쿨 캐는 이여 │ 「왕풍王風·채갈采葛」 13. 흑색 비단으로 만든 관복이 잘 맞는군요 │ 「정풍鄭風·치의緇衣」 14. 진수, 유수 두 강물은 │ 「정풍鄭風·진유溱洧」 15. 닭은 벌써 울고요 │ 「제풍齊風·계명鳴」 16. 저 높은 산에 올라 │ 「위풍魏風·척호陟岵」 17. 들쥐야 들쥐야 │ 「위풍魏風·석서碩鼠」 18. 장작은 잘 묶고요 │ 「당풍唐風·주무綢繆」 19. 칡넝쿨은 뻗어나가 가시나무 덮고 │ 「당풍唐風·갈생葛生」 20. 갈대는 창창 │ 「진풍秦風·겸가」 21. 가로막대 대문 아래 │ 「진풍陳風·형문衡門」 22. 저 호숫가에 자라난 │ 「진풍陳風·택피澤陂」 23. 도끼자루 베려면 어떻게 하나 │ 「빈풍風·벌가伐柯」 마치면서 부록 ―『시경』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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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깍대는 물수리는 강 모래밭에 울고, 참하고 예쁜 요조숙녀 군자의 배필일세.
넘실넘실 물풀을 좌우로 훑어 따고, 참하고 예쁜 요조숙녀 오매불망 찾아보세. 얻으려 해도 못 얻어 밤낮 마음속에 그립고, 근심이 맴돌아 뒤척이며 잠못드네. 어슷어슷 물풀을 좌우로 잡아 캐고, 참하고 예쁜 요조숙녀 금슬로 벗을 삼네. 올망졸망 물풀을 좌우로 솎아 내고, 참하고 예쁜 요조숙녀 종과 북으로 즐기네. 「관저關雎」는 시경의 첫 번째 노래이며 동시에 국풍의 첫 번째 노래이기도 하고 또 주남의 첫 번째 노래가 된다. 그러므로 『시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 어떤 시詩보다도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라면 ‘요조숙녀’ ‘오매불망’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그 말의 출처가 어디냐고 한다면 바로 이 「관저」라는 노래다. 또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다’라는 말도 혹자는 들어봤을 것이다. 역시 「관저」에 나오는 말이다. 또 ‘전전반측’이나 ‘금슬’이라는 말 역시 「관저」에 있다. 이 말인즉슨 우리 조상들이 『시경』을 공부했고 거기에 나오는 어휘들을 자연스럽게 일상어휘로 사용했다는 것이다.---「국풍國風」 「주남周南·관저關雎」중에서 두 손은 마치 봄날 띠 싹 속살처럼 희고 부드러우며, 살갗은 마치 엉긴 유지처럼 뽀얗고 윤기 나며, 목은 마치 굼벵이처럼 길고 희고 도톰하며, 치아는 조롱박 속에 박힌 씨처럼 희고 가지런하네. 매미 머리처럼 두툼한 이마와 누에나방 촉수 같은 눈썹이로세. 수줍은 듯 짓는 미소에 볼우물 살짝 들어가고, 초롱초롱한 두 눈망울은 떼구르르 구르네. 춘추시대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제후국들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제齊나라는 특색이 있는 나라였다. 바다를 가까이 접해서 그런지, 소금 생산이 주요산업이었고 직물이 크게 발달해서 무역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제나라는 상업 활동이 활발해졌고 실용주의가 존중되었다. 다른 제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의범절과 같은 형식은 특별히 중시하지 않게 되었고, 규제가 엄하지 않아서 자연히 남녀의 차별이 적었다고 한다. 여성들도 비교적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던 모양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여성들이 미인이 많았다고 한다. …… 여하튼 미의 기준이 어떻게 변했든 간에, 내가 볼 때 그녀가 지금까지 미녀의 대명사로 영예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외모 덕이기도 하겠지만, 실은 바로 이 노래를 지은 작자에게 그 공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천고의 뛰어난 미모가 아니라, 천고의 뛰어난 묘사가 그녀를 미인의 전당에 앉힌 것이다. 청대淸代의 유명한 경학자인 요제항姚?恒은 이 시의 표현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수천 년간 미인을 노래한 것 중에서 이보다 뛰어난 것은 없으니 정말로 최고의 노래이다”라고 극찬했다. ---「위풍衛風·석인碩人」 중에서 저기 칡넝쿨 캐는 이여, 하루 못 봤는데도 여러 달 같구나. 저기 대쑥 캐는 이여, 하루 못 봤는데도 여러 계절 같구나. 저기 뜸쑥 캐는 이여, 하루 못 봤는데도 여러 해 같구나. ‘일일이 여삼추’라는 말을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그 말의 출처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노래다. 또 약간 변형해서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여하튼 하루라는 시간도 때에 따라서는 절대적인 24시간의 분량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때로는 번개처럼 금방 지나가버리는 짧은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며칠 또는 몇 달 심지어 몇 년의 세월처럼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 청춘가의 한 대목에 “세월이 가기는 흐르는 물 같고, 사람이 늙기는 바람결 같구나”라는 한탄이 있다. 설마 바람결처럼 금방 청춘이 가버릴 리는 없지만 뒤돌아보면 역시 번개처럼 지나가버리는 것이 청춘이다. ---「왕풍王風?채갈采葛」 흑색 비단으로 만든 관복이 잘 맞는군요. 옷이 해지면 제가 다시 만들어드리죠. 당신, 관아에 출근하셔야죠. 퇴근해서 집에 오시면 제가 찬을 해드리죠. 흑색 비단으로 만든 관복이 참 멋지군요. 옷이 해지면 제가 다시 지어드리죠. 당신, 관아에 출근하셔야죠. 퇴근해서 집에 오시면 제가 찬을 해드리죠. 흑색 비단으로 만든 관복이 참 넉넉하군요. 옷이 해지면 제가 다시 고쳐드리죠. 당신, 관아에 출근하셔야죠. 퇴근해서 집에 오시면 제가 찬을 해드리죠. 이 노래는 정鄭나라의 민요이다. 이 나라 민요는 다른 나라 민요에 비해서 남녀의 애정표현이 자연스럽고 솔직하다. 하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수천 년간 줄곧 봉건적 사고에 젖으면서 남녀간의 다정한 모습은 금기시되어 버렸다. 주대周代의 공자도 역시 이 정나라의 민요를 음란하다고 보았다. …… 그러나 이 노래를 통해서 정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3천 년 전쟀 남녀들은 후대처럼 그렇게 남녀가 유별하지는 않았다. ……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시대의 여인들이 남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 그 정나라의 백성들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노래로 불렀다는 데 있다.---「정풍鄭風·치의緇衣」 장작은 잘 묶고요, 삼성은 하늘에 떠 있네요. 오늘 밤은 어떤 밤이기에, 이리도 고운님을 만났나? 그대여 그대여, 이리도 고운님을 어찌할까요? 지금 이 노래의 경우처럼, 『시경』의 노래들이 불리던 삼천 년 전의 시대에서는,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를 골라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결혼당사자인 신랑신부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이므로 즐거운 마음으로 결혼에 임할 수 있다. 유교가 보급된 이후의 시대에 치러지던 엄숙한 혼례와는 판이한 것이다. 결혼結婚은 혼昏과 관련 있다. 즉 ‘저녁’을 의미한다. 그 옛날 약탈혼에서 유래되었는데, 남의 집에 가서 여자를 보쌈해 오려면 저녁 어두울 때가 좋았다. 혼례가 저녁에 치러지는 것은 이런 약탈혼의 풍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남자측이 여자를 데려와 혼례를 치르게 되는데, 어두운 저녁에 시작하니까 이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게 횃불 또는 장작불이다. 이 노래는 이러한 배경에서 불리었다고 본다. ---「당풍唐風 주무綢繆」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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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에 수록된 삼백여 수의 노래들은 삼천 년 이상의 생명을 가진 노래들이다. 지금으로부터 삼천 년 전에 살았던 고대인들의 가식 없는 진실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노래들인 것이다. 궁핍하던 시대에 각 계층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되, “즐겁지만 탐닉하지 않고, 슬프지만 몸을 상할 정도가 아닌” 정서를 바탕으로 중국문학 전통의 심미관을 확립시켰다.
사서삼경은 『논어』, 『맹자』, 『중용』, 『대학』 4권의 서책과 『시경』, 『상서』, 『주역』 3권의 경서로 이루어진 유가의 대표적인 고전문헌이다. 그중 『시경』은 주나라 당시의 노래를 모은 가요집이었다. 그 중에는 민간의 민요, 사대부들이 지은 노래, 연회를 위한 주악, 종묘 제사를 위한 제사악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다양한 노래가 수록된 가요집은 공자孔子 훨씬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으며 그 당시에는 시詩라고 불리거나 시삼백詩三百으로 불렸다. 공자 자신도 그의 아들에게 『시경』 학습이 중요함을 일깨우기도 했다. 『춘추좌전』 기록을 보면, 당시 제후국간의 회맹이나 제후사대부들의 연회에서 부시賦詩를 했는데, 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시 가운데에서 때와 장소와 상대에 맞는 적당한 시를 골라 읊음으로써 상대에게 자신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행위이다. 물론 상대가 읊는 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 의사소통은 불가해지므로, 사대부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게 바로 그 시들이었던 것이다. 한漢나라에 이르러 유가儒家의 학문이 국가의 유일한 통치철학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시를 포함한 유가의 여러 학문들이 경학經學이라는 차원으로 격상되었다. 즉 그 이전에는 시라고 호칭하던 것을 그때부터 이 시詩에도 경經을 붙여서 마침내 ‘시경’이 된 것이다. 천지인의 ‘경쾌하게 고전 읽기’ 시리즈는 새싹 하나로 봄을 알듯 낙엽 하나로 가을을 느끼듯 해당 고전의 핵심 30구를 통해 해당 고전을 거시적으로 조감하고 미시적으로 해설하여 방대하고도 난삽한 고전을 일반 독자들이 간명하고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집필한 것이다. 중국의 경사자집經史子集을 축으로 하여 앞으로도 고전 중의 고전을 엄선하여 가장 핵심적인 구절을 제시, 고전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해설한 책들을 계속 출간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