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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선독 지대
2부 공동체와 무정부주의 3부 계통 분기로 나아가기 역자 후기 미러셰이즈를 벗은 사이버펑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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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살로 가득했다. 방은 살로 만들어져 있었다. 사방은 공단같이 매끄러운 갈색 피부였으며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털로 된 양탄자와 광채가 흐르는 옅은 자줏빛 점막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다. 안락의자를 비롯해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침대로 보이는 살덩어리도 역시 둥글둥글했으며 곳곳에 옅은 자줏빛 구멍이 뚫려 있었다. 린지 발 아래로 파이프 크기의 동맥이 지나갔고, 그 속으로 낮은 소리를 내며 피가 흘렀다. 옆에는 매끄러운 엉덩잇살로 만든 발판이 있었고, 입이 달려 있었다.
갓이 달린 램프가 매끄러운 피부에 덮인 팔꿈치 경첩을 축으로 회전했다. 새까만 눈동자가 린지를 관찰했다. 발판에 달린 입이 말했다. “벨크로 부츠를 벗어주세요, 여보. 간지러워요.” 린지는 자리에 앉았다. “당신이로군, 기쓰네.” “웰스의 사무실에서 제 눈을 보았을 때 아셨잖아요.” 벽에서 목소리가 가르랑거리듯 흘러나왔다. “솔직히, 경호원을 보기 전까진 몰랐소. 오랜만이군. 부츠는 미안하군그래.” 린지는 의자에 앉아 조심스레 부츠를 벗었다. 살로 만든 안락의자의 색기 넘치는 따스함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디 있는 거요?” “당신 주변 모든 곳에요. 모든 곳에 눈과 귀가 있지요.” “몸은 어디에 있는 거요?” “해체해 버렸어요.” ― 「2부 공동체와 무정부주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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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지는 첫 번째 투약량을 손목에 주사한 다음 헬멧을 썼다. 접착성 안구 돌기가 눈구멍으로 들어가더니 국부 마취가 효과를 발휘하는 사이 뻣뻣한 바이오겔 섬유가 안구를 관통해 시신경과 연결됐다. (중략) 린지는 벽을 만져보려고 손을 뻗다가 놀랐다. 손이 회백색 집게발로 바뀌어 있었다. 팔은 회백색 갑옷과 연결되어 있었다. 팔꿈치 관절은 두 개였다.
린지는 벽을 기기 시작했다. 중력이 린지를 잡아당겼다. (중략) 린지는 자신에게 다리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갈비뼈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리가 달려 있었고 배에서 스멀거리는 느낌이 들어 보았더니 문자 그대로 다리가 스멀거리고 있었다. 내장 감각은 두 번째 다리의 감각으로 바뀌었다. 린지는 자기 모습을 보려고 애썼다. 몸을 앞으로 구부릴 수는 없었지만 등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쉽게 휘어졌다. 눈꺼풀 없는 눈으로 두꺼운 장갑판과 체절 사이에 난 털을 볼 수 있었다. 주름이 자글거리는 기관 한 쌍이 등줄기에서 툭 튀어나와 있었다. 코끝으로 그것을 문지르다가 노란 냄새를 맡고 아찔해졌다.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를 기관이 없었다. ― 「2부 공동체와 무정부주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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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지는 조용해졌다. 린지가 마이크에 대고 대사를 말하는 동안, 류민은 이상한 물건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 류민은 갈색 판지 조각이 조금 붙어 있는 가늘고 기다란 하얀 종이를 보고 있었다. 류민은 조심스레 종이를 말아 관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관의 양끝을 꾹 누른 뒤 혀로 침을 발라 끝을 붙였다. 류민은 종이 실린더의 한쪽 끝을 입에 물더니 작은 금속 도구를 꺼내 반대편 끝에 대고 스위치를 눌렀다. 린지는 그 모습을 말똥말똥 바라보다 소리쳤다.
“불이야! 오, 세상에! 불이야, 불!” 류민은 연기를 내뿜었다. “대체 자네, 왜 그리 야단인가? 이 정도 작은 불꽃에는 아무도 다치지 않아.” “하지만 불이라고요! 맙소사, 내 평생 진짜 불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린지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면서도 불에 타지 않는 게 확실한가요? 폐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고요.” 린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류민을 바라보았다. “아니, 아닐세. 그냥 색다른 물건일 뿐이야. 새로 생긴 자그마한 악습이랄까.” 늙은 기계주의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약간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 모든 게 다 그렇잖은가.” ―「1부 선독 지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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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설정, 탄탄한 과학 논리를 바탕으로 그린 인류의 미래상 !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브루스 스털링의 본격 사이버펑크 SF’ 사이버펑크라는 개념이 잠시 유행이 된 적이 있다. 많은 유행이 그렇듯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졌지만, 그 사상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친숙하다. '공각기동대', '총몽'과 같은 일본 만화부터 비교적 오래된 영화인 “블레이드러너,” 올 여름 2편이 개봉되어 세계를 흥분시켰던 “매트릭스”도 사이버펑크라는 기반을 밟고 서 있다. 사이버펑크는 80년대 SF문학계에서 일어났던 일종의 문화 운동이다. 당시 『스키즈매트릭스』의 저자 브루스 스털링은 윌리엄 깁슨과 함께 이 운동을 이끌던 양대 마차였다. 저자는 사이버펑크의 일면을 이렇게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사이버펑크는 기술의 어두운 면에 대해 날카롭고 자세하게 그리고 있죠.” 스털링이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하는 본작 『스키즈매트릭스』와 ‘스키즈매트릭스Schis + Matrix’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들은 사이버펑크 운동과 함께 발표되었고 스털링이 이름을 떨친 작품이며 이미 이 분야에서는 고전으로 군림한다. SF의 저변이 워낙 척박한 국내에서 스털링의 작품이 제대로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시리즈는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인류가 여러 세력으로 나누어져 대립하고 다시 결합하길 반복하는 미래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작가 자신은 이 작품을 ‘사이버펑크 스페이스 오페라’ 또는 ‘신인류 사이버펑크’로 부르고 있는데, 주인공 린지가 태양계를 무대로 펼치는 활극(?)이라는 점에선 전자가 맞을 것이고, ‘여러 종류의 새로운 인간’들이 가지가지 뻗어나가는 스키즈매트릭스의 세계를 생각하면 후자도 맞을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스털링의 팬들은 끊임없이 인류의 미래, 희망과 초월을 추구하는 스키즈매트릭스 작품들을 ‘예언서’로 여긴다. 이야기의 서두에서 인류는 크게 두 세력, 기계주의자Mechanist와 유전자 조작주의자Shaper 둘로 나뉘어 있다. 기계주의자는 낡은 몸을 기계로 대치하고, 조작주의자는 유전자에 근본적인 처치를 가하는 방법으로 각자 신인류의 길을 모색한다. 주인공 린지는 기계주의자 진영에서 태어나 조작주의자에게 교육을 받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이력 탓에 고향에서 추방당하고 태양계의 여러 지역을 전전한다. 2백 년간 살아가는 린지의 인생을 따라 이야기는 진행되고, 그동안 역사는 두 진영의 대립 속에서 도도히 흘러간다. 후반부에서는 초영재를 비롯하여 바닷가재족이니 피목욕족 같은, 우리의 인식으로는 도저히 인간이라 봐줄 수 없는 각종 신인류들이 등장 - 혹은 ‘개발’되면서 - 미래는 더욱 다양한 층위로 펼쳐진다. 급기야 린지와 린지를 따르는 이들은 새로운 미래를 위해 신인류를 설계하고 자신의 몸을 그대로 개조하는 길을 택한다. 스털링이 활동하던 시기를 분기로 SF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소설 속의 미래는 좀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혹은 앞으로 다가올 세계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우주선에 대한 묘사만 해도 『2001 우주의 오딧세이』에 나오는 HAL의, 티끌 하나 없을 듯한 우주선과 사뭇 다르다. 땀과 온갖 미세 오물들을 처리하기 위해 무중력 상태의 선실에 바퀴벌레가 날아다니며 ‘청소’를 하는 설정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주인공 린지가 담뱃불을 보면서 ‘진짜 불’은 처음 보았다며 호들갑 떠는 장면은 묘한 씁쓸함마저 느끼게 해준다. 이 세계에서 외계인은 전혀 신비롭거나 대단한 존재들이 아니라, 오히려 불쾌하거나 우스꽝스런 이방인들이다. 외계인들은 80년대에 한창 급부상하던 신흥 경제 대국 일본처럼 마치 ‘세금 징수원’ 같으며 그들의 뜻대로, 경제 논리에 따라 돌아가는 태양계와 인류의 모습은 2차 대전과 냉전 종식 후의 지구촌을 보는 것 같다. 영화 “매트릭스”와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중간에 영화처럼 가상현실 결투 장면이 나오지만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스키즈매트릭스의 세계는 훨씬 방대하고 다양하며 활동적이다. 끝으로 책의 뒷부분에는 저자 인터뷰가 실려 있다. 옮긴이가 저자와 이메일로 주고받은 내용을 통해 팬들은 저자의 책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앞으로 SF가 나아갈 길도 살짝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