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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던 《마저리 켐프 서》의 단 하나뿐인 판본, 40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다!
“《아서왕의 죽음》 판본을 윈체스터에서 발견한 것보다 더 중요하고 예상치 못했던 사건!” ― 1936년 9월 30일자 「타임스」 학계를 열광시킨 400년 만의 발견 #1. 종교가 모든 것의 위에 군림하던 암흑기 중세. 흑사병과 종교전쟁으로 얼룩진 이 시기에, 한 60대 여성이 자신의 생애와 신앙에 대하여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하고 있었다. 학식은커녕 글을 읽을 줄도 몰랐던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적은 건, 놀랍게도 그녀보다 훨씬 지위가 높은 남성 신부였다. 여러 해에 걸친 그녀의 이야기는 영국 최초의 자서전으로 탄생했다. #2. 16세기 종교분쟁 시기. 수도원들이 파괴되면서 단 한 권뿐이던 그녀의 책은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400여 년 동안 마저리 켐프의 존재와 그녀가 쓴 영적 자서전이 있다는 사실만 전설처럼 떠돌았다. #3. 1934년, 영국 랭커셔. 윌리엄 버틀러 보던 대령은 오랫동안 보관해오던 한 권의 책을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으로 가져갔다. 나중에 이 판본이 바로 ‘잃어버린 마저리 켐프의 자서전’이었음이 판명되었다. 이 책 《마저리 켐프 서》는 신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어느 중세 여인의 영적 연대기이다. 400년 간 자취를 감췄던 《마저리 켐프 서》의 오리지널 판본이 1934년 우연히 발견되었을 때, 학계와 종교계는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 최초의 자서전이자 신앙 간증서로서, 또한 중세 여인의 삶을 충실히 기록한 미시사 텍스트로서, 페미니즘과 신비주의를 연구하는 데 핵심적인 자료로서 《마저리 켐프 서》의 가치는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저리 켐프의 기막힌 삶, 그리고 신앙 그렇다면 과연 마저리 켐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마저리 켐프는 1373년경 영국의 중부 린Lynn이란 도시에서 다섯 차례나 시장을 지낸 존 브룬햄의 딸로 태어났다. 스무 살경에 존 켐프와 결혼한 그녀는 첫 아이를 출산한 후,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겪어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자해를 하는 등 6개월 간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다. 어느 날 “딸아, 왜 너는 나를 버렸느냐? 나는 널 결코 버리지 않았노라.”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다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후 허영심에 빠져 남들보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양조장과 방앗간을 운영하였다. 이 두 건의 사업에서 모두 실패하고서야 마저리는 자신의 잘못된 삶을 뉘우치고 스스로 혹독한 고행에 나섰다. 정절의 삶을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남편을 몇 년 동안 설득하여 성관계를 갖지 않으려 하였고, 말총 속옷을 입어 자신의 육체를 구속하기도 했다. 그후 그녀는 스스로를 계시받은 신실한 여인이라 공표하고 영국 안을 여행하다, 1411년경 성지순례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여러 해 동안 예루살렘과 로마, 산티아고 등 곳곳의 성지를 순례하였는데, 1413년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큰 고함을 지르며 우는 습관을 얻었다. “우리 주님의 고통을 본 그녀는 너무나도 큰 연민과 고통을 느껴서 울고 소리치는 일을 멈출 수 없었어요. 그 때문에 거의 죽을 지경이었는데도 말이죠. 그리고 이것이 그녀가 명상하면서 낸 첫 고함이었어요. 이러한 고함은 누가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이 순간 이후로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었어요.”―본문 132쪽 통제할 수 없이 시시때때로 터져나오는 고함과 울음 때문에 그녀는 이후 거의 평생 동안 고초를 겪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당시 교단을 위협하던 롤라드로 오해받아 체포되거나 교회에서 여러 차례 심문을 당했으며, 갖가지 병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늘 그녀를 괄시하고 적대시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마저리의 삶은 그야말로 모험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끈질기고 놀라운 신앙심으로, 거의 10년에 걸쳐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마저리 켐프가 이 책 1권의 초고를 구술한 시기는 1420년대 말로 추정된다. 1430년대 중반 이후 생애 마지막 시간을 쏟아부어 이전에 구술한 자서전을 한 신부에게 의뢰하여 수정, 보완하는 작업에 몰두했던 그녀는 1439년 66세의 나이로(추정) 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한 여성 명상가의 독자적인 여정 신비로운 영성 체험을 기술하는 명상가와 그들의 책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중세 후기. 그중에서도《마저리 켐프 서》는 무척 독특하고 파격적인 사례였다. 중세의 명상가들 중 대부분은 수도사로, 특히 여성 명상가의 경우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완전히 끊고 은둔하며 명상에만 몰두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마저리와 동시대에 살았던 노리치의 줄리언이었는데, 줄리언이 속세를 떠나 교룈의 제도 속에서 활동한 데 반해 마저리는 가정주부라는 세속적 신분을 끝까지 유지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결혼한 몸으로 처녀를 상징하는 흰옷을 입고, 남편도 없이 홀로 돌아다니며, 공공장소에서 크게 소리내어 울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영적 체험에 관해 거리낌없이 말하는 등 마저리의 기행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남성 성직자들과도 자유롭게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던 그녀의 모습이 당대 사람들에게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덕분에 수없이 오해를 사고 이단으로 몰리는 수모를 감내해야 했지만, 중세 여인에게 할당되었던 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벗어나 신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길 주저하지 않았던 마저리 켐프는 위대한 개혁가에 다름 아니었다. 《마저리 켐프 서》의 가치 《마저리 켐프 서》는 중세시기 절대 약자였던 여성, 더군다나 학식이 전혀 없는 문맹 여성의 생생한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희귀한 텍스트이다. 일생에 걸친 마저리 켐프의 여정으로부터 현재의 독자들은 그녀의 영성과 신비체험뿐 아니라, 교회와 남성 성직자들의 권위 속에서 여성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종교적 체험에 내재된 정치성 등 중세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국면들을 엿볼 수 있다. 씌어진 지 수백 년이 지난 책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은 《마저리 켐프 서》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성체험서, 신앙간증서로 꼽길 주저하지 않는다. 종교학과 역사학뿐만이 아니다. 일반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마저리의 정신세계는 정신분석학에, 부인의 몸으로 중세시기 세계 각지를 여행한 그녀의 파격적인 삶은 페미니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펭귄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출판사들이 앞다투어 이 책을 현대영어로 번역하고, 각종 학술 ? 종교서 시리즈 목록에 올리는 건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번역된 이 책은 《마저리 켐프 서》 중세 영어본을 저본으로 삼아 2권의 현대영어 번역본을 참조하여 번역한 것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인 이화여대 정덕애 교수가 쓴 해설과 연표, 용어 해설, 관련 도판을 수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