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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시작하며
2. <성서>를 해석하는 두 가지 방법 3. 소돔의 죄 - 냉대 4. <레위기>에 나오는 "망측한 짓" - 부정함 5. <신약성서>에 나타난 성결 문제 6. <로마서>에 나오는 '비정상'의 의미 -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것 7. <고린토 1서> 와 <디모테오 1서> - 학대적인 남성 간 섹스 8. 동성애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구절들 9. 요약과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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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소돔의 죄를 냉대의 죄로 이해하셨다. 『성서』의 다른 구절들도 드러내 놓고 같은 말을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소돔 이야기를 인용하여 남녀 동성애자들을 단죄한다. 그 자체의 역사적 배경에서 이해하면 소돔 이야기에는 슬픈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남녀 동성애자들이 자신들과 다르거나 이상하거나 별스럽거나 혹은 그들의 말대로 "괴상하다"queer는 이유로 동성애자들을 반대하고 모욕한다. 레즈비언 여성들과 게이 남성들은 무리에 끼는 것이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 곧 외국인이 되도록 강요당한다. 그들은 가족에게 의절 당하고 자녀들과 헤어지며 직장에서 해고 당하고 아파트와 동네에서 쫓겨나며 유명인사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설교자에게 비난 받으며 라디오와 TV 종교방송에서 비방 당한 다음 학교에서 구타 당하고 길거리와 산간벽지에서 살해 당한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추측에 근거한 유대-그리스도교의 도덕성이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다.
그와 같은 사악함이야말로 소돔 사람들이 지었던 바로 그 죄다. 그와 같은 잔혹함이야말로 『성서』가 진정으로 거듭해서 단죄하는 짓이다. 따라서 추측에 근거한 "소돔의 죄"를 이유로 동성애자들을 억압하는 사람들 자신이야말로 진짜 "소돔 사람들"일지 모른다. 『성서』는 그렇게 이해한다. --- pp 4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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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어려움은 문어체 히브리어에는 모음이 없어서 오로지 자음만 기록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글로 쓰여진 단어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발음할 수 있다. 가령 영어로 된 “fnd”를 놓고 이 단어가 “fend”, “find”, “fund”, “fond”, “fined” 가운데 어느 것을 의미하는지 결정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모음 하나만 바꿔도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그리하여, 표준대로 읽으면 “사울은 야훼께서 자기를 버리시고 다윗과 함께 하시는 줄 알고 다윗을 두려워한 나머지”가 되는 「사무엘상」 18장 12절이 모음만 바꾸면 “그[사울]가 그[다윗]를 사랑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로 읽힐 수도 있다. 또 「사무엘상」 16장 21절인 “이리하여 다윗은 사울을 찾아와 그를 시중들게 되었는데”도 동사를 재귀동사로 만드는 모음 하나만 바꾸면 “그 앞에서 발기했다”라는 뜻이 될 수 있다. …… 무엇이 정확한 모음인지 알아내는 절대적인 방법은 없다.
--- pp 187~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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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남성 간 섹스와 관련하여 「고린토 1서」 6장 9절과 「디모테오 1서」 1장 10절이 주는 긍정적인 가르침은 무엇일까?『성서』가 매춘이나 근친상간, 간음에 대해 반대한다고 해서 남녀 간 섹스 자체를 금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성서가 시종일관 반대하는 것은 이성애의 ‘남용’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설령 “arsenokoitai”가 정말로 남성 간 섹스를 가리킬지라도 이 구절들이 남성 간 성행위 자체를 금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기원 후 1세기에 그리스어를 쓰는 유대-그리스도교에서 “arsenokoitai”는 아마도 남자들 사이의 착취적이고 음탕하며 방자한 섹스를 가리켰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구절들이 반대하는 내용 역시 남성 사이에 일어나는 성행위 전체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동성애의 ‘남용’에 대한 반대인 것이다. 성문제 전반에 걸쳐서 성서가 요구하는 것은 상호 존중과 보살핌, 책임 있는 나눔이다. 함축적인 말로 하면 바로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가 단죄하는 것 역시 섹스 일반이 아니라 이것들에 대한 위배다. (167p)
--- pp 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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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는 이전과 유행이 바뀌어서 여자들이 바지 정장을 입기 시작했다. 많은 여자들이 그것에 거북함을 느꼈고 심지어는 도덕적으로 옳은지 아닌지를 놓고 논란까지 벌였다. …… 그들의 관습은 영원한 섭리, 곧 “언제나 그러했던 방식” 같아 보였다. 일부는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결코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라는 주장까지 했다. 관습이 하느님의 법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리하여 단순한 사회적 풍습 문제가 도덕성 문제로 여겨졌다. …… 시대적 유행이 바뀔 때마다 그 문제들을 둘러싸고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다. 거북하게 느껴지면 뭐든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여겨졌고, 사회적 금기가 죄로 둔갑했다.
--- pp 7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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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히브리인들의 마음에는 남자와 여자에 관해서도 매우 독특한 생각들이 있었다. 여자는 삽입 당해야 하며 남자는 삽입 해야만 한다. 여자를 뜻하는 히브리 단어 “naqeba”는 마치 남자의 몸에는 구멍이 없다는 듯이 “구멍이 있는 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자에 관한 근본적인 이미지는 성교할 때 남자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였다. 따라서 남자가 항문 성교로 다른 남자에게 성기를 삽입하는 행위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의 기준을 뒤섞어서 혼란스럽게 하는 행위였다. 그것은 남자를 여자의 기능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레위기」 18장 22절이 금지한 것(다른 섹스 방식의 남성 간 성행위는 금지하지 않았음)은 정확히 말해서 바로 이렇게 다른 종류를 뒤섞는 것, 곧 용인된 성역할의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었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생각하기에 남성 간 삽입 성교는 만물의 이상적인 질서를 깨뜨리므로 부정하게 여겨져서 금지되었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었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성결법 이면에 어떤 이유가 있었든지 간에 그와 같은 사고방식은 분명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윤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 pp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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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성서에서 예를 들어보자. 복음서들 가운데 세 군데에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나온다. 이는 마치 돈이 많은 사람은 아무도 절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분명히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정말 그런 의미를 암시해 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부 학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예루살렘에는 도시의 방벽을 통과하는 매우 낮고 폭이 좁은 문이 있었다고 한다. 사막의 대상(隊商)이 그 문을 통해 들어갈 때 낙타들은 짐을 부리고 웅크린 자세로 문을 통과한 다음 도시의 방벽 안쪽에서 다시 짐을 꾸려야만 했다. 그 문이 아마도 “바늘구멍 the eye of the needle”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그 당시의 일상 세계를 이해하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이 분명해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만 부자들이 천국에 가기가 힘들다는 말씀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부자들은 먼저 물질적인 관심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검소한 삶과 진실함에 관한 산상수훈의 메시지를 다시 설파하고 계셨던 것이다. 만약 이와 비슷한 고려 사항들이 동성애에 관한 성서 본문들에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들여왔던 내용을 의미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 pp 1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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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 서구 사회는 동성애에 꽤 무관심했으며 오히려 그것을 지지하기까지 했다. 동성애 하위 문화가 번성했고, 사제들과 수녀들은 사랑을 담은 편지와 시를 서로 써 보냈다. 유럽 전체가 영국의 리처드 1세와 프랑스의 필리프 2세의 로맨스에 즐거워했다. 새로 설립된 그리스도교 대학들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성애자의 사랑과 동성애자의 사랑을 두고 정기적으로 찬반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유럽(서고트족이 지배한 스페인을 제외하고)의 어떤 법전에도 동성애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1100년대 중엽에 이르러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 pp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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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에서는 저지가 이 책을 쓰게된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2장은 성서를 해석하는 2가지 접근법인 문자주의 해석과 역사-비평적 해석의 각 장단점을 살펴보고 이 책이 역사-비평적 해석의 입장을 취했다는 것을 밝힌다. 3장-7장까지는 일반적으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성서의 본문들을 하나 하나 언급하며 역사-비평적인 해석과 성서 원문에 사용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분석을 통해 지금까지의 해석과 매우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8장에서는 이성애에 대한 성서의 긍정적인 가르침을 어떻게 해석할 지에 대한 부분과 동성애자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반응에 대해 고찰한다. 마지막 9장에서는 각 장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고 성서가 동성애 이슈에 대한 어떤 도덕적인 판단도 내리고 있지 않다고 결론 내리며, 동성애자 기독교 신자들이 그리스도교의 참된 도덕적 가르침을 따를 것을 제안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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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가 말하는 동성애』는 어떤 책인가
헬미니악은 명쾌한 원문해석과 엄격한 비판을 통해서 『성서』가 노예제, 이단심판, 인종차별, 여성을 종속적 대상으로 여기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동성애 역시 이와 같은 입장에 처해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성서』 연구에 있어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예일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인 고(故) 존 보스웰이나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L. 윌리엄스 컨트리먼 교수, 시카고대학교의 로빈 스크로크즈 교수 등 세계의 권위있는 성서 학자들은 『성서』가 동성애에 대해 단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부정확한 번역과 해석으로 인해 형성된 잘못된 견해라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성서?가 동성애를 단죄한다고 여겨져왔던 것은 ?성서?를 문자 그대로 읽는 방식을 취한 까닭에 나타난 문제이며, ?성서?는 실제로 동성애에 대해 어떠한 구체적인 의미의 입장도 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 연구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예수회 사제이자 신학/심리학과 교수로 오랫동안 성서비평 연구를 진행해온 다니엘 헬미니악 박사는 이전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통념으로 받아들여지던 『성서』의 동성애 단죄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미국에서 지난 1994년 초판이 나온 이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으며 이듬해 이에 대한 반박서(Straight & Narrow by Thomas E. Schmidt, 1995) 가 바로 출간되었을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지난 2000년 밀레니엄 개정판이 나왔고, 이 분야의 추천도서와 참고문헌으로 자리잡았다. 현재(2003년 9월 6일) 아마존 평균별점 ★★★★☆을 받고 있으며, 1998년 포르투갈어판이 처음 나온 이래 폴란드어?스페인어?독일어?중국어판이 발간되었다. 사회적 타살로서의 비극적인 자살을 막아낼 책 ! 기존 보수 기독교단체들의 편협하고 오만한 『성서』 읽기에 일침을 가하는 책 ! - 우리는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섹스와 편견』(1999, 정신세계사)의 저자 번 벌로와 보니 벌로 부부는 성적 관습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의 문제이며, 전통은 문화의 영향을 받고, 초기 문명에서 문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종교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종교는 고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매일 평균적으로 4명이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다. 그러한 증오 범죄 뒤에는 기독교가 있다. 올 3월에 동성애자 커플을 살해한 어느 범인은 하나님이 동성애자를 처형하라고 자신에게 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도 이러한 비극에서 예외는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서 동성애 조항을 삭제하라는 권고를 내리자 가장 격렬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낸 곳이 바로 기독교계였다. 「국민일보」는 연일 동성애를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고 한국기독교총연합은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 때문에 유황불 심판을 받았고 성경이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다며 동성애를 용인하면 에이즈가 창궐하고 가정이 붕괴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 종교적 가치관을 법의 공정성까지 뛰어넘는 사회 규범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우리는 목격한 것이다. 이 책은 성서를 다루고 있지만 단순한 종교 서적만은 아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오만한 인간들이 어떻게 역사를 왜곡하고, 차별과 편견을 정당화하며 진리를 조작해나가는 지 깨달을 수 있다. 무조건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만도 아닌,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수많은 편견과 차별, 그리고 악행들을 저지하고 이 세상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예수회 사제의 호소에 귀기울여 볼 만하다. 알 수 있다. 그는 차분하고 논리적인 어조로 하나하나 숨겨진 진실을 밝혀낸다. - 이 책이 가진 특징들 1.『성서?를 동성애 비판의 근거로 삼지 않은 최초의 번역서 현재 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기독교와 동성애에 다룬 책들의 대부분은 동성애를 고칠 수 있는 질병으로 보거나 죄악으로 보고 이를 구원하려는 입장에 맞춰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동성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서?의 구절을 치밀하게 분석해 그 말이 담고 있는 실제 의미를 규명하고 있다. 또한 헬미니악 교수는 지금까지 서구 학계에서 진행되어온 ?성서?와 동성애에 대한 학술연구를 일반 독자를 위해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는데, 실제적으로 ?성서?를 동성애에 대한 비판의 근거로 삼지 않은 최초의 번역서이자 최신 관련 분야의 연구 흐름을 훑어볼 수 있는 개론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2. 국내에서 보기 드문 역사-비평적으로 본 성서 읽기 입문서 일반적으로 문자주의 해석이란 '성서'의 역사적 배경이나 해석학, 고고학적인 고찰을 하지 않고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수용하는 성서 읽기 방식을 말한다. 즉 성서가 세상이 7일 만에 창조되었다고 하면, 물리적인 시간 일주일동안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믿어 진화론을 이단시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에 비해 역사-비평적 해석은 7일 이라는 시간보다는 하느님의 창조의 의미를 더 중요시 읽는다. 헬미니악 박사는 이런 역사-비평적 성서 읽기를 통해 성서가 말하는 이야기의 현대적인 의미를 되살리고 있다. 신학 연구에 근거한 지성적인 접근보다 신앙의 힘과 계몽주의적인 입장을 강조하고 있는 현재 한국 기독교계에 이 책은 한 주제(동성애)를 역사-비평적 해석으로 치밀하게 탐구한 신학 연구 입문서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또한 성서나 기독교, 동성애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흥미로운 인문학적 지적탐험의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3. 동성애자 기독교인을 위한 안내 이 책은 성서와 동성애를 다루지만, 일방적으로 동성애자의 입장만을 고려하는 편향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저자는 『성서』가 동성애가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 관련 이슈를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데 어떤 것이 필요한 지를 말하고 있다. 저자 헬미니악 교수는 성서가 동성애를 단죄하지 않지만 그것이 동성애자가 무엇이든 해도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교인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일 성서의 여러 도덕적인 가르침을 충실히 지킬 때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4. 일반인들까지 쉽게 읽을 수 있는 지적인 도서 동성애라는 주제를 통찰력 없이 논하다 보면 늘 분열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어려운 주제를 대상에 적합한 수준으로 이해하기 쉽게 쓴 책으로, 지적이며, 방대한 연구를 다루고 있지만 매우 간결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이 주제와 관련해 고민하고 있거나, 혹 주위 사람이 이런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면 헤아릴 수 없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5. 개신교 신자를 배려한 꼼꼼한 구성 한국 번역본에서는 저자가 로마 가톨릭교 신부이기 때문에 번역을 위해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1999)의 번역과 표기를 참조했지만, 개신교 신자를 위해 개신교에 널리 보급된 개역개정판(1998)의 번역과 표기를 본문과 각주에 넣어 이해를 도왔으며, 책 말미에 성서 인용구 색인과 본문 찾아보기를 마련해 독자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