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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01_서울성곽(사적 제10호) 02_수원화성(사적 제3호) 03_남한산성(사적 제57호) 04_강화산성(사적 제132호) 05_온달산성(사적 제264호) 06_상당산성(사적 제212호) 07_공산성(사적 제12호) 08_부소산성(사적 제5호) 09_해미읍성(사적 제116호) 10_우금산성(전북 기념물 제20호) 11_남고산성(사적 제294호) 12_적상산성(사적 제146호) 13_금성산성(사적 제353호) 14_남도석성(사적 제127호) 15_순천왜성(전라남도 기념물 제171호) 16_낙안읍성(사적 제302호) 17_동래읍성(부산기념물 제5호) 18_폐왕성지(경남기념물 제11호) 19_고현성(경남기념물 제46호) 20_진주성(사적 제118호) 21_당포성지(경남기념물 제63호) 22_화왕산성(사적 제64호) 부록 : 사적으로 지정된 한국의 산성 추천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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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특징
한국 사적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성 또는 성지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 출간되어 있는 산성 관련 책들은 대부분, 산성 하나만을 소재로 만들어져 있다. '남한사성', '백제산성' 등. 저자 이용재는 건축을 전공한 건축가로서, 그동안 여러 권의 답사기를 책으로 묶어 내었다. 그렇게 답사기를 묶기 위해 전국을 다니다보면 아직 제대로 산성에 관한 답사기가 책으로 출간되지 않은 것에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용재의 재미있는 산성여행』은 그가 계속해서 내놓을 답사여행책의 하나로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져 산성이 많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역사를 담고 있다. 산성이 축조된 시기는 대부분 전쟁과 관련이 있다. 끊임없이 우리 땅을 침략한 중국과 일본에 맞서 전국에 성들이 생겨나고 사라진 역사. 이용재는 이런 산성의 이야기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어려운 말도 없고, 그렇다고 빼먹은 내용도 없다. 전국의 22개의 산성을 직접 발로 걸으며 성이 축조되었을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상상하며 하나하나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쉽다. 또한, 누구나 쉽게 곁에 두고 여행을 할 수 있는 편안한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다 다루지 못한 산성들은 추후 추가로 집필하여 출간할 계획이다. 한국 산성의 현황 성이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극히 원시적인 방어시설이 설치된 것은 수만 년 전 인간이 동굴이나 야영하는 간단한 주거에 돌을 쌓거나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적과 야수의 습격을 방어한 때부터라고 여겨진다. 현재 고고학적 발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되는 성곽도시는 이스라엘의 예리코로 그 성벽은 BC 8000년 이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밖에 지중해의 동해안이나 소 아시아에서도 거의 같은 연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어서 BC 4000년경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일대에 수메르인이나 아카드인의 성곽도시가 번영하여 그 유적이 많이 발굴되었다. 성곽도시는 또한 고대의 이집트·인도·중국에도 출현했다. 이들 고대 문명권에서는 그 후 여러 민족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수많은 왕조가 흥망하였지만 성곽도시나 성새의 구상은 계속 전승되어 근세에까지 이르렀다. 성은 원시인이 적이나 야수를 막는 원시적 방어물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후 농경·목축 등 경제활동을 하면서 일정한 토지에 정주하게 되자 주거를 지키는 주거방어의 형태를 낳아 주거의 집합체인 취락 방위로 발달하였고, 또 이것은 점차 성곽도시로 확대되어 갔다. 또 경제의 발달과 함께 인간사회의 계급화가 진행되어 권력자가 출현하자 권력자의 주거를 특별히 방어하는 사적인 주거방비가 거관·거성·왕궁의 형태로 발달하였다. 한편 주거를 위한 방비가 아니고 순전히 전투상의 필요에 의한 방어물도 구축하게 되었으니 이것들은 처음에는 목책이나 녹채(가시울타리) 같은 간단한 것이었으나 뒤에는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영국에 축조된 하드리아누스의 장성과 같은 방책으로 발달하였다. 성은 원래 인간의 평화에 대한 소망 또는 자기방어 본능 등에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이지만 나중에는 집단적 싸움인 전쟁에서 방어적 구축물이 되었고, 동시에 도시국가나 왕후·영주 등의 세력신장의 기지로서의 역할도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성은 전란 속에서 발달한 축성기술에 의하여 유럽에서 중세로부터 근세에 걸쳐 현저한 발달을 이룩하였다. 또한 성은 위력 있는 대포의 출현과 정세의 변화 등에 따라 군사적 구축물인 요새와 일상생활의 건조물인 성관·거성 등으로 분리되어 발달·쇠퇴하여 왔다. 한국 사적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성 또는 성지이다. 이처럼 많은 성이 언제부터 한반도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는지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분명하지 않다. 다만 BC 194년에 위만이 왕검성에 도읍을 정하고 위만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BC 18년에는 백제의 온조왕이 위례성에서 즉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성은 오래 전부터 한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그 성이 어떠한 형태의 성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백제 초기에 축성된 풍납토성(서울 강동구 풍납동)과 132년(개루왕 5)에 축성된 북한산성은 지금도 사적으로 남아 있어 당시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그 후 삼국시대를 통하여 나라마다 많은 성을 축조하였고, 그 중에서 신라의 삼년산성과 월성은 유명하다. 한국의 축성술은 이 무렵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한국의 지형과 환경에 적응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한국의 성을 종류에 따라 구분하면 도성 ·읍성 ·산성 ·행성 기타로 나눌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산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점이 일본에 거성이 많은 점과 매우 대조적이다. 한국의 성은 산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 형식은 입지조건과 지형선택의 기준에 따라 테뫼식(또는 머리띠식)과 포곡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통례이다. 전자는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성벽을 두른 모습이 마치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며, 대개 규모가 작은 산성에 채택되었다. 한편 평야에 가까운 구릉 위에 축성한 것도 있으며 경주 월성 ·대구 달성 등은 평지에 있는 독립구릉을 이용한 특이한 예이다. 산성의 둘레는 400∼600m 가량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로는 800m가 넘는 큰 것도 있으며 성벽은 토축으로 한 것이 많고, 때로는 그것을 2중 3중으로 둘러 구축한 것도 있다. 한편 포곡식은 성 내부에 넓은 계곡을 포용한 산성으로, 계곡을 둘러싼 주위의 산릉에 따라 성벽을 축조한 것이다. 성내의 계류는 평지 가까운 곳에 마련된 수구를 통하여 외부로 유출되며 성문도 대개 이러한 수구 부근에 설치되어 있다. 성벽은 대개 견고한 석벽으로 축조되었으나 백제의 부소산성은 토축이다. 이 성은 둘레가 2,000 m 내외이나 조선시대의 포곡산성은 5,000∼6,000 m 내지 1만m가 넘는 대형산성도 적지 않다. 이들은 가공석재를 사용한 완전한 석축성벽과 무사석으로 구축된 성문, 그리고 총안이 있는 여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존하는 이들 산성으로는 임진왜란 때의 행주산성, 병자호란 때의 백마산성 ·남한산성 등을 비롯하여 부여의 성흥산성 ·부소산성 ·청마산성 ·청산성 ·석성산성 ·건지산성, 공주 공산성, 경주 남산성 ·부산성 ·명활산성, 주산산성, 물금증산성, 화왕산성·목마산성, 김해 분산성, 함안 성산산성, 성주 성산성, 양산 신기리산성·북부동산성 등을 들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