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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하나님을 감동시킨 일천번제 예배자 chapter 01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예배드린다 chapter 02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예배드린다 chapter 03 예배자는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체험한다 chapter 04 예배자는 주도면밀한 사명의 실천자가 된다 2부│일천번제 예배자의 전폭적인 헌신 chapter 05 왕 같은 제사장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 chapter 06 예배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chapter 07 성공이 아니라 성결에 진력한다 chapter 08 세상을 뒤집어엎는 영적 미사일 발사대와 같은 삶을 산다 3부│일천번제 예배자의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기도 chapter 09 자신을 부인하고 보혈을 붙잡는 기도를 드린다 chapter 10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있는 기도를 드린다 chapter 11 기도 후에 임마누엘의 삶을 산다 chapter 12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를 드린다 4부│일천번제 예배자에게 쏟아붓는 축복 chapter 13 사명에 충성할 때에 덤의 축복이 임한다 chapter 14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자에게 축복이 배가된다 chapter 15 열린 마음으로 나누는 자가 될 때에 창성하게 된다 5부│만대의 모든 예배자에 대한 엄중한 경고 chapter 16 예배를 허무는 이방의 작은 여우를 조심하라 chapter 17 예배가 무너지면 인생이 무너진다 |
田炳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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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_ 왕상 3:4,5
The king went to Gibeon to offer sacrifices, for that was the most important high place, and Solomon offered a thousand burnt offerings on that altar. At Gibeon the LORD appeared to Solomon during the night in a dream, and God said, "Ask for whatever you want me to give you." _ 1 Kings 3:4,5 주여, 메마른 심령에 예배의 부흥을 주소서! 우리 주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다(마 22:37).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대충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우리의 전폭을 드려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공적(公的)으로 표시하는 예배에도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걸어야 한다. 예배자 솔로몬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자신의 전폭을 드렸다. 천 마리의 제물을 번제로 드리는 일천번제를 드렸다. 솔로몬은 자신의 온 정성,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처소를 짓는 일에 최고의 것, 최상의 것을 드리며 헌신했다. 그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예배하였다. 그렇지만 ‘일천번제’라고 해서 예배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쪽으로 기울어 많은 예배 횟수가 신통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제물의 피흘림이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자신의 죄를 대속제물의 피로 속죄하는 가운데서 드리는 예배였음을 인식해야 한다. 신약적인 표현에 의하면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그리스도의 보혈 중심의 예배’이다. 정성만 많이 드리는 예배에 그친 것이 아니라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는 예배였다는 것이다. 솔로몬이 자신의 전폭을 주님의 보혈로 감싸서 드릴 때에 그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와 하나님의 온갖 축복을 체험했다(왕상 3:4-15 ; 8:10,11).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번폐(煩弊)스럽게 여기고 있지 않는가(말 1:13 참조)?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이 결여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는가? 솔로몬은 자신의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우리는 우리의 찌꺼기들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지 않는가? 찌꺼기 시간, 찌꺼기 헌금, 찌꺼기 사람들을 드리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예배당과 첨단의 시설과 인간의 기예(技藝)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가? 이런 결과로 우리의 제단에는 하나님의 불의 응답이 없고 날조된 흥분이 난무하는 것은 아닌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를 회복해야 될 때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임하는 예배 요한계시록에서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재림, 최후의 심판, 말세의 징조가 아니다. 그것은 예배의 중요성이다. 요한계시록은 온통 예배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처음부터 예배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인물도 단적으로 ‘예배드리는 자’와 ‘예배드리지 않는 자’로 대별된다.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에서는 승승장구하던 음녀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에 대한 내용이 소개된다. 이때 마귀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무기이자 원동력이 되었던 것도 예배임을 강조한다. 왜 멸망했는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만 의지하며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는 인본주의와 세속주의 역시 망한다. 반면에 예배는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임하도록 하는 통로이다. 최후의 승리는 교회에 있다. 최후의 승리가 교회에 있는 까닭은 교회에 예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만큼은 반드시 굳건히 붙들어야 한다. 그러면 그토록 많은 교회에서 그토록 많은 예배를 드리는데, 또 자기 나름대로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데 왜 이 땅은 변화되지 않는가? 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시간,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지는 시간인데, 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가? 예배에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무조건 광적으로 제사를 좋아하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너무나 좋아하신 나머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상태로 드리든 다 기뻐하신다고 생각했다. 멍청히 졸면서 드리는 예배든지, 딴 생각으로 가득 찬 상태로 드리는 예배든지 하나님이 받으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는 다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聖會)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1-13).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조건 첫째, 예배자 자신이 준비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창 4:3-5). 제물과 형식보다 앞서는 것이 있다. 아벨 자신과 가인 자신이다. 즉, 예배자가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갱신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참된 예배의 갱신이란 예배 형식의 변화, 예배 시간의 변화가 아니라 ‘예배자의 갱신’이 우선이다. 복음서에 언급된 세리의 모습을 보라.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 18:13). 하나님은 세리의 예배를 받으셨다. 예배자는 예수님의 보혈로 덮여야 한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아담이나 아벨에게 피로써 제사 드리는 법을 일러주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알 수 없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도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로 인한 수치심 때문에 하나님 앞에 그냥 나서지 못한다. 가죽옷으로 덮든지, 피로 덮든지 무엇인가로 덮어야 한다! 아벨은 어린양의 피로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갔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요,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아간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19,20). ‘아, 진지해지고 싶다. 의지하고 싶다.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다. 무엇인가에 절하고 싶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종교성이다. 인간은 이런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종교성만 가지고 나아가서는 안 된다. 종교성이 곧 믿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고 그 피로 자신을 덮는 것이다. 가인은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보다 단지 인간적인 종교성만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대형 불상을 제작하는 일이나 절의 기와에까지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나는 힘 있는 사람이니까 큰 절을 짓는다는 것 또한 종교성의 발로이다. 피 없는 깨끗한 예배, 세련된 예배, 절제 있는 예배를 추구한 것은 가인의 종교성의 발로였다. 반면 아벨의 예배는 피비린내 나는 예배, 잔인한 예배, 섬뜩한 예배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받으셨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예배드리는 사람도 알 수 있다. 아벨도 알았고, 가인도 알았다. 예배드리는 순간, 하나님께서 찾아와 만나주시며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동으로 다가오시기 때문이다. 예배드릴 때, 자기 외에 다른 요소가 개입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단히 진지해지고 두려워하게 된다. 자신의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가인도 하나님이 자신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에게는 거절의 체험이었다. 인간이 연출한 예배는 실패한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예배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둘째, 참된 예배는 변화를 수반한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8). 예배는 하나님의 수술 시간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예배는 우리의 속사람에게 수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따라서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는 변화를 알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배를 통해 말씀이 옳고, 내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참된 예배를 맛본 삭개오는 변화되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 교회성장학자 칼 조지는 “미래의 교회는 메룅 교회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메타’는 ‘변화’를 의미하는 헬라어이다. 말씀대로 변화되는 교회,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교회, 회개하는 교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 있는 예배를 위해 필요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변화를 싫어하면 성장하지 못한다. 동생을 죽이는 가인의 범죄가 예배 이후에 있었음을 잊지 말라. 예배를 통해서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살인자가 되고 만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예배드리고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다. 니체는 목사의 아들이었다. 하나님 예배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변화되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심지어 “신은 죽었다!”라고 외쳤다. 예배드리고도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셋째, 참된 예배는 기쁨을 안겨준다. 예배는 참된 기쁨의 원천이 된다. 가장 능력 있게 일하는 사역자는 기쁘게 일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려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남미에서 능력 있게 사역하시는 분에게 난관을 이겨나가는 힘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사역해야 한다는 점을 열 번 이상 강조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면 힘이 생긴다. 능력이란 무슨 일이든 기쁨으로 하는 것이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여 7년을 수일같이 보낼 수 있었다. 예배는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예배는 찬송하고 증거하게 한다. 참된 예배는 찬송으로 드러난다. 찬송이 살아나지 않은 채 부흥하는 교회는 없다. 최근 찬송의 역사가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곳은 중국교회이다. 중국교회는 시간적인 제약 없이 그들의 마음이 드려질 때까지 찬송한다. 1시간도 좋고, 2시간도 좋고 반복해서 찬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 기쁨과 능력이 충만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줄곧 성경에서 참된 예배자의 모델을 찾기 위해 힘썼다. 참된 예배를 드림으로써 믿음의 전성기를 열고, 능력을 받았던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다. 내가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은 모든 사람이 예배자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예배자 중 일천번제 예배자 솔로몬과 그의 예배에 대한 것이다. 전심전력을 다해 예배드린 일천번제의 예배자 솔로몬을 통해서 예배자가 얼마만큼 강해질 수 있는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크게 드러나게 되는지 깨닫는 축복을 누리기 바란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평생 즐거워하는 예배 인생에 전폭과 생명을 걸라. 예배 최우선순위를 회복하라. 성령과 진리의 예배(요 4:24)로 회귀하라. 진리의 말씀에 성령의 불이 떨어지는 ‘예배 대부흥’을 열망하라. 오늘 당신도 ‘하늘을 감동시키는 당신의 일천번제 예배’로 하늘문을 열어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