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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부 4·3 그리고 여성 - 잃어버린 기억
게르니카와 제주__ 16 ‘사월 제주’와 ‘오월 광주’__ 19 서준식 씨와 ‘레드 헌트’__ 22 서준식 씨의 ‘최후 진술’__ 25 4·3 씻김굿판__ 28 잃어버린 마을__ 31 4·3과 여성 인권__ 34 벌초와 헛묘__ 37 제주 잠녀 항쟁과 3·8 여성대회__ 40 살암시민 살아진다__ 44 위대한 할머니들__ 48 국토 시인과 세계평화의 날__ 51 인간에 대한 고문__ 54 할머니, ‘4·3은 말한다’__ 57 52년 만의 법정 증언__ 61 북촌리 옴팡밭의 비극__ 64 놋쇠 숟가락__ 68 부끄럼의 시, 위안부 수기__ 71 4·3 장한 어머니상__ 74 용감한 할머니들__ 77 제 2부 선흘곶을 아십니까 동자석의 운명__ 82 팽나무와 사라지는 나무들__ 85 오름과 송전탑__ 88 제주 바다의 비밀__ 91 인간의 ‘길 눈’ 등대__ 94 ‘선흘곶’을 아십니까__ 97 쇠비름처럼__ 100 들불축제__ 103 토종을 위하여__ 106 ‘제주도 박사’ 석주명__ 109 제주인의 억새__ 113 옹기대장 박근호 씨__ 116 열린 동굴, 닫힌 문화__ 119 ‘관덕정’, 우리들의 광장__ 122 귀향한다는 것은__ 125 봄 숲길, 5·16 도로__ 128 바다를 찾는 이유__ 131 사라지는 ‘양태장(匠)’__ 134 천년의 나무에게__ 137 길의 문화__ 140 내셔널 트러스트와 선흘곶__ 144 ‘한라정원’과 ‘선작지왓’__ 147 2000년이 남긴 것들__ 150 모래언덕과 제주 해안선__ 153 제주돌문화공원__ 157 우리들의 습지__ 161 제 3부 아름다운 사람들 감자를 먹는 아이들__ 166 아름다운 사람들__ 169 만해스님의 실천과 봉축__ 172 한가위 풍경__ 174 농가월령가__ 177 간디의 물레__ 180 절망과 희망 사이__ 183 느림의 문화__ 186 소 떼, 희망의 이벤트__ 189 이 시대의 ‘절벽 산책’__ 192 ‘무명’의 마라토너__ 195 호화 관사와 연암 박지원__ 198 북에서 만난 얼굴들__ 201 좀더 가벼워질 수 있다면__ 204 강경애를 생각한다__ 207 무소유, 자비의 탁발__ 210 지상에 숟가락 하나__ 213 부자가 돈을 쓸 때__ 217 영어, 인터넷, 그리고 행복__ 220 민식이를 아시나요__ 223 비룡스님과 ‘수행’__ 226 늦봄과 평양__ 229 북의 시인과 어머니__ 232 비우며 살자__ 235 그렇게 노년은 온다__ 238 식량을 줍는 노인__ 241 쟁이의 시대로__ 244 매 키우는 소년__ 247 노어부, 김래반 씨__ 250 제 4부 이 땅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 윤이상과 김남주__ 256 ‘감자꽃’ 시인 권태응__ 258 이중섭과 ‘게’__ 261 사진의 진실__ 264 통일 음악가 윤이상__ 267 대통령과 ‘토지문화관’__ 270 가짜 그림__ 273 소정 변관식과 ‘미술대전’__ 276 노벨 문학상이 주는 것은__ 279 한·일 문화 교류의 숙제__ 282 새 천년의 축제는__ 285 섬들이 온다__ 288 침묵을 깨는 작가들 __ 291 예술인 ‘복지’ 없는 나라__ 294 이 땅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__ 297 재일 동포 화가 송영옥__ 300 재일 동포 시인 김시종 씨__ 304 도쿄에 선 놀이패 ‘한라산’__ 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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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제주섬 한바퀴를 돌다 보면 검은 밭담의 경계에서 꿈틀대는 검은 땅의 내면이 보인다. 그 속 땅, 검거나 붉은 흙이 배태한, 팍팍한 화산회토의 운명을 산 사람들의 지극한 슬픔을 느낀다. 파내고 파내도 도지는 상처처럼, 돌밭을 떠날 수 없었던 앞서간 생과 현재의 생에서 삶의 비의가 느껴진다. 맑은 날, 동과 서로 이어진 오름 능선을 따라 중산간을 한바퀴 돌다 보면 황홀한 아름다움보다 시린 통증을 느낀다. 삶과 죽음의 분리가 없는 땅, 자연과 삶의 색깔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땅, 고통스러울 만큼 황홀한 몸을 가진 이 땅에 생을 기대는 나는 누구인가.
북서풍이 휘몰아치는 날, 깊어서 더 갈기 사나운 파도가 해벽에 갇혀 절망하듯 몸을 뒤튼다. 그 파도가 하늘과 대립하며 거칠게 속울음 내는 날을 나는 사랑한다. 생이란 때때로 휘몰아치는 바람과 같다. 섬의 바람과 한몸이 된다. 제주 바람은 바람에 패이고, 긁힌 삶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도 한다. 암청빛 한라산과 그것을 둘러싼 잿빛 능선에 휩싸인, 작은 뿌리인 나는 이 땅에 태어난 운명을 사랑한다. 너울너울 살아서 움직이는, 화산재로 뒤덮인, 오름과 오름의 구릉을 나는 사랑한다. 그 등골을 타고 내려온 뜨거운 용암의 땅, 흐르고 흘러서 그 안으로 더 단단해진 이 섬은 아주 특이한 존재다. 마음 둘 곳 없는 날, 섬 한바퀴를 돌다 보면 기억의 바람을 안고 사는 할머니의 삶을 만난다. 대찬 바람처럼 사는 그들의 용기 있는 삶을 나는 사랑한다. 화산의 눈물로 질퍽한 이 섬, 현무암보다 깊은 어둠을 살면서도 생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팽나무와 닮은 그들의 삶을 사랑한다. 작열하는 동쪽의 거친 밭돌담과 저무는 서쪽 바다의 비린내를 나는 사랑한다. 돌아서 오는 길, 나는 생각한다. 이 땅에서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그때의 사람들이 응시한 것은 무엇일까. 이 길은. 이 바다는. 슬픔과 아름다움, 부드러움과 강인함, 혹독한 바람과 야생의 햇볕, 수용과 저항, 고통과 치유의 섬, 제주도는 왜 이리도 모순된 땅인가.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마음의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 개혁과 변화가 미덕이라는 부박한 세상이지만, 이 땅은 ‘참 삶’의 기억만 남기고 길 위에 또 다른 길을 내고 있다. 대체 지워지는 길처럼 이 땅을 훑고 지나는 문명의 흉터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파도는 끝없이 뒤집히며 생성과 소멸, 밀물과 썰물의 상처를 도모해낸다. 바다 절벽에 둘러싸인 내게 있어 늘 대치하며, 요동치며, 그 파도가 끌어올리는 것은 끝없는 상처였다. 이 섬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삶이란 결국 상처와 맞부비며,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아닌가. 또 그것을 달래는 길까지 바다는 알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 봐라. 그것은 끈질기게 따라온다. 경험한 만큼의 삶의 기억과 상처가 내는 길을 나는 따라간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은 고통을 치열하게 끌어안고 견뎌내야 할 수밖에, 달리 길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한라산 기슭의 오래된 숲, 곶자왈을 다니며 나는 그 속에서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됐다. 그곳에서 비로소 죽은 줄 알았던 내 안의 낯선 희망을 발견하곤 했다. 붓순나무는 깎아지른 각으로 선 절벽에 실핏줄처럼 갈라터진 뿌리를 위태롭게 뻗고도 침묵하고 있었다. 악다물고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때죽나무는 다래덩굴에 휘감기고도 의연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그 투박한 외피를 두른 몸에서 태어난 때죽나무 꽃은 참으로 맑았다. 얼굴을 땅으로만 내리깔더니 그는 제 몸이 얼마나 향기로운 존재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어디에도 매이지 않아 자유로워진 얼마 전, 나를 위로해 준 것은 그 때죽나무였다. 배시시 꽃잎 떨구고 있는 숲을 찾았을 때였다. 저녁 해가 섬광처럼 숲을 투과할 때였다. 그것은 어쩌면 사월 제주의 상징이었다. 이 섬의 떼죽음을 경건하게 떠올리게 했다. 희디흰 꽃잎이 통으로 뚝뚝 떨어져 있는 때죽나무 꽃무더기. 그 꽃그늘 아래는 한 시대 사람들의 손길을 떠올리게 하는 돌담의 경계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참혹한 아름다움이었다. 숲의 나무는 참을 줄 모르는 인간들을 향해 비겁하지 않은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자연의 얼굴과 순수로 씻어낸 그 정신은 어떤 것인지를 깨우쳐주고 있었다. 그것들은 더디지만 오래가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과욕이지만 그 순수의 향기와 정신이 내 몸속에 다소 스며들기를 진정 희망했다. 절벽 암석과 거대한 뿌리가 완전히 결합한 것을 보면서. 그럴진대, 무릇 자연은 말없이 행동하는데, 사람은 행동과 말의 일치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더냐. 자연처럼 내공을 쌓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더냐. 나는 이제 돌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돌이 되어 하나의 몸을 이룬 상생을 본다. 그리고 흙의 몸을 잠시 빌려본다. 한라산 조릿대 연초록 새순이 새록새록 올라오고 있다. 청미래 덩굴이 새순을 올리며 하늘로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암녹색의 오름 위로 안으로 기를 모은 청핏줄의 억새가 올라오고 있다. 모든 씨앗을 품은 흙의 기운이 끓어 넘치고 있다. 가파른 한라산 기슭 금봉곡 석굴암 가는 길, 층층나무 층층꽃 이파리 쌀알처럼 어지러이 흩어진 협곡에서 그것의 낱알들을 쓸어모으듯 내 생각들을 모은다. 바로 얼마 전, 나는 지역 일간지에서 기자로 살았던 22년의 한 삶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참으로 오래도록 그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것들을 하게 됐다. 게으르게 갯메꽃 넌출 사이 거북등 위에 쪼그려 앉아 저무는 바다를 깊게 들여다보게 됐다. 바다 달팽이의 삶도 느리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제 몸보다 큰 집을 지고 더듬더듬 암팡지게 기어가는 더듬이의 삶을. 연한 애기달맞이가 이윽고 눈감아 버리는 찰나를 본 지 얼마만인가. 한자리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라산, 바다, 오름, 중산간 어디든 이토록 집중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연에 누인 삶이 어디 있을까. 또한 어디서 만날 것인가. 제주도는 완벽한 자연이다. 비애와 황홀의 땅이다. 정직한 땅, 기억의 땅이다. 내게 있어 이 땅은 고통과 치유의 스승이다. 나는 이 땅처럼 통하는 인간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이 책의 산문들은 내가 현역에서 이름자 달고 나갔던 문화 칼럼에서 추려낸 것들이다. 이 글을 내는 시점에서 볼 때, 이것들은 제주도라는 한 섬에서 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벌써 물러서 버린 시간들일 것이다. 지난 글들을 읽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나 꿰매기로 했다. 이 땅이 내게 길어올린 생각들이므로. 그랬다. 그때그때 시대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살아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섬의 열린 지평을 통해서, 나는 꽤 심각하게 세상을 향해 발언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 또한 얼마나 부질없는 나의 허욕이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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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의 섬땅 이야기
『섬, 기억의 바람』은 제주에서 태어났고, 최근까지 제주도의 <제주일보>, <제민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22년 동안 해 온 저자가 문화부장 시절부터 편집부국장까지 역임하는 동안 5년여에 걸쳐 <제민일보>의 기명 문화 칼럼으로 연재하던 글들을 추려서 ‘꿰맨’ 책이다.
저자는 1980년 <심상신인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해 1983년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에 걸맞게 감성적인 문체와 특유의 단문으로 기존의 칼럼과 다른, 따뜻한 애수가 담긴 산문집으로 다가선다. 그 속엔 발로, 그리고 온몸으로 부딪힌 제주의 숨결이 생동감 있게 녹아 있다. <아름다운 한을 품은 땅> 우리 땅 어딘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을까마는 제주도만큼 독특한 문화와 태고의 신비가 가득한 곳이 있을까. 화산 지형이 빚은 천혜의 풍광 뒷면에 오랜 세월 앙금으로 남아 있는 항쟁사의 현장 제주도. 제주에서 나고 자란 허영선은 제주에 미쳐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제주를 아낀다. 『섬, 기억의 바람』 시인의 따뜻한 감성과 칼럼니스트의 날카로운 분석력이 공존하는 묘한 매력이 돋보인다. 칼럼 하나 하나마다 제주에 대한 사랑과 여성의 삶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다. 그 고민은 자신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제주의 찬란한 아름다움 속에 꿈틀거리는 여성의 한을, 저자는 숨을 죽이고 오래도록 엿보았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산다는 것> 제주에서 바라본 문화 코드를 통해 세상을 읽어내고 있는 저자의 이번 칼럼 모음은 한 편의 산문집으로 읽힌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나눠져 있다. 제 1부 <4.3 그리고 여성-잃어버린 기억>에서는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인 제주 4.3을 겪어 온 제주의 아픔과 섬땅의 할머니들의 아픔을 다루고 있다. 칼럼 속에는 수많은 제주 여성들이 실명으로 오르내린다. 제 2부 <선흘곶을 아십니까>에서는 제주의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가져 온 저자의, 무너지는 제주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을 읽을 수 있다. 제 3부 <아름다운 사람들>에서는 주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에서 따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1998년 국제 구제 금융 시기를 지나면서 희망을 나누는 이야기들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런가 하면 북한과의 교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던 당시의 분위기도 놓치지 않는다. 제 4부 <이 땅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에서는 지역의 문화 현실을 통찰하고, 예술인들의 복지에 대한 촉구가 날카롭게 엿보이고 있다. 차례에서도 느껴지듯 허영선의 시선은 인간, 자연, 더 나아가 우주에까지 이른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독자들은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며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진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