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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아흐메스가 자고 있는 방에 투트모세의 몸을 빌린 아몬 라가 도착하자 은과 흑단으로 만들어진 이중문이 저절로 열렸다가 그가 지나간 다음 스르르 닫혔다.
방에는 갓 결혼한 아름다운 왕비가 사자의 모양을 새긴 황금 침대 위에 한 송이의 꽃처럼 누워 있었다. 순간 그녀가 누워 있는 침대가 허공에 붕 떴다. 눈을 뜬 아흐메스 왕비는 밝은 빛이 부드럽게 자신을 애무하는 걸 느꼈다. 이때 먼 곳에서 메아리치는 듯한 목소리로 투트모세가 말했다. "기뻐하라, 행운의 여인이여. 너는 아몬 라의 딸을 잉태하게 될 것이니라. 너의 딸은 이집트의 두 땅을 다스리는 것은 물론 온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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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 대학 박사가 쓴 청소년을 위한 이집트 신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집트 카이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정규영 교수는 『살아 있는 오천 년의 문명과 신비 이집트』를 저술한바 국내의 몇 안 되는 이집트 문명의 권위자이다. 요즈음 이집트 문명에 관한 서적들이 출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몇몇 여행 서적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번역서들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에 비춰 볼 때 이미 이집트 문명을 폭넓게 다룬 인문서를 낸 바 있는 정규영 교수가 『나일 강의 선물 이집트- 이집트 신화』를 집필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정규영 교수는 특히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집트 신화를 가려 썼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를 우리는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오늘날 우리의 상식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등의 몇몇 건축물에 관한 피상적인 정보에 머물러 있다. 혹은 파라오의 미라와 관련해 이집트의 장례문화에 대한 별스러운 상상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동안 인류의 중요한 고대문명인 이집트 문명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볼 대목이다. 이집트 문명에 관한 우리의 무지는 유럽의 근대를 뒷받침해 온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치우친 관심들의 또 다른 뒷면에 해당한다. <세계의 주요 종교에 녹아 있는 유일신의 원산지는 이집트?> 고대 이집트 인들의 신화는 대개 기원전 3200년부터 기원전 225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기록되기 전에 구전으로 전해 내려왔을 시간을 감안하면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전해져 왔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신화를 이해하려면 이집트의 특수한 지리적 조건을 이해해야 한다. 매년 되풀이되는 나일 강의 범람은 이집트 인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하였으나 비옥한 흙을 가져와 농작물을 잘 자라게 했다. 나일 강의 범람은 탄생과 죽음과 부활의 철학을 이집트 인들에게 전해 주었다. 부활을 주관하는 신은 오시리스였다. 죽은 자의 세계의 신인 오시리스는 이시스의 오빠이자 남편이었고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신으로 부각되었다. 이집트 인들은 파라오 자신이 곧 신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파라오는 죽으면 두아트 즉 지하세계로 돌아가 오시리스와 함께 부활할 운명이었다. 파라오는 살아서는 인간의 육신을 한 신이었고 죽어서는 태양신과 동일한 존재였다. 매일 아침 태양이 어둠을 뚫고 나오듯이 왕도 죽음을 극복해야 했다. 그래서 이집트 인들은 그들의 왕이 묻힐 거대한 피라미드들을 건설했고 죽은 자가 부활하려면 온전한 육신이 있어야 했으므로 복잡한 절차를 거쳐 미라를 만들었다. 파라오뿐만 아니라 일반 평민들에게도 죽어서 미라가 되는 것은 중요했다. 피라미드 건설 작업은 왕이 즉위하자마자 시작되어 재위 기간 중 계속되었다. 기자의 쿠푸 피라미드는 건설하는 데 30년의 세월이 걸렸다. 모든 파라오들은 왕위에 즉위하면서부터 자신이 묻히게 될 무덤을 건설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왕궁과 일반 주택을 나일 강의 진흙 벽돌로 만들고 무덤과 신전은 내구성이 강한 돌로 만들었다. 그 결과 피라미드와 신전들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위풍당당한 유적으로 남아 있다. 물론 모든 파라오들이 규모가 큰 무덤을 건설한 것은 아니었다. 세력이 강한 파라오는 거대한 무덤을 건설할 수 있었으나 세력이 약했던 파라오들의 무덤은 초라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의 이집트는 파라오의 나라가 아니다. 이집트 인들은 642년 아랍 무슬림들에게 정복된 이래 새로운 종교 이슬람을 받아들여 유일신 알라를 숭배하고 있다. 그들의 언어도 상형문자가 아닌 아랍 어이다. 그들의 다신 숭배사상은 타의에 의해 유일신 숭배사상으로 변모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이집트의 신화에는 유일신 사상의 근원이 존재했고 이슬람의 유일신 알라, 기독교의 유일신 하나님, 유대교의 유일신 여호와가 이집트의 태양신 라에 영향 입은 바 있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수많은 신들을 숭배했지만 그 다양성 뒤에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창조주의 개념을 숨겨 두었던 것이다. <기술자를 존중했던 고대 이집트-이집트의 재상이자 사후에 신으로 숭배받았던 임호테프는 돌항아리를 만드는 기술자였다> 이집트 신화에는 1년을 365일로 정하는 장면이 있고 그리스의 이데아 사상에 영향을 주었을 법한 카 사상(만물에는 그 형상의 본질인 카가 있다고 한다. 본질인 카에 육체와 혼이 깃들어 있다고 본 것이다.)이 있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가 분열과 통일을 반복해 온 역사가 있고, 위대한 하트셉수트 여왕이 있다. 하트셉수트 여왕은 이집트 문명의 숨겨진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이집트의 왕가에서 여성의 위치는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파라오의 왕위 계승권은 가장 혈통이 고귀한 여성과 결혼한 남자에게 있었으며 그 결과 이집트의 왕족들은 남매간의 결혼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결혼은 그러한 역사적 정황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주목하고 보면 클레오파트라가 케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한 유명한 일화에서도 우리는 (그다지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이집트의 합법적 통치권을 얻고자 하는 로마 지배자들의 의중을 엿보는 색다른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를 건설한 재상 임호테프가 돌항아리를 만드는 기술자였다는 사실에서 인류의 고대 문명이 기술자를 존중했고 그들의 힘으로 찬란한 문명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점을 통해 이공계 기피 현상을 보이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돌이켜 볼 수 있다는 점이나 나일 강의 수위를 조절하려 했던 파라오 조세르의 신화에서 1902년과 1971년의 아스완 댐, 아스완 하이 댐의 건설을 통해 이집트 인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나일 강의 범람을 통제하게 되는 역사적 순간을 연결지어 주는 점 등은 청소년 전문서로서 이 책이 지닌 덕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