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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들어가며 프롤로그 : 2001년 8월 3일 오후 4시 30분 제1부 정치 비즈니스 제1장 탁신의 등장 제2장 가족과 사업 제3장 정치적 부상 제4장 탁신노믹스 제5장 사회 관리 제6장 정치의 재구성 제7장 권력과 수익 제2부 방콕 전투 제8장 환멸, 포퓰리즘 그리고 시위 제9장 드디어 쿠데타로 제10장 군부와 사법부 그리고 유권자들 제11장 종반전 맺음말 에필로그 : 2008년 7월 31일 오전 10시 30분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
Pasuk Phongpaic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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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아시아에서 가장 극적인 인물, 탁신
그는 어떻게 엘리트 경찰에서 동남아 최고의 통신 재벌로, 다시 일국의 총리에서 극좌혁명가가 되었을까? 21세기 아시아의 모순과 미래를 응축한 탁신을 비판적으로 조망한 탁월한 저서. 뛰어난 경영능력과 도덕성, 국가 지도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최우선 조건은 무엇일까? 태국의 거대한 민주주의 실험에 대한 엄정한 정치경제학 보고서! 최고 지도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뛰어난 정치력과 행정력, 리더십, 추진력, 강력한 의지,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안목, 도덕성……? 만약 뛰어난 자질을 갖춘 지도자가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을까? 혹자는 뛰어난 자질과 능력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혹자는 무엇보다 도덕성이 먼저라고 말한다. 크고 작은 기업체나 회사에서 우두머리를 뽑을 때, 국민의 권익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각종 스포츠계나 문화계의 수장, 심지어 주방장을 뽑을 때도 지도자의 조건은 매우 중요하다. 각각 조직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자질이 우선시될 수 있다. 하물며 국가 지도자의 경우에는 어떠할까? 지도자의 조건에 대한 최소한의 공통된 인식이 우리에게는 존재할까? 그 또한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정해져야 할까? 그 거대한 민주주의 실험이 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권력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탁신, 한편 뛰어난 경영 능력과 소외 받는 대중을 위한 정책을 펼쳐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 받는 그가 해외 망명생활을 접고 다시 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현실 정치에서 능력과 도덕성을 견주어 결코 하나의 잣대만으로 판단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작금의 태국 사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1년 탁신 가족의 재산 은닉 혐의로 법정에 들락거릴 당시 탁신은 말한다. “태국의 고질병을 해소하기 위해 당신은 정치인의 어떤 능력을 원합니까? 만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치인이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됩니다. … 마찬가지로 법을 제정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떤 정치인을 원하는지부터 자문해보아야 합니다.”(16쪽) 레드셔츠와 옐로셔츠의 첨예한 갈등, 그 정치 사회적 배경은 2001년 탁신이 집권한 후 5년간은 혼란스런 태국 정치사의 관점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시기에 속한다. 세 번의 총선거가 치러졌고, 쿠데타가 있었고, 새 헌법이 제정되었다. 암살 음모가 벌어졌고, 방콕 국제공항이 시위대에 점거되기도 했다. 방콕 중심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총리공관이 점거당했으며, 총리와 장관들이 수시로 뒤바뀌었다. 이 같은 갈등은 2006년 1월 탁신이 17억 달러에 가족 회사인 친코퍼레이션을 세금 없이 매각한 사건 이후 더욱 두드러졌다. 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010년 4월, 탁신의 레드셔츠 지지자들은 30년 이래 최대의 정치 시위에 돌입했다. 이 시위는 고매한 정신으로 무장하고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6주가 지나자 점차 분노와 폭력으로 악화됐다. 최종적으로 91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2,000여 명이 다쳤으며, 방콕의 중심가에 자리한 32개의 건물이 불탔다. 양측의 대립은 어느 때보다 첨예했다. 하지만 저자들은 수치상으로 보건대, 외신보도만큼 대립과 갈등의 결과가 극단적인 것은 아니라고 조심스레 진단한다. 또한 저자들은 ‘군주제 수호’와 ‘민주주의 수호’, 혹은 반탁신파와 친탁신파로 양분돼 보이는 혼란의 정치, 경제, 사회적 배경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소득과 부, 권력의 편중에서 야기된 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와 부조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민중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탁신이 ‘민중의 지도자’로 등극한 것이다. 탁신은 어느 모로 보나 태국 정치, 사회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 같은 정치적 환골탈태의 뿌리는 이미 몇 십 년에 걸친 사회·경제적 변화에 있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1986년에서 1996년 사이 태국은 질적으로 변화했다. 불과 10년 만에 1인당 임금이 두 배로 뛰어올랐고, 사람들은 더 많은 재산과 더 많은 열망을 품게 됐다. 1997년 경제위기의 충격 이후 이러한 관심과 열망은 정치에 대한 높은 참여로 이어졌다. 그밖에도 저자들은 정당정치에 따르기보다는 유력한 지역 유지의 입김에 좌우된 태국의 선거풍토, 소수 엘리트와 군부에 의해 지배된 정치문화, 경제성장으로 인한 도시와 농어촌의 빈부격차, 역사적으로 라오스와 크메르에 기원을 둔 북동부와 ‘순수 태국 민족’이 주류를 이루는 남부의 대립 등 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탁신 친나왓의 성장에서 몰락까지, 태국의 정치·사회·역사적 배경 속에서 한 문제적 인물의 행로를 날카롭게 추적한 역저 역사에서 비난과 찬사의 양극단의 평가를 인물은 흔치 않다. 우리에게 맨체스터시티FC의 구단주를 지낼 만큼 엄청난 재벌로 더 유명한 탁신은 과거 태국의 총리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네 번의 선거에서 태국 민주주의 역사상 어떤 지도자보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국가를 분열시킬 만큼 감성적인 선거운동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으며, 태국 민중을 부추겨 혁명 시위대를 일으킴으로써 군부의 공권력 행사를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탁신 집권기인 2004년 태국 경제는 6∼7퍼센트 성장했고, 이는 1997년 버블붕괴 이후 최고의 성장률이었다. 주식시장 지수는 794포인트로 탁신이 총리에 오르기 직전의 268포인트에 비해 세 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책에는 중국계 친나왓 가족의 역사적 배경부터 경찰 출신의 탁신이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 또한 이동통신, 위성 등 각종 사업에서 경찰계 인맥을 활용해 거대한 부를 이루게 된 배경 등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또한 불과 몇 년 사이에 짬렁이 이끌던 팔랑탐 당의 당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탁신이 1997년 금융위기와 헌법개정을 기회로 집권당인 민주당의 틈새를 비집고 정치적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 과정은 특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제2부에서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애초에 근대주의자, 민족주의자로 자신을 포장했던 탁신이 포퓰리스트로 변모하고, 결국 쿠데타로 실각하여 정치적 망명을 택함으로써 최대 위기에 봉착하게 된 과정과 함께 그가 태국 정치, 사회, 문화에 끼친 영향을 자세히 설명한다. 또한 책에는 탁신의 경제, 사회, 문화정책과 더불어 군부 및 정치인들의 역학 관계, 그에 따라 지지집단이 어떻게 변화돼왔는지도 세밀히 그려져 있다. 개혁가, 포퓰리스트 탁신의 변신 1998년 7월 타이락타이(TRT) 당을 창당한 탁신은 야심 차게도 매우 급진적인 방식으로 태국을 개조할 계획을 세웠다. 탁신은 맨 먼저 엘리트 관료들의 타성에 의지하지 않고 경제인들을 중심으로 한 경영방침으로 국가를 이끌었다. 2001년 초 탁신은 금융위기에서 살아남은 여러 대기업들을 이끌고, 현지 자금 시장을 보호하고 촉진시키기 위해 권력을 쟁취하고자 시도했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탁신의 정치적 부상은 기업이 지배하던 태국의 ‘금권정치’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그 스케일의 변화는 상상 이상이었다. 탁신은 동원 가능한 자본을 의석수, 곧 권력으로 바꾸어놓았다. 저자들은 이것이 단순한 ‘금권정치’를 넘어선 ‘거대 자본정치(big money politics)’라고 명명한다. 사실 탁신은 2001년부터 선거 정책으로 인해 ‘포퓰리스트’로 불렸다. 하지만 그 이후 증가하는 권위주의와 마약과의 전쟁에서 휘두른 폭력 등을 이유로 그의 열광적 지지자였던 시민운동가, 학자, 종교인 등이 떨어져 나가고, 재산 은닉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이 내려짐으로써 개혁가, 민족주의자, 변화의 주역, 국내 자본의 수호자로서 신뢰를 잃어가자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지지층을 ‘민중’으로 전환했다. 이 시기 가족의 재산 은닉 혐의에 대한 유죄판결에 대항하기 위해 자주 법정에 나섰던 탁신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아갔다. 2005년 선거에서 탁신은 마을금고의 확대, 신규 저리 융자, 소의 무상 분배, 저렴한 수업료, 빈곤층 아동을 위한 특별 지원금, 값싼 전화요금, 슬럼 지역 철거 연기, 저렴한 주택 공급, 낮은 세금, 건강보험을 위한 투자 확대, 전국적 관개 계획 등 선거 공약을 더욱 정교화했다. 탁신은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행동하자”던 2001년의 모더니즘 구호를, 2005년 선거에서는 “TRT의 심장은 인민이다”는 격렬한 포퓰리즘으로 대체했다. 인민의 심장 혹은 탐욕스런 사업가, 탁신의 포퓰리즘 정책의 진정성에 대한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자들은 탁신이 비즈니스와 국가를, 혹은 태국이라는 나라와 자신의 사업적 이해득실을 혼동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말한다. 하지만 탁신이 스스로를 진짜 혁명 지도자로 생각했는지 혹은 2008년 망명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정부에 모종의 타협안을 제시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일종의 협상이 진행 중이었고, 탁신이 동결 재산의 절반을 챙기는 대신에 모든 소송을 기각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감성적이고 뛰어난 연설과 지능적인 언론 플레이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탁신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탁신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또한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는 소외받던 대중을 민주정치의 맨 앞으로 내세웠다. 대중이 주인이 되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소리 높여 외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탁신의 포퓰리즘 정책의 진정성이 어디에 있었는지 우리는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러나 그가 소수 엘리트 중심의 과두 정치를 펼쳤던 태국 정치 사회에 심오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으로 탁신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 탁신이 말하는 혁명에 대한 열정이 진실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동결된 재산을 회복하기 위? 그럴듯한 포장일 뿐일까? 정말 탁신이 민중의 위대한 영웅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부패한 정치인으로 정치계에서 사라져갈지 저자들은 판단을 유보한다. 곧 이어 다시 한 번 총선을 앞두고 있는 태국 국민의 선택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