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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3만원, 건빵 두상자로 여행 준비 끝.
--- 조은희(choeh@yes24.com)
흔히 오랜시간에 걸쳐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급기야 몇년 부어온 적금이나 비자금을 손에 쥐고서야 여행을 실행하곤 한다. 심지어 사표까지 던져야 여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지금 이순간에도 몇명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소개하는 17살 태진이의 무작정 여행기가 더 관심이 가고 유쾌하다. 고등학교 2학년 태진이의 24일간에 걸친 전국일주 자전거 여행기는 거창하진 않지만 어쩌면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여행의 모습을 더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방학을 맞아 여행을 계획했지만 교회 수련회, 보충수업에다가 친구들의 변심까지 겹쳐 여행이 무산될 위기에 놓인다. 혼자서라도 무작정 떠나기로 마음먹은 태진이는 단돈 3만원, 건빵 두상자로 여행 준비 끝. 갑자기 떠난 여행이지만 첫째, 밤에 다니지 않기, 둘째 다른 여행자를 만나면 먼저 반갑게 인사하기, 셋째 꼭 자동차와 같은 방향의 차로로 가기의 세가지 규칙도 세운다. 그중에서도 두번째 규칙이 태진이의 여행에서 많은걸 얻게 한 것 같다. 여행자들 뿐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인사하고 대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남원에서 출발하여 삼척, 통일전망대, 원주, 천안, 목포, 남해 땅끝을 거쳐 진주, 부산, 무주의 여정으로 24일간의 자전거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된다. 먼지투성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씩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아무거나 잘 먹고, 비를 맞아도 마냥 즐거운 천연기념물 명량소년 송태진/씩씩하게 페달을 밟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많은 것을 배웠다. 따뜻하게 건내는 말 한마디, 밝은 웃음, 서로에 대한 격려, 이런 것들이 얼마나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지, 더 큰 꿈을 위해 앞으로 달리는 건 얼마나 소중한지../넘어져도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는 이 녀석, 정말 많이 배웠다. - 책뒷표지에서 특히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느낌과 에피소드가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17살 고등학교 2학년생이 가질수 있는 독특한 관점과 더불어 왠만한 어른들보다 훨씬 바람직하고 건강한 태진이의 생각과 매력이 듬뿍 담겨져 있다. 왠지 한국판 어린왕자를 보는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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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바람이 빠진 듯해서 속초의 한 카센터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저 자전거 바퀴에 바람 좀 넣어주실 수 있나요?” “응? 너 지금 이거 타고 여행하는 거야? 와, 너 정말 멋지다.” 아저씨는 연신 크게 웃으시며 카센터의 일하는 형과 아주머니, 손님들께 나를 인사시키셨다. 나를 보고 너무 반가워하셔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전라도 남원에서 출발했다고? 야, 아저씨가 네 자전거 다 고쳐줄게. 내 옛날 꿈을 네가 다 이뤄주는 것 같다. 여기서 밥도 먹고, 덥지? 저기 가서 씻어.” 감사해라. 우연히 여기 들른 것뿐인데 이런 큰 친절을 베풀어주시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니 자장면이 기다렸다. 아저씨, 아주머니, 형과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자장면도 맛있었지만 무엇보다 어른들의 친절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좋았다. “이제 어디로 갈 거니?” “통일전망대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내려가려구요.” “그래, 열심히 다녀라. 내가 지금까지 널 보려고 산 것 같다.” 아저씨는 먼저 식사를 마치고 나가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저씨 이제 덥단 말 안 하고 일 열심히 할게.” 내가 이분들께 뭘 해드렸다고 이렇게 친절히 대해주실까. 정말 감사했다. --- 1부 ‘태양을 가슴에 품고’ 중 (pp.8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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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밥 안 먹었다 그랬지? 따라와.”
어리둥절해져서 아저씨 뒤를 쫓아 관리실로 갔다. 그곳에 계시는 다른 아저씨들께도 인사하느라 정신없는 나를 아저씨는 구석에 있는 휴게실로 데려가셨다. “여기서 씻어라. 수건은 내가 쓴 거라 좀 축축할 거야.” 갑자기 친절한 대접을 받게 되어 어리벙벙한 한편 어찌나 고마운지 몰랐다. 모처럼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게 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씻고 나온 나에게 아저씨는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집에 전화는 했냐?” “네, 가끔…….” 이 질문에는 항상 거짓말을 하게 된다. “집이 가난하냐?” “네? 네, 조금…….” 당황했다. 아저씨의 직설적인 물음에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반항하는 의미로 집을 나와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가난을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그건 알 수 없지만―내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던 걸까. “자전거 여행하면서 배운 게 뭐냐?” “글쎄요…….” “배운 게 있어야지. 안 그러면 소용없는 거야.” 배운 거라. 그래. 제멋대로 엉망진창인 이 여행에서 배운 거라면 당신들의 친절과 따뜻한 마음이라고밖에 말할 것이 없겠다. 내가 잘나서 이 여행을 떠난 것도 아니고 뭔가 나의 대단한 모습을 찾은 것도 없다. 생전 처음 보는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작은 도움을 베풀어주었던 많은 사람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하루이틀도 제대로 길을 가지 못하고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 2부 ‘여기는 땅끝마을’ 중에서(pp.152-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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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이면 집에 돌아간다. 그동안 집안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혹시 나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난 건 아닐까. 남원에 돌아갔는데 “사람을 찾습니다” 하고 내 사진이 인쇄된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건 아닐까. 엄마 아빠가 일도 안 하시고 나 찾으러 다니시는 건 아닐까. 가족은 다 건강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왠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쩐지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 막연한 믿음이 마음 한쪽에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여행을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막상 내일 끝난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계속하고 싶다. 여행은 끝내기에는 너무 재미있다. 아침을 먹을 때 전도사님이 말씀하셨다. “여행을 하면서 사람을 알게 되는 거야. 냉혹한 것도 겪어보고. 지금 네가 어려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크면 그렇지 못해. 그러니까 남을 도울 수 있게 열심히 공부해라.” 말씀을 들으며 여행을 되돌아보았다. 확실히 내가 어려서 그런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좋지 않는 모습도 보기는 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다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이구나. 그리고 앞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전도사님 말씀으로 새삼스럽게 깨우치게 되었다. --- 3부 ‘이 여행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에서(pp.222-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