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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내가 태어난 곳은 망우리 영월 고마리 분교에서 저어새, 칼새, 슴새 철원평야의 두루미들 가자, 히말라야 너머 인도로! 태풍의 눈 속에서 비글호의 저주받은 선원들 현해탄, 내 사랑의 해협 에필로그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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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디언 부족의 전설에 의하면, 최초의 새는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로 진흙을 빚어 만들었다고 한다. 하늘과 땅의 만남. 물과 흙의 만남. 하늘을 날되 땅에 내린 뿌리를 간직해야 하는 새들의 숙명을 나는 그 전설에서 읽곤 한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날에는 내가 가진 물은 하늘에 주고, 내가 가진 흙은 땅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내 몫의 반은 하늘의 것이고, 내 몫의 반은 땅의 것임을.
하지만 그 전에, 내가 하늘을 품어 내 날개 속에 간직하지 않고는, 또한 내가 땅을 품어 내 살과 뼈 속에 간직하지 않고는 내게는 돌려줄 수 있는 하늘과 땅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내가 받은 하늘과 땅을 돌려주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어느 날 나는 하늘에 뜬 둥근 달을 바라보며 결심했다. 이곳을, 이 땅을 떠나리라고. ---p.82 더 많이 먹어 살찌운 자는 땅을 떠나지 못하고, 더 많이 모아 부유해진 자는 둥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때? 이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이지. 콧구멍을 벌름거리거나 입맛을 다실 줄 모르는, 뼛속까지 텅 빈 우리들은 탐욕과 탐식과는 거리가 멀게 태어났어. 우리는 항상 가난하고, 그리고 항상 부지런하지. ---p.85 이제 곧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어둠만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바람의 지도를 따라, 내 생애 최후의 여행을. 그것이, 이를테면, 나의 마지막 선택이란다. 썰물 때면 드러나는 저 조개들, 그리고 바닷가 암벽에 뿌리내린 소나무와 뻣센 풀들조차 그들만이 알고 있는 여행의 암호를 지니고 있다. 지상의 모든 생명이 제각각 그 암호를 가지고 있지. 너도 너만의 암호를 갖도록 하여라. 그리고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네가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위해서라도 꼭! ---p.139 “타고난 몽상가에다 말썽꾸러기였던 그는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다가 결국은 먼 여행길에 오르게 되지. 세계 방방곡곡을 떠돌며 모험을 즐기지만, 결국은 늙고 지쳐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이야기란다.” “별로 좋은 인물은 아니로군요.” 내가 말했다. “하지만 녀석은 꿈꾸는 자였지. 백 명의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꿈꾸는 삶을 그는 과감하게 내동댕이쳤어. 그는 혼자서 백 명과 싸웠어.” “하지만 그는 패배했잖아요?” “패배?……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지. 하지만 그 패배는 백 명의 성공보다도 값진 것이야. 백 명 중 단 한 사람이 거부했다는 것, 바로 그것이 백 명의 승리가 되곤 하는 것이 인간의 역사란다. 너도 곧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238 그리스 신화에는 안타이오스라는 거인이 등장하지. 그는 대지로부터 신성한 힘을 부여받은 자였기에, 그의 발이 땅에 닿아 있는 한 아무도 그를 죽일 수가 없었어. 나는 새들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새의 날개가 하늘에 닿아 있는 한, 그 새는 결코 죽지 않는 법이야……. ---p.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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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리도록 서정적인 문장, 그 뒤에 숨은 현대 문명의 추악한 현실.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히말라야까지 날아간 까치 페르귄트를 통해 우리 사회를 통렬하게 헤집는 김영래의 장편소설 두려움 없는 삶,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삶이 바로 ‘행복’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 작가 김영래. 『숲의 왕』『씨앗』『푸른 수염의 성』『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등을 출간하여 생태문학, 신화에세이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오던 그가 이번에는 ‘새의 오디세이’를 소재로 한 독특한 글쓰기를 선보인다. 1997년 시인으로 등단한 후 올곧게 신화와 에코토피아에 대한 철학을 진지하게 풀어냈던 작가는 ‘멸종’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 출발선에서 『떠나기 좋은 시간이야, 페르귄트』를 내놓았다. 본격적인 알레고리의 형식으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 소설은 가슴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 소설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 등을 여행을 통해 치유하고 마침내 ‘두려움 없는 삶,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삶’이 바로 ‘행복’임을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까치 페르귄트, 인간과 通하다 작가 김영래는 신화 속 주인공인 오디세이를 모티브로 우리 소설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했다. 바로 ‘까치 페르귄트’다. 몽상가이자 탐험가라는 의미를 지닌 페르귄트는 자연 파괴 현장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더불어 철원 평야, 아무르강, 몽골초원, 타클라마칸 사막을 거쳐 히말라야 산맥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그가 마주한 원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회화적이면서도 따듯한 울림으로 전한다. 탐욕스런 ‘온갖 잡새’들에게 바치는 송가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살아가던 까치 아작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이웃 우두머리 까치의 새끼들을 죽이게 되고 쫓기듯 강원도 영월로 피신을 간다. 그곳에서도 떨치지 못한 죄책감과 생의 비의로 아작은 텃새라는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며 목숨 건 세계 여행에 나선다. 겨울이 되어 두루미와 함께 길을 나선 아작은 히말라야 산맥을 날아오르다 바다로 추락해 태풍의 눈으로 빠져든다. 이후 좀비 유령선 비글호에 탑승하게 되고 그곳에서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윈’을 만나게 된다. 다윈은 좀비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아작을 숨겨준 뒤 한반도에서 시작해 시베리아, 히말라야 산맥에 이르는 아작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길고도 험난했던 여행기를 들은 뒤 다윈은 아작에게 페르귄트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한낱 망우리 공동묘지의 사고뭉치 까치 떼에서 몽상가이자 탐험가인 ‘페르귄트’로 거듭난 것이다. 세계의 신화를 버무려 빚은 ‘새의 오디세이’ 페르귄트는 거대한 쓰레기섬으로 변해가는 도시를 씁쓸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삵, 담비, 칼새, 슴새, 저어새 등을 만나 사라져가는 것들의 운명과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인간의 탐욕을 온몸으로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임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전개되는 이 소설은 인디언, 일본, 노르웨이 등 세계의 신화와 함께 버무려져 이야기로서의 ‘힘’을 더하고 있다. 신화 속 오디세이가 여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다시 이타케섬으로 돌아오듯 여행을 통해 성장한 페르귄트는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가슴 속에 길고, 아름답고, 험난하고, 고통스러웠으나 경이로웠던 여행의 기억을 품은 채로 말이다. 다시 돌아온 페르귄트는 ‘떠남’을 준비하는 다른 나그네들을 위해 민박집을 연다. 언젠가 여행을 준비하는 또 다른 몽상가, 페르귄트를 위해서. 혹시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떠남’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페르귄트를 찾아가보면 어떨까. 깃을 고르고, 민박집 청소를 하며 ‘나’를 기다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이제 내 안의 모든 어둠과 기꺼이 작별하자. 그리고 이렇게 주문을 외워보자. “떠나기 좋은 시간이야, 페르귄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