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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념사총서』발간사
저자의 말 서론 part1 민족 1. 서양의 ‘민족’ 개념 2. 동아시아의 ‘민족’ 개념 수용사 3. 한국의 ‘민족’ 개념의 형성과 수용 4. 식민지 시기 ‘민족’ 개념의 정착과 변화 5. 해방 이후 ‘민족’ 개념의 변화 part2 민족주의 1. 서양의 ‘민족주의’ 개념 정의 2. 대한제국기 ‘민족주의’ 개념의 수용 3. 1910년대 민족평등주의론과 문화적 민족주의론 4. 3ㆍ1 운동 전후의 민족주의론 5. 1920∼1930년대의 민족주의론 6. 1930년대 민족주의와 파시즘의 만남 7. 해방 직후의 민족주의론 8. 이승만 정권의 민족주의: 일민주의 9. 한국 전쟁 이후 남북한의 민족주의론 결론 문헌목록 찾아보기 |
朴贊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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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사에서 민족과 민족주의는 역사를 이끌어 온 동력!
이 책은 개념의 역사가 1세기밖에 되지 않은 민족ㆍ민족주의에 대한 서구적인 의미의 개념사 정리와 한국적인 의미의 개념사 정리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20세기 한국사에서 민족과 민족주의는 역사를 이끌어 온 동력과 같은 존재였으며,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있었기에 독립 운동도 가능했고, 국가 건설과 경제 부흥도 가능했고, 또 통일을 위한 노력도 가능했다. 한국인에게 ‘민족’과 ‘민족주의’는 중요한 개념이다.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는 안으로 다민족 사회로의 변화와 계층 간의 격차 확대, 밖으로 급속한 세계화와 남북한 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남북이 천안함 사건으로 경색되는 와중에도 한일 지식인의 한일 강제병합 조약 무효 선언과 일본 외상의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를 접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여건에서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어떠한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 민족 우리나라에서 ‘민족’이란 개념의 기원은 근대 이전 여진족과 일본족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인 ‘족류’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족류’라는 용어가 조선 후기 이후 ‘동포’로 바뀌고, 20세기 이후 ‘민족’으로 바뀌었다. ‘민족’이란 개념은 1900년경 처음 들어와 1906년 이후 량치차오의『음빙실문집』의 영향으로 자주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민족’을 지리ㆍ혈통ㆍ형질ㆍ언어ㆍ문자ㆍ종교ㆍ풍속ㆍ경제 생활의 공통성을 지닌 집단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민족 개념은 민족 형성 과정에서의 ‘원초적 기반’과, 집단 내에서 공유되는 ‘문화적 기반’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민족’이란 단어는 언제부터 대중에게 확산되었을까? 민족이란 개념이 확산된 계기는 1919년 3ㆍ1 운동과 1920년대 신문ㆍ잡지의 발간으로 전개된 문화 운동이었다. ‘민족’ 개념에 대한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1930∼1940년대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민족 개념에 대한 이해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 민족주의자는 민족을 하나의 영속적인 유기체로 보았고, 사회주의자는 자본주의 시대에 나타난 일시적인 산물이라고 보았다. ‘단일민족론’은 언제부터 대두된 것일까? 오늘날 한국인의 의식을 상당 부분 지배하는 ‘단일민족설’도 해방 이후 분단의 위기에 처음 제기되었으며, 이후 분단 상황 속에서 더욱 확대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단일민족설의 확산 과정에는 민족의 분단 위기 앞에서 이를 막아내기 위한 민족의 단결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 민족주의 ‘민족주의’는 내셔널리즘의 번역어이다. 내셔널리즘은 동아시아권에서는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국가주의, 국민주의로 번역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주로 민족주의로 번역되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출발 단계에서부터 문화적 민족주의의 성격이 매우 강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민족혼, 국어, 국사, 단군 등을 강조하는 문화적 민족주의는 20세기 전반 한국 민족주의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언어ㆍ역사ㆍ종교 등에서 독자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으로 식민지 시대 내내 계속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남북 분단이 진행되는 가운데 ‘단일민족설’이 강조되기 시작했고, 이에 영향을 받아 한국 민족주의도 혈통적 민족주의로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오늘날 한국에서 혈통적 민족주의가 우세하면서도 여전히 문화적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정치적 단위, 즉 하나의 독립된 국가를 영위하고자 하는 이념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국권 상실과 민족 분단의 처지에 놓인 20세기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현상을 타파하려는 운동의 가장 중요한 이념이 되었다. 대한제국 때 민족주의는 어떻게 수용되었을까? 대한제국 때 ‘민족주의’라는 개념의 수용과 함께 한국에서는 ‘문화적 민족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즉 국망이 눈앞에 다가온 현실에서 당시 지식인들은 언어, 역사, 종교를 강조하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만들고, 국권 회복의 주체로서 ‘민족’을 결집시키려고 하였다. 1910년 국망 이후 민족주의론은 어떻게 발전되었을까? 한국의 지식인은 민족주의를 문화적 민족주의와 민족평등주의로 발전시켰다. 또한 1919년 한국의 민족주의는 ‘민족자결주의’로 표출되었다. 그 결과로서 민주공화제를 채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들었다. 3ㆍ1 운동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는 어떻게 발전했을까? 한국의 민족주의는 문화적 민족주의 속성을 여전히 강하게 띠면서, 정?적으로는 자치론을 중심으로 찬반 양론으로 나뉘었다. 1930년대 한국의 민족주의는 어떤 양상을 보였을까? 1930년대 전 세계적인 파시즘의 대두와 함께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이러한 파시즘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물론 이에 대항하는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의 흐름도 여전히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는 어떤 양상을 보였을까? 해방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는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한편에서는 신민족주의론을 제창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주의적, 문화적 민족주의론을 제창하였다. 그런가 하면 파시즘 내지는 국가주의적 성향을 띤 민족 지상, 국가 지상주의론이나 일민주의론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1960년대 이후 민족주의는 어떤 양상을 보였을까? 자유주의적ㆍ통일지향적 내셔널리즘과 국가주의적ㆍ일국주의적 내셔널리즘이 서로 경합하는 양상을 보였다. 박정희 정권은 근대화, 경제 개발을 앞세우면서 스스로 민족주의적인 정권임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이는 민권을 억압하고 국권만을 강조하는 국가주의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1970년대 10월 유신 이후 민주화 운동 진영은 자유주의적, 통일 지향적 민족주의를 주장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1980년 5ㆍ18 광주 민중항쟁 이후 ‘민중적 민족주의론’이 분출하였다. 이는 1970년대 이후 형성된 노동자, 도시 빈민 등 민중 세력이 광주 민중항쟁 등 민주화 운동의 주체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민중적 민족주의론을 더욱 강화시켰다. 1990년 민족주의는 어떤 양상을 보였을까?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권의 붕괴, 자본주의의 세계화, 노동자 계층의 보수화 등은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변혁주체론을 약화시켰고, 대신 시민 계층을 주체로 한 ‘시민적 민족주의론’이 새로이 대두되었다. 그런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흐름이 등장하였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통일 지향적 민족주의와 일국적 애국주의가 경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전쟁 이후 북한의 민족주의는 어떤 양상을 보였을까? 북한은 해방 이후 ‘민족주의는 곧 부르주아 민족주의’라고 간주하고, 이를 비판하면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사실상 북한식 민족주의라고 불리는 주체사상이 등장하였다. 1990년대 들어 쇼비니즘적 성격을 띤 ‘애국주의가 곧 진정한 민족주의’인 ‘조선 민족 제일주의’가 등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