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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불의 신화와 바퀴의 발견 2. 이동속도가 빨라진 인류 3. 이동성의 마법에 걸린 교통정책 4. 자동차로 인한 생활공간의 파괴 5. 인류 진화에 대한 공격: 두뇌와 게놈 6. 자동차 바이러스와 그 재난의 결과 7. 오일피크 이후의 생활: 잘못된 답과 의미 있는 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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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없는 세상은 가능한가?
여준호 (도서3팀)
2011.05.04.
자동차는 인간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개인이 쉽게 차를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차가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차가 없으면 출근은 어떻게 하고, 여행은 어떻게 할까? 두 다리로 걷는 시간보다 차를 타는 시간이 더 많은 현대인에게 차를 이용한 이동은 상식이다. '멀어서 못 간다'라는 말은 서울에서 '차가 막혀 늦었다'는 핑계 만큼이나 어색하고 무의미하다.
예전에 영어 학원을 다닐 때 '왜 면허가 없냐?'는 질문을 받았다. '자동차는 환경오염의 원인이기 때문에 직접 운전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질문한 사람은 '차 없이는 불편할 텐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불편이야 하겠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고, 100% 전기로 움직이는 차가 나온다면 운전할 생각이 있다.'고 했다. (전기차는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동차를 환경오염 측면에서만 필요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동차는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도 인간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자동차 바이러스]를 읽으며 깨달았다. 자동차가 인간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치료 불가능한 바이러스처럼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발달로 인한 대기오염, 소음공해와 같은 환경 파괴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환경오염과 에너지 고갈 문제에 대해 알면서도 자동차 없이는 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바이러스]는 환경 오염을 넘어 자동차가 어떻게 가족 중심의 생활 방식을 사라지게 하고, 지역 경제와 공동체를 파괴 하는지 보여준다. 자동차는 일터와 먼 곳에 사람이 살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회사가 멀어진 만큼 차로 출퇴근 하는 시간도 길어 진다. 길에서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은 여유가 없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 어렵다. 자동차가 우리에게 먼 곳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을 준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실제 늘어난 여유 시간은 없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도 부족한데 이웃과 의미 있는 관계를 갖는 게 가능할까? 자동차의 보급은 집과 직장의 분리뿐만 아니라 주거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게 했다. 자동차 덕분에 싸고 편하게 대형마트를 이용할 수 있지만 대형마트는 지역 경제를 파괴하고 있다. 사람들은 싸고 편하게 쇼핑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대형마트를 이용하지만 먼 곳에 있는 마트까지 가서 주차하고, 넓은 매장을 돌아 다니면서 물건을 사는 게 과연 시간과 비용 대비 효율적인지는 모르겠다. 요즘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주차 시설이 잘 갖춰진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다. 사람은 많이 모여 있지만 소비하기 위해 모인 그곳에서 인간다운 감정의 교류나 대화는 찾아 보기 어렵다. 자동차가 지역 경제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간의 사회 활동 공간을 파괴하고 개개인을 점점 외로운 섬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2011년 11월부터 청소년들의 온라인 게임을 중독을 막기 위해 16세미만의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온라인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셧다운제가 시행된다. [자동차 바이러스]는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 문제 역시 자동차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한참 밖에서 뛰어 놀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을 모두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에너지를 발산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인간에게 끼친 가장 무서운 영향은 사람보다 자동차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동차가 사람 보다 우선인 생활을 당연히 여기고 있다. 좁은 길에서는 차가 빨리 지나 갈 수 있도록 사람이 양보한다. 대형 건물에 사람이 앉아서 쉴 곳이 부족한 건 이해하지만 주차 공간이 부족하면 화를 낸다. 교통신호도 보행자 보다는 자동차 위주다. 심지어 차도는 있지만 인도가 없는 곳도 있다. 인도가 있어도 주차된 자동차 때문에 찻길로 걷는다. 운전하지 않는 사람들도 사람보다 차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이게 과연 정상인가? 자동차가 너무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보니 자동차가 사회적인 관계, 인간의 생활방식, 지역경제, 공공장소를 파괴한다고 생각 하는 게 쉽지는 않다.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수 많은 문제점들이 모두 자동차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산업화의 산물인 자동차가 어떻게 삶의 방식과 사고 방식, 생활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자동차 바이러스]의 문제 제기는 차분히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자동차 바이러스]는 자동차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를 운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꾸자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추진한 청계천 복원 사업을 실례로 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이견이 많은 사안이지만 자동차가 다니던 길을 시민들에게 돌려 줬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저자는 대중교통의 활성화와 함께 주차장을 인간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제거하자고 한다. 주차장을 최소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이나 매일 가는 상점까지 가는 길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 두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편리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주차공간을 없애고 자동차에게 빼앗겼던 공간을 인간에게 돌려 준다면 시민들은 공공장소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것이고, 공공장소에서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공기는 맑아질 것이고 밤에는 자동차 소음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와 상가는 다시 주거 지역과 가까운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너무 꿈 같은 이야기지만 진짜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아닐까? 자동차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겠지만 자동차가 줄어드는 세상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동차를 운전하더라도 약자인 보행자 위주, 사람 위주의 사고방식을 같고 천천히 여유 있게 운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많다는데 운전하는 분들이 총보다 무서운 살인 무기를 만진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런 배려의 마음부터 시작한다면 자동차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들도 점점 줄어 들 것이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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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가 불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면 인간은 자동차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오늘날 연간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와 같이 ‘나중에 생각하는’ 자들이 일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희망과 호기심에 넘쳐 계속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했어야 했다. 에피메테우스와 같은 과학 기술자들은 자신들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p.17 ‘불의 신화와 바퀴의 발견’ 중에서
현행 교통 시스템은 인간의 이동성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이동성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길이가 짧은 길은 모조리 없애 버렸다. 게다가 ‘이동성의 성장’을 관찰할 때도 자동차 이용자만 관찰 대상으로 삼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교통 정책을 책임지는 정치가나 교통 전문가는 자동차 미이용자는 유동적이지 않다고 간주한 것이다. … 오늘날 교통 정책을 책임지는 정치가나 교통 전문가들이 내세우는 이동성의 정의는 ‘목적이 없는 이동성’이다. 정치가들이 무의미한 이동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환경을 침해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어떠한 결과를 얻게 될지 뻔하다. ---p. 74~76 이동성의 마법에 걸린 교통 정책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나치 독재정권 시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실행되는 교통 법규는 나치 독재정권의 비인간적인 법질서를 기본으로 한다. 예를 들어 현행 주차법은 제3제국에서 제국 주차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제3제국이 제국 주차법을 실시한 이유는 모터리제이션을 촉진시켜 원활하게 전쟁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제국 주차법에 따라 모든 가정과 일자리에 주차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제정된 도로 건설법도 제국 주차법을 토대로 집을 지을 때 주차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집을 지을 때 아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이와 같은 법 조항은 드러내놓고 생활공간을 자동차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자동차 중심 사회가 낳은 폐해는 우리 후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되었다. ---p. 156~157 자동차로 인한 생활공간의 파괴 자동차는 게놈이 두뇌에 대항해 극단적인 방법으로 두뇌를 굴복시킬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도구다. 자동차와 게놈은 인간의 두뇌를 교묘하게 조정한다. 또한 자동차를 위한 논리는 모든 학문 분야와 산업 분야, 법과 사회의 가치 체계를 변화시켰다. 자동차를 위해 마련된 금융, 법, 사회 구조는 자동차 사회의 DNA를 만들었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지는 않지만 자동차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화석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신기술이 나오면 곧바로 표준화되고, 주차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역사적인 건물을 허문다. 자동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소음을 내지만 자동차에 밀린 인간은 창문을 닫아 놓고 인공적인 방법으로 환기를 시키며 살아간다. 심지어 인간의 두뇌는 다른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방법을 생각할 만큼 자동차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특히 교통 전문가들은 지난 수십 년간 자동차의 조종을 받으며 인류의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켰다. ---p. 187 인류 진화에 대한 공격: 두뇌와 게놈 50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데 마을과 도시의 공공장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자동차가 공공장소를 장악하고 난 후부터 공공장소는 사회적인 기능을 상실했다. 공공장소는 과거에 여러 사회계층이 모이는 장소였다. 그러나 자동차가 등장한 이래 빈부의 격차,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공동체 구성원을 연결시켜 주던 사회적 네트워크가 붕괴되었다. 지역 공동체가 견고해야만 더 큰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 운전자 수가 증가하면서 사회적인 관계는 점점 붕괴되어 간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도, 가까이 하려 하지도 않는다. 반면 보행자들은 앞사람을 밀치거나 옆으로 비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자동차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난 후부터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려 하지 않는다. 외부와 단절된 채 자동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보행자보다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p. 222~223 자동차 바이러스와 그 재난의 결과 자동차 운행에 필요한 비용을 인상해 자동차 교통을 감소하려는 노력은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 장기적인 효과를 얻으려면 자동차 교통이 감소하지 않는 실질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자동차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지 않고 세금 인상으로 자동차 교통량을 줄인다는 것은 너무나 안이한 생각이다. 현대인들은 이미 자동차 교통이 친 덫에 걸려 있어 쉽게 자동차에서 해방되지 못한다.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서울 시장은 한 발짝 앞서 갔다. 하루에도 22만 대 이상의 자동차가 지나가는 서울 도심도로는 1950년대에 건설되었다. 서울시 도심 도로는 평균수명 40년을 넘어 도로를 새로 깔아야 했다. 도로 재건 계획을 추진했을 때 마침 오일피크에 대한 불안감으로 화석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시장은 도로를 재건하기보다는 오히려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상인들은 서울 시장의 계획에 거세게 반발했지만 결국 4,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계획안이 통과되었다. 자동차 도로가 사라진 대신 버스노선 16개가 신설되었고 공공장소는 시민들의 생활공간으로 다시 부활했다. 자동차 도로 밑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개천은 다시 하늘을 보게 되었다. 서울 시장의 도심 건설 계획으로 공기가 몰라보게 맑아졌고 개천 양쪽에 심어놓은 나무와 꽃들 덕분에 평균온도도 하락했다. 지역 상인들도 도로를 제거한 것이 옳았다고 생각했고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매상도 증가했다. 도심 재개발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끈 서울 시장은 2008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pp. 256~257 오일피크 이후의 생활: 잘못된 답과 의미 있는 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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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성을 조종하는 자동차 바이러스,
당신의 뇌는 이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운가? 자동차, 역사상 가장 비효율적인 이동 수단 인간이 멀쩡한 두 다리를 쓰지 않고 자동차에 의지하게 된 것은 자동차 주행이 인간의 보행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바퀴는 편리하지만 비효율적이다. 회전을 위한 충분한 면적의 평평한 바닥이 있어야 하고, 바퀴 달린 이동 도구를 움직이려면 동력 에너지가 필요하다. 전진과 후진만 가능하며 스스로 위험에 대처하지도 못한다. 인간과 동물의 다리는 이보다 훨씬 월등하다. 도로가 없어도 다닐 수 있고 위험을 인식하고 재빨리 대처한다. 그럼에도 자동차는 인간에게 의족과 같은 존재로 쓰이고 있다. 보행보다 더 빠르고 더 멀리 인간을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기계공학은 인간의 감각 기관이 따라잡을 수 없을 지경까지 자동차의 속도를 높이기에 이르렀고, 인간은 이를 제어하지 못해 끔찍한 교통사고의 위험을 감당하면서까지 이동성에 대한 집착만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인간에게 이동은 오히려 형벌이다 그러나 태초에 ‘이동’은 형벌을 의미했다. 신의 뜻을 거역한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을 떠나야 했고 카인은 아벨을 죽인 벌로 고향에서 쫓겨나 떠돌아야 했다.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 인간이 열렬히 반기는 이동성이지만 구약성서에서 이동은 곧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을 의미한다. 따져보면 자동차가 현대인들에게 가져다준 이동성도 은총이라기보단 저주에 가깝다. 자동차를 위한 교통 시스템은 사회 전반의 변화와 발전에 악영향을 끼쳤다. 중세도시가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도보로 이동 가능한 짧은 길과 지역 내의 유기적 연결망 덕분이었다. 개인과 공동체의 이익이 조화를 이뤘고, 공공장소는 모두가 평등하게 사용하는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넓은 도로가 생기고 자동차가 그곳을 질주하면서 지역의 특성과 다양성은 파괴되었다. 이동성이 확보되면서 주거지와 일터가 분리되는 등 인간의 생활공간은 질보다 기능적 측면이 우선시되었다. 여가, 일, 만남, 장보기 등이 함께 이루어지던 공공장소에는 이제 자동차만 존재할 뿐이다. 자동차가 갖는 익명성처럼 인간과 기업은 유대관계보다 이익만을 내세우게 되었고 그 결과 도시에는 빈민과 실업자가 넘쳐나고 있다. 지역사회 복지 향상에 기여하던 소규모 기업들은, 도로를 타고 이곳에 파고든 거대한 다국적 기업에 순식간에 무너졌고, 지역민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대형 마트에 차를 몰고 가 지역에서 생산된 다양한 먹거리 대신 대량생산된 식재료를 구입한다. 자동차와 도로로 인해 인간은 다양한 삶의 기회를 제한당한 채 똑같은 모습으로 살게 되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여전히 이를 성장 혹은 진화로 인식하며 점점 퇴화된 삶을 살고 있다. 권력층의 기반을 공고히 한 교통 시스템 이처럼 자동차는 인간사회의 전통적 관계를 단절시키고 있지만, 권력층에게는 그들의 기반을 공고히 해주는 유용한 도구로 존재해 왔다. 멀게는 히틀러의 나치 정권부터 가깝게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근한 세계적 자동차 기업들까지,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은 공공을 희생시켜 얻은 교통 시스템의 발달로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오늘날 전 세계 국가에서 실행되는 자동차 법규는 나치 정권의 비인간적인 법질서를 기본으로 한다. 히틀러는 전쟁 물자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최초로 교통 법규를 만들었다. 이어 ‘자동차 왕국’ 미국은 일본 등 2차 대전 패전국에 자동차 중심의 교통 시스템을 정착시켰고 지금은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에 자동차를 수출하기 위해 정책을 펼치고 있다. 나치 정권에 전차 등을 지원했던 포드 사와, 제너럴모터스, 스탠더드오일, 파이어스톤 등의 자동차 관련 업계는 대중교통을 운영하는 공기업을 매입하여 노선을 폐쇄하는 방식으로 도시교통을 전차 중심에서 자동차 중심으로 바꿔나갔다. 또한 이들의 로비를 받은 각국의 정부 역시 자동차 교통을 적극 촉진시켜 권력층 위주의 경제구조를 견고히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자동차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 자동차를 통해 공공의 안녕을 위협하는 또 다른 세력은 도시 계획과 행정에 영향을 끼치는 공학자, 경제학자, 법학자 등 소위 ‘교통 정책가’라 불리는 이들이다. 빈 공과대학의 교통계획과 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자동차 바이러스’에 두뇌가 감염되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인간의 뇌에 깊이 뿌리내려 자동차를 가로막는 모든 요소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 무서운 바이러스는 인간의 정보 평가 처리 능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교통 정책가들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보다 자동차의 자유와 편이를 중시하며 자동차 중심의 세계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저자는 교통 전문가들 사이에서 출세와는 거리가 멀다고 알려진 대중교통 분야와 보행자 안전을 전공으로 택해 스스로 비주류 학파의 길을 걸으며 이들의 오판을 객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도시를 건설하고 도로를 지을 때, 교통 정책가들은 자동차 이용자만을 관찰 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에게 보행자는 ‘교통사고의 원료’일 뿐이고, 보행자 도로란 자동차를 위한 넓은 도로를 짓고 남는 공간에 지어지는 좁은 도로일 뿐이다. 교통은 범위가 넓고 매우 복잡한 시스템이다. 시스템의 최고값은 이를 이루는 각각을 더해 얻어진다기보단 시스템 전체에 유리한 결정을 할 때 얻어진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이 파괴되었을 경우 그 원인을 파악하기란 대단히 힘들다. 그러나 자동차 바이러스에 감염된 현대의 교통 정책가들은 매우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인 사고로 교통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들에게 교통문제는 자동차의 속도를 높이고 도로를 늘리면 해결될 일이며, 교통사고는 자동차 운전자나 희생자의 책임, 혹은 자동차의 기술적 결함 탓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봐왔듯, 더 좋은 자동차, 더 많은 도로, 그리고 운전자 교육 강화가 교통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문제는 시스템 자체, 혹은 그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의 뇌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자동차 문화를 위하여 교통사고, 배기가스, 소음공해 등 익히 알려진 자동차의 폐해 외에도 자동차 바이러스의 사회적?문화적?구조적 악영향은 앞서 보듯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곳까지 병들게 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도 똑같이 재현되는 중이다. 독일의 역사에서 고속도로와 히틀러가 맞물려 있듯이 고속도로는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상징물이 되었다. 한국의 경제력과 국방력은 자동차 산업의 발달과 함께 팽창되었으며, 부동산 거품은 자가용의 교통량과 함께 더 크게 부풀고 있다. 대가족 제도는 이미 사라졌고, 자동차 문화와 함께 아파트의 기능적 주거환경이 정착되었다. 저자의 비판적 결론은 뚜렷하다. 자동차가 가져온 끔찍한 난제들을 직시하고, 지난 200년의 열광적인 자동차 역사와는 다른 생산적인 자동차 문화를 전개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없어도 좋던 시절에서 자동차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자동차가 제공하는 일상적 편리함을 뿌리치고 이에 맞서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회를 숙주 삼아 자동차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가는 자동차 바이러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추방하여 인간다운 삶의 현장을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되찾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 치여 죽는 양서류처럼 인간도 언젠가 자동차에 자리를 내주고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