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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is Sepulv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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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타고니아 찬가
진화론으로 세계관의 패러다임을 바꿔 버린 찰스 다윈. 그는 파타고니아 앞 바다를 지나치면서 항해기에 다음과 같은 감상을 적어 놓았다. ‘우울한 고독들, 삶보다는 죽음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곳.’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그 ‘거짓말쟁이 영국인이 아무것도 못 보고서’ 그런 거짓말을 했다고 반박한다.소설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이하 <파타고니아>)와 <지구 끝의 사람들>(이하 <지구 끝>)에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파타고니아의 풍토와 인간에 대한 애정이 매 페이지마다 절절하게 묻어 난다. 굳이 찰스 다윈의 말을 소리 높여 반박하지 않더라도 기행문과 보고서 형식의 두 소설의 내용 속에는 원시적인 생명력을 쉴 새 없이 뿜어내면서 대자연의 혜택과 교훈을 하루하루 새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연들로 넘쳐 난다. <파타고니아>에는 배를 타는데 자신이 누울 관을 지참하고 가려는 노인네의 이야기가 나온다. 승무원들은 액운이 따른다며 관을 내려놓을 것을 명하고 노인은 한 사람이 60킬로그램의 화물은 들고 갈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노인은 암에 걸렸지만 아직은 숨을 쉴 권리가 있다고 목청을 높이고 승무원들은 승선을 거부하겠다고 협박하는데 선장이 끼어들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를 본다. ‘관을 가져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여행 중에 죽어서는 안 된다.’ 가볍게 요기할 거나 좀 달라는 말에 그래도 그게 가장 비쩍 마른 놈의 것이라며 양 다리 반쪽을 내놓는 사람들이며 어린 학생들의 시 한 구절에도 초현실주의가 스며 있는 곳이다. 시간은 멈춘 듯하고 어렸을 적 봤던 <타잔>의 늪처럼 모든 것을 망각 속에 쑤욱 집어삼키는 땅이다. 개체의 유한성도 생명의 반복되는 순환을 통해 한계가 극복된다. 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에서처럼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교감하고 그 교감을 주위 사람들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상응Correspondence의 관계이다. ?지구 끝? 마지막 부분에는 자신들과 교감을 나누던 인간- 페드로 치코-이 위협을 당하자 돌고래들이 온몸으로 포경선을 공격하여 구하는 장엄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린 피스가 세계 환경 보호를 위해 맹렬히 활동하고 있지만 정작 소설 속의 싸움에서 승리의 원인이 된 것은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비밀과 폭로.... 그 모든 것들처럼 나이도 없고, 세월도 없는 바다’의 힘이었다. <지구 끝>에 나오는 위대한 인간 호르헤 닐센 선장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믿지 못하고 조그마한 탐욕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는 동료 인간들을 보며 ‘가끔 돌고래들이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감성적이며 지혜롭다고 생각하오. 적어도 이놈들은 계급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진정한 바다의 무정부주의자들이다, 이거요’라며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모든 풍토가 그렇듯이 파타고니아 땅의 풍토도 그곳에 사는 인간들과 결코 분리될 수가 없다. 수많은 파타고니아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면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 친숙한 이미지의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진다. 그것은 아직 자연과 분리되기 이전에 일체감을 갖고 살았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 몸속의 유전자가 환기하는 그 무엇 때문이 아닐까? 2)기행문학 작가 세풀베다의 여행에 대한 열정은 그의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세풀베다는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이야기꾼이다. 그가 들었던 이야기들은 리포터 경험이 풍부한 그의 객관적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서술 방식에 힘입어 ‘문학’으로 승화된다. 행동주의 작가 생떽쥐베리나 말로처럼 세풀베다의 글쓰기도 현실에 눈감지 않고 그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그의 참여 정신의 소산이다. 저자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 끝>의 화자는 생존의 위기에 처한 고래의 상황을 입수하고 망명 이후 오랫동안 가보지 않은 고향 파타고니아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파타고니아?는 도입부에 나오는 할아버지와의 의미심장한 약속처럼 마음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다. 하지만 그 여행은 목적지까지의 최단거리를 달려가는 그런 여행이 아니다. 그의 여행을 멈추게 하는 것은(이건 그가 여행의 진정한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다. 모든 서술에서 화자의 입장과 감정은 최대한도로 배제된다. 그의 감정이 드러나는 것도 상대방의 감정과 어긋나지 않고 그것을 공유하고 있을 때만 간헐적으로 드러난다. 기행문의 미덕에 충실한 그의 글쓰기는 <파타고니아>를 기행문이라는 하위 장르에서 뛰어난 ‘기행문학’으로 올라서게 했고 그러한 점을 인정받아 프랑스의 아스트로라브-에토낭 여행 문학상 최우수 상을 수상하였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는 말은 낡은 메타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메타퍼가 전하는 진실은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모든 사람들, 참 나를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슴 저리게 만드는 것이다. 3)남미의 정치적 배경 프랑코의 독재를 피해 칠레로 망명한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는 설탕물로 파리를 꼬여 걸려든 파리를 짓밟아 죽이는 짓궂은 장난을 즐긴다. 그런 지저분한 장난을 하는 할아버지에게 할머니가 한마디하면 할아버지는 이렇게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난 지극히 인간적인 일을 하는 중이오. 이런 해충들이 진화해서 사제나 군인으로 변하는 꼴을 지켜보긴 싫거든.’ 그 할아버지는 파업에 나간다는 손자를 보며 감회 어린 감격(?)의 목소리로 말한다. ‘내 손자 놈이 파업에 나간다니... 젠장, 그놈은 필시 내 피를 물려받은 게 틀림없어.’ 히라미오 역사에 걸려 있는 커다란 시계는 항상 9시 28분을 가리키고 있다. 마르께스가 쓴 <백년 동안의 고독>의 바나나 농장 학살 사건을 연상시키는 히라미요 역 학살 사건의 발포가 시작된 시간이다. 그 시계는 수없이 많이 고쳤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시계가 다른 시계들과 같은 시간을 가리키길 원치 않았다. ‘그동안 수없이 고쳤죠. 하지만 고치면 뭘 합니까? 그때마다 누군가가 그 시간으로 되돌려 놓는걸요.’ 위의 두 인용은 활력 있는 남미인들의 기질과 그들이 어두웠던 군부 독재의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러한 기질과 태도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최소한도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두운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미에는 국경이 없다. 감옥 생활을 마치고 망명한 ?파타고니아?의 화자에게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노인은 ‘그쪽에도 안 좋은 일이 있다던데’라며 목소리를 낮춰 안부를 묻는다. 억압과 억압이 낳은 풍문들만이 하루살이처럼 떠돌고 사람들은 숨죽이며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다. 그들의 어두운 세월을 잊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상징적인 몸짓이 바로 가우초들과 라디오 벤티스케로(파타고니아 지방의 민영 방송)의 직원들이 벌이는 거짓말 대회이다. 거짓말 대회가 끝나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참가자 중의 하나는 말한다. ‘이 땅에서 우리는 행복한 존재가 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 중의 누구도 거짓말을 속임수와 혼동하지는 않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허구로서의 이야기와 허구보다도 더 허탈하고 무시무시한 허구 같은 역사를 그들은 분명히 구분하리라는 것을 작가는 자신의 긍지이자 그가 그렸던 남미인들의 긍지이기도 하다고 부드러우나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