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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추천사 역자서문 제1부 무너지는 한제국 제1절. 어린 황제가 또 등극하다 제2절. 진번과 두무가 일어서다 제3절. 제2차 당고지화가 일어나다 제4절. 환관이 전횡하다 제5절. 손견이 역사무대에 등장하다 제6절. 망국의 조짐이 나타나다 제7절.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다 제8절. 조조가 역사무대에 등장하다 제9절. 동탁이 등장하다 제10절. 손견이 황건적 토벌에 참전하다 제11절. 동탁이 실권을 장악하다 제12절. 원소가 동탁토벌의 수장이 되다 제13절. 유비가 등장하다 제14절. 동탁이 여포에게 살해당하다 제15절. 손책이 등장하다 제16절. 조조가 여포를 패주시키다 제2부 영웅천하 제1절. 조조가 협천자를 하다 제2절. 조조가 원소를 치다 제3절. 관도대전 제4절. 손권이 등장하다 제5절. 쫓기는 유비 제6절. 쫓기는 원소의 자식들 제7절. 조조가 기주목이 되다 제8절. 조조가 북방을 평정하다 제9절. 와룡이 세상에 나오다 제10절. 적벽대전 제11절. 유비와 손권이 결친하다 제12절. 유비가 촉으로 가다 제13절. 조조가 위공이 되다 제14절. 유비가 익주목이 되다 제15절. 여몽이 관우를 치다 제16절. 사마의가 득롱망촉을 건의하다 제17절. 조조가 위왕이 되다 제18절. 유비가 한중왕이 되다 제19절. 관우가 죽다 제20절. 조비가 위나라를 세우다 하권 제2부 영웅천하 제21절. 유비가 제위에 오르다 제22절. 유비가 백제성으로 패주하다 제23절. 유선이 유비의 뒤를 잇다 제24절. 제갈량이 남정하다 제25절. 조예가 조비의 뒤를 잇다 제26절. 제갈량이 출사표를 쓰다 제27절. 제갈량이 울며 마속의 목을 베다 제28절. 손권이 제위에 오르다 제29절. 제갈량이 기산을 치다 제30절. 오나라 사신이 고구려에 오다 제31절.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다 제32절. 조예가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벌이다 제33절. 황룡이 나타나다 제34절. 사마의가 공손연을 치다 제35절. 조방이 조예의 뒤를 잇다 제36절. 위나라가 황친을 멀리하다 제37절. 조상이 공명을 세우려 초조해하다 제38절. 조상이 실권을 잡다 제3부 떠오르는 진제국 제1절. 사마의가 실권을 장악하다 제2절. 사마의가 죽다 제3절. 손권이 죽다 제4절. 사마사가 대권을 장악하다 제5절. 관구검이 거병하다 제6절. 제갈탄이 거병하다 제7절. 사마소가 조모를 죽이다 제8절. 촉한이 멸망하다 제9절. 사마소가 진왕이 되다 제10절.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우다 제11절. 사마염이 오나라 토벌을 계획하다 제12절. 오나라에 내분이 일다 제13절. 오나라가 더욱 어지러워지다 제14절. 드디어 천하가 다시 통일되다 역자후기 부록 |
司馬光 ,우부,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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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東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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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삼국지 열풍!
김구용 삼국지, 박종화 삼국지, 김광주 삼국지, 고우영 만화 삼국지, 이문열 삼국지 그리고 삼국지 게임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접하는 문화 코드 중의 하나가 바로 삼국지일 것이다. 삼국지의 본고장인 중국과 각종 해석이 풍부한 일본보다도 열기가 더하다는 우리나라의 삼국지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서 나온 번역본만도 만화까지 치자면 이미 수 십 종을 넘는다. 2003년에는 황석영이 '삼국지'를 들고 나와 이문열 '삼국지'에 도전장을 던졌고, 한학자인 고 김구용씨의 꼼꼼한 번역본도 다시 선보였다. 그러나 ‘정본,’‘완역본,’‘비평서’ 등의 이름으로 출판물이 쏟아지는 가운데 ‘삼국지학’을 향한 진지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삼국지 믿을 만한가? 우리가 삼국지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원말?명초에 활약했던 소설가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번안한 역사소설이다. 이 ‘삼국연의’는 삼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1,300년이 지난 뒤에 그동안 민중들 사이에 전해져 오던 이야기를 종합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읽는 삼국지는 영웅호걸이 각축을 벌이는 “삼국시대”라는 역사의 옷을 걸치고 있지만 엄밀히 따졌을 때 소설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만 아니라 1,300여 년에 걸친 유교 이데올로기와 당시 민중들의 영웅취향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 나관중이 유비가 세운 촉한이 정통하다고 보는 철저한 ‘촉한정통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써내려간 것은 당시 민중들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소설이 아닌 정사(正史)로 신뢰받는 ‘삼국지’도 있다. 진수는 삼국시대 당시의 학자로서 한나라가 망하고 위·촉·오 3국이 세력을 다투었던 역사를 기록하였다. 초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이문열의 삼국지는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평역하는 과정에서 이 진수의 ‘삼국지’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수의 ‘삼국지’는 역사로서 완전히 신뢰할 만한가? 그렇지 않다. 진수의 아버지는 본래 촉한 사람으로 제갈량이 군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하여 아끼는 부하 마속을 울며 참수했다는 고사성어[泣斬馬謖]에 등장하는 마속의 부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진수는 진나라(조조가 죽자 위나라의 왕위를 찬탈하고 사마씨가 세운 나라)의 사관(史官)으로 있었기 때문에 진나라의 건국을 이론적으로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라도 한나라 헌제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은 위나라를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삼국이 천하를 다툰 당시에 한 국가의 사관이 역사를 기술했기 때문에 후대의 강한 민족주의적 입장보다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삼국지’ 역시 ‘삼국연의’와 마찬가지로 시대적인 한계가 작용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 <자치통감-삼국지>인가? ‘삼국지학’의 1차사료 그렇다면 삼국 중 어느 한 나라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의도 없이 보다 객관적으로 기술된 삼국시대의 역사기록은 없는 것일까? <<자치통감-삼국지>>는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존재 가치는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삼국연의’와 ‘삼국지’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몽골족에 쫓겨서 남하한 남송대부터는 완전히 촉한정통설로 기울어지게 되었지만 사마광이 활동하던 북송 때만 해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사마광은 기본적으로 천하가 통일되어 있지 못하고 여러 나라로 분립되어 있을 경우에는 굳이 정통론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소위 ‘무통설(無統說)’에 입각해 있었다. 나아가 <<자치통감-삼국지>>는 ‘덕’을 중시하는 왕도주의의 ‘삼국연의’나 ‘힘’을 앞세운 패도주의의 ‘삼국지’와는 달리 왕패병용주의(王覇竝用主義)의 입장에 서있다. ‘자치통감’은 북송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사마광이 신종 때 왕안석의 개혁에 반대하다가 물러난 뒤 19년에 걸쳐 1362년간(BC403~960)의 중국 통사를 담아 완성한 ‘필생의 역작’이다. 사마광은 ‘자치통감’을 완성한 후 얼마 안 돼 과로사 했다고 전해진다. 일생을 ‘자치통감’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자치통감’은 일찍이 청말 사상가 양계초가 ‘황제의 통치교과서’라고 극찬한 바 있고, 현대 중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택동은 거의 끼고 살다시피 애독했다고 전해지는 ‘명저’이다. 그중에서도 전체의 약 10분의 1(총 294권 중 26권)을 차지하는 <<자치통감-삼국지>>는 격동의 난세를 서술한 까닭에 역사적 재미와 교훈에 있어서 백미에 해당한다. <<자치통감-삼국지>>는 편년체를 택하여, 특정 시기만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식의 방식을 버리고 전 기간에 걸쳐 일어난 모든 사건을 가감 없이 모두 고르게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삼국연의’와 ‘삼국지’에서는 확인하지 못했거나 누락된 부분 및 엇갈리는 기록에 대한 평가 잣대를 제공한다. 가장 손쉬운 예로 ‘삼국지’에만 나오고 ‘삼국연의’에 나오지 않는 촉한의 양희와 진지, 상파와 위나라의 원환과 양무, 서혁, 하기를 비롯해 동오의 손려와 손패, 사섭, 종리목 등의 인물들이 <<자치통감-삼국지>>에는 빠짐없이 실려 있다. 동시에 ‘삼국연의’에만 나오고 ‘삼국지’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촉한의 진식과 번건, 비관, 호제와 위나라의 진건과 진태, 등돈, 학소를 비롯해 동오의 정봉, 전단, 전역, 장포 등도 이 책에는 등장하고 있다. 사마광이 사실(史實)을 중시하고 무통론적 입장에 서있다는 것은 삼국지 주요 인물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서 잘 드러난다. 사마광은 정확한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삼국연의’에 나타난 유비의 중요한 공덕 중에 하나인 황건적 토벌을 기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비를 딱히 한나라 황실의 후계자로 보기도 어렵다고 사평을 통해 밝히고 있다. 제갈량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유비가 촉한 건립의 발판이 되는 형주를 취하는 것은 ‘삼국연의’에서처럼 제갈량의 건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마광이 제갈량의 평가에 인색하지는 않다. 다만 여러 후대의 사평들을 통해 제갈량을 신무(神武)를 지닌 지략가라기보다는 충성심 강하고 공사구분이 철저한 치국의 달인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조조가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여백사 일가를 몰살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이야기는 ‘삼국연의’에서 조조가 간웅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지만, 사마광은 사실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치통감’의 놀라운 점은 정사(正史)는 물론 무려 3백22종에 달하는 외사(外史)까지 모두 채집한 뒤 그 중에서도 필요한 사실만을 담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치통감-삼국지>>는 후대에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전거(典據)가 되고 있다. 삼국시대 당시의 학자인 진수는 적벽대전과 합비전투의 전후를 뒤바꿔 기록하였는데, 사마광이 이를 바로잡았다. 제갈량의 후출사표 진위논란은 지금도 존재하는데, 전출사표와 문장 등에 있어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진수는 제갈량의 후출사표가 후세의 위작이라고 판단하여 싣지 않았으나, 사마광은 후출사표를 채택하여 실었고, 지금까지도 후출사표가 진짜라는 주장의 강력한 논거가 되고 있다. 우리가 후출사표를 알고 있는 까닭도 나관중이 사마광을 뒤좇아 ‘삼국연의’에 후출사표를 실었기 때문이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사망한 것도 잘 알려져 있지만, 처음 정설로 받아들인 것은 진수나 배송지가 아니라 사마광이었다. 그는 촉나라의 역사를 다룬 ‘화양국지’에 나타난 오장원 기록을 사실로 인정하여 자치통감에 반영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