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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치댄 반죽 같은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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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얘기지만, 눈물골짜기에서 흘린 눈물은 모두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생각과는 너무 다르게 흘러가는 제 삶과 그 속에서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 제 자신이 불쌍해 보여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입을 열어 내 슬픔이 여기까지 차 있노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기에 더 길고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런데 실컷 눈물을 다 쏟아 내고 난 그 즈음에, 이젠 괜찮다고 자신을 추스르게 된 바로 그 즈음에 제게는 작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한 번도 눈여겨 본 적 없는 다른 사람의 눈물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한 번도 아름답다고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의 아름다움과 소중함도 함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세상에 숨어 있는 작은 은유들이 하나 둘 제게로 다가와서는 이전에 받아본 적 없는 깊은 위로를 건네주었습니다.“ ---p. 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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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몰라도 도시였다면 사정은 달랐을 것입니다.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 그들에게 늘 민서를 설명해야 하고 그들은 그들대로 저와 민서를 위로하려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설픈 위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차별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요,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어서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p. 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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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천사와 울보 엄마의 시골 살이
1. 다운증후군 아들 민서
글쓴이가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때는 1999년 11월이다. 막 서산 촌놈(?)과 결혼해 충남 서산에서 살림을 차린 때이다. ‘무엇을 꿈꾸며 살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서울 생활을 버리고 시골 아낙이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압구정동의 사무실이 아니라, 시골의 작은 정류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연재는 ‘시골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2000년에 21번 염색체가 하나 더 많은 다운증후군 아들 민서를 낳으면서 글의 소재는 ‘민서 이야기’로 바뀐다. 그만큼 그에게 다운증후군 아들 민서의 탄생은 놀랍고 괴로우며 두려운 것이었다. 민서를 낳고, 그는 밤이면 밤마다 산후조리원의 좁다란 방에서 절규한다. 그는 민서의 상태를 시댁과 친정에도 알리지 않고 삼칠일을 보낸다. 고통은 모두 그와 남편의 몫이라고 생각했고, 남은 인생에는 슬픔과 불행만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죽을 용기가 없어 겨우 겨우 더듬으며 지나온 눈물골짜기’를 지나고 나서야 그는 왜 자신의 삶에 눈물골짜기가 필요했는지를 알게 된다. 결국엔 자기 내면의 문제였고, 그 깨달음을 준 것은 놀랍게도 민서였다. 2. 모성애의 자연스러움 그가 서산에서 홍성의 환경농업교육관으로 삶터를 옮긴 것은 ‘오직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민서를 키우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그르지 않았다. 좋은 환경에다 덤으로 좋은 사람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특히, 마을의 할머니들은 민서가 천천히 자라는 것을 알고, 민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눈여겨보고 함께 좋아해 주었다. 민서는 이제 네 살이 되었다. 팔 다리의 길이가 짧아 몸의 균형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하더라도, 손가락과 발가락의 길이가 짧다고 하더라도, 눈자위가 늘 부어 있다 하더라도, 콧대가 낮다 하더라도, 입을 잘 다물지 못한다 하더라도, 검지 발가락이 휘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민서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이다. 민서와 함께 목욕탕이나 산에 다니는 것도 떳떳하고, 이제는 시댁과 친정 식구들로부터 오히려 사랑을 이끌어 내는 민서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한마디로 콩깍지 사랑이다. 이렇게 한 번 콩깍지가 씌고 나니, 민서가 절망이 아닌 희망과 축복을 안고 온 아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시와 자연, 장애와 비장애의 이분법을 벗어나는 길은 결국 ‘자연스러운 모성애의 발견’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