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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I. 전쟁 준비 1. 전사의 화장에서 타이거 위장복까지 2. 부메랑에서 성채까지 3. 전사의 교육 4. 전쟁 속의 게임 II. 전투와 전쟁의 와중에 5. 개전 6. 전투의 즐거움 7. 전쟁의 규칙 8. 종전 III. 전쟁의 기억 9. 역사와 전쟁 10. 문학과 전쟁 11. 미술과 전쟁 12. 전쟁 기념비 IV. 전쟁이 사라진다면? 13. 간단하게 살펴본 평화의 역사 14. 대전쟁의 종말 15. 경계를 넘어서 16. 인간들이여, 어디로 가는가? V. 대립 17. 무법자 무리들 18. 영혼 없는 기계 19. 마음 없는 병사 20. 페미니즘 결론: 커다란 역설 감사의 말 역자 후기 미주 색인 |
Martin van Crev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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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 볼 때 전쟁이란 최종적인 수단이다. 즉, 특정 인간 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들을 살상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무력화시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매우 과격한 행위로 전쟁을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경제학자들도 전사나 병사와 같은 인적 요소를 단지 승리를 위한 무기로만 여기던 시각에서 벗어나고 있다. 여러 통계 수치 이면의 사실을 통해 전쟁 자체에 사람을 매혹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물론 전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참전자들이지만, 전쟁의 영향은 그 외에도 많은 곳에 퍼진다. 전투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 어쩌면 가장 큰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될 수 있다. 전쟁에 대한 매혹은 전쟁 문화를 발전시켰고 전쟁 자체도 그 문화 속에 함몰되었다.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전쟁 문화에는 여러 가지 ‘쓸데없는‘ 유희와 치장, 허식이 있으며 그러한 것들은 심지어 역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2 지금까지의 모든 전쟁이 다그랬고 아마도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이다. --- p.8
인간사에서 전쟁은 항상 극히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어느 영국군 장교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쟁이라는 엄청난 사업 없이 성장한 제국이나 문명, 민족, 종교는 하나도 없다. 현재 가장 뛰어나다고 칭송받는 이념, 종교, 민족, 문명, 제국은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많은 무기를 획득해서 상대방을 박살내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아무리 뛰어난 이념, 종교, 민족, 문명, 제국이더라도 그에 걸맞은 무력이 없다면 몰락할 수밖에 없다. ---p.10 무엇보다도 군 장비와 건축물에 신비한 매력을 더하는 요소는 군인이 그것들에 목숨을 의지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에 사람을 죽이는 힘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다른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을 만큼 존중받으며 때로는 권력의 상징,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나치 지도자들은 십자가 대신 검을 상징물로 사용하는 ‘독일식’ 기독교를 만들려고 한 적도 있었다. 제트 엔진이 발명되기 직전에 지어진 미 공군사관학교 교회의 제단 위에는 항공기의 프로펠러처럼 생긴 대형 십자가가 있다. 이러한 모든 사상과 신념, 태도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 더욱 굳건해졌다. 특정 사회가 가진 군사 기술이 아무리 원시적이고 단순하다 할지라도 병사의 정신 상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심지어 뉴기니 같은 석기시대 사회라 할지라도 전쟁에 관련된 문화는 완전히 원시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대의 많은 책과 논문이 전략을 더욱 중시할수록 문화에 대해 말할 자리는 사라져 간다. 그 결과 이런 책들을 아무리 읽어봐도 전쟁 문화라는 게 있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아군의 전력을 극대화하면서 적의 전력을 극소화시키는 방법도 알 수 없으며, 전쟁과 전투에서 인간이 벌이는 행위를 이해하기도 불가능하다. ---pp.66-67 대체로 적절한 의식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의식이 곧 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의식을 지키지 않고 전쟁을 하는 나라는 불리해질 수 있다. 전쟁 이전의 의사소통, 평시와 전시를 구분하는 의식과 선전 포고 등의 사례에서 이는 더욱 명확하게 나타난다. 전쟁은 가장 큰 판돈을 걸고 벌이는 도박이다. 그러므로 전투원들이 전쟁을 한다고 분명히 인식시키며, 그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만큼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은 없다. 이러한 사실을 납득시키지 못한 채로 전쟁에 뛰어드는 것은 범죄 아니면 바보짓에 불과하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적절한 의식과 올바른 형식을 따라야 적법한 행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선전 포고 없이 침략 전쟁을 한 나라가 전쟁을 일으킨 것을 사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반대로 방어 전쟁을 하는 나라에서는 선전 포고가 전혀 필요 없다.---p.120 살인과 파괴 모두 증오와 복수의 결과물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전쟁에서 증오의 역할은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된 적이 거의 없다. 따라서 증오의 역할이 과대 평가되어 본 적도 거의 없다. 만약 처음에 증오가 없는 경우라도,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전쟁을 항상 극한으로 몰고가는 원초적 성질인 단계적 확장 경향은 항상 증오를 발생시켰다. 전쟁에는 많은 사람이 연관되므로 전쟁의 원인이 되는 증오와, 증오를 고조시키는 원인은 대개 개인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에게 향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돌프 히틀러를 악의 원흉으로 보았던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어찌되었건 간에 증오는 무차별적인 살상과 파괴를 불러일으키고 그에 따른 복수심도 생기게 한다. 물론 복수가 전쟁의 가장 일반적 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복?는 가장 강력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복수를 함으로써 잃었던 것을 되찾는 기분을 느낀다. 즉 잃었던 힘을 되찾고 이전에 갖지 못했던 힘을 얻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그 원인이야 어찌되었건 파괴와 살상의 즐거움은 극한까지 치닫는 경우가 많다. 합리적이고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사람도 이성을 잃게 만들 정도로 전투의 즐거움은 강하다. 그 즐거움으로 인해 무너지는 사람도 있고, 윙거의 표현을 다시 빌리자면 발걸음에 날개를 달기도 한다. 날렵한 몸놀림과 결의에 찬 얼굴, 피에 굶주린 눈을 한 그는 더이상 연민이나 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부상을 당해도 아픈 줄도 모른다. 의기양양해진 그는 분노에 눈이 멀어 절정의 행복을 느낀다. 그는 악마적인 쾌활함을 보이며 가끔씩 주체할 수 없이 웃기도 하고, 번갯불이 번쩍이는 짧은 시간 안에 삶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는 예전의 전투력을 뛰어넘는 실력으로 싸우게 된다. 이렇게 치열하게 싸울 때 원인과 결과는 뒷전이 되고 전투 행위 자체에만 절대적으로 집중하게 된다. 모순적인 이야기이지만 가장 중대한 행위인 전쟁을 이렇게 즐거운 게임처럼 해 나가게 되면 승리와 생존이라는 두 중요한 목표를 다 이룰 수도 있다.---pp.147-148 전쟁을 끝내려면 다음 설명하는 4가지는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 우선 전사자를 수습해야 한다. 이때 아군 전사자는 물론, 적의 영토를 획득했으나 별도의 합의 사항이 없다면 적군 전사자도 수습해야 한다. 두 번째로 전리품을 분배해야 한다. 전리품에는 적군 포로, 영토, 기타 각종 재화가 포함된다. 세 번째로 승리를 축하하고, 전시에서 평시로 이행되었음을 알리는 의식을 거행해야 한다. 네 번째로 전쟁에서 적이 완전히 전멸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살아남은 적에게 적대행위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음을 알려야 한다. 이러한 종전 절차들은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으며 적국과의 협조 속에 또는 단독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클라우제비츠의 저서를 아무리 읽어도 알 수 없다. 그리고 클라우제비츠의 추종자들 역시 이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p.192 전쟁 기념비는 세상에 처음 등장한 때부터 3가지 종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 승리를 기념하는 기념비이다. 그 승리는 진짜 승리일 수도 있고, 많이 과장된 승리, 또는 완벽히 허구의 승리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들의 목적은 승자를 미화하고, 우리에게 대항할 경우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를 잠재적인 적국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죽은 영웅들을 추모하는 기념비이다. 세 번째로 반전 메시지를 담은 기념비가 있다. 연대순으로 보면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기념비가 제일 먼저 나왔고, 적어도 1918년까지는 숫자상으로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사자를 위한 기념비가 두 번째로 많았고, 반전 기념비는 1918년 이후부터에나 등장했을 뿐 아니라 극소수의 국가에만 있다. ---p.288 질서, 예절, 종교, 연민, 인간애, 문명, 경제적 편의 등의 이유로 전쟁에 용감하게 반기를 든 사람들은 언제나 많이 있었으며, 그 중에는 주위에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성과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전쟁이 사회 지배층의 음모라고 주장하던 칸트와 그의 제자들은 평범한 사람들 또한 너무도 빈번하게 전쟁에 매혹되고, 목소리를 높여 전쟁을 원하고, 전쟁에 즐거워한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는 전쟁이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물질적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 아니다. 필사적인 방어전쟁이 아니고서는 전쟁이 일반인에게까지 물질적 이익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보다는 대중들이 전쟁 속에서 다른 어떤 것에서도 감지할 수 없는 흥분을 느끼고, 일단 전쟁이 터지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참전하지 않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전쟁을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 중 일부가 전방이 아닌 후방에 있는 이유도 설명해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회 지배층의 이익이 일반 대중들의 이익과 불일치하거나, 사회 지배층이 대중을 조종하고 협박해 전장에 떠미는 일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엄밀한 관점에서 보면 사회지배층과 일반 대중의 이익이 일치하고 뒤섞여 구분할 수 없는 경우도 그만큼 많다. 깃발이 휘날리고 신념, 조국, 국가의 명예가 위기에 처한 순간만큼 사회 지배층과 대중의 이익이 합치되는 경우도 없다는 것 또한 말해두어야 하겠다. ---pp.333-334 국가 지도자들에게서 시선을 옮겨 그들이 대표한다는 국민을 보자.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 국민의 경우 핵 확산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방식으로 반응한다. 우선 여러 시대, 여러 나라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핵전쟁으로 인류가 괴멸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강하게 뿌리박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일체의 저항을 포기하지만, 핵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국의 핵무장 해제 운동 지지자들은 “죽는 것보다는 공산화가 낫다”라는 1960년대 초반의 구호를 자주 외친다. 그러나 강대국 간의 대전쟁이 사라지고, 핵 억제의 선언적 효과로 인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외국의 침공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도 사실이다.전쟁의 걱정이 덜해지게 되면 전쟁을 막기 위해 자식이나 돈을 국가에 바쳐야 할 필요도 덜 느끼게 된다. 실제로 국가 예산 중 국방비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이렇게 볼 때 1945년 이후 힘을 얻은 반전적 태도의 융성은 오랜 평화의 결과물이지, 절대 반전적 태도가 오랜 평화를 이끌어낸 것이 아니다. 좋건 나쁘건 간에 어느 것도 인간이 분노에 차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특정한 조건 하에서 특정한 용도로 특정한 표적에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을 보증해 주지 않는다. 역으로 이런 보증이 이루어지고 그 신뢰성이 확보된다면 핵무기를 두려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핵무기의 사용에 제한을 두는 것은 정말로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리고 핵무기의 사용을 제한하는 보증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속성상 존재할 수도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핵무기의 위력이 살아 있는 한 핵무기를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거나 제한된 방식으로만 사용하겠다는 어떤 약속도 그 약속을 담은 전자 메일만큼의 가치조차도 지니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안정성-불안정성 패러독스이다. ---pp.357-358 현대의 전쟁은 다양한 여러 사람들이 참가하며, 생활 속에 전쟁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전쟁 속에 여러 생활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었다. 필요는 공급을 낳고 공급은 필요를 늘린다. 자존심 강한 대학에서도 전쟁연구, 전략 연구, 안보 연구, 평화 연구, 분쟁 해결 등에 대한 학과를 만들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학과를 2~3개씩 가지고 있는 대학은 드물다. 그 밖의 대학에서는 전쟁 관련 과목이 정치학 또는 국제관계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범주는 이름이야 어떻건 간에 실제 가르치는 내용에는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보통 이런 학과의 교수진은 민간인이나 학위를 보유한 예비역 군인이 맡는 경우가 많다. 학생 중에는 학위를 취득할 목적으로 자군의 교육 기관 대신 출석하는 군인도 있고, 전쟁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품은민간인들도 있다. 리델 하트는 전쟁을 알아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교수로서 또는 학생으로서 전쟁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이 명제는 항상 논란거리이다. 전쟁이 항상 상존한다면 전쟁에 대해서 연구한다고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전쟁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논문으로 뒤덮고 총 한 발이 발사될 때마다 열 마디의 말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수백 년 동안 온힘을 다해 전쟁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던 학계마저도 전쟁에 매혹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p.393 무법자 무리들에게는 일반적인 문화도 없으며 있어도 던져버렸다. 이들은 신의 명령도 인간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 그리고 적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 결과 이들은 어떤 규모의 조직적인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 운이 따른다면 또 별 문제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장기적인 관점 에서 볼 때 승리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이들의 행위에 승리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것은 단어 본래의 의미로 볼 때 부적절하다. 승리를 얻어도 오래 지속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한번 지기 시작하면 사기를 잃고 부대가 해산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이들이 가장 소망하는 것은 쁘아띠에나 보스니아 등지에서 벌어졌던 갈 데까지 다 간 혼란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서만 생존할 수 있고,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자유로운 행동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맹목적인 분노에 따라 행동하며 친구와 적도 종종 분간 못한다. 이 때문에 그들은 매우 잔인하고 무분별하게 행동하여 갈수록 많은 적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처음에는 공포를, 그 다음에는 증오를 만들어낸다. 법도 지키지 않고 조직력도 없으며 어딜 가나 미움을 받는 무법자 무리들은 신뢰를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철저한 파괴뿐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들의 파괴 행위는 비효율적이다. 시체와 폐허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자신들과 적에게서 탈취한 자원을 극도로 낭비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자원을 절약하고 관리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며 의도적으로 파괴하기도 한다. ---p.431 페미니스트들이 힘을 얻으면 군기, 휘장, 군악, 기념비 등 모든 전쟁 문화는 거리에서 쫓겨나 병영 안, 그것도 병영 안의 박물관 중에서 가장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에 틀어박혀 먼지가 잔뜩 쌓인 채로 썩어갈 것이다. 전쟁 문화가 사라지면 이런 류의 급진적 페미니즘은 계속 세력을 키워나갈 것이다. 여성뫀 언제나 전쟁 문화는 물론 전쟁 자체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 때문에 페미니즘을 따르는 여성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전쟁 문화에 파괴적인 힘을 미칠 수 있다. 첫 번째 방식은 리시스트라타를 본받아 전쟁 문화를 반대하고, 폐기하고, 종국에는 비웃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좋지 않은 두 번째 방식은 군대에 너무 많은 여자를 배치하고, 그 여자들을 너무 많은 요직에 진출시키는 것이다. 즉 여자가 남자를 흉내내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을 쓰건 간에 그렇게 되면 전쟁 문화는 전쟁 문화를 반영하고 확장시키는 여성의 달콤한 힘 없이 지탱해 나가야 한다. 다른 문화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런 힘이 없는 전쟁 문화는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확실히 붕괴하고 만다. 물론 전쟁이 벌어졌을 때 싸워 이길 힘도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다. ---pp.499-500 이론적으로 볼 때 전쟁이란 최종적인 수단이다. 즉 특정 인간 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들을 살상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무력화시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매우 과격한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전쟁, 특히 그 속의 전투는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 중 가장 흥미롭고 자극적인 것으로 그 앞에서는 다른 어떤 행동도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그러한 흥분과 자극은 종종 순수한 즐거움이라는 말로도 바뀌어 불리기도 한다.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전쟁을 클라우제비츠와 그의 현실주의 추종자들이 생각했던 단순한 실용의 영역에서 꺼내어 문화의 영역으로 옮길 수 있다. 사실 저자의 친구 에드워드 러트왝이 말했다시피 전쟁이 즐겁지않다면 전쟁을 해나갈 이유는 상당 부분 사라진다. 전쟁이 극도의 흥분을 주는 명백한 이유는 그것이 목숨을 건 싸움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는 행위 중 전쟁처럼 남자들만이 하고, 고의적으로 죽음을 초래하게 하는 행위는 거의 없다. 그리고 전쟁은 인간이라는 가장 강하고 지능적인 적을 상대로 해야 한다. 전쟁의 참여자는 의지에 반해 목숨을위험에 빠뜨릴 것을 명령받기도 하며, 가장 가혹한 처벌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은 전쟁 문화에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전쟁 문화는 수천 년 전에 생겨난 이후 현재까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맞서 왔다. 전쟁 문화가 최전선에서 맞서 싸웠던 군인들의 믿음대로 과연 전쟁의 본질에 속하는지, 아니면 국방 관료들과 학계의 전략가들이 생각하는 대로 그저 장식물에 속하는지 여부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 전쟁의 진정한 본질은 전투일 것이다.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빌리면 규칙도 어떤 문화도 없는 그 전투는 현찰 거래가 상거래를 떠받치듯이 전쟁을 떠받치는 요소이다. 그러나 현찰 거래만을 다루고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한 상업적 논문은(작성될 수는 있다고 전제하고 말도 되지 않을뿐더러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논문은 다락방의 본질은 다양한 물건을 집어넣을 수 있는 빈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 논의는 물론 기술적으로는 정확하지만, 다락방에는 그 공간을 규정짓는 벽도 있고 문도 있고 찬장도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pp.501-502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에 살았던 중국의 전략가 이며『손자병법』의 저자였던 손빈은 이런 말을 했다. “나라가 비록 크더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한다.” 이 말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역시 손빈이 한 다른 말 역시 사실이다. “전쟁이 100년 만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더라도, 내일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대비해야 한다.” 인간의 거의 모든 행위와 물건들은 계속 진보하여 효율적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다. 마치 인간들이 그러한 발전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전쟁에 대비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일은 거기서 예외인가? 전쟁을 해야만 한다면, 그리고 이겨야만 한다면 전쟁 문화를 보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p.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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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로 전쟁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열광과 거부, 친숙함과 낯섦, 그 모순의 공존 월드컵이 한창이다. 전 세계의 누구도 월드컵을 순수한 스포츠로만 보지 못한다. 열광을 하건 무관심하건, 우리는 모두 이것을 ‘국가 대항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구는 ‘전쟁’에 비유된다. 모든 스포츠란 결국 총성 없는 전쟁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전쟁의 비유’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삶의 곳곳에 널려 있다. 출근길부터 삶이 전쟁이며, 일과 사랑도 전쟁이다. 그리고 이렇게 남발되는 ‘전쟁의 비유’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코트디부아르의 검은 ‘전사’ 드록바가 축구를 통해 전쟁을 멈춘 사건을 통해 스포츠가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어쩌면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는 진저리를 치면서도 삶이 본질적으로 전쟁이 아니겠냐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 우리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는 감성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토록 친숙하게 느끼면서도 막상 그 실체를 생각하거나 접하면 한없이 두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것. 우리는 모두 한국이 정전 국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 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국지전과 도발이 벌어져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전쟁의 보류된 연속인지 평화의 시작인지 알 수 없는 ‘정전 상태’의 장기화로 인해, 그만큼 평화에도 매우 익숙해져 있다. 그렇기에 군부대 옆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에 대해, 혹은 반대로 아파트 옆에 수십 문의 포를 갖춘 부대가 들어서 있는 것에 대해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전쟁에 대해 가장 무관심한 문화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쟁의 실질적인 발발 가능성이 언급될 때마다 그 낯섦을 체험하는 게 아닐까? 클라우제비츠도 던지지 못했던 질문 ― “인간에게 전쟁이란 무엇인가?” 전쟁의 핵심은 전투이지만, 그것이 전쟁의 전부는 아니다! 최근에야 완역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전쟁을 무력 투쟁과 전략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렇다. 이해관계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빚게 된 두 집단이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전쟁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전쟁을 수단으로, 정치의 연장선상으로만 접근하게 만든다. 실용주의적이라고 해도 좋을 이 관점은, 사람들이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혹은 어떻게 전쟁에 ‘뛰어드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전쟁사과 군사학의 대가 마틴 판 크레펠트가 출발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이다. 전쟁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효과적인지를 묻는다거나 전쟁이 과연 생물학적 본성인지 아닌지를 놓고 길고 장황한 가설들을 논의하는 대신, 크레펠트는 인간이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하는지, 인간이 전쟁에 대해 만들어 놓은 “문화”의 실체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전쟁이 무엇인지 좀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크레펠트는 클라우제비츠부터 존 키건에 이르기까지 전쟁사와 군사학의 대 선배들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고 있지만 사실 매우 대담하면서도 야심찬 저서를 내놓고 있다. 흔히 ‘전쟁’의 대립항 혹은 잉여로만 여겨지는 ‘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지금껏 논의에서 배제된 나머지 부분을 살펴본다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그 속에서 전쟁의 실체를 발견한다. 독자들은 인간이 과연 전쟁 없이 살 수 있는지, 전쟁을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혹은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크레펠트의 풍부한 식견과 통찰이 느껴지는 서술을 따라가며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정말로 전쟁을 혐오하는가? 왜 가장 파멸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인 전쟁에도 문화와 규칙이 존재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반감을 느끼고 전쟁보다 평화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대부분의 전쟁이 자발적인 지원병에 의해서 수행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적을 살상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전쟁의 목표라고 하면서 왜 전투원들은 불필요한 장식과 치장으로 전투를 준비할까. 전투에 가장 적합한 성이 만들어진 것은 왜 전국 시대가 끝나 더 이상 그러한 성이 불필요해졌을 때였을까.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서는 기습 공격이 가장 유용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왜 선전포고와 전쟁의 규칙을 위반하면 비난하는 것일까? 적을 멸살하기 위한 전쟁에서 왜 포로를 비인간적으로 대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상대를 말살하는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파멸적 행위로만 전쟁을 이해할 경우, 우리는 벽두부터 무수한 모순점에 빠지게 된다. 크레펠트는 여기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전쟁을 받아들이기 위한 문화가 먼저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온갖 불필요해 보이는 ‘부수적인 것들’이 실은 전쟁을 유지시키는 본질적인 것이라는 놀라운 통찰이 드러나게 된다. 크레펠트는 이러한 것들을 소홀히 한 국가나 군대가 어떻게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전쟁에서도 패배하게 되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선전포고와 포로의 대우와 같은 전쟁의 내재적인 규칙들을 지키지 않는 무법자, 전쟁을 진지하게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기개 없는 병사들, 맹목적으로 전투와 살상에만 몰입하는 영혼 없는 기계들은 전쟁을 승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 대해 조롱하거나 전쟁을 무시하는 이념들에 대해 크레펠트는 냉소를 날린다. 맹목적인 열광과 마찬가지로 어설픈 조롱과 반감 역시 집단의 힘을 약화시키고 전쟁을 패배로 이끄는 독소라는 것이다. 전쟁의 실체, 즉 전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만들고 받아들이는 총체적인 문화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집단은 항상 전쟁에서 패배해 왔던 것이다. 이렇게 크레펠트는 책 전체를 통해서 극단적인 전쟁광과 반전주의자들 모두와 ‘전쟁’을 벌인다. 이 논리의 싸움에서 그가 승리를 거머쥐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일일 것이다. 전쟁의 준비에서부터 페미니즘까지 : 우리가 알아야 할 전쟁의 모든 것 전쟁은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도 즐기고, 즐기면서도 냉철한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전사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이 없이는 수행될 수 없다. 이 책의 제1부는 전쟁이 벌어지기 전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 즉 어떻게 전사가 만들어지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쟁에 익숙해지는지를 다루고 있다. 준비 없이 전쟁을 하는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준비를 한다고 늘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의 전쟁이 어떻게 발발하고 수행되는가는 이어지는 제2부에서 다루어진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선전 포고로부터 전쟁의 수행, 그리고 종전에 이르기까지 전투와 전략을 중심으로 하는 단순한 사고만으로는 전쟁을 이해할 수 없고, 수행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전쟁은 정치이면서 삶이고, 전략이면서도 문화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고 기념함으로써 계속 그것을 이어나간다. 때로는 패배의 아픔을 잊기 위해, 때로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때로는 더 이상 전쟁이 발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가끔은 전투의 영광과 즐거움을 회상하기 위해, 인류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 왔다. 전쟁 이후의 문화가 제3부의 주된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평화를 알기 위해서는 전쟁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진리일 것이다. 사실상 세계 대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국지적인 전쟁과 테러리즘이 발발하고 있는데 전쟁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전쟁의 발발을 억지하려는 노력 역시 지속적으로 증대되어 왔다. 한편으로는 무기와 전략 체계의 현대화로 인해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크레펠트는 제4부에서 이 변화하는 전쟁의 양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이전의 저작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논쟁적일 제5부는 크레펠트가 보기에 전쟁의 문화를 약화시키고 부식시키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논평하는 곳이다. 규칙과 문화가 없는 테러리스트들, 맹목적인 전쟁 수행, 기개 없는 병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쟁을 남성들의 호전성으로만 이해하거나 여성 전사를 기르려는 편협하거나 경쟁적인 페미니즘이 바로 그것이다. 독자들 각자의 입장에서 저자와 가장 뜨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흥미진진한 부분이 되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