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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기의 민족주의
국가 지식인 정치적 올바름 사형제도 안락사 과학과 윤리 기억 증오의 해부 종교와 정치 인류애 반유대주의 |
Elie Wie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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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최고의 이야기를 해드리죠. 사악한 도시를 방문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 도시의 이름은 일단 소돔이라고 합시다. 그는 그 도시 주민들을 죄에서 구원하기로 마음먹고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리에서, 시장에서, 탐욕과 도둑질과 거짓말과 무관심에 저항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그의 말을 듣고 약간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차츰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살인자는 계속해서 사람을 죽였고, 지식인들은 침묵했습니다. 어느 날, 이 불행한 남자의 말에 감동을 받은 아이가 그에게 다가와 말합니다. "불쌍한 이방인이여, 아무리 외치고 울부짖어도 희망이 없다는 걸 모르시나요?" "알고 있단다."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그러면 왜 그만두지 않나요?" "그 이유를 말해주마. 처음에는 나도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단다. 지금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하지만 오늘도 내가 계속 더 크게 외치고 울부짖는다면 그들이 나를 변화시키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겠니?" --- p.62
당신은 도덕적 결과에 따라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십니다. 그런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겁니까? 학습과 흡수와 기억이죠. 나의 기억은 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게 아닙니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일도 기억하고 있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억까지 흡수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기억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의 저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라서 어른이 되면 나는 내 이름과 명예와 생명뿐만 아니라 조상의 이름과 명예까지 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은 내 할아버지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이 됩니다. 나 때문에 모세의 이름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언행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지요. --- p. 111 나는 신의 피조물 중에는 이방인이 없다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지구상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바로 알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문제라 해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겁니다. 100년 전만 해도 어느 곳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다른 지역에 알려질 때쯤 되면 이미 그 전쟁은 끝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어느 곳에선가 사람들이 죽어나가면, 그 생생한 모습이 내 집 안방에까지 바로 전달됩니다. 일단 알게 되면 그 사건에 대한 책임감으로부터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책임감'입니다. 즉, 나는 내 형제를 지켜야만 합니다. --- pp.255~2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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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수상자 엘리 위젤이 우리 시대의 중점적 이슈와 시대를 초월한 삶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교수이자 방송인인 리처드 D. 헤프너의 날카로운 문제 제기와, 그에 대해 거침없이 반론을 펴가는 엘리 위젤의 활기차고 열린 사유는 우리에게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깨우쳐준다.
엘리 위젤의 독특한 이력은 그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라는 데서 출발한다. 신심 깊은 유대인 소년이 나치스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생사의 기로에 선다. 그것은 특정 민족을 향한 증오라고도 부를 수 없는 문자 그대로 ‘인종 청소’였다. 그는 자신이 당한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다시 생각하는 고통을 무릅쓰고 그래서 그는 자전적 소설을 쓴다.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가르치고 그리고 경고한다. 이 책 ?이방인은 없다?에는 민족의 갈등, 개인과 국가의 도덕적 역할, 지식인의 사명, 사형제도, 안락사, 과학의 윤리적 책임, 종교와 관용의 문제 등 엘리 위젤과 리처드 헤프너가 나눈 폭넓은 대화가 담겨 있다. 30분짜리 프로그램인 <오픈 마인드> 24회 이상의 분량과 헤프너와의 진솔한 ‘대담’, 그리고 이 책을 위해 특별히 기획된 논의로부터 추출된 이 긴 대화를 통해 엘리 위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듯 보이나 “이방인은 없다”라는 이 한마디로 귀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세계에는 나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바로 실천하는 것이다. 세계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으며 수많은 정보가 우리에게 흘러들어온다. 우리는 우리가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이방인은 없다. 우리 자신도 이방인이 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책임을 지고 있는 당사자여야만 한다. 엘리 위젤의 주장이 특별한 설득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가 세계사에 유례없는 비극적인 폭력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잔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육체적?정신적으로 박해받는 소수민족이나 정치적?개인적 폭력의 희생자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그는 어머니 뱃속의 태아가 가진 생명의 무거움도 헤아리며,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아이를 낳지 못할 형편에 놓인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입장도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두 특별하며, 사건 한 가지 한 가지가 모두 특별한 것이다. 이렇듯 어떠한 사안에 대해 도덕적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운 오늘날, 세계를 변화시키기보다는 “그저 형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이라도 찾아서 그의 형제가 되어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엘리 위젤의 목소리는 그 의미가 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