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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년 왕국의 종말
이이화
한길사 200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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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이야기

책소개

목차

1. 근대화로 가는 길
남의 땅에서 싸우는 청나라와 일본
이제 세상이 달라진다
민비 시해의 암호는 '여우사냥'
단발령에 맞선 을미의병

2. 대한제국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
대한제국의 탄생
보수파가 광무개혁을 주도하다
조선에서 모두 모두 빼앗아 오자
국민들도 알 권리가 있다
민중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3. 나라가 없어지다
이제 조선은 일본이 지배한다
나라가 없는데 목숨인들 대수랴
내정을 접수하고 군대를 해산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일어나 나라를 찾자
마침내 식민지로 전락

4. 문화의 새 물결
태극기를 만들고 애국가를 짓고
배재학당, 이화학당에서 학생을 모은대
신문 한 장에 한 푼이오
누구나 문화인이 될 수 있다
여성들이여 쓰개를 벗어던지자
믿고 싶은 대로 믿어라

5. 먹고 입고 사는 모습이 이렇게 달라졌다
양복 입고 스틱 들고 안경 쓴 개화신사
호텔에서 만나 커피 한잔
기차가 조선 팔도를 달린다
전보를 치고 전화를 걸고

저자 소개1

작가한마디
그동안 우리 역사 서술은 너무 민족사, 정치사 중심의 거대담론에 치중해왔어요. 그러나 사회가 다양화하고 민주적 가치가 정착하는 현실에서 (역사서술의 시각과 방법에서)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Lee E-Hwa,李離和

우리나라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고전연구가 및 한문학자이다. 1937년에 한학자이자 『주역』의 대가인 야산也山 이달李達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945년부터 아버지를 따라 대둔산에 들어가 한문 공부를 했으며, 열여섯 살 되던 해부터 부산·여수·광주 등지에서 고학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후 서울에서 문학에 관심을 갖고 대학을 다녔으나 중퇴하고 한국학 및 한국사 탐구에 열중했다. 민족사·민중사·생활사 중심의 한국사 기술에 열정을 쏟았으며,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 인물을 재평가하는 작업 등을 통해 역사를 대중화하는 일에도 힘써왔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와 서울대 규장각
우리나라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고전연구가 및 한문학자이다. 1937년에 한학자이자 『주역』의 대가인 야산也山 이달李達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945년부터 아버지를 따라 대둔산에 들어가 한문 공부를 했으며, 열여섯 살 되던 해부터 부산·여수·광주 등지에서 고학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후 서울에서 문학에 관심을 갖고 대학을 다녔으나 중퇴하고 한국학 및 한국사 탐구에 열중했다.

민족사·민중사·생활사 중심의 한국사 기술에 열정을 쏟았으며,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 인물을 재평가하는 작업 등을 통해 역사를 대중화하는 일에도 힘써왔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와 서울대 규장각 등에서 한국 고전을 번역하고 편찬하는 일을 했고,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계간 〈역사비평〉 편집인, 서원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냈으며, 원광대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 타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후광학술상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허균의 생각』 『위대한 봄을 만났다』 『이이화의 한 권으로 읽는 한국사』 『한국의 파벌』 『조선후기 정치사상과 사회변동』 『한국사 이야기』(전22권) 『역사 속의 한국불교』 『인물로 읽는 한국사』(전10권) 『전봉준, 혁명의 기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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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80쪽 | 545g | 148*210*30mm
ISBN13
9788935651580

책 속으로

독립협회에서는 이해 가을부터 활발하게 토론회를 벌였다. 서재필과 윤치호 주도로 일요일마다 벌였던 토론회는 1년 동안 34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찬반 토론을 거친 뒤 참가자 다수결에 따라 결론을 내렸다. 많을 경우 500여 명이 참여할 때도 있었다. 여기에는 하급 벼슬아치, 유학을 다녀온 신청년, 각급 학교의 교사와 학생, 심지어 장사꾼까지 참석해 자리를 메웠다. 토론장소는 서대문 언저리에 있는 예전 경기감영의 내아나 독립관 등이었다.

처음에는 "머리를 깎아야 옳으냐" 따위, 사회 인습의 개량, 위생과 청결 등을 주제로 삼았으나 뒤에는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문제 등을 다루어 친러파과 대립하기도 했다. 1898년 2월에는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을 러시아 사람으로만 임명하는 문제를 토론회에 부쳐 반대를 이끌어 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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