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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_ 고(故) 김수환 추기경
개정판을 내며_ 오늘은 너, 내일은 나 초판 서문_ 지상에서의 마지막 동행 제1부 햇살 가득한 방 겨울에 만난 예수님 | 24시간 흔들리는 아내 | 햇살 가득한 방에서 | 따봉! 따봉! | 내가 만난 성모님 | 그리운 담배 | 남은 자의 슬픔 | 찾았다! | 내려서야만 했던 무대 | 가족을 위한 행군 **‘마작회’를 소개합니다 |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 메리 포터와 갈바리 산 | 블루 베일 | 한국 최초의 호스피스 | 호스피스 교육의 중요성 제2부 하늘나라 같이 가요 수녀님, 하늘나라 같이 가요 | 그리움의 책장을 넘기며 |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 천국에 간 사나이 | 그녀만의 전쟁 | 당신을 사랑합니다 | 마음이 쉴 수 있는 곳 | 어떤 임종자의 고통 | 아내가 이상해요 | 나 뭐 입고 가지? **푸른 눈의 수녀들 | 오해와 이해 | 나의 오리엔탈리즘 | 서울의 추억 | 아름다운 만남 | 나환자촌의 아기 | 갈바리의원의 유일한 아기 제3부 성스러운 축제 부활절에 떠난 아이 | 보고픈 내 딸 | 아들과 떠난 여행 | 세상이 텅 비어 있다 | 유리구두 | 성스러운 축제일 | 수양딸과 어머니 | 엄마 없이 살아갈 세상 | 천사표 며느리 | 어미 언덕 이야기 **외국인 수녀님들과의 추억 | 뱁새의 추억 | 참을 수 없는 가방의 무거움 | 딸~러 있어요 | 파리 기절시키는 법 | 메리 수녀님과 불개미 라면 | ‘골드라면’ 안 먹습니다 제4부 절망과 희망 사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어느 장례식 | 에이즈 환자의 희망 | 정동진의 추억 | 장모와 사위 | 집착의 고리를 끊고 | 숨겨 둔 저금통장 | 의심의 집을 짓고 | 아직은 마흔아홉 | 절망의 끝에 서서 **서원의 마음 | 비천무 | 집으로 | 가문의 영광 | 미션 임파서블 | 버스, 정류장 | 낯선 시작 제5부 빛을 찾는 사람들 빛을 전해 준 시인 | 내일이면 늦으리 | 죄의식 넘어서기 | 하늘을 날던 천사 미카엘 | 얼마나 더 살고 싶으세요? | 999만 원짜리 물 | 두 갈래 길 |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분 | 소중한 만남 **수녀들, 아프리카에 가다! | 오픈 유어 아이즈 | 서프라이즈 | 미션 | 아프리카판 ‘집으로’ | 8월의 크리스마스 부록_ 갈바리언덕으로 초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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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풍요롭게 하는 일은 건강하고 부유한 가운데서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죽음에 임박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죽음에 늘 대비하는 자세로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이나 이웃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죽음을 금기시하지 않고 가깝게 받아들일 때 그 삶은 더욱 풍요롭고 따뜻해질 것이다. --- p.66
임종이 다가오던 어느 날, 강영옥 님이 죽음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늘 같이 있던 사람이 하늘나라에 함께 가면 좋겠다고 하셨다. “저승에 가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심심할 텐데……. 수녀님은 광대 같으니까 같이 가주면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요. 나도 데려가요. 함께 가지요, 뭐.”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혼자 가는 길이라는 걸 그분이 왜 몰랐겠는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함께 가자는 말씀을 꺼내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며칠 후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편안하게 임종하셨다. 그날 나는 그분이 가시는 모습을 3층 수녀원 창문에서 지켜보았다. 지나가는 나를 “수녀님!” 하고 불러 세우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딴청을 부리던 그분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늘나라가 심심할까봐 나도 데려가겠다고 하시더니, 그곳에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여태 부르지 않으신다. --- p.73 모현에서는 매일 아침 기도실 입구에 있는 두 개의 책장을 넘긴다. 한 권에는 돌아가신 마리아의작은자매회 수녀님들의 이름을, 또 한 권에는 모현의 방문을 받다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적어 놓고 기억하는 책이다. 1987년 서울에서 방문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돌아가신 분들이 2천여 명이 넘다보니 1년 365일 모든 날짜에 이름이 적혀 있다. 더러 그분들과 가족들에게 받은 사진이 꽂혀 있는 페이지도 있다. 매일 아침 ‘오늘’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며 공동체가 함께 짧은 시편 기도를 바친다. 그때마다 그분들이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믿음과, 참 든든한 ‘빽’을 가졌다는 자만심(?)에 빠져 괜히 더 용감해지기도 한다. --- p.75 죽음에 대한 상념에 빠져 있다가 불현듯 내가 지나친 욕심을 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하나만 이루어지면 되는 것을……. 그 단 하나의 소원은, 어떤 상황이 오든 그 상황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다. 치매에 걸려 주책을 떨어도, 눈 외에는 움직이는 것이 없어 의료진이 꼬집을 때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더라도, 나를 돌보는 사람들이 사랑이 아닌 원망에 찬 눈길로 대하더라도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닥쳐봐야 알 일, 이것이야말로 지나친 욕심은 아닐까. --- p.82 박정길 님의 어머니는 ‘보살님’이라고 했다. 집에는 금주발 따위의 의식(儀式) 용구가 있었으며 천장은 연꽃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호스피스는 종교와 무관하게 활동하지만 찾아가는 사람들이 수녀라서 곤란해하는 분들이 있다. 하루 방문하고는 거절당한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댁이 목사님 사택이라 수녀가 드나드는 것에 대한 오해가 있을까 염려해 거절한 경우였다. 수도복 대신 평상복 차림으로 가는 수녀도 있지만 수녀가 방문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박정길 님의 어머니가 그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수녀들을 집에 들인 것은 아들의 아픔을 덜어주고자 하는 지극한 모성애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 p.84 한참을 바라보다가 속으로 기도만 하고 오기를 며칠째, 그가 느닷없이 “대체 나는 하느님도 믿지 않는데 왜 자꾸 오는 거요?” 한다. 부정적인 물음이었지만 대화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성민(가명) 님은 잘 모르시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하느님이 형제님을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사랑을 전해 드리고 싶어 찾아옵니다.” 이 말에 뜻밖에도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러고는 “정말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실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죠. 하느님은 형제님의 고통을 보고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랑의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성민 님이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때부터 많이 가까워졌다. --- p.93 장례를 지낸 후 남편은 먼 훗날 자신도 이곳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또한 자신과 아내는 불교 신자이기에 윤회를 믿는다면서, 아내가 중국에서 부잣집 아들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큰스님 말씀이 있었다고 전해 주었다. 사랑했던 사람이 후세에 다시 태어나 행복하게 살 것을 믿는 마음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 보다 큰 마음의 평안을 주는가 보다. 김선우 님이 떠난 후 나는 갈바리 동산으로 주님을 찾아갔다. 또다시 태어나서 삶과 죽음을 겪기보다는 단 한 번의 삶을 마친 후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늘 다하지 못한 것 같은 미련, 이 부족함을 거두시어 내게 더 큰 능력을 주십사 엎드려 기도드렸다. --- p.108 사랑하는 사람을 세 번씩이나 잃은 김은영 님은 말을 잃고 실의에 빠졌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지조차 모르는 채 시간이 흘러갔다. 아이는 잠들기 전에 아빠를 찾으며 그리워하다가도 우는 엄마를 보면 나름대로 달래고 위로했다. 그럴 때면 아이를 끌어안고 울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세 번의 사별을 겪고 나니 세상은 온통 비어 버린 것 같았다. 단 한 사람의 빈자리가 더욱 크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이 세상에 자기가 마음 붙일 곳이 아무 데도 없다고 생각했다.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운 남편의 빈자리가 곧 온 세상의 빈자리 같기만 했다. 하지만 온통 비어 있다는 것은 역으로, 또다시 새롭게 채울 수 있음을 말하는 게 아니던가. 김은영 님은 자신이 왜 그렇게 홀로 남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생각해 보면서 서서히 어둡고 깊은 슬픔의 골짜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 p.139 처음 민주를 만나러 가던 날, 우리는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주사 안 놓을게” 하고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는 걸 아이에게 보여 주어야 했다. “아야! 너무 아파!” 참을 수 없는 고통도 그렇게 간단한 문장으로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네 살짜리 아이. 너무나 작고 예쁜 여자아이였다.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는 부모님의 힌트에 유치할 정도로 찬란하게 포장된 꽃다발을 가져가니 아이가 너무 기뻐했다. 민주는 엄마가 예쁜 치마만 입고 있어도 “엄마! 너무 이쁘다. 그렇지? 아유, 너무 이쁘네” 하면서 기뻐하던 ‘공주님’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가 떠난 지금도 예쁘게 차려입고 손톱에 매니큐어도 칠한다. 아이가 하늘에서 보고 좋아하라고. --- pp.144~155 김씨 아주머니의 손과 다리를 펴 드리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시간이 꽤 지난 터라 사후경직이 있는 아주머니의 손을 펴려고 하면 하체가 벌떡 올라오고, 다리를 힘껏 누르면 상체가 벌떡 일어나 나에게 인사를 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농담 삼아 “시체가 관 뚜껑 열고 벌떡 일어난다”는 얘기를 하면 그때 상황이 떠오르곤 한다. 아무리 수도직에 임하는 수녀라 해도 여자 둘이 시신을 붙들고 두어 시간 통사정을 하다 보니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힘에 겨워 도와주지 않는 마을 사람들과 따님도 원망스러웠다. 간신히 시신을 똑바로 수습하고 염을 시작하면서 입안을 닦으려고 보니 반나절 동안에 생긴 구더기가 입안에 가득했다. 시신 염은 몇 번 해보았지만 그토록 힘든 경우는 처음이었다. 불현듯 훗날 내가 하느님 곁에 서게 된다면 이 아주머니 덕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당신 곁에 안 불러 주신다면 따져 보기라도 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 p.193 “벼랑 끝으로 오세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대답했다. “무서워요.” “벼랑 끝으로 오세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다가갔다. 그는 그들을 밀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날아올랐다. 보따리를 싸 볼까 했다. 이 나이에 집에 가면 농촌 노총각 중매해 주시겠다던 어머니의 농담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쉰 살 넘어 초등학교 동창에게 시집갔다던 그 수녀님을 생각한 것도 아니었지만, 종신서원을 해도 수도자로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길도 하느님께서는 허락하실 것 같았다. 답답해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의 한 말씀, “다른 사람 괴롭히려거든 나와라!” 그날 나는 벼랑에 서 있는 사람이기보다 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224쪽 어느 날 밤 10시쯤 “수녀님들이 보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황급히 달려가니 증인을 서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무슨 내용인가 물어보았다. “나 자신이 평생 타인을 위해 봉사한 기억이 없어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아프고 나서 수녀님들을 만나 호스피스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봉사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타인에게 빛이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신의 시신을 모교 대학병원에 기증하고 싶다면서, 아내에게도 허락을 받았으니 수녀님들이 증인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 p.236 할아버지 댁에서 나온 후 30여 분의 시간, 나의 존재가 주님의 도구로 쓰이길 바라면서 성모님께 바오로 할아버지를 기억하시고 도와달라고 청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사 마음속으로 기도드렸다. 무언가 더 구체적으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우리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할아버지는 그만 눈을 감으신 것이다. 할아버지의 소식을 접하?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내일이면 늦을’ 영혼에 대하여. 할아버지의 마지막이 가까운 그 시간에 우리를 그곳에 보내신 것 역시 하느님의 큰 뜻이었으리라. 주님께서는 그 짧은 시간에 사랑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삶은 절대 미루며 사는 것이 아님을 깨우치게 하셨다. --- p.241 철없을 때 나는 감히 하느님께 청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생명을 받고 태어나 살다 그분께 다시 돌아가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결국 그들을 통해 세상 모든 사람이 임종의 고통에 놓인 이들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나의 청을 들어 주시는 게 아닐까.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그분께서 직접 하시는 일이기에……. ‘어머니의 언덕’에 모여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게 되는 순간 진정한 호스피스인으로 거듭나는 게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 p.2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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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야 하는 죽음의 여행길, 더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없어
두렵고 버림받은 기분이 들 때, 그들 곁을 지키는 ‘벗’들이 있습니다. ‘죽이게’ 멋진 벗들의 육성에서 깨닫게 되는 단 한 가지, “삶은 절대 미루며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우리 민정이(아내) 한 번만 안아주고 싶어요.”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아이가 좀 더 클 때까지 딱 3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에게 마음껏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아버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 우리는 무엇을 말하게 될까? 아파트 평수를 넓히거나, 통장잔고를 늘리는 일,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을 애석해하게 될까? 결단코 아닐 것이다. ‘오늘은 너, 내일은 나’라는 말처럼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늘 남의 일처럼 외면하는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은 바로 곁에 있는 가족, 그리고 이웃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이 아닐까. 죽음을 앞둔 인생들에게서 배우는 삶의 고갱이 1965년부터 지금까지 임종 직전의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해온 벗들이 있다. 국내 최초로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한 ‘마리아의작은자매회’ 수녀들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마리아의작은자매회가 추기경의 선종 1주기를 맞아 그간의 활동사례집을 다시 펴냈다. “오늘 임종하는 사람들, 내일이면 늦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라는 수도회의 기본정신에 따라 날마다 죽음 앞에 선 다양한 인생들을 만나온 지 40여 년. 불과 몇 시간, 며칠, 몇 달간이지만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 삶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았던 생의 고갱이를, 내일만 보며 달리는 ‘오늘의 우리’와 나누기 위해 공개한다. 죽음은 소박한 삶의 진실을 일깨운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감정에 ‘오늘’ 충실하라는 것. 살아 있는 동안 살아 있는 것답게 누리며, 오늘 사랑하고 나누고 보살피고 돌보는 인간적인 삶이다.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늘 마지막이 되어서야 깨닫는 인간의 나약함. 사는 것에 바쁘기만 했던 이들을 만나는 동안 나는 ‘고통 속에서도 늘 깨어 있으라’고 하셨던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죽음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어 힘들기만 했을 이들, ‘영원한 이별’ 앞에서 눈물만 흘리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일러주도록 주님이 나를 이곳으로 이끄셨음을 깨달았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수녀님……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분…….” ‘내가 누구냐’는 수녀님의 물음에, 임종 직전 진우 씨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한마디를 토해냈다. 수녀님의 작별인사가 이어졌다. “그분의 사랑이 너를 기다리고 계실 테니 두려워 말고, 무서워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바라고 믿은 대로 하느님께 의지해라. 언젠가 그곳에서 그리운 사람도 만나게 될 것이다.” 진우 씨는 모두에게 감사하는 듯 평화로운 표정으로 마지막 안정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정확히 저녁 6시 15분에 시작해서 7시 25분까지, 임종의 시간이 지난 후 영원한 천상 여행길에 올랐다. “엄마, 나를 정말 사랑해?” 민선 씨가 수녀님을 ‘엄마’라고 부르며 물었다.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다. 수녀님이 대답했다. “네가 내 아들이어서 기쁘다. 너는 내가 아는 제일 멋진 남자야! 하늘나라 가면 엄마를 위해 비싸고 좋은 자리 마련해놔라!” “오시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세요.” 비로소 민선 씨는 눈을 감았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말기환자보다는, 더 오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 온전히 신경 쓰게 되는 자본주의 병원 시스템에서 소외된 사람들, 그들의 가장 소중한 오늘 하루를 곁에서 지키는 것이 호스피스의 사명이다. 누구나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 칠팔십 된 할아버지에게도 죽음은 느닷없는 방문이다. 그런 죽음 앞에 온전히 홀로 섰을 때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미소 한 번은 큰 위로가 된다. “그들에게는 단지 ‘벗’이 필요할 때가 많았다. 벗이란, 세상 모든 이가 나를 불신하고 밀어내고 아주 떠나 버린다 해도 믿음으로 내 곁에서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저 함께 있어 주는 존재가 아닐까.” “호스피스는 인권회복운동이다” 20여 년간 임종환자들을 돌봐온 모현호스피스센터의 권오숙 로사 수녀는 호스피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흔히 가난하고 보잘것없고 늙고 병든 사람은, 거칠게 말하면 죽어야 한다는 ‘죽임의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짙게 깔려 있다. 낡고 보잘것없는 것은 전부 새것으로 바꿔야 퇇다는 물질주의의 신화가 인간과 생명의 세계까지 잠식해 들어온 지 오래다. 대표적인 경우가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다. 권오숙 수녀가 ‘호스피스를 인권회복운동’이라고 설명한 것은, 이런 사회 인식을 거스르는 차원에서다. 죽음은 길게는 몇 달, 짧게는 한두 달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삶을 통합하는 과정이자,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버리고 떠나는 작업을 완수해야 하며, 피붙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전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는 소중한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시스템은 환자의 영적/정신적 돌봄이나 통증완화는 배제한 채 단순히 목숨 연장을 위한 비효과적인 의료행위에 초점이 맞춰진다. 아무리 임종 직전이라 해도 환자의 자율성과 존엄성은 인정되어야 하며, 이세상과 인간답고 품위 있게 작별할 수 있는 권리는 당연히 환자 자신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호스피스를 선택하는 것은 비효과적인 의료행위를 거부하고 영적 돌봄을 선택하는 일이며, 죽임의 문화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