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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논어고금주 세트
전5권
정약용
사암 2010.04.26.
베스트
동양철학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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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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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논어고금주》 권 1
1. 원의총괄原義總括
2. 「학이學而」 제일
3. 「위정爲政」 제이
4. 「위정爲政」 下
5. 「팔일八佾」 제삼
6. 「팔일八佾」 中

《논어고금주》 권 2
7. 「팔일八佾」 下
8. 「이인里仁」 제사
9. 「공야장公冶長」 제오
10. 「공야장公冶長」 下
11. 「옹야雍也」 제육

《논어고금주》 권 3
12. 옹야雍也 中
13. 옹야雍也 下
14. 술이述而 제칠
15. 술이述而 下
16. 태백泰伯 제팔

《논어고금주》 권 4
17. 태백泰伯 下
18. 자한子罕 제구
19. 자한子罕 中
20. 자한子罕 下
21. 향당鄕黨 제십

《논어고금주》 권 5
12. 향당鄕黨 中
13. 향당鄕黨 下
14. 선진先進 제십일
15. 선진先進 中
16. 선진先進 下

《논어고금주》 권 6
17. 안연顔淵 제십이
18. 안연顔淵 下
19. 자로子路 제십삼
20. 자로子路 下

《논어고금주》 권 7
31. 헌문憲問 제십사
32. 헌문憲問 下
33. 위령공偉靈公 제십오

《논어고금주》 권 8
34. 위령공偉靈公 下
35. 계씨季氏 제십육
36. 계씨季氏 中

《논어고금주》 권 9
37. 계씨季氏 下
38. 양화陽貨 제십칠
39. 양화陽貨 下

《논어고금주》 권 10
40. 미자微子 제십팔
41. 자장子張 제십구
42. 요왈堯曰 제이십

저자 소개 1

다산茶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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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4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500쪽 | 188*254mm

출판사 리뷰

1.다산은 중세를 살고 간 인물이지만 실천적인 행동과 저술을 통해 중세를 극복하기 위해 그 나름대로 몸부림친 위대한 사상가이다. 5백만 자에 이르는 방대한 그의 저술 가운데, 논어고금주 전 40권은 다산의 경학 관계 저술 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저술이다. 그는 경전 주석에서 재래의 여러 관념에 구애받지 않고 창의적으로 실학적인 경전 세계를 재창조해 나갔고, 우리는 그의 경전 주석을 통해 이를 음미할 수 있다.

-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이조후기 실학자 중에서도 경세치용파(經世致用派)의 종사(宗師)인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켜 경세치용학(經世致用學)을 집대성한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다. 다산이 정치, 경제, 사회 등 현실문제에 눈을 돌려 그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게 된 그의 실학사상을 근본적으로 이해함에 있어서는 그 중요한 바탕이 되는 것이 그의 경전주석(經典註釋)에 나타난 경학사상(經學思想)이다. 따라서 그의 방대한 경학관계저술은 ‘다산학(茶山學)’의 형성에 있어서 지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다산이 그의 생애의 후반을 실학에 관한 많은 저술과 방대한 경학관계저술에 몰두한 것은 바로 그의 실학과 경학이 서로 표리가 되어 하나의 공통적인 성격을 지니면서 ‘다산학’을 형성하게 된 것임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하겠다.

- ‘다산학’ 형성에 있어서 그의 실학과 경학의 표리관계에 있어서도 엄밀히 말한다면 그의 경학이 토대가 되어 있다. 다산이 현실에 눈을 돌려 현실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 그의 실학의 대표적 저술이 ‘일표이서(一表二書)’라고 하면 그의 이러한 실학적 저술이 있기에는 사상적으로 그의 독창적인 경학의 세계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것은 그의 모든 저작물의 저술연대에서 볼 때 분명히 드러나는 것처럼 그에게는 유교경전(儒敎經典)을 해석한 경학에 관한 저술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 ‘일표이서’의 저술이 나온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2. 다산은 서명을 ‘고금주’라고 하였듯이 유가(儒家)의 기본 경전(經典)인 『논어』에 대한 고금의 수많은 주석들을 모아 수록하여 선대 유학자들의 해석을 검토 비판하고 논평을 가하는 형식을 확립하여, 동아시아 유학 경전사에서 경전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 다산은 한나라 때의 훈고학적 주해인 고주(古註)와 송나라 때의 성리학적 주해인 신주(新註), 즉 금주(今註)를 수집, 열람하고 취사선택하였고, 수많은 주해들을 모두 소화하여 자신의 새로운 견해를 밝혀놓고 있다. 고주로서 대표가 될 만한 것으로, 3세기 중엽에 한(漢) 위(魏)의 대표적인 논어학자(論語學者) 공안국(孔安國) 포함(包咸) 마융(馬融) 정현(鄭玄) 왕숙(王肅) 진군(陳群) 주생렬(周生烈) 등의 고주를 모아 위(魏)의 하안(何晏, 190~249)이 자신의 견해를 첨가하여 주석한 『논어집해(論語集解)』와 양(梁) 황간(皇侃, 488~545)의 『논어의소(論語義疏)』와 송(宋) 형병(邢昺, 932~1010)의 『논어정의(論語正義)』에 나오는 주석을 고주의 대표로 수록하였다. 금주로서는 주자의 『논어집주(論語集註)』에 나오는 주석, 그 중에서도 주자의 주석을 주로 하여 수록하였다.
- 이 밖에도 많은 학자들의 논어에 관해 언급한 글들을 광범하게 수집 논평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명대(明代)의 사상가 이탁오(李卓吾, 1527~1602)의 분서(焚書)와 사서평(四書評)에 나오는 글을 7개처에 인용하여 논평하였고, 청대(淸代) 고증학(考證學)의 개조(開祖)인 고염무(顧炎武, 1613~1682)의 일지록(日知錄) 등에 나오는 글을 7개처, 모기령(毛奇齡, 1623~1716)의 경집(經集)에 나오는 주석을 62개처에 수록 논평하였으며, 특히 다산의 진취적이고 폭 넓은 학문적 수용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까지 미쳤다. 그래서 논어고금주에는 일본의 고학파(古學派) 이등유정(伊藤維楨, 1627~1705, 號 仁齋)의 『논어고의(論語古義)』를 2개처, 적생쌍송(荻生雙松, 1666~1728, 號 徠)의 『논어징(論語徵)』을 43개처, 태재순(太宰純, 1680~1747, 號 春臺)의 『논어고훈외전(論語古訓外傳)』을 무려 112개처에 수록하여 논평하였다. 다산은 이렇게 많은 주석 자료를 수집하여 수록하고는 이에 시시비비를 가려 ‘보왈(補曰)’,‘박왈(駁曰)’,‘용안(鏞案)’,‘질의(質疑)’ 등의 형식을 설정하여 논평과 반박 및 자기의 견해 제시 등을 통해 그가 지향하고자 한 독창적인 실학적 경학세계를 확립하였다. 그는 중국 한대(漢代) 유학의 신비주의적 경향을 넘어서고자 했고, 송대(宋代)의 주자학적 유학의 관념주의적 경향을 지양하여 새로운 경전세계를 창조하고자 하였다. 그의 새로운 경전세계는 현실에 바탕을 둔 합리적이고 실학적인 세계에로쟀 지향이다. 그는 공맹(孔孟)을 비롯한 옛 성현의 귄위를 빌어 중세적 관념론을 부정하고 실증, 실용이라는 독자적인 경전의 세계를 재창조한 것이다.

3. 논어고금주의 체제
- 논어고금주』는 전40권으로 다산의 강진(康津) 유배중의 저술이다. 1813년 그의 나이 52세가 되던 해 겨울에 완성된 것이다. 다산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간행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는 제 2집 경집(經集) 제 7권에서 제 16권까지가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인데, 전 10권으로 편집하여 수록되어 있다. 이보다 조금 앞서나온 필사본(筆寫本)으로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여유당집(與猶堂集)』에는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가 전40권으로 되어 있어 다산의 강진 유배시의 권수와 일치한다.
- 다산은 『논어』 20편을 종래 주자(朱子)가 482장으로 분장(分章)했던 것을 488장으로 분장하고, 향당(鄕黨) 편도 구설(舊說)에는 1장을 나누어 17절로 했던 것을 34절로 한 것이 특징이다. 논어고금주의 체제는 권두에 「원의총괄(原義總括)」이라 하여 『논어』 총482장(주자의 분장임) 중에서 175장을 뽑아내어 열거하고 이에 대해 논변한다고 되어 있다. 『사암연보(俟菴年譜)』에는 이에 대해, 『논어』에 대해서는 이의(異議)가 워낙 많아 『원의총괄(原義總括)』을 두었다.『학이(學而)편에서부터『요왈(堯曰)』편까지 원의를 총괄한 것이 175척이 되는데 이것은 다만 그 대강만을 든 것일 뿐이다.(同上 180면)라고 하였듯이, 다산은 당초부터 실로 『논어』전편에 대해 기본적으로 새로운 주석을 의도하였고, 특히 175장에 대해서는 그의 실학과 관련해서 경학의 창의적인 실학적 세계관을 전개시키고 있다.

4. 본 역서 논어고금주는 다산학술문화재단의 “다산번역총서”의 하나로 기획되었으며, 평생 한문학과 다산학 연구에 몰두한 이지형 교수의 십여 년에 걸친 학문적 노고가 담긴 역작이다.

- 저자는 논어 원문, 고금주 및 다산의 해석까지 방대한 양의 논어고금주 전체를 처음으로 빠짐없이 정밀하게 표점 교감(校勘)하고 역주(譯註)하였다.
- 본 역서는 현재 다산학술문화재단이 수행하고 있는 154권 76책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新朝鮮社本)의 정본화 사업의 성과를 반영하여, 이지형 교수의 표점과 교감 작업을 거친 정본 논어고금주 원문을 수록하였으며, 원문과 해석문을 좌우 페이지로 구분하여 수월하게 대조할 수 있도록 편집하였다. 본 역서는 현대화된 원문 텍스트, 역자의 정밀하고 깊이 있는 번역, 원문과 번역 대조의 새로운 편집체제가 어우러진 고전번역의 새로운 기획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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