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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미슐레, 역사를 먹는 자 -홀란드 운하선 -우리가 어리석게도 여성형으로 두는 역사 -잠-죽음과 태양-죽음 -피의 꽃 -여성 폐하 -초-성 -미슐레 읽기 -사람들은 미슐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이렇게 말한다 -연보/원주 -옮긴이 후기 |
Roland Bart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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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미슐레는 『프랑스혁명사』, 『민중』, 『마녀』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830년의 7월 혁명, 1848년의 2월 혁명 및 그 반동, 1871년의 파리 코뮌 등 역사의 빛과 어두움이 교차하는 시대를 산 프랑스의 대역사가이다. 미슐레의 문체는 현실을 서술함에 있어 그것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며 과도할 정도로 여러 형용의 과잉으로 채워져 있어 프랑스의 역사가들로부터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바르트는 이 책에서 미슐레를 미슐레로 만들어주는 그의 ‘작가적인’ 특질, 역사를 지각과 관능성의 레벨로 치환시키는 그의 특이한 언어의 사용에 주목함으로써 미슐레의 새로운 독해를 제시하고 있다. 쇠이유 출판사의 “영원의 작가” 총서의 한 권으로 출간되었던 이 책은 바르트의 미슐레에 대한 비평과 바르트가 선택한 미슐레의 문장이 서로 호응하면서 유기적인 통일을 이룬다는 점에서도 이 총서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힌다.
요양원에서의 미슐레와의 만남 바르트의 사실상의 데뷔작이자 ‘가능성의 중심’ 미슐레는 혹자의 말처럼 “노략질의 독서가”인 바르트가 프루스트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전작을 읽은 작가인 것으로 보인다. 바르트는 반복되는 폐결핵으로 인해 20대의 상당부분을 요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학생요양원에 머물 당시 무료함을 덜기 위해 요양원의 도서실에서 미슐레의 전 작품을 독파한다. 독서는 1942년 시작되었고 7.5×12.5(cm) 규격의 메모카드에 기록한 노트들은 요양원을 나올 무렵인 1945년 말에 이르러 천여 장에 달했다. 이 ‘보물들’은 바르트가 루마니아나 이집트 등지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늘 함께 했지만 그가 “뜯어먹은” 미슐레의 글들이 『미슐레』로 발간된 것이 1954년이니까 결국 한 권의 작은 책을 위해 12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젊은 시절의 열정 속에 묻힐 뻔했던 메모카드들이 뒤늦게나마 책으로 나오게 된 건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친구의 소개로 바르트를 알게 된 콩바지의 편집자인 모리스 나도는 1947년 그에게 미슐레에 관한 글을 써볼 것을 제안했으나, 당시 소르본 대학에서 미슐레에 대한 주제로 박사논문을 쓸 생각을 하던 바르트는 논문을 위해 그것을 아껴두고 싶었고 그 대신에 써 보낸 원고가 “글쓰기의 영도”였던 것이다. 이후 논문 기획을 포기한 바르트는 1951년 에스프리지에 “미슐레, 역사와 죽음”이라는 글을 발표하고, 이때 쇠이유 출판사의 “영원의 작가Ecrivains de toujours” 총서의 한 권으로 미슐레에 대한 책을 써줄 것을 청탁받는다. 미슐레의 강박관념을 추출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미슐레의 주제론적thematique 연구이다. 주제론적 연구란 바르트에게 있어 “강박관념들로 짜인 그물망”을 추출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미슐레에게서 우선 ‘이음매가 없는 세계’, ‘매끈매끈한 세계’라는 주제를 끌어내고 있다. 이 주제는 모습을 바꾸어서 미슐레 저술의 도처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중세의 프랑스왕의 힘은 공空에 유래한다고 말한다. 공이란 것은 요컨대 그의 내부에서 수많은 힘, 수많은 세습의 전통이 부딪히고 상쇄하면서 불시의 재난을 오더라도 평소와 다름없는 고아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그 바닥의 ‘매끈매끈함’, 즉 어떤 일종의 초월적인 상태를 전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가령 프랑스왕은 산문적이고 중부 프랑스는 산문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산문’이란 여러 개별성의 부재이면서 융합의 산물이어서 절대 적당히 여기저기서 적당히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중세의 왕에게서, 중부 프랑스에 있어서, 그 ‘이음매’는 도처에서 지워지고 따라서 대단히 매끈매끈한 세계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테마는 미슐레의 역사관 자체에서도 나타난다. 역사라는 것은 ‘지속의 도식’이어서 “연속적 운동으로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의 성장(자라남)은 이처럼 식물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어서 명백히 인과관계를 배제한다. 미슐레에게 있어 이 모든 것이 다른 것의 원인이라는 생각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동일한 줄기의 다른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강박관념을 넘어 ‘기질의 존재론’으로 바르트 자신 1978년에 “『미슐레』는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언급하지 않는, 자아의 책이다”고 말하고 있다. 미슐레에게서 반복되는 테마와 환상을 발견한다는 방법은 역으로 이후 지속될 바르트 자신의 불변적인 요소를 드러낸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 말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다. “미슐레에 대해 말할 때, 그[바르트]는 미슐레가 역사의 재료들에 대해 미슐레가 했다고 자신이 주장했던 것을 미슐레에 대해 행하는 것이다.”(『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바르트는 미슐레를 읽으며 거기에 자기 자신을 겹쳐 놓는다. 먼저, 죽음, 병과 공존하는 삶이 있다. 한 역사가에 대한 책을 그의 편두통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하는 것에서 벌써 바르트 자신에게 드리워졌던 죽음의 그림자가 확연히 드러난다. 폐결핵은 당시 아직 치료법이 확실치 않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그런 바르트에게 삶이란 덤으로 주어진 것, “죽음의 형 집행정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일상생활의 작은 디테일들에서 분석의 출발점을 보는 일종의 기질의 존재론이 미슐레와의 교차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특히 얼굴에 대한 관심은 미슐레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한 각주에서 바르트가 기록하듯 미슐레가 역사 인물의 모든 초상들을 구하지 않고는 글을 쓰지 않았듯이 바르트는 자신도 이를 흉내 내어 미슐레의 모든 초상을 구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