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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사는 즐거움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의 여유와 지혜 개정판, 양장
허균김원우
201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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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2

許筠, 단보(端甫), 교산(蛟山), 학산(鶴山)

1569년 허엽의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건천동에서 자랐다. 1579년 아버지가 경상감사가 되어 내려갔는데 다음 해에 아버지가 상주 객관에서 죽었다. 1582년 작은형을 찾아온 시인 이달을 처음 만났고 이달은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었다. 1588년 작은형이 죽고, 1589년에 누이 난설헌이 죽은 후에 난설헌의 시 210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홀어머니 김씨와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강릉에 도착했고, 사천 애일당 외가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
1569년 허엽의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건천동에서 자랐다. 1579년 아버지가 경상감사가 되어 내려갔는데 다음 해에 아버지가 상주 객관에서 죽었다. 1582년 작은형을 찾아온 시인 이달을 처음 만났고 이달은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었다. 1588년 작은형이 죽고, 1589년에 누이 난설헌이 죽은 후에 난설헌의 시 210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홀어머니 김씨와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강릉에 도착했고, 사천 애일당 외가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이란 호를 썼다. 1593년에《학산초담》을 지었고, 1596년 강릉부사였던 정구와 함께 《강릉지》를 엮었다.

1598년 중국의 장군과 사신들을 접대하느라고 돌아다녔다. 중국의 종군문인 오명제에게 《조선시선》을 엮어주었으며, 《난설헌집》 초고를 중국에 전파케 했다. 10월 13일, 다시 병조좌랑이 되어 가을에 평안도를 다녀왔다. 1599년 황해도사가 되었는데, 기생을 너무 많이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11년 유배지인 전라도 함열에 도착해서 문집 《성소부부고》 64권을 엮었다. 11월에 귀양이 풀려 서울로 돌아왔다. 1612년 8월 9일, 큰형 허성이 죽었고 가장 가까운 벗 권필이 광해군을 풍자하는 시를 지었다가 매맞아 죽었다.

1615년 정2품 가정대부에 올랐다. 동지겸진주부사(冬至兼陳奏副使)가 되어 중국에 갔다. 이때 다녀온 기록을 《을병조천록》으로 남겼다. 1618년 봄, 스승 이달의 시집 《손곡집》을 간행하였다. 윤4월 7일, 남대문에다 백성들을 선동하는 흉서를 붙인 심복 하인준이 잡혀들어갔다. 17일에 허균도 기준격과 함께 옥에 갇혔다. 그의 심복들이 허균을 탈옥시키려고 감옥에 돌을 던지며 시위하였다. 22일에 광해군이 친히 허균의 심복들을 국문하였다. 이이첨은 망설이는 광해군을 협박하여 허균의 처형을 서둘렀다. 허균은 결안도 없이 8월 24일에 그의 심복들과 함께 서시에서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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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등단 이래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읽는 한결같은 걸음을 걸어왔다. 그의 소설 문장은 이제 그 자체로 한국어의 개별 장르이자 계보가 되면서 우리 삶의 세부를 켜고 전망의 허실을 가늠하는 각별한 상징의 자리에 이르고 있다. 소설집 『무기질 청년』 『장애물 경주』 『세 자매 이야기』 『아득한 나날』 『벌거벗은 마음』 『안팎에서 길들이기』 『객수산록』 등과, 장편소설 『짐승의 시간』 『가슴 없는 세상』 『일인극 가족』 『모노가미의 새 얼굴』(전2권)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등이 있다. 한국창작문학상,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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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6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02g | 128*188*30mm
ISBN13
9788981339302

책 속으로

조선의 안티테제 허균의 마음

조선조는 유교라는 이념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거대한 사유의 바다였다. 주린 배를 끌어안고서도 눈에 불을 켜고 자아 인식, 나아가서 도덕의 최고선으로서의 자아실현을 고집하는 무서운 엄숙과 자부심 앞에서는 수많은 사유의 집적을 낳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유물이나 유적보다 찬란히 빛나는 오벨리스크(기념탑)이자 파라오(큰집)에 값한다. 선집(選集)?문집(文集)?휘집(彙集)?실록(實錄) 등의 형식을 빌린 그 숱한 글들은 한문으로 쓰여진 기록물이긴 해도 조선조가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를 구가했다는 확실한 증빙 자료이다.
한편으로 아무리 전형적인 엄숙주의 아래서 질식할 것 같은 유교 사회라 할지라도 숨통을 틔어주는 혁신 사상은 어차피 도출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이른바 안티테제로서 사유의 또 다른 마련이다. 그것은 이른바 안티테제로서 사유의 또 다른 미덕이다. 환기 장치로서의 그런 사유 양식, 곧 혁신 사상이 여러 불비한 조건들 때문에 발붙일 땅을 찾지 못할 때 그 사회는 붕괴하고 만다.
국문학사상 최초의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예교라는 원시 유교의 실천 강령만을 씨가 닳도록 쓰다듬어온 따분한 조선조 유교 사회에서 혁신 사상의 선각자였음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넓은 시가 자체가 안티테제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홍길동전』이 없었다면 조선조는 내일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원시 유교 사상이 철저히 지배한 고리삭은 왕조였다는 지탄을 면키 어려울지도 모른다.
실제로 조선조는 그처럼 보수 지향적 측면이 여실했던 폐쇄 사회였다. 그에 대한 도도한 반기가 실학 사상의 대두였다. 불행하게도 실학 사상은 어떤 소기의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는데, 그것의 실증적 국면을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이 허균이었다. 그 구체적인 실물은 『홍길동전』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알다시피 『홍길동전』은 이상향 유구국(琉球國)을 건설하기까지의 의적(義賊) 활약상을 그린 소설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썼을 허균의 복잡한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가 고집불통의 조선조 유교 사회에 얼마나 염증을 내고 있었으며, 이상적인 혁명가상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가는 이해할 수 있다. 허균의 혁신 사상은 실로 천의무봉이다.
우선 숭불 자체가 탄핵의 대상이었던 유교 사회에서 허균이 불교에 깊이 경도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의 비범한 개혁 사상을 웅변하는 단적인 증거이다. 그 독실한 불교 신앙 때문에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면서도 늠름했다는 허균이 도교 사상, 나아가서 은둔 사상 및 신선 사상에 심취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허균은 치세 전반에 대한 파천황의 개혁 이론을 주저 없이 개진한다. 곧 그는 관불이신(官不移身)을 금과옥조로 섬기는 양반 사회에서 신분 계급의 타파와 적서(嫡庶)를 구별 않는 과감한 인재 등용까지 내놓는다. 관구자부(官久自富)에 연연하는 당시의 지배 계급 및 그 제도적 모순에 철퇴를 때리는 혁명가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가 전개한 부국강병책과 붕당배척론은 비록 새로운 내정 개혁책은 아니라 할지라도 뒤이어 일어난 실학 사상의 비조로서 손색이 없는 경지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호학(好學)의 선비답게 천주교의 천리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일찌감치 수렴하여 새로운 문물 및 서학(西學) 이론에까지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본다면, 허균은 아웃사이더였다. 아웃사이더는 어떤 사회에서도 모든 제도의 포폄을 주관하는 선각자이다. 아웃사이더는 어느 시대라도 질시와 핍박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어떤 막강한 기득권도 부정하지만 그의 이데아는 흔들림이 없다. 허균이 바로 그런 아웃사이더였다. 그의 파란 많은 한평생은 그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적 도구였을 뿐이다. 실천 없는 사유의 세계를 거침없이 질타한 허균의 쟁쟁한 육성은 빡빡하고 시난고난했던 조선조의 각성제였다.
허균의 여러 저서들 가운데 은둔 사상의 실천적 국면을 조리정연하게 편찬한 『한정록』은 그의 철저한 아웃사이더 정신의 산물이다. 이 책은 그의 나이 42세 때, 그로서는 극도로 불우한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틈틈이 중국의 고서들을 보면서 예전 선비들의 한적한 삶의 모습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들을 손수 가려 편집한, 일종의 독서노트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세속을 숨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 중 기이한 행적을 남긴 자와 고상한 생활을 한 사람들의 일화, 그리고 벼슬을 물러난 뒤 한가롭게 살다간 이야기, 산천을 두루 보아 정신을 수양하는 이야기 등이 들어 있다. 또한 은거하며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다룬 글과 도가에서 흔히 거론되는 양생술에 관한 희귀한 정보도 읽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동양의 유구한 역사상에 나타난 유명한 인물과 저서들 가운데서 동양적 사고의 진수라 할 만한 일화, 잠언, 성찰들로 이루어져 있는 아주 값진 책이라 할 수 있다. 분주한 현대의 삶과 자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나날의 반복에서 차분한 현대의 삶과 자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나날의 반복에서 차분한 성찰의 계기를 가져다 줄 것이며,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한 줄기 소나기처럼 가슴 상쾌한 청량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숨어사는 즐거움』은 허균의 『한정록』을 대본으로 편자 나름대로 현대적 감각에 맞게 엮은 책이다. 괜히 현대적 감각 운운하며 손대다가 원작이 주는 한문의 맛을 탕감하는 역효과를 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자만 보아도 지레 염증을 내고 책을 덮어버리는 요즈음의 세태를 감안하여, 가능한 한 읽기 쉽게 한글로 푸는 작업을 해보았다. 그리고 원저에서 요즘 정서와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라든지 복잡하고 번쇄한 고사·일화 등은 나름대로 추려내는 작업을 거쳤음을 미리 밝혀둔다.

김원우

--- '엮은이의 글' 중에서

출판사 리뷰

법정 스님이 사랑한 은둔과 풍류 이야기

허균의 〈한정록〉을 작가 김원우 씨가 우리말로 옮긴 이 책에는 하기 싫은 일은 철저하게 하지 않은 은자들의 행적이 실려 있다.도연명은 소인배에게 허리를 굽히기 싫어 관직을 내팽개쳤고,위나라의 가경흥이란 이도 늘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내가 너를 저버리지 않았노니,그것은 고관에게 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노래했다.
조선 중기 실학사상의 대두 허균(許筠, 1569~1618)은 빼어난 문장과 넓은 학식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광해군 10년에 역적모의를 했다는 모함을 받고 참형을 당했다. 경직된 양반사회를 향해 신분계급의 타파와 적서(嫡庶)를 구별하지 않는 과감한 인재등용을 주장했는데 이 같은 자유롭고 혁신적인 발상은 최초의 한글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홍길동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허균은 나이 42세 되던 광해군 2년(1610)에 명나라에 파견되는 천주사가 되었으나 병을 얻는 바람에 맡지 못하고, 그 대신 휴가를 받아 틈틈이 중국의 고서들을 보면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그는 독서를 하는 중에 예전 선비들의 글을 추려서 일종의 자신만의 독서노트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한정록』이다.
그는 『한정록』의 서문에서, ‘평소 세상일에 급급하여 조그만 이해에도 어긋날까 마음이 두려워졌고. 보잘것없는 자들의 칭찬이나 비방에도 마음이 요동하는 자신을 안타까이 여겨 옛 문인들의 글을 읽으며 옛날의 어진 이와 자신을 비교해보니 제 어리석음이 얼마나 막중한지 새삼 깨달았다’고 밝히고 있다. 벼슬살이에서 물러나 자연과 벗하며 한가로이 지내는 삶의 즐거움이나 독서의 즐거움에 관한 글들이 주로 엮여 있어 ‘훗날 숲 아래에서 세상을 버린 선비를 만나게 될 때 이 책을 꺼내가지고 서로 즐겨 읽고 싶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세속을 떠나 숨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 중 기이한 행적을 남긴 자와 고상한 생활을 한 사람들의 일화 등이 들어 있다. 또한 은거하며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도가에서 흔히 거론되는 양생술에 관한 희귀한 정보도 읽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동양의 유구한 역사상에 나타난 유명한 인물과 저서들 가운데서 동양적 사고의 진수라 할 만한 일화, 잠언, 성찰들로 이루어져 있는 아주 값진 책이라 할 수 있다.

소옹邵雍이 그 거처를 안락와安樂窩,
자호自號를 안락선생安樂先生이라 하고는,
매일 아침에 향을 피우고 조용히 앉았다가
오후 네댓시가 되면 서너 잔의 술을 마셨다.
술이 올라 얼근해지면 그만두어
한번도 만취한 적이 없었고,
흥이 날 적에는 그 자리에서 곧 시를 지어 읊조렸다.
봄가을에는 가금 성중에 나가 노닐었고
비바람이 있을 적에는 밖에 나가지 않았으며,
밖에 나갈 적에는 조그마한 수레를 이용하여
한 사람을 시켜 끌도록 하고 마음내키는 대로 즐기었다.
그러므로 그의 수레 소리가 나면
사대부의 집에서도 앞을 다퉈 그를 맞이하면서
서로 우리 집에 선생이 왔다고 하였다
그는 어질고 관대한 요모가 저절로 드러나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됨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거나 남들과 간격을 두지 아니하여,
여럿이 담소하는데 종일토록 남다른 행동이 없었고
남들과 만나서 그 선은 칭찬하고 악은 숨겨주었으며,
학문을 묻는 자가 있으면 열심히 대답해주었다.
신분과 나이를 가리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정성으로 대했기에,
어진 이는 그 덕행을 좋아하고
어리석은 자도 그 교화에 복종하였다.
사후에 강절康節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 본문 중에서

또한 이 책은 법정 스님이 사랑한 50권의 책으로도 선정되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스님 자신과 같이 번잡한 속세를 떠나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행복을 누린 작가로 평소 아끼던 소장목록에 올라 있다. 스님의 청정한 삶과 뜻을 그가 읽고 사랑한 책에서 그대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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