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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존 쿳시가 다시 쓴 '로빈슨 크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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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Maxwell Coetzee,존 쿳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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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존 쿳시가 다시 쓴《로빈슨 크루소》
200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존 쿳시가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쓴《로빈슨 크루소》 이야기,《포Foe》가 책세상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선입견을 모두 뒤집어 놓는 기발한 작품이다.《포》에는 우리가 알고 있던 용감하고 정의로운 크루소는 없다. 비열하고 아집에 가득 찬데다가 섬에서 탈출하려고도 하지 않는 늙은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철저하게 남성의 이야기였던《로빈슨 크루소》와는 달리《포》의 화자는 수전 바턴이라는 여성이다. 로빈슨 크루소와 프라이데이,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의 실제 작가 다니엘 디포는 쿳시에 의해 여성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된다. 쿳시는 서구의 정전을 패러디하는 탈식민주의 문학의 대표적 기법인‘되받아 쓰기(write back)’기법으로 소설과 실제 경험담 사이의 간극을 살펴보면서 소설의 의미와 구상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 어떤 것이 진짜일까?” 2. 남성의 섬에 여성이 침입한다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는 본명이 다니엘 포(Foe)인 다니엘 디포(Defoe)이다. 불어의‘de’는 영어의‘of’에 해당하는 것이자 영어에서는 부정(not)의 의미도 담고 있다. 따라서 쿳시는《포》에서 디포의 원래 모습 혹은 한층 적나라한 모습을 그리려 한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로빈슨 크루소의 섬에 한 여자가 표류하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크루소에 대한 모든 신화를 재점검한다. 우선 쿳시는 바턴(일반적으로는‘수전’이라고 불러야 하지만‘바턴’으로 부르자. 남자는‘크루소’처럼 성을, 여자는 이름을 부르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이라는 여성의 눈을 통해 크루소와 프라이데이를 재해석한다. 바턴이 보는 크루소는 용감하지도 성실하지도 독실하지도 않다. 다만 힘없이 늙어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밭을 갈고, 잘 씻지도 않고 잘 때는 이를 갈며 일기도 쓰지 않고, 심지어는 섬에서 탈출하려 하지도 않는다. 프라이데이는《로빈슨 크루소》에서와는 달리 혀가 잘려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어차피 프라이데이는 말없이 복종만을 강요당하는 존재였으니, 혀가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는 자유에 대한 의지도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에게는 혀가 없으므로 자신을 방어할 수도, 자신의 욕망을 나타낼 수도 없다.《포》는 그동안 항상 억압받는 존재, 즉 수전 바턴으로 대표되는 여성과 문화적?인종적 타자인 프라이데이에게 어떻게 목소리를 부여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를 여성의 목소리로 이야기함으로써 남성적 목소리가 구축한 세계가 얼마나 권위적이고 부조리한지 말하고 있다. 3. 어느 것이 진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일까 유괴된 딸을 찾아 브라질의 바이아로 간 수전 바턴은 딸을 찾지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를 탄다. 그러나 선원들의 폭동으로 바다에 내던져져 표류하던 그녀는 크루소가 살고 있는 섬(고전 속에 등장하는 로빈슨 크루소의 섬)으로 떠내려온다. 그 섬에는 15년 동안 섬을 지배하며 살아온 크루소와 혀가 잘려 말을 못하는 흑인 노예 프라이데이가 있었다. 크루소는 성급하고 거만한데다가 섬에서 탈출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것에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바턴은 그의 삶에 간섭하고 변화할 것을 다그치나 번번이 거부당한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영국 상선 오버트 호에 의해 구조되기 전까지 1년 넘게 그 황폐한 섬에서 살아가게 된다. 마침내 그들은 구조되어 영국으로 돌아오지만 크루소는 돌아오는 배 안에서 숨을 거둔다. 바턴은 프라이데이를 포(《로빈슨 크루소》의 실제 작가 다니엘 디포)에게 데려간다. 포는 그들의 모험을 소설로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겪은 그대로의 현실은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과장, 상상과 허구적 사건(식인종, 총, 크루소가 만든 배)을 도입하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이야기에 진실만을 담길 원하는 바턴과 소설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포 사이에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크루소의 섬은 어떠했는가?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꾸며낸 이야기일까? 4. 말은 현실을 반영하지만은 않는다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장과 2장은 바턴이 포에게 무인도에서의 생활을 편지로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3장에서는 그녀가 포를 찾아가 직접 대화를 나눈다. 4장은 이러한 사실적 기술에서 벗어나 누가 이야기를 하는지, 혹은 작가가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는 환상적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야기의 무게 중심은 섬에서의 경험과 이에 관련된 인물들의 삶을 어떻게 기술하느냐, 혹은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근본적 차원에서 우리의 경험, 몸, 그리고 언어가 어떤 것이고 상호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소설이야말로 표피적 진실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모든 인물과 사건을 평등한 눈으로 대변할 수 있는 자유로운 형식이라는 인식은 바턴과 프라이데이의 등장으로 의심될 수밖에 없다. 바턴은 혀가 없는 프라이데이의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지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포는 오히려 이야기를 흥미롭게 하기 위해 바턴의 친딸을 꾸며내기도 한다. 작가는 이야기를 위해 현실을 왜곡하고, 이야기가 오히려 현실을 만들어가게끔 하기도 하는 것이다. 즉 이제껏 생각해온 바와 같이 현실의 반영이 말이 아니라, 말이 현실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