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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이 있는 집
선생님 추모 사모님 서채리 혼례 제자 작가의 말 작가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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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찾아라… 찾거든 부딪쳐라…
그리고 벗어나라!” 선생, 스승, 아비란 이름으로 껍질만 남은 채 버둥거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괴물, 마초! 야성이 스러져가는 오늘, 진정한 스승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 우리 시대 ‘스승’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스승과의 관계란 무엇인가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리문학상 수상작가, 이제하 3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이제하 장편소설 『마초를 죽이려고』가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되었다. 『마초를 죽이려고』는 이제하가 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소설로 《문학웹진 뿔》에서 지난해 7월부터 2010년 1월까지 5개월여간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마초를 죽이려고』는 일생 동안 스승을 찾아 헤매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 아비, 스승, 선생의 의미를 되짚는다. 남자는 열 번째 스승이 되어달라 찾아간 화가 최홍명과의 만남을 통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너머 한 인간의 삶 속으로 깊숙이 침잠한다. 스승을 둘러싼 삶의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현대사회의 가족, 사랑, 일, 명예, 권력 헤게모니의 본질을 들여다보며 오늘날 정치사회 현실 안에서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열망이 가져오는 가슴 아픈 상처, 선과 악을 오가는 인간 본연의 약함에 대해 써 내려갔다. 『마초를 죽이려고』는 야성이 스러져가는 오늘날, 껍질만 남은 채 버둥거리고 있는 괴물, ‘마초’를 통해 한국사회의 이념과 제도 안에 감추어져 있는 적나라한 욕망을 들추어내고, 부박한 세태를 경고하며, 예술혼의 본질을 묻는 소설이다. 사물들의 이름이 언제부터 그 본래의 의미와 기능을 잃기 시작한 것인지 아득하다. 인간에게 별 해악을 끼치지 않던 이런 이름들 중엔 부모, 자식, 친구, 연인 같은 말들도 있다. ‘화가와 모델’이라는 그림 쪽의 용어나 ‘스승과 제자’라는 학교 쪽의 용어도 마찬가지다. 이런 용어들의 그 긴밀하게 구축되어 있던 상대적 의미망이 완전히 와해되어 버린 세상을 가끔 상상한다. 기본적인 틀조차 사라져버린 완벽하게 자유로운 세계. 노파심의 발로일지 모르나, 안도가 아니라 그런 세상에 대한 어떤 두려움 때문에 이 소설을 쓰게 되었을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잃어버린 이름들 - 선생, 스승, 아비란 이름으로 불리던 우리 시대 ‘어른’을 찾아서 나(지헌)는 “하루하루가 비몽사몽” 같다. 지리멸렬한 나날들 속에서 불안의 원인을 구명해 보려고 해도 형체 모를 갈증으로 인해 도심의 일상은 후덥지근하고 불쾌한 소리들로 차 있다. 대빵(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밤도망도 다녔고 이사도 많았던 나에게 학교 선생님을 제외한 스승과의 첫 인연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인 아홉 살 때 “사제계약서”까지 작성하고 아버지의 빚 대신에 담보처럼 맺은 관계였다. 어머니는 고교 1학년 때 집을 나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15년 후에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간 연이 닿았던 스승은 합기도 사범을 비롯해 적은 수가 아니지만 마음속에서 ‘진정한’ 스승에 대한 갈망은 끊이지 않아왔다. “마지막 관문인 양” 스승이 되어달라 찾아간 화가 최홍명 선생 댁 대문 앞에서 밤을 새우며 자신을 받아줄 문이 열리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나는 “울고 싶은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마음속에 스승을 지니지 못한 자, 만세에 아수라 길을 걸어…… 하는 그 누구의 잠언이 뇌리를 어지럽혔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선생님 댁 문이 열리기만 하면 이 아수라 같은 세상에서 한 가닥 길이라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일념 하나만은 분명했던 것 같다. 나는 울고 싶은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p.10) ‘왜 여기까지 왔는가’ 하는 상념이 뒷덜미를 내리누를 뿐인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기 때문에 최 화백의 집에 온 것이다. 선생님이 배워서 극복해야 할 하나의 큰 “벽”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벽을 찾아, 부딪쳐 보고, 종국에 가서는 벗어나야 할 그런 존재로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견딜 수 없고 무엇을 허물어트리고 싶어서 나는 선생님을 찾았던 것일까. (p.42) 좀 막연하기는 하지만 뭐랄까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의 그런 이미지 때문이었지 당신이 무슨 대단한 화가라거나 하는 그런 것으로서가 아니었다. (중략) 조언을 받고 따라야 할 대선배 같은 것이라 해도 좋다. 요컨대 그것으로 뭔가를 배우고 가치척도를 삼아야 할 아버지 같은 기둥이나 뿌리가 내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나 원망이 결국은 그 보상 심리로 선생님을 찾게 했을 것이다. (p.131) 그러나 최 화백의 비서로 집 안에서 살게 된 나는 대선배, 아버지, 선생님이란 이름의 큰 어른을 마주하는 데 앞서 그의 삶 안으로 섞여 들어간다. 나는 그 안에서 인간의 욕망과 약함을 목도하고, 가족의 상처를 알게 되고, 예술가로서의 ?에 대한 열망이 가져오는 단절과 현대사회에 질병처럼 번져 있는 권력 헤게모니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모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천방지축에 요량할 수 없는 서채리라는 젊은 여인이 42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최 화백 곁에 항상 붙어 있었으며, 아버지가 평생 몰두해 온 이해할 수 없는 그림세계와의 거리감에 주눅 들린 자식들이 있었으며,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와 그림을 손에 넣으려는 장사꾼 같은 화랑가 사람들도 있었으며, 남편을 한미협 이사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종양 생긴 것도 모르고 불철주야 뛰어다닌 사모님도 있었던 것이다. 현실적인 사정으로 벌집 속에 살 수밖에 없더라도 마음만은 최소한 뜰 같은 거라도 가꾸면서 살아야 한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삶이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p.9) 적자생존이 세상의 법칙이라고 말했던 어머니, 밑 없는 무중력 상태에 내던져진 것 같은 권태감으로 인해 요량도 하지 못하고 자꾸 움츠러드는 가슴. 뛰어넘어야 할 ‘벽’이 무언지조차 감도 잡히지 않는 삶 안에서 찾고자 했던 한 사람의 “어른”은 나에게 “뭔가를 배우고 가치척도를 삼아야 할 아버지 같은 기둥이나 뿌리”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마지막 선생님인 최 화백에게서 우리 시대 진정한 스승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을까. 마음으로 원했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이룰 수 있게 될까. 현대사회의 부박한 세태에 대한 경고,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묘파, 신념과 욕망의 단절 나는 박 대통령 기일에 현충원에 가려는 최홍명 화백의 앞을 막아선다. 못 견디겠더라도 내 사정은 아니니 상관하지 말자라는 마음 한편에 아무리 어렵고 존경하는 선생님이라도 싫은 일을 억지로 따를 수 없다는 생각과 아직 선생님을 정식으로 스승으로 모신 처지가 아니라는 어지러운 생각들이 뒤엉켜 꼼짝할 수 없을 때, 선생님은 빙긋 웃음을 띠며 먹과 벼루를 나에게 내밀어 골라보라고 한다. 어이없으면서도 최면에라도 빠진 듯이 내가 먹을 집어 들자 선생님은 벼루를 바위에 힘껏 던져 두 동강을 내버린다. 그 모습에 놀란 나에게 사모님이 선생님을 대신하여 뜻을 전한다. “어서 골라보소. 하나는 빵이고 하나는 자유라고 멋대로 생각해도 상관이 없고…….” “…….” “하나는 박통이 좋다, 하나는 박통이 미워 죽겠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고.” (중략) “먹과 벼루가 어떻게 따로 놀아. 한통속이지. 몰라, 총각이 배라도 진탕 곯아봤으면 빵부터 잡았을 기라…… 백범 선생 기일 때도 우리 참배하고 안 왔나 지난 유월에…… 빨리 차에 오르소.” (pp.85~87) 선생님의 전언을 넌지시 타이르듯 말하던 사모님의 암시는 “거슬거슬한 가시”처럼 속을 훑어 내려간다. 정치라면 거리가 멀어 보이고 매사 무관심해 보이던 서채리마저 “모두가 우물 속에서 자욱이 흙탕물이나 튀기고 있는 꼴”이라면서 “권력 잡고 남 다스리려는 욕망이 뿌리째 뽑히지 않는 한 정치판은 그놈이 그놈인 거” 아니냐며 일침을 놓는다. 나에게 요새 애들은 이념도 사상도 철학도 아예 제로 상태처럼 보일 뿐이다. 말초신경만 살아 있어 “불빛만 보면 박치기를 하려 날아드는 나방”들과 같아 보인다. 지금은 또 인터넷이 그 대세고 시대의 흐름이 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도리 없이 그것에 한 다리를 걸치고 여태 지내온 내 짧은 소견으로도 거기는 악취 풍기는 방대한 쓰레기 하치장에 불과하다. 무한한 정보와 지식이라고는 하지만 인스턴트 수준을 벗어나는 예가 드물고 말초신경으로만 이리저리 몰리는 그 네티즌들이며 후안무치한 악플들이며 법도 질서도 없는 깡패 천국인 것이다. 흙냄새가 제대로 나는 땅에 제대로 발을 딛고 올바른 교훈 하나라도 가르치는 스승에 주려 헤맨 나의 갈증이나 선망도 그래서 비롯됐을 것이다. (p.220) 낼모레가 팔순인 선생님과 42년의 나이차가 나는 서채리와의 관계는 사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 언론과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어느 때는 청순한 소녀 같기도 하고 어느 때는 팜므파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잔혹한 눈빛을 내보이기도 한 서채리를 온전히 두둔하고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잔혹할 정도로 짓밟기도 하는 현대 매체에 대한 경고는 오히려 그녀의 편에 서서 연민을 자아내게 만드는 동인으로 화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사악하다고 할밖에 없는 그런 저널리즘이 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것은 개인의 혼과 정신의 면에서이다. 발길질을 하다못해 그 프라이버시를 사회적인 나락으로까지 처박는 것은 부차적인 폐해일 것이다. (p.191) 허울 좋은 자유세계라는 것이 치유할 길 없는 “병든 사회”로 인식될 때마다 나의 무기력증은 고개를 쳐든다. 엄포와 이간질과 허세를 빼면 뼈대조차 찾을 길이 없어 보이는, 구질구질하게 살아남아 끌려 다니는 듯한 시대의 흐름이란 것을, 목도할 때마다 나는 절망감에 짓눌리는 것이다. 바위 같은 신념이란 게 도대체 존재하기는 한단 말인가. 야성이 스러져가는 오늘날 예술혼의 본질과 전통과 현재, 사람과 사람, 스승과 제자의 ‘조응’ 선생님과 그를 둘러싼 오늘의 세태에 대한 마음속의 반박으로 미망 속을 헤맬 뿐인 나에게 어머니는 “남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 사람 하는 일만 이해한다고 되는 일이냐?”라고 응대하여 한순간 나를 눈뜨게 해준다. 또한 자신의 신념에 따른 일이라고는 하지만 박통의 기일을 기념하여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선생님은 또 다른 자신의 신념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열강들의 족쇄에게 풀려나기 위해서라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언젠가는 쓰일 데가 있을 거 같다면서 홀로 묵묵히 국기를 새로 만들고 계셨던 것이다. 이후 나는 최홍명 화백에게 “진짜 제자”로 받아달라고 청한다. 최 화백은 자신이 작대기 하나를 먼저 그릴 테니 거기에 대답하듯이 그려보라고 나에게 말한다. 나와 최 화백의 서로 다른 작대기가 화판을 채워 나간 후, 그는 비로소 웃으면서 나를 “제자”라고 부른다. 서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화폭의 작대기이건만 그림에 대한 재능으로서가 아니라 한 획 한 획 나의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준 선생님의 갈필의 획이 나의 가슴을 깊게 울린다. 작대기라고 해도 선생님이 그린 그것은 휘어져 있었다. 빗자루가 끌고 간 자국처럼 휘어진 갈필의 획이 어느 순간 끊어지면서 점적(點滴)을 남긴다. (중략) 집중은 당신 역할이었지만 방기(放棄)는 내 몫이었다고 할밖에 없다. 무어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가 없는 빗자루 자국과 쇠망치처럼 둔하고 시커먼 작대기가 화판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갈필산수라는 것의 의미, 당신 기법의 비밀, 당신이 붓 자국으로 해체시켜 버린 그 산수(山水)가 말하는 것, 미니멀이라고 해도 좋은 그 해체 과정의 바닥에서 올라오는 이상한 힘이나 여운을 이때서야 내가 어렴풋이 깨달았다고 한다면 과장일 것이다. (p.226) 화가로서 최홍명은 수백 년을 내려오던 전통 산수화의 세계를 일생을 걸고 해체했다. “겸재 이후에 한국화가 없다”라는 논리를 펼쳐, 제자들조차 시비를 가리려 했을 정도로 선생님은 자신의 예술적 신념만큼은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전통적인 산수화는 관념의 세계로 태평성대일 때는 인간을 위무할 수 있었을지라도 외세와 위정자, 가난에 시달려 온 몇백 년 후의 백성들에게는 그 관념이란 것은 꿈꾸는 이상향으로 고착되고 변질되어 버렸을 뿐이라고 본 것이다. 소위 먹물 계층의 대표적인 정신과 기법으로만 받아들여지던 것이 전통 산수화라면, 겸재의 진경산수는 이 나라 산하의 앉음 세와 그 뼈의 구조를 처음으로 천착하였다고 여긴 것이다. 최 화백의 해체작업은 겸재의 진경산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한 것이다. 자신이 평생을 걸고 도달해야 할 곳에 이르기 위해 한평생을 바쳤던 최 화백이 오늘날의 한국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음과 같다. 겸재는 그 관념의 외장을 벗기고 이 나라 산하의 앉음 세와 그 뼈의 구조를 처음으로 천착한 화가이다. 그 이후는 물밀듯이 밀어닥친 개화사상과 노도처럼 어지러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도 이해도 편승도 못한 채 지리멸렬, 우왕좌왕을 일삼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더러는 옛날의 허황한 꿈에 매달려 그것이 정도임을 고집하고 더러는 획(劃)의 상징성이나 필세, 먹의 농담을 매개로 그런 난관과 벽을 허물어트리려 분쇄를 거듭하고 있다. 세상은 이처럼 변하고 있는데 오늘의 한국화는 하다못해 왜 도시 풍경 하나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하고 설사 했다고 해도 실격과 태작이 부지기순지 추정이 가지 않는가. 모름지기 화도를 업으로 삼는 자, 어느 태도를 취하고 거기 순사해야 할지 그 이치가 자명하다……. (pp.245~246) 당신의 유작으로 남겨 놓은 미완의 작품들 중에서도 5백호 크기의 「해체금강(解體金剛)」은 터무니없는 망상으로가 아니고는 다가갈 열쇠가 없어 보이는 그림이다. 제목의 암시 때문인지 화면 가득히 펼쳐진 먹의 점(點)들은 떨어져 보면 일견 금강산 같기는 했으나 가까이 다다가면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 통일에의 염원과 함께 거의 전 국민들이 이상향처럼 떠받들고 기리며 오매불망하는 그 아름다운 산의 실체를 당신은 완곡하게라도 해체하고 해명해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pp.281~282) 그런 선생님의 주변에 “보리밭에 까마귀 떼들”처럼 사흘이 멀다 하고 제자들과 화상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세상을 뜨자 그날만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밖에서 살던 선생님의 자식들은 성이라도 함락시키듯이 성북동 선생님 집으로 밀고 들어온다. 이후 한 해 남짓 서채리와 아들들 사이에서 지리멸렬한 분쟁이 벌어지더니 선생님의 유작이나 그 어떤 유산도 필요 없다며 서채리는 성북동 집의 지하실에 있는 물건들만 모두 자신이 가지겠다고 주장한다. 선생님 살아생전에는 사모님도 서채리도 그 어느 누구도 못 들어가 봤던, 지하실 안에는 과연 선생님의 무엇이 남아 있을까. 문이 열린 지하실 안을 보는 순간 선생님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던 것을 가늠하게 한다. “대체 안에 뭐가 있길래 안 보여 주시겠다는 거예요?” “속속들이 죄 알아서 득 될 게 없어. 난두 임자 바닥까지는 다 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