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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전 6·25는 이랬다
김동길
월간조선사 201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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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피란길에서

金東吉 23세 청년의 전쟁과 사랑
金鎔一 잘나갔던 농구선수에게도 6·25는 전쟁이었다
노라노 피란지 부산에서 댄스홀 무대의상 만들어
盧在鳳 열다섯 소년이 경험한 무시무시한 ‘죽음의 더께’
朴英淑 우리 가족은 금붕어의 生死에 운명을 걸 정도로 약한 존재였다
徐英勳 “나를 적십자운동으로 이끈 6·25”
송월주 조용했던 내 고향의 6·25
辛奉承 집 천장에 숨어 수백 개의 손 태극기를 만들다
李大淳 피란 보따리에 아들 교과서 챙겨 오신 어머니
李萬燮 戰時에 空士 들어갔으나 교내 소란에 책임지고 퇴교
李順載 “순재, 청주 쪽으로” 가족과 헤어지지 않으려 행선지 표시하며 南으로 南으로
崔順達 세 살 위 이모와 가짜 부부증명서 만들어 피란길 올랐지만

赤治下 60일 - 서울에서 벌어진 일들

金東鍵 지금도 어린아이들의 고생을 보면 눈물부터 난다
金成洙 전쟁 내내 폐결핵과 싸우다
尹恭熙 인민군이 성당 찾아와 반동분자 색출에 협조하라 요구
李鍾贊 “부통령 할아버지 피신 안시켰으면 대한민국 결딴났을 것
鄭喜卿 여고생시절 식량 얻기 위해 부역, 피란지 판잣집에서 대학공부
玄勝鍾 열 살도 안 된 아들·딸에게 거짓말하게 한 6·25

우리는 이 나라를 이렇게 지켰다

金守漢 전두환 노태우 학병을 내 휘하에서 훈련시켜
金雲龍 국군 패잔병으로 誤認받아 죽을 뻔… 나이 속여 장교임관, 용문산 전투 참전
柳亨錫 16세 입대…전장에서 두 兄 잃어
閔丙敦 내 총에 죽은 적군의 눈빛, 지금도 잊히지 않아
朴泰俊 開戰 초기, 연대 소속 중대장 12명 중 10명 전사
李哲承 학도병 모아 대구 死守에 일조
李春和 통신장교로 전방 시찰하다 낙오, 부대로 가는 먼 길
張在植 전쟁터로 나간 4형제 중 3명이 총 맞아
鄭元植 전시 중 신병 적성검사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

내 인생을 바꾼 6·25

康仁德 평생 ‘공산주의 공부’를 업(業)으로 삼게 된 계기
權彛赫 서류 한 장 들고 찾아간 美軍 병원… 두 달 후 “당신이 이 병원 원장이다”
金章煥 전쟁이 선물한 기적
白聖鶴 美軍 포병대원 ‘빌리’ 찾아 37년 미국 누빈 ‘쇼리’ 소년
李時炯 두 형제의 전쟁-형은 戰線에서 아우는 삶의 터전에서
李麟求 내 인생의 직업을 결정해 준 6·25
鄭 樞 음악도, 하루아침에 인민군 중좌가 되다

李蕙馥 인터뷰 | “평양 대동교 앞 白善燁-게이 장군 악수장면 잊을 수 없어”
오효진 실화소설 | 金八峰과 인민재판
宋鍾奐 소련 비밀문서를 중심으로 본 6·25/스탈린, 중국 약화시키려 한국전쟁 일으켜
李志樹 소련문서로 보는 6ㆍ25의 진실 | 6·25의 감독ㆍ각본ㆍ주연은 스탈린, 金日成은 조연
李春根 분석 | 소련이 작전명령서 공개로 친북좌익세력의 北侵주장 허물어져

저자 소개 1

1928년 평안남도 맹산 출생으로 연희대학교 영문학과, 미국 에반스빌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이 후 연세대학교 교수, 교무처장,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현재 월간 경제풍월에 컬럼을 연재하여 이를 묶어 책으로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저서로는 『길은 우리앞에 있다』, 『어떤 사람이기에,』 끝이 없는 이 길을』, 『대통령의 웃음』, 『가노라 삼각산아』, 『불어 봄바람』, 『영원히 남는 것』, 『Abraham Lincoln』, 『링컨의 일생』, 『하
1928년 평안남도 맹산 출생으로 연희대학교 영문학과, 미국 에반스빌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이 후 연세대학교 교수, 교무처장,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현재 월간 경제풍월에 컬럼을 연재하여 이를 묶어 책으로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저서로는 『길은 우리앞에 있다』, 『어떤 사람이기에,』 끝이 없는 이 길을』, 『대통령의 웃음』, 『가노라 삼각산아』, 『불어 봄바람』, 『영원히 남는 것』, 『Abraham Lincoln』, 『링컨의 일생』, 『하늘을 우러러』, 『석양에 홀로서서』, 『길을 묻는 그대에게』, 『그래도 길은 있다』, 『한국청년에게 고함』, 『하느님 나의 하느님』, 『새야새야파랑새야』, 『겨울이 오기 전에』, 『죽어서 흙이 될지라도』, 『내가 부르다 죽을 노래여』, 『사랑의 길 자유의 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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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6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88쪽 | 572g | 153*224*30mm
ISBN13
9788991491663

책 속으로

피란길에서

날이 되니 벌써 붉은 완장을 두른 놈들이 교정의 여기저기에 나타나 괴성을 지르고 다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이 확실했다. 박상래 교수가 나를 찾아와, “김군, 아무래도 2~3일 한강을 건너가 있다가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아” 하면서 학교 회계로부터 타 온 돈뭉치 4개를 내게 건네 줬다. “어서 떠나!”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마을에서 전 부치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걸로 봐서 추석이었다. 그때 개천에서 밤을 새우고 있었는데 인민군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시켰다. 우리 일행 중에는 가수 이난영(李蘭影)씨의 남편인 김해송(金海松)씨가 있었는데 그때 그분이 굉장히 슬픈 노래를 불렀다. 여기저기서 훌쩍훌쩍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용일 전 대한체육회 상무이사)

“플리~즈.”
나는 미군 부대 담당자에게 모르핀을 나눠달라고 사정사정했다. 말이 좀 안 통한다 싶으면 울면서 매달렸다. 내가 모르핀을 구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만 있다면, 이까짓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 미군은 내가 찾아갈 때마다 약품을 나눠줬다. '노라노 패션디자이너'

한번은 수원 근방을 내려가는데 삐라가 날아왔다. ‘피란민은 흰옷을 입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나는 홑겹의 옥양목(玉洋木)을 달랑 걸치고 있었다. 같은 길을 걷던 대학생이 카키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쌕쌕이(무스탕機)’ 전투기가 날아왔다. 조종사 얼굴이 보일 정도로 저공비행하더니 총알을 뿌려댔다. 그 대학생이 배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졌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

그때 장충동 집에는 금붕어 어항이 있었는데, 며칠이고 집을 비우고 피신을 할 때는 먹이를 잔뜩 주고 광 한쪽에 잘 건사해 두었다. 다행히 그 기간 동안 금붕어는 죽지 않고 팔팔하게 살아 있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금붕어와 일종의 공동운명체였다.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하던 그때 우리 식구는 금붕어에 우리의 운명을 걸 정도로 약한 존재였다. '박영숙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우리가 한 일은 가두에 나가 벽보를 붙이고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벽보는 글씨를 잘 쓰는 내가 직접 썼다. 국방부는 국군이 패전했는데 계속해서 이겼다는 방송만 하라고 했다. “북괴군이 밀려와서 어디를 쳤는데 우리 국군이 얼마를 사살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으니 안심하라”는 식이었다.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그곳에 경찰이 있었는데 피란을 가지 못하고 인민위원회에 체포를 당했다. 인민재판에서 그에게 사형이 언도되었다. 그에 대한 처형이 있던 날 인민위원회에서는 주변 마을 사람들을 처형 장소에 모이라고 했다. … 처형 장면을 목격하고 오신 선친께서는 음식도 제대로 들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강릉에서 울산까지는 천릿길이었고, 1월의 날씨라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눈이 멎으면 창칼과도 같은 추위가 밀어닥치곤 하였다. 이미 내려 있는 눈이 쌓여서 무릎에 차이는 험한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했다. 낮에 젖은 바짓가랑이는 밤이 되면 꾸둑꾸둑 얼어붙었다. 그때는 바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천막지와 같아서 정강이를 도려내듯 쓰라렸다.'신봉승 극작가'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누님 집에서도 공부는 계속됐다. 어머니는 “아들 공부할 책이 없다”며 순천에 두세 차례 더 다녀오셨다. 당시엔 주로 짐을 머리에 이고 오갔기 때문에, 공중에서 오인 사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머니는 위험한 고비를 몇 번 넘기면서도 아들의 책을 가져오기 위해 목숨 건 이동을 했다. '이대순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

염치없게도 한 공깃밥을 나눠 먹고 누룽지를 끓인 ‘눌은밥’을 축내야 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경기도 양주에 사는 먼 친척집을 찾아갔다. 모내기 일을 거들어 주고 감자 한 자루를 얻어다 삶은 감자로 끼니를 이었다. 얻어온 감자를 형편이 딱한 하숙집 주인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

별다른 통신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가장(家長), 아들과 헤어진 가족들은 종이에 숯으로 가족의 이름을 쓰고 행선지를 표시해 길 중간중간 나무나 전봇대 등에 매달아 놓으며 걸어나갔다. 우리도 “순재, 청주 쪽으로”라고 써 붙이며 갔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순재 탤런트'

인민군 장교는 우리의 행선지와 목적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 나는 “서울 공장에서 직공(職工)으로 일해 그런 어려운 말은 잘 모른다”며 “고향에 가족을 데려다 놓고 의용군에 곧바로 지원할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다급한 마음에 이모가 준비해 준 가족증명서를 내보였다. 그는 증명서를 보자마자 “이 위원장 또 가짜 증명서 만들어 줬구먼”이라며 우리를 험상궂게 노려봤다. '최순달 전 체신부 장관'

赤治下 60일 - 서울에서 벌어진 일들

어느 날 밤 덜컹 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계세요?”라며 형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꿈일까도 생각했지만 눈을 떠 보니 역시 형이었다. 형이 어둠 속에서 “동건이 있니?”라고 하기에 나 여기 있다고 말해야 하는데 눈물부터 먼저 났다. 그렇게 기다리던 형을 만났는데 말 한마디도 못하고 눈물만 펑펑 흘렸다. '김동건 아나운서'

동네 반장이던 할아버지는 인품이 좋은 분이었는데, 행여나 내가 의용군에 뽑혀 고생할까 봐 일부러 내 병을 소문내고 다녔다. “김성수 저놈은 중학교 다니며 운동하다 폐병에 걸렸다. 저런 애 의용군으로 데려가 봐야 밥만 축내고 병이나 옮기니 내버려 두라”고.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35명의 名士가 말하는 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생생한 경험담

- 6·25를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했던 종군기자의 증언
- 인민재판에서 ‘처형’당하고도 살아남은 소설가 김팔봉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실화소설
- ‘소련 문서’로 남침 입증하며 ‘북침설’의 허구를 깬 논문 3건

20대의 56.6%가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초등학생의 35%가 6·25는 북침(北侵)으로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6·25 6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전쟁을 체험했던 세대는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을 애써 잊고 싶어서, 혹은 먹고 살기에 바빠서 전쟁의 기억을 후세에 전하는 것을 게을리 했습니다. 반공(反共)과 북한 공산주의의 위협을 강조했던 권위주의 정권의 선전은 날이 갈수록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을 받았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는 그 틈을 비집고 6·25의 진실을 흐리는 수정주의 사관(修正主義 史觀)과 북한의 선전선동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왜곡된 역사관의 세례를 받은 세대가 어느덧 우리 사회의 중추를 형성하게 됐습니다.

머리와 가슴으로 느끼는 6·25

하지만 여기 60년 전 6·25의 진실을 말해주는 책이 있습니다.
처절했던 피란길에서, 악몽 같던 적 치하에서, 죽음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분들이 아픈 상처를 헤집으면서 남긴 피눈물 나는 증언입니다.
증언을 남긴 분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명사(名士)들입니다. 35명의 증언이지만, 그 속에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던 3,000만의 아픔이 녹아 있습니다.
비밀해제된 구 소련문서를 통해 6·25의 진실을 왜곡하는 수정주의 사관을 비판하는 세 건의 논문, 한국인 종군기자의 증언, 인민재판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소설가 김팔봉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실화소설도 함께 실었습니다.

6·25에 대한 책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을 건설한 각계 명사들의 생생한 증언을 한데 모은 책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거기에 실화소설과 논문이 더해진 이 책은 가슴과 머리로 6·25의 진상을 느끼게 해 줄 것입니다.

증언자/필자 (가나다 순)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권이혁 전 문교부 장관, 서울대 총장
김동건 아나운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김수한 전 국회의장
김용일 전 대한체육회 상무이사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김장환 목사, 극동방송 이사장
노라노 패션 디자이너
노재봉 전 국무총리
류형석 세무사
민병돈 전 육사교장
박영숙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박태준 전 국무총리, 포항제철 회장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신봉승 극작가
윤공희 전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이대순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
이만섭 전 국회의장
이순재 탤런트
이시형 의사, 전 강북삼성병원 원장
이인구 계룡건설 회장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 전 신민당 대표최고위원
이춘화 전 삼성석유화학 사장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정원식 전 국무총리
정 추 카자흐스탄 공훈문화인
정희경 전 이화여고 교장
최순달 전 체신부 장관
현승종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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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복 대한언론인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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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진 언론인, 전 정부공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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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환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이지수 명지대 북한학과 교수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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