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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연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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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 르포.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소련-아프간 전쟁 희생자들의 어머니와 젊은 아내, 참전 용사들의 증언을 담았다. 누구 하나 관심 가져주는 이 없는 작은 약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면서 전쟁의 추악한 실상을 폭로한다.
2017.05.19. 소설/시 PD

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 9
수첩들에서(전쟁터에서) / 21
첫째 날: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 45
둘째 날: “다른 이는 비탄에 잠긴 영혼으로 죽어가는데……” / 169
셋째 날: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 291
『아연 소년들』에 대한 재판(소송사건 경과 일지) / 403
옮긴이의 말 / 505

저자 소개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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Светла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Алексиевич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 서부의 스타니슬라브(現 이바노-프란콥스크)에서 우크라이나인 어머니와 당시 군인이던 벨라루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의 아버지는 퇴역 후 가족과 함께 벨라루스의 작은 마을로 돌아와 부부가 함께 교사로 근무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재학 중 학교 신문에 다수의 시와 산문을 기고했다. 졸업 후 기숙사 보모, 농촌지역 교사로 2년간 재직하며 소련 대학 진학을 위해 필요한 ‘고용증명서’를 1965년 취득했고, 1966년에는 고멜 시 나로블의 지방 신문사에서 일했다. 그리고 마침내 민스크에 위치한 벨라루스 국립대학교에서 저널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 서부의 스타니슬라브(現 이바노-프란콥스크)에서 우크라이나인 어머니와 당시 군인이던 벨라루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의 아버지는 퇴역 후 가족과 함께 벨라루스의 작은 마을로 돌아와 부부가 함께 교사로 근무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재학 중 학교 신문에 다수의 시와 산문을 기고했다. 졸업 후 기숙사 보모, 농촌지역 교사로 2년간 재직하며 소련 대학 진학을 위해 필요한 ‘고용증명서’를 1965년 취득했고, 1966년에는 고멜 시 나로블의 지방 신문사에서 일했다. 그리고 마침내 민스크에 위치한 벨라루스 국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72년 대학졸업 후 브레스트 지방 베레사의 지역신문사 기자와 공립 학교 교사로 동시에 근무했다. 이듬해 민스크 지역신문에 취직한 후 저널리즘에 온전히 종사하기로 결정했다. 1976년에는 문학잡지 [네만]에서 통신원으로 시작해 곧 보도부장이 되었다. 같은 해에 첫 서적 『나는 마을에서 떠났다』를 완성했다. 그러나 시골 주민의 도시 이주를 금한 소련 정부의 융통성 없는 여권정책을 비판한 내용으로 인해 출판은 금지되었다. 훗날 알렉시예비치 자신도 ‘보도성이 너무 짙다’며 책의 출판을 반대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단편, 에세이, 르포 등 다양한 문학장르를 시도했다. 당시 벨라루스 작가 알레스 아다모비치가 ‘집단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영역을 개척하던 중이었다. 아다모비치는 알렉시예비치가 ‘있는 그대로의 삶을 묘사하는’ 자신만의 문학방식을 모색하는데 중요한 도움을 주었다. 이 방식의 궁극적 목표는 일상의 콜라주 형태로 개인의 목소리의 합창을 만드는 데 있었다.

1983년 탈고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이 아니다』에서 처음으로 이 방식을 도입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세계2차대전에서 전투원, 당원, 공무원으로 참전했던 소련 여군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들의 전쟁 중과 후의 운명을 연구했다. 그 후 2년간 책의 출판을 위해 검열과 투쟁하면서 알렉시예비치는 ‘대조국전쟁(세계2차대전의 러시아식 표현)의 영광에 먹칠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소위 ‘반공 태도’로 인해 일자리마저 잃었다. 책은 소련에 페레스트로이카가 도래한 1985년에야 모스크바와 민스크에서 동시 출판되었다 (1987년 독일어, 1988년 영어 번역본). 러시아 국내에서만 2백만 부 이상 팔리며 독자와 비평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작가는 책을 연극과 기록영화로도 각색하였고 영화 버전은 라이프치히 국제 기록영화 주간에서 ‘은비둘기상’을 수상했다.

두 번째 저서 『마지막 증인』도 소위 ‘이념적 가치의 부재’라는 이유로 출판이 미뤄지다 1985년에 벨라루스에서 빛을 보았다 (1989년 독일어 버전 『Die letzten Zeugen』).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세계2차대전과 스탈린 시대를 겪은 여성과 어린이의 시각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의 고통스러운 경험도 묘사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부가 주도한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운동 덕분에 알렉시예비치는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다수의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완성했고, 영화감독과 협업했으며 유명한 모스크바 연출가 아나톨리 에프로스를 위한 작품 등 다양한 시나리오와 극본을 집필했다.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차기작 『아연 소년들: 아프간 전쟁으로부터 울리는 소비에트 목소리』(1989)에도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작가는 아프간 전쟁 참전군과 ‘아연 소년들’이라 불린 전사자(이들의 유해는 아연 관에 담겨 돌아왔다)의 어머니와 5백 건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책은 10년 간 지속되었던 아프간 전쟁을 비신화하는 데 기여했고, 이로 인해 알렉시예비치는 1992년부터 여러 차례 민스크 법정에 섰지만 유죄 판결은 받지 않았다.

1993년에는 다음 작품 『죽음에 매료되다』를 완성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소련 제국의 종말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의 자살과 자살기도를 분석했다. 그 후에는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핵 참사를 다룬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체르노빌의 목소리』(1997)를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참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이들을 심리적으로 묘사했다.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는 작품을 ‘애도와 고발로 이뤄진 가공할 만한 진혼곡’이라 평가했다. 실제로 핵 ‘사고’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끔찍한 보고서로 이뤄진 이 책은 유사 시 전세계 인류를 위한 지침서가 되었다. 벨라루스 현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센코가 집권한 1994년부터 알렉시예비치의 책은 그녀의 모국에서는 더 이상 출간되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은 학교 교과과정에서도 삭제되었다. 1998년 라이프치히 유럽이해 도서전에서 수상한 알렉시예비치는 상금으로 『체르노빌의 목소리』의 러시아어판을 구입해 벨라루스로 반입했다.

바로 이 시기부터 알렉시예비치에 대한 벨라루스 당국의 공격이 심화되었다. 그녀의 전화가 도청되었고,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으며 CIA와 결탁한다는 혐의까지 받았다. 2000년에는 국제피난처도시네트워크(ICORN)로부터 보호를 제안 받아 프랑스 파리에서 몇 년 동안 거주했다. 그 후에는 스톡홀름과 베를린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작가는 독일학술교류처(DAAD)의 ‘베를린 예술가 프로그램’에 초빙되어 자신의 최신 저서를 집필했다. 2011년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 독재정부의 핍박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민스크로 귀국했다.

『세컨드핸드 타임』은 독일에서 출간된지 일주일 만에 9,000부가 팔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또한 2013년 프랑스 에세이 부문 메디치상을 수상했으며, 문학잡지 [Lire]의 2013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에 앞서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주요 문학상 중 하나인 독일출판협회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소련이 붕괴되고 20년 후 '붉은 인간'이라 명명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작품활동 초기부터 ‘목소리의 소설’이라는 자신만의 문학장르를 개척했다. 이에 따라 그녀의 모든 작품은 세계2차대전 시기부터의 러시아 역사와 함께 진행한다. 독일어로 출판된 그녀의 최신작 『Secondhand-Zeit. Leben auf den Truemmern des Sozialismus』 (2013년 9월)는 최근 몇 년간 사회적 격변을 겪은 이들의 정체성 모색 과정을 반영한다. 매 작품마다 많은 인터뷰를 통해 우선 전반적인 그림을 그리고, 그 후에는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각 개인에게서 얼마나 많은 인간성을 찾을 수 있고 그 개인 속의 인간성을 보호’하는 작업을 한다. 정서적 역사에 대한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적 연대기를 접한 많은 이들은 그녀를 구 소련 국가 거주자들의 ‘도의적 기억’이라 칭한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은 35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아울러 다수의 연극, 라디오 드라마, 다큐멘터리의 소재로도 사용된다. 작가는 폴란드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문학보도상(2011)과 독일 도서전 평화상(2013), 2015 노벨문학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다른 상품

역자 : 박은정
조선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게르친 국립사범대학교에서 언어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의 영웅서사시』(공역),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5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752g | 153*224*35mm
ISBN13
9788954645577

책 속으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마치고, 나는 한동안 아이가 가볍게 다쳐서 코피를 흘리는 것조차 눈뜨고 바라볼 수 없었고, 휴가지에 가서는 저 먼 심해에서 잡혀올라온 물고기를 모래사장에 기분좋게 내동댕이치는 어부들을 피해 달아났으며, 생명이 꺼져가는 물고기의 튀어나온 두 눈에 치미는 구역질을 삼켜야 했다. 우리는 저마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여분의 힘이 있기 마련인데, 나는 그 힘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다 써버렸다. 차에 치인 고양이의 비명소리에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고, 비 오는 날 짓밟힌 지렁이만 봐도 얼굴이 홱 돌아갔다. 납작 말라붙은 개구리를 길에서 봤을 때도…… 동물, 새, 물고기 또한 고통의 역사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
- 우리 병사들이 포로로 잡힐 때가 있거든. 그럼 놈들이 우리 병사들 팔다리를 자르고 과다출혈로 죽지 않게만 지혈기로 싸맨 다음 그대로 버려두는 거야. 우리더러 몸통만 데려가라는 거지. 그 병사들은 차라리 죽겠다고 하는 걸 억지로 치료를 받게 해. 하지만 퇴원을 해도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으려고들 하지……

*
- 표적을 똑바로 겨누어 맞히자 사람의 두개골이 산산조각 나는 게 보였어요. 순간, ‘내가 처음 죽인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투가 끝나면 늘 부상당하거나 전사한 병사들이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어요. 하지만 다들 하나같이 아무 말이 없죠…… 시가전차가 나오는 꿈을 꾸곤 해요. 시가전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꿈을요…… 좋아하는 기억이 있어요. 엄마가 피로시키를 구워주던 거요. 집안 가득 달콤한 밀가루 반죽 냄새가 퍼지고……
- 꽤 괜찮은 녀석하고 친하게 지내요…… 그런데 나중에 녀석의 내장이 돌 위에 축 늘어져 있는 걸 보게 되면…… 복수하고 싶어지죠.

*
“나는 영광 따위 필요치 않아. 살아남고 싶을 뿐, 그게 최고의 포상이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또 왜 죽임을 당하는 걸까?” “외다리 사람들, 거대한 새처럼 바닷가에서 외다리로 껑충거리네”

*
나는 구어체가 좋다. 구어체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구어체 안에서는 통사도 억양도 악센트도 다 자유롭게 노닐고 흥겹다. 감정이 정확하게 살아난다. 나는 사건이 아니라 감정의 발자취를 좇는다. 사건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감정의 변화들을 주시한다. 내가 하는 이 일은 어쩌면 역사가의 작업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흔적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좇는 역사가다.

*
과연 이런 사건이 역사의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내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일은 늘 그렇듯 딱 한 가지다. 나는 (책에서 책으로 넘어다니며) 필사적으로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린다. 역사를 사람의 크기로 작게 만드는 일.

*
우리는 그저 살고 싶었어요. 생각하고 말고 할 시간 같은 건 없었어요. 우린 그때 겨우 열여덟에서 스무 살이었는걸요.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는 익숙해졌으면서 내가 죽는 건 두렵더군요. 사람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 봤어요. 마치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 경우엔 시신이 없는 빈 관에 군복을 정식으로 갖춰 넣어서 집으로 보냈어요. 어느 정도 무게를 맞추기 위해 낯선 땅의 흙을 관에 채워서요…… 살고 싶었어요. 거기서만큼 간절히 삶을 원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
그런 환경에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단박에 드러나요. 만약 어떤 사람이 겁쟁이잖아요? 그러면 겁쟁이인 게 바로 드러났어요. 고자질쟁이잖아요? 역시 단번에 고자질쟁이인 게 보였죠. 바람둥이면 모두 그 사람이 바람둥이인 걸 알았고요. 여기선 과연 솔직히 털어놓을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거기서는 “사람을 죽이는 게 마음에 들 수도 있는 거잖아, 살인이 즐거움이 될 수도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어요. 그건 아주 강렬한 감정이죠. 내가 아는 한 부사관이 소련으로 돌아왔는데, 그 사람은 아예 대놓고 그러더라고요. “이제 나는 어떻게 살지? 사람을 죽이고 싶은데?” 그것도 일종의 욕망이겠죠.

*
내 친구들이 죽어 무덤 속에 있어요. 자기들이 이 비열한 전쟁에 속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요. 가끔은 그 친구들이 부럽기도 해요. 그 친구들은 영원히 이 사실을 모를 테니까요. 그리고 앞으로 속을 일도 없고요.

*
사람은 영화에서와는 전혀 다르게 죽어요. 스타니슬랍스키식으로 죽지 않아요. 왜, 영화에선 총탄이 머리에 박히면 양팔을 내저으며 픽 쓰러지잖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머리에 총탄이 박히면 뇌가 터져 공중으로 날아가고, 머리가 터진 사람은 그걸 잡겠다고 달려가죠. 한 500미터는 족히 달려요. 흩어진 뇌의 파편들을 붙잡기도 하고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거죠. 생리적으로 완전히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달리기를 멈추지 않아요. 사람이 고통에 울부짖거나 죽음이 구원이라도 되는 양 죽여달라고 간청하는 걸 듣고 또 지켜보고 있느니 차라리 총으로 쏴버리는 게 더 쉬워요. 그것도 울거나 간청할 힘이 남아 있는 경우에 그렇지만요. 누워서 서서히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는 사람들도 있어요…… 심장이 쿵쿵 세차게 뛰기 시작해요. 비명을 지르고 의료진을 불러대고…… 그러면 가서 맥박을 재보고…… 괜찮다며 진정을 시키죠…… 뇌는 사람이 긴장을 풀고 편안해질 때를 기다려요…… 의사가 침대에서 멀어지기도 전에 소년은 숨을 거둬요.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소년이……
이런 일은 금방 잊히지 않아요……

*
- 어떻게 그런 기억을 안고 살지? 얼마나 힘들까?
- 그래, 나는 사람을 죽였어…… 왜냐하면 살고 싶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는 죽은 이들이 부러워. 죽은 자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잖아……

*
아프간에서 사람을 죽였냐고요? 당연히 죽였죠! 그럼 거기서 우리가 무슨 천사라도 되기를 바라신 겁니까? 천사들이 돌아오기를 기대했느냔 말이에요?

*
밤에 누워서 애원을 해요.
- 아들, 꿈에 나타나렴. 엄마 좀 만나러 와줘.
딱 한 번 꿈속에서 관을 봤어요…… 머리가 놓인 쪽에 작은 창처럼 구멍이 크게 나 있더라고요…… 아들에게 입을 맞추려고 몸을 굽혔죠…… 그런데 그 안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요? 우리 아들이 아니었어요…… 까만, 어떤 남자애가…… 어떤 아프간 소년이 누워 있는데, 우리 사샤를 닮은 거예요…… 처음엔 ‘바로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을 죽였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더군요. 하지만 잠시 후에 다른 생각이 들었죠. ‘이 아이는 죽었잖아. 이 아이도 누군가한테 죽임을 당한 거야.’ 나는 다시 몸을 굽혀 구멍을 통해 입을 맞췄어요…… 그러고는 소스라치며 잠이 깼죠.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지? 이게 무슨 일이지?’

*
아들의 동료들이 무덤을 찾아오곤 하죠…… 그중 한 아이가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어요. “발레리, 나는 피투성이야…… 바로 이 두 손으로 살인을 했으니까. 난 아직도 전
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어. 나는 피투성이야…… 발레리, 이젠 모르겠다. 차라리 전장에서 죽는 게 나은지 아니면 이렇게 살아 있는 게 나은지. 뭐가 더 나을까? 정말 모르겠어……” 알고 싶어요. 이 모든 일에 누가 책임을 지죠? 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 이름은 언급하지 않나요?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알렉시예비치를 재판정에 서게 한 문제작,
그리고 전 세계의 독자들이 무죄를 선고한 걸작!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전쟁에 차출된 소년들,
그리고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안은
어머니들의 절규를 생생히 기록한 대작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죠?
왜 우리 아들이 아연관에 담겨 와야 해요?
밤이면 모든 이들을 저주하다가
아침이 오면 아들 무덤으로 달려가 용서를 빌어요…”

“한때 우리에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벨라루스의 유명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_러시아 시사지 [쿠란타]

“『아연 소년들』로 인해 법정으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출간된 이후 진짜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작가가 ‘아프간 참전 용사들’과 그 어머니들에 대한 사실을 날조하고 왜곡했다는 혐의로 기소당했기 때문이다.”
_벨라루스 청년신문 [치르보나야 즈메나] (406~419쪽)

『아연 소년들』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알렉시예비치를 법정에 서게 한 문제작으로 유명하다. 『아연 소년들』을 출간한 이후, 알렉시예비치는 그간 신화화되고 영웅시되었던 국가의 전쟁에 이의를 제기하고 참전군인들의 명예를 의도적으로 훼손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게 된다. 재판 이후 그는 이 책의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아연 소년들』 재판의 전말과 법정에 선 작가가 감당해야 했던 놀랍고도 모욕적인 과정들, 법정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마지막 장에 낱낱이 기록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4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곳곳을 돌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군과 ‘아연 소년들’이라 불린 전사자(소년병들의 유해가 ‘아연’으로 만들어진 차디찬 관에 담겨 돌아왔기에 붙여진 이름이다)들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500건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년병의 어머니들은 어린 아들을 전쟁에 보낸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되면 아들이 아연관에 담겨 돌아온다’는 소문들 속에 공포에 떨어야 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참전자들과 그들의 어머니를 심도 있게 인터뷰하며,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하고 문학작품을 즐겨 읽으며 여자친구와 어머니를 끔찍이 생각했던 평범하고 어린 소년들을 전쟁이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실제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왜 만 명이 넘는 소년들이 아연관에 담겨 주검으로 돌아와야 했는지를 파헤친다.

전쟁터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일과”인 직장이었다. ‘살인’을 주 업무로 하는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직장에서 소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남을 죽이거나 자신이 죽는 길 둘 중 하나뿐이었다. 설령 육신이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소년병들과 참전 병사들의 영혼은 산산이 부서졌다. 전쟁의 광풍에 휩싸인 아프가니스탄에 울려퍼진 어린 소년들과 어머니들의 절절한 절규는 전쟁이 아이와 여성, 인류의 가장 여리고 보호해야 할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내 책 『아연 소년들』에서는 어머니들의 사연과 기도가 가장 가슴 아픈 페이지들입니다. 어머니들은 전사한 아들들을 위해 기도하지요…… 어머니들의 슬픔과 고통 앞에선 어떤 진실도 무색해집니다.
‘누가 죄인인가?’ 대체 이 영원한 질문을 얼마나 더 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 죄를 지었으며 우리 모두 이 거짓에 참여했습니다. 당신, 나, 그리고 그들. 문제는 다른 곳에, 즉 우리들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택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습니다. ‘쏠 것인가, 쏘지 않을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침묵하지 않을 것인가?’ ‘갈 것인가, 가지 않을 것인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저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다른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서는 거리를 지날 수 없을 때가 많은 이 불완전한 세상에 대해 용서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로서…… 저는 제 책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할 수도, 또 그럴 권리도 없습니다. 진실을 위해서 말이지요!
_‘『아연 소년들』 에 대한 재판’에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진술

“하늘에서, 미리 준비해놓은 수백 개의 아연관들을 보았다.
아연관들은 햇빛을 받아 아름답고도 무섭게 빛났다.”
이것은 인류의 어머니들이 치러낸 전쟁의 기록이다!


“이 전쟁이 누구의 전쟁이었을 것 같아요? 어머니들의 전쟁, 바로 우리 어머니들이 나서서 싸운 전쟁이었어요. 어머니들은 앞으로도 목숨 걸고 싸울 거고요. 우리를 낳아 기르고 우리를 위해 애간장을 태울 거라고요.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도요.”(210~211쪽)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소련 병사들 중 상당수가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던 소년들이었다. 『아연 소년들』은 평범한 소년들이 전쟁터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여러 ‘목소리’들을 통해 보여준다. 어린 나이에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는 끔찍한 경험들을 하면서 죄의식마저 마비된 소년들, 선임들에게 죽도록 구타를 당한 소년들은 전쟁터에서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살아 돌아오더라도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린다. 그들은 악몽과 불면증, 마약 중독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일상생활을 꾸려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전쟁터에서의 기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자살 시도를 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이마저 있었다.

아들은 다른 이들이 그곳에서 한 일을 여기서 했기 때문에 살인자가 됐어요. 똑같은 일을 두고 다른 이들에게는 메달과 훈장까지 수여했으면서…… 도대체 왜 우리 아들만 심판대에 세운 거죠? 아들을 그곳으로 보낸 사람들은요? 살인을 가르친 그 사람들 말이에요! 나는 아들에게 살인을 가르치지 않았다고요…… (쓰러지듯 주저앉아 비명을 지른다.)
아들은 내 주방용 손도끼로 사람을 죽였어요…… 아침에 도끼를 가져다 다시 찬장에 넣어놓았더군요. 마치 스푼이나 포크를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은 것처럼……
나는, 아들이 두 다리 없이 돌아온 그 엄마가 부러워요…… 술에 취해 엄마에게 행패를 부려도요. 온 세상을 미워하고…… 짐승처럼 엄마에게 덤벼들어도요. 그 엄마는 아들에게 매춘부를 직접 구해다줘요. 아들이 미치지 않도록요…… 한번은 그 엄마가 직접 아들을 상대하기도 했어요. 아들이 발코니로 기어가 9층에서 몸을 던지려고 했거든요. (19쪽)

이 전쟁이 소년병들이 대거 차출된 전쟁이었기에,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또한 어머니들의 전쟁이기도 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어머니들은 한시도 마음 편할 날 없이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매일매일 전쟁터로 편지를 보낸다. 아들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빼내오기 위해 고위급 관료에게 무릎을 꿇고, 뇌물을 찔러넣고, 매일 교회에 가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도 바로 어머니다. 아들이 전쟁터에서 전사해도, 살아 돌아와도, 어머니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아들의 무덤가에 살다시피 하거나, 신체적·정신적 불구가 된 아들을 뒷바라지하며 전투를 치르듯 일상생활을 이어나간다.

국가는 없었다

자국민을 전쟁터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국가는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다. 전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2차세계대전 때나 사용했던 무겁고 더운 구식 군복을 지급하고, 유통기한이 몇 년은 지난 통조림이며 구더기가 끓는 식량을 배급해 병사들은 만성 영양부족에 시달리며 이가 빠지기까지 한다. 싸우다 죽는 병사들보다 약과 의료진이 부족해서 죽는 병사들이 속출한다. 유공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약속된 보상 역시 지켜지지 않는다. 무수한 소년들, 어머니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국가는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기만 할 뿐, 국민들을 책임지거나 보호하지 않는다. 언론을 검열하고 감시·통제하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끔 선전하는 것에만 열을 올린다. 『아연 소년들』은 전쟁에서 승전국과 패전국은 존재할 수 있지만, 어느 쪽이든 개개인의 국민들은 국가가 제시하는 이념이나 대의에 희생되어 고통받을 뿐이라는 진실을 조명한다.

나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봐야만 했어요. 그리고 봤고요.
사람들은 이 전쟁이 옳다고 말했어요. 아프간 민족이 봉건주의 체제를 타파하고 훌륭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요. 우리 병사들이 죽어나간다는 사실에 대해선 무슨 이유인지 다들 침묵했고, 우리는 그저 그곳에 전염병이 많아서 그런가보다고만 생각했어요. 말라리아, 장티푸스, 간염 같은 전염병 말이에요.
곧 조금씩 의문이 들더군요. ‘우린 뭐하는 사람들이지?’ 당국은 우리의 이런 의문을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정작 슬리퍼나 파자마는 없는데 정치구호와 선전문구가 적힌 현수막이나 포스터들은 잔뜩 가져와 내다걸기 바빴어요. 포스터 뒤로 우리 병사들의 비쩍 마르고 슬픈 얼굴들이 보였어요. 그 모습을 나는 영원히 못 잊을 거예요……
모든 사람들을 ‘일러바쳐야’ 했죠. 불쌍하게 여겨서는 안 되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마음 때문에 모든 걸 견딜 수 있었죠……
혹시 불에 탄 사람 본 적 있으세요? 못 봤다고요? 얼굴도 없고 눈도 없고 몸도 없어요…… 그건 쭈글쭈글한, 노란 껍데기에 싸인 뭔가 덩어리 같은 거예요…… 이 껍데기 속에서 터져나오는 비명은 비명이 아니에요, 짐승의 울부짖음이지…… (64~67쪽)

작가가 법정에 서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진실… 진실!
세상에 악을 확장시키지 않으면서 악의 한가운데를 통과해 지나가기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만큼이나 참혹하고 처절한 두번째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알렉시예비치가 『아연 소년들』로 인해 치러낸 재판은 법정 공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투쟁’에 가까운 것이었다. 알렉시예비치는 책을 출간하고 3년 뒤, 이 책을 위해 인터뷰했던 일부 아프간 전쟁 참전 군인과 유가족 어머니로부터 돌연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한다. 알렉시예비치는 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몇 번이고 찾아가 인터뷰하고 함께 울었던 이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이 재판에서는 “슬퍼하는 어머니들 등뒤로 떡 벌어진 어깨의 낯익은 형체가 기분 나쁘게 어른거린다.” 언론은 “짐짓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척 시치미를 뗀다. ‘어머니들 등뒤의 장군들이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인터뷰 당시 알렉시예비치에게 부디 자신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던 이가 국가가 아닌 알렉시예비치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고, 작가의 책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집회에서 열심히 발언했던 소년병의 어머니가 갑자기 작가를 ‘악마’로 몰아세운다. 방청석에서는 작가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난무하고, 토막을 내서 죽이겠다는 살해 위협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 저 여자는 백만장자인데다 ‘메르세데스’가 두 대나 있다고요…… 여기저기 해외여행도 다니고……
- 작가는 책 한 권 쓰는 데 이삼 년이 걸리고, 돈도 요즘 트롤리버스 기사의 두 달 치 월급 정도 받는다는데, 당신은 대체 ‘메르세데스’가 어디서 난 겁니까?
- 해외도 자주 다닌다면서요.
- 저 여자는 달러를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더러운 오물을 쏟아붓는 거라고요. 우리 아이들한테요.
- 당신이 직접 군대에서 복무해봤어? 안 했잖아…… 우리 아이들이 거기서 비참하게 죽어갈 때 당신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학 벤치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고.
_『아연 소년들』에 대한 재판(소송사건 경과 일지), 방청석의 목소리들 중에서

알렉시예비치는 법정에 서서 이 모든 목소리들을 듣는다. 문학과 작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한 작가의 인격을 말살하고 그의 작품세계와 가치를 부서뜨리는 이 법정 안의 전쟁터에서 알렉시예비치는 부디 문학전문가에 의한 감정과 소견을 듣게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두 번이나 묵살된다. 언론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수많은 시민들과 전 세계의 작가, 독자들이 항의서한을 보내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1993년 12월 8일, 지친 알렉시예비치가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발언한 최후진술은, 지저분한 마타도어와 중상이 오가고 한 작가의 피를 보기 위해 온갖 사람들이 달려든 이 희대의 재판이 남긴 또하나의 절절한 문학작품이다.

저는 모스크바 백악관에서 총격이 일어나리라고는 마지막 순간까지 믿지 않았던 것처럼 이 재판의 성립 역시 끝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이미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는 상태라, 분노에 찬 냉정한 얼굴들을 마주 대할 힘이 없습니다. 만약 이 자리에 어머니들이 나와 있지 않았다면 저도 이 재판에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저에게 소송을 걸어온 사람들이 어머니들이 아니라 옛 체제라는 걸 잘 알지만 말입니다.

남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장 소중한 장난감인 전쟁을 남자들로부터 무사히 빼내오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신화를…… 태곳적부터 있어온 이 오래고도 오랜 본능을요……
하지만 나는 전쟁을 증오하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삶을 결딴낼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증오합니다.

전쟁은 힘겨운 노동이자 살인행위입니다. 하지만 몇 년씩 세월이 흐르면서 힘겨운 노동은 기억에 남지만 살인행위에 대한 생각은 기억의 끝자락으로 밀려나지요. 이토록 상세한 내용들과 감정들이 정말 머리로 지어낼 수 있는 것들일까요? 제 책 속에 등장하는 그 온갖 끔찍한 일들이요?

어머니들의 등뒤에서 저는 장군들의 견장을 봅니다. 장군들은 영웅 훈장과 갖가지 물건들로 가득 채운 커다란 가방들을 가지고 전쟁터에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들 중 한 분이, 오늘 이곳 법정에 나와 계시기도 한, 그 어머니가 이런 이야길 했습니다. 아연관과 아들이 쓰던 칫솔, 수영복이 든 검은색 작은 여행가방을 돌려받았다고요. 이 어머니에게 남겨진 건 그게 전부였습니다. 아연관과 작은 여행가방, 그게 아들이 전쟁터에서 가져온 전부였던 겁니다. 그렇다면 어머니들은 누구로부터 아들들을 지켜야 할까요? 진실로부터요? 진실은, 아들들이 부상을 당해도 치료할 알코올과 약이 없어서 그대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는 게 진실입니다. 알코올과 약을 죄다 거기 상점들에 팔아버렸는데 있을 턱이 있겠습니까. 진실은, 우리 아이들에게 1950년대에 만들어진 녹슨 통조림을 먹였다는 게 진실이고, 땅에 묻을 때도 대조국전쟁 때의 낡아빠진 군복을 입혀 묻었다는 게 진실입니다. 심지어 그렇게 해서 비용을 절약하기까지 했다지요. 저는 무덤들 옆에서 어머니들에게 이런 말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하게 되는군요……
세계 곳곳에서 총질을 하고 다시 피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들 계십니까? 어떻게 하면 피가 정당화될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들 계신가요? 아니면 찾는 걸 돕고들 계신가요?

저는 이 시대,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쓰고 녹음합니다. 살아 있는 목소리들, 살아 있는 운명들을요. 역사가 되기 전의 목소리와 운명은 아직은 누군가의 고통이고, 누군가의 비명이고, 누군가의 희생이거나 범죄입니다. 저는 자신에게 수없이 묻고 또 묻습니다. ‘그 기운이 우주에 미칠 정도로 악의 규모가 커져버린 이때, 세상에 악을 확장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악의 한가운데를 통과해 지나가지?’(471~477쪽)

저자는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속에서 스러져간 젊은이들을 영웅으로 박제하려는 일체의 시도에 맞서 진실을 지키고자 했다. 전쟁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고통이고 누군가의 비명이며 누군가의 희생이거나 범죄라는 진실을. 그리고 그 가운데 다른 누구보다도 고통받는 존재들은 어린 소년들, 어머니들, 여성들이라는 것을. 세계 유일의 휴전국이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북한의 핵실험, 사드 배치 문제 등 수시로 불어닥치는 전쟁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한국인들에게 『아연 소년들』이 시사하는 전쟁의 잔혹함과 폭력성, 그 속에서 고통받는 개개인들의 목소리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전쟁의 불씨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휴전국’ 한국 사회가 지금, 『아연 소년들』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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