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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_꿈을 향해 걷기
모래 위에 떨어진 한 권의 책 삶이 내게 미소 짓도록 자유로 나아가는 문 생텍쥐페리 사막학교 푸른 옷의 어린 왕자들 사막학교에는 시계가 없다 나 자신으로 남는 법 삶에는 모든 것이 있다 별과 지평선이 전하는 이야기 사막학교 소식 사막학교를 돕는 사람들 옮긴이의 글 |
Moussa Assarid, Moussa Ag Assa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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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저녁마다 그 책을 한 장 한장 넘기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그 금발머리 소년을 눈앞에 두고 꿈을 꾸었다. 그 소년은 생김새는 우리와 닮지 않았지만 우리처럼 모래언덕들 사이에서 살고 있었다. 때때로 소년이 어떤 다른 별에 있는 그림이 등장했는데, 그걸 보면서 우리도 우리의 별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우리는 그 소년의 사연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활자들은 그림 맞은편에서 춤을 출 뿐 아무것도 드러내 주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혼자 힘으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가서 그 소년, 우리와 아주 다르지만 우리가 꾸는 꿈속의 아이와는 아주 닮은 그의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단다.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이지.” 그때부터 우리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학교에 가서 글을 배워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우리를 집에서 떠나보내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야영지에 남아 가축을 돌보고 가족의 일을 도와야 했다. 뭔가 무척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우리에게는 배움이 허락되지 않는 거지? --- p.13 밤에 아내와 아들, 딸과 나란히 앉아 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마다 삶이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삶에는 모든 것이 있다. 정말로 그렇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이 학교를 위해 싸웠고, 이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아직 허약한 부분이 있기는 해도 사랑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또한 꿈의 결실이라고 하기에 충분할 만큼 학교는 활기 있고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푸른색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아이들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줄지어 앉아 있다. 쪽빛 베일을 쓴 여자아이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오늘 저녁 학생들은 영화를 보고 있다. 모래 위에 장치해 놓은 텔레비전 수상기는 그것과 연결된 발전기의 소음 때문에 배우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긴 해도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의 혼까지도 쏙 빼놓을 만큼 재미있다. 그것은 별빛 아래서 눈을 뜨고 꾸는 꿈이다. --- pp.93-94 레일라가 학교에서 지낸 지 2년이 흘렀을 때, 몸에 병이 있던 어머니가 딸을 데려가 곁에 두고자 했다.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아픈 여인의 소망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한 여자아이의 장래를 어떻게 막아 버린단 말인가? 그 아이에게는 다른 길이 없었다. 어머니가 원하면 그대로 따라야 했다. 명을 거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레일라는 야영지로 돌아가 몹시도 우울한 한 해를 보냈다. 그 아이는 혼자서라도 계속해서 책을 읽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가르쳐 주는 교사 없이, 혹은 다른 학생들과 서로 견줘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레일라는 결단을 내렸다. 학교로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머니의 건강이 한결 좋아진 만큼 그녀를 붙잡아 둘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부모는 딸을 학교에 돌려보내려 하지 않았다. 살림을 꾸려 나가는 데 딸의 도움이 요긴했기 때문이었다. 레일라는 단식으로 항의했다. 처음에 부모는 딸이 공연히 고집을 부려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딸을 억지로 붙잡아 두려 하다가는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은 항복했다. 오늘도 여전히 레일라는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려는 의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소망에서 성장의 힘을 길어 내고 있다. --- pp.116-117 하루는 한 프랑스 아이가 리사에게 물었다. “넌 살갗이 왜 그렇게 검니?” 리사가 대답했다. “사막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렇지. 사막에는 해가 쨍쨍 내리쬐거든.” 그러자 그 아이가 말을 받았다. “선크림을 발라!” 자기와 다른 것을 만났을 때, 그 차이를 자기 식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 p.136 몽펠리에에서 지낼 때 어떤 어머니와 아기와 더불어 한나절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날 지켜본 어머니와 아기의 모습은 나를 무척 곤혹스럽게 했다. 아기와 연관되어 혹은 아기를 위해 그렇게도 많은 일이 의식처럼 치러지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보았다.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 주고, 때맞춰 이유식을 먹이고, 영양의 균형을 맞추는 데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서 혹시 아기가 울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당장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곤 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하루 종일 극도로 긴장해서 보냈고, 그녀가 느끼는 걱정과 스트레스는 나까지도 긴장과 불안감에 빠지게 했다. 하루가 끝날 무렵이 되자 결국 나는 완전히 지쳐 버렸고, 그녀 역시 두 발로 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기진맥진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뒤 그녀가 조금 쉬려고 할 때 이번에는 아기가 잠을 깨어 울어 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라고 그녀를 말렸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려서야 작고 예쁜 싹이 어떻게 제대로 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녀는 기어코 일어나 아기에게로 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막의 아기들이 얼마나 일찍부터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가는지 실감했다. --- p.173 서구세계는 단봉낙타를 타고 이동하던 시대에 향수를 느낀다. 서구세계로서는 투아레그족이 지금까지 지녀 온 모습을 앞으로도 변함없이 유지하기를 바랄 것이다.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 자유인, 낙타 위에 올라 구릉진 사구에 버티고 선 사막의 목동, 얼굴을 가린 두건 사이로 찌를 듯이 내보이는 깊은 눈길……. 이러한 우리의 이미지는 서구인이 품은 꿈의 상징이 되어 상품광고와 관광산업에 이용되고 있다. 우리는 변화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서구인들은 우리가 바꾸어야 할, 그리고 얼마 후에는 잃어버리고 말 어떤 삶의 방식과 끊임없이 우리를 결부시키곤 한다. 관광업자들은 ‘진짜 유목민들’을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행 안내서들은 사람들의 꿈을 자극하기 위해서 모래 위에 앉아 차를 따르는 우리의 모습을 동원한다. 만약 여행 안내서 속의 유목민이 버너를 써서 차를 끓인다면 서구인들은 그것을 일종의 타락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서구인들은 근대화가 어느 구석엔가 파묻어 버린 문명들을 다시 찾고자 하지만, 우리로서는 근대화야말로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연 속에서 바람과 태양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말하고 싶다.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우리가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빚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 pp.207-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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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하라 사막의 투아레그족 형제가 우연히 손에 넣게 된〈어린 왕자〉를 계기로 글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학교에 다니기 위해 분투한 과정과 성인이 된 후 사막의 아이들을 위해 ‘생텍쥐페리 사막학교’를 세우기까지의 여정을 그려 나간 이 책은 많은 걸 지니지는 않았지만 자유로이 살아가는 유목민의 시선으로 도시의 사막에서 갈피를 잃은 현대인에게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사막별 여행자〉의 저자 무사 앗사리드와 그의 동생 이브라힘 앗사리드의 최신작이다. 별과 모래뿐인 사막에서 푸른 옷의 투아레그 아이들이 전하는 마음의 메시지 〈사막별 여행자〉의 특별한 감동을 잇는 최신작 “별빛이 아름다운 밤, 아이들은 그대로 별빛 아래서 잠이 든다. 눈길을 하늘로 돌려 가만히 별을 응시하다가 그 자세 그대로. 그럴 때면 그들이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아프리카 북부 가도가도 모래뿐인 사하라 사막 위에 푸른 옷의 아이들이 모여 공부하는 학교가 있다. 어른들이 목초지를 찾아 사막을 이동하는 동안 아이들은 이 학교에 머물며 글자라는 염소와 숫자라는 새, 낙타들을 돌본다. 이 학교에는 정해진 기상 시간이 없다. 아이들은 밝아 오는 아침 햇살과 함께 눈을 뜨고 지상에 어둠이 내릴 때 자연스레 잠이 든다. 이곳의 이름은 ‘생텍쥐페리 사막학교’. 모래땅 위에 이 같은 배움의 씨앗을 뿌린 사람은 ‘사막별 여행자’인 무사 앗사리드와 그의 동생 이브라힘이다. 가뭄으로 황폐해져 가는 사막에서 자신들이 지켜 왔던 자유로운 영혼과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그리고 사막의 아이들이 지구라는 이 행성에서 표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작은 학교를 세웠다. 그들에게 배움은 자유로 나아가는 문, 이 책은 언제나 눈을 뜰 준비가 된 사막의 어린 왕자들과 그들에게 배움의 씨앗을 제공하는 한 투아레그족 형제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이 책에 담긴 글은 사막의 아이로서 우리 형제가 겪은 경험과 ‘생텍쥐페리 사막학교’ 아이들의 이야기, 또한 사막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찾아가야 할 어떤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 분투하는 사막별 학교의 이야기는 도시의 사막에서 갈피를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투아레그족의 두 소년, 학교에 가다 저자 무사와 이브라힘은 북아프리카 말리 소속의 유목민 투아레그족 형제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파리-다카르 자동차경주를 취재하러 사막에 온 한 프랑스 기자가 선물한 책〈어린 왕자〉를 보게 된 이후 글을 배우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막의 투아레그족에게 학교에 가서 배우는 일이란 좀처럼 이루기 어려운 꿈일 뿐이었다. 아버지를 졸라 처음 도시의 학교로 가게 되었을 때 무사의 나이는 열세 살, 이브라힘은 열한 살가량이었다. 이들은 도시 아이들의 따돌림과 괴롭힘, 경제적인 어려움과 문화적인 차이로 고통 받으면서도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며 공부를 계속했고, 이후 더 큰 도시로 진학해 대학 졸업까지 마치게 된다. 사막의 아이들에게도 배움을 사막에 남은 가족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자신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아는 형제는 이제 자신들이 얻은 것을 투아레그족 공동체에 돌려주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사막의 다른 아이들도 자신들처럼 배움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이들의 학교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사실 투아레그족이 당면한 위기 상황을 절실히 인식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투아레그족은 오랜 세월 동안 사하라 사막을 터전으로 자유롭게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유목생활을 해 왔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 현상과 계속된 가뭄으로 풀 한 포기 살 수 없는 모래땅의 면적이 나날이 확대되어 사막은 이제 유목생활이 불가능한 곳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생존을 위협 받게 된 투아레그족들은 유목생활을 포기하고 인근 도시로 떠나지만, 자신들이 전통적으로 지켜 온 삶의 지혜와 방식이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에 뿔뿔이 흩어져 무력한 소수자, 도시 변두리 빈민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사막의 전사들이었던 투아레그족 공동체가 이제 그 존속 자체를 위협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무사와 이브라힘은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외부 세계를 외면하기보다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전통의 계승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아이들에게 학교 교육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단을 마련해 주는 일이라 판단한다. 학교는 투아레그족 공동체가 당면한 위기, 생존이 위협받는 궁지에서 탈출할 유일한 통로였다. 형제의 이 같은 의지는 그 당위성에도 불구쿇고 실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 교육의 필요성을 투아레그족 공동체에 납득시키는 일부터가 난관이었고 아이들을 다른 부족, 다른 도시의 학교에 적응시키는 일도 두 차례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승부수를 띄운다. 투아레그족의 아이들을 기존의 다른 학교에 맡겨서 교육하는 것이 아닌, 그들만을 위한 학교를 직접 세워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동생 이브라힘이 정보처리기술자라는 보장된 직업을 포기하고 학교를 맡기로 결정한다. 사막 위에 학교를 세우다 마침내 사하라 사막 위에 투아레그족의 작은 학교가 세워졌다. 프랑스에 유학 중인 무사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고, 취지에 공감하는 외부 후원자들의 도움도 있었다. 2007년 2월 24일, 학교는 ‘생텍쥐페리 사막학교’라는 정식 명칭을 내건다. 이제 사막의 아이들에게 배움은 행운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 무사와 이브라힘은 이 책에서 그들 자신이 배움을 얻기 위해 나아간 여정과, 뿌리와 영혼을 지키기 위해 다시 사막에 돌아와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과 새로운 삶을 꾸려 나가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된 다음부터 나도 다른 별들을 탐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을 사랑하려면 우선 사막 밖으로 나갈 수 있어야 했다. 육체의 양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내게는 정신의 양식이 필요했다. 그런 사실을〈어린 왕자〉가 내게 하루하루 일깨워 주었다. (14쪽) 절망감을 느낄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학교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배움을 위해 몇 해 동안이나 힘들게 싸워 왔는데 거기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정말로 외톨이라는 느낌이 들 때면 마을을 벗어나 사막으로 들어가곤 했다. 사막에 가서는 큰 나무 아래 앉아 그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나무를 향해 우리가 배운 것, 우리의 고민, 우리가 얻은 기쁨들을 털어놓곤 했다. 그러면 사막의 고요함 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와 용기를 다시 북돋아 주었다. 언제나 사막은 우리에게 어머니에 대해 말해 준다. 어머니가 사막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네 오는 것이다. (38쪽) 투아레그족 아이들도 읽고 쓰고 셈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 무슨 일인가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꿈을 넘어 하나의 의무가 되었다. 그래야 그 아이들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랐고, 이제 우리가 선택한 그 삶을 살고 있다. (47쪽) 이들은 또한 우리를 사막학교 아이들, 사막별 어린 왕자들의 삶 속으로 인도한다. 이 어린 왕자들은 이제 삶의 또 다른 방식에 눈을 뜨고,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매일 매일을 충실히 꾸려 나가고 있다.(‘푸른 옷의 어린 왕자들’ 편 참조) 사막학교의 한 학생이 어머니에게 보낸 시 바람아, 모래를 실어 가는 김에 우리 엄마에게 내 말도 전해 주렴. 엄마가 보고 싶어,라고 엄마에게 전해 줘. 누이도, 내 염소도, 내 아카시아 나무와 내 모래언덕도 보고 싶어. 나는 글자라는 염소들과 숫자라는 낙타들을 새로 얻어서 돌보고 있어. 암송은 내가 배운 새로운 노래야. 새끼 염소를 제 어미한테서 떼어 놓기가 어렵다는 건 엄마도 알지. 그런 것처럼 음절들도 단어로부터 떼어 놓기 어려워. 음절들은 그 단어의 자식들이거든. 새로 배운 단어의 철자를 제대로 쓰는 일은 다른 사람의 가축 떼 속에서 만난 염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려 보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야. 엄마, 우리 집에서는 할아버지가 옛일을 이야기해 주고, 엄마가 요즘 일들을 이야기해 주지만, 나중의 일은 아무도 모르잖아. 학교에서 나는 과거,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해. 그것이 바로 동사의 시제변화라는 놀라운 것이야. 학교에는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다른 것들도 많아. 지식이 짐, 무거운 짐이라 해도, 나는 지식을 잔뜩 가지고 엄마를 보러 갈 테야. 하지만 엄마, 나는 지금 배운 것이 조금이어서 엄마를 많이 보러 갈 수 없어. 미래에 자리 하나를, 아무리 작은 자리라 해도 마련할 작정이거든. (150-151쪽) 사하라 유목민 투아레그족의 시선으로 문명세계에 전하는 메시지를 담은 책〈사막별 여행자〉(문학의숲, 2007)를 펴내기도 했던 무사는 프랑스의 초등학생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사막의 아이들과 도시의 아이들이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또 동시에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이야기한다.(‘사막학교에는 시계가 없다’ 편 참조) 그는 겉으로 보이는 서구사회의 진취성과 풍요에 대해 솔직하게 감탄하고, 자신이 떠나온 사막의 정체된 모습과 절박한 가난에 연민을 감추지 않는다. 그렇지만 도시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메마름과 물질에의 예속을 놓치지 않으며, 고독하고 척박해 보이는 사막 위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삶의 의미를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역시 잊지 않는다. 우리는 불평할 줄 모른다. 모래바람이 휘몰아칠 때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말없이, 의연히 견뎌야만 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불평을 할 수 있겠는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터라 우리는 고통을 장애물로 여기지 않고, 우리의 생명력을 강화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하나의 단계로 받아들인다. 서구세계에서 삶의 규범이란 무엇보다 고통을 피하는 것이다.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지만, 그러나 또한 고통은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고통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우리는 시련을 견딤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 나는 과거로, 야만시대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고통에 겁을 내면서 뒷걸음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작은 아픔은 하나의 드라마가 되어 거기에서 어떤 가르침을 끌어내게 될 때도 있는 것이다. (169쪽) 사막의 아이 무사와 이브라힘 형제가 때로는 각자의 목소리로, 때로는 목소리를 합해 들려주는 이 책의 이야기는 두 사람만의 특별한 모험 이야기이기 이전에 모든 사막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어느덧 사막별 어린 왕자들의 삶 속으로 따라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어 주는 자연의 속삭임을 믿고 자연이 보내오는 신호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그러기 위해 삶에 고요하고 여유로운 빈자리를 남겨 둘 줄 안다. 그들은 시간 자체를 살며 흘러가는 한 순간 한 순간에 충실하다. 우연히 모래 위에 떨어진 배움의 씨앗을 키우고 가꾸어 나가는 사막 아이들의 성실함과 열정은 그들이 뿌리내린 그런 삶에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양분을 길어 낼 것이다. 작고 소박한 사막학교를 발판 삼아, 아이들은 더 큰 세계를 향해 오늘도 지평선을 넘는다. 매일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배움에 목말라하는지를 보면서 놀라곤 한다. 아이들은 배움이 자유로 나아가는 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처럼 아이들은 언제나 눈을 뜰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아이들은 모든 것에 호기심을 품고 모든 것에 흥미를 보인다. 이들은 배움을 꿀꺽꿀꺽 삼킨다. 그렇지만 이 배움의 삶이란 삼키면 삼킬수록 배고픔을 알게 해 주는 것이다. (97쪽) 사막학교 최근 소식 2002년 18명의 일곱 살 학생들로 시작한 사막학교는 2010년 현재 학생 수가 76명으로 늘었다. 사막학교 기숙사에는 초등학생 76명과 타보예로 진학한 중학생 11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꾸준한 외부 후원으로 여학생 기숙사가 완공되었고 우물 공사 또한 마무리 되어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지니게 되었다. 이 책에 담긴 무사와 이브라힘 형제의 이야기, 두 사람이 학교 교육을 받기 위해 이겨 내야 했던 온갖 역경, 그리고 마침내 사막학교를 세우기까지의 과정은 2009년 프랑스에서〈사막학교〉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사막학교 홈페이지 www.ecoledessables.com) 투아레그족 사하라 사막을 터전으로 하여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유목민 부족. 말리, 알제리, 니제르 등지에 터를 잡고 있다. 극단의 자연환경에서 삶을 이어 온 강건한 기질을 바탕으로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상무역에 종사하기도 했으며 오늘날 말리에서 몇 날 며칠 동안 뜨거운 사막을 건너 암염을 운반하는 일도 이들이 맡고 있다. 푸른 옷에 푸른 베일을 쓰고 단봉낙타에 올라 사막을 누비는 모습으로 잘 알려진 이들이 지녀 온 또 다른 이름은 이모하, ‘자유인’이다. 사막 유목민으로서 이들이 지금껏 지켜 왔으며 앞으로도 지켜 나가고자 하는 전통의 핵심은 바로 자유로움, 즉 자유로운 삶과 자유로운 영혼이다. 1989년에는 사하라 사막 남쪽에 그은 국경선을 구실로 유목민을 차별하는 말리 정부에 맞서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투아레그족 항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항쟁은 1992년 무렵 과격한 게릴라전으로 확대되었다가 1996년 종결되었다. 투아레그족 사진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사진작가 전화식이 13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를 오가며 투아레그족의 두 가족 모습을 찍은 것이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심한 투아레그족과 오랜 시간에 걸쳐 친분을 쌓아 온 작가의 이 사진들은 사막 유목민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