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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레이시아의 주요 역사적 사건
□ 말레이시아 국왕 연대표 □ 말레이시아 총리 연대표 □ 책을 읽기 위한 간단한 용어 설명 □ 주요 인물 정리 □ 서문 1장 총리가 되다 2장 가족의 소중함 3장 나는 말레이다 4장 말레이 이야기 5장 학업, 그리고 환상을 깨기까지 6장 전시의 최고 경영자 7장 대오각성 8장 정치적 승리 9장 긴급조치 10장 의과대학에 진학하다 11장 동맹의 탄생 12장 이론에서 실전으로 - 나의 외과의사 시절 13장 툰쿠, ‘말레이시아’를 제안하다 14장 정치의 쓴맛 15장 암노에서 추방당하다 16장 거친 재야에서 활동하며 17장 아웃사이더의 비애 18장 말레이 딜레마 19장 암노, 문을 열다 20장 다시 현장 속으로 21장 정치라는 사다리 위로 오르다 22장 정치 스승 툰 라작의 죽음 23장 교육부에서 통상산업부로 24장 2인자로서의 낙담 25장 드디어 정상에 오르다 26장 생각에서 실천으로 27장 정부가 일하는 방식 28장 베르시, 체깝, 아마나(청렴, 효율, 신뢰) 29장 동방정책 30장 안와르의 암노 입당 31장 말레이시아를 세계에 알리다 32장 빼앗긴 기업을 되찾다 33장 공정한 부 34장 이슬람 그리고 이슬람화 35장 민영화를 도입하다 36장 살아나는 성장 동력 37장 당의 분열 - A팀과 B팀 38장 지울 수 없는 오점, 랄랑 작전 39장 새로운 도전, 새로운 해답 40장 비전 2020? 41장 말레이시아의 상품화 42장 아세안의 성장 43장 법과 질서: 경찰, 정치인 그리고 대중 44장 멀티미디어 집적단지 건설 45장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 46장 신행정수도 푸트라자야 47장 1997년 통화 위기 48장 안와르의 도전 49장 금융위기의 악영향 50장 가장 힘들었던 1999년 선거 51장 9?11, 그리고 무슬림 세계 52장 말레이시아 교육에 관해 53장 드디어 사임하다 54장 이슬람회의 기구(OIC)의 분노 55장 싱가포르와의 갈등 56장 유산과 새로운 딜레마 □한국어판 출간에 붙여 □역자 후기 |
Tun Dr. Mahathir bin Moha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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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가문 출신의 의사에서 총리로
“이와 달리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정치에 뜻을 둔 무렵에 매달 90링깃의 연금을 받는 전직 교장선생님의 아들에 불과했다. 말라야는 여전히 봉건주의에 놓여 있었고 평민 출신이 국가 지도자로 등극한 예가 없었다. 나는 그 틀을 부수고 평민도 국가를 지도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제는 평범한 사람도 총리가 될 수 있고 귀족 계층과 동등한 존경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또한 최초의 총리 세 명은 런던에서 교육받은 법조인 출신이었다. 싱가포르에 있던 말라야 대학교(현재의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은 나는 그 사실만으로 약점을 안고 있었다. 의학이란 정치인을 위한 적합한 자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정부와 의회의 입법 기능 연계로 인해 법조인이 정치인으로 적합하다고 여겨졌으며, 의사는 법률은 물론이고 복잡다단한 행정 분야에 전혀 훈련받지 못한 것이다. 나는 또한 반항아이자 골칫덩어리였다. 후견인조차 없었다. 1969년 감히 툰쿠를 비판했다는 명목으로 암노에서 축출당했다. 이것만으로 나의 정치 이력은 끝이었다. 유사한 전례도 있었다. 툰쿠의 초대 내각의 농업 장관이던 아지즈 이샥Aziz Ishak이 그 주인공이다. 비료를 외국 회사에 의존하던 농민들을 돕기 위해서 그는 비료 공장 설립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런 정책으로 외국 회사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툰쿠는 아지즈를 내각에서 쫓아내고 만다. 결국 암노에서 추방된 그는 끝내 복권을 허락받지 못했다.” ---p.「제 1장 총리가 되다」 중에서 @ 말레이시아에서의 종족 화합 유럽인들은 말레이인들이 종족의 차이를 다루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방식을 무시해 왔다. 하지만 그들이 과거에 아메리칸 원주민들이나 캐리비언 및 호주 그리고 인도 원주민을 어떻게 다뤘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평등한 세상이란 명분으로 프랑스와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수천 명이 죽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죽음과 학살은 혁명 이후에도 계속됐다. 말레이시아의 길은 누군가에게 불공평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거나 재산이 몰수되는 일이 없었다. 우리는 파이를 크게 키우지 않고도 커다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파이의 가장 큰 조각이 일자리를 통해 빈민들에게 돌아갔다. 우리의 높은 경제성장은 물론 안정된 국가로 변신했다. 심지어 폭력 사태가 빈발했던 아시아 금융위기의 와중에도 우리나라에서만은 그 어떤 인종 폭력도 발생하지 않았다. 혹자는 우리의 신용 저하를 얘기하고 조롱한다. 그들이 내게 평등함과 공정함이라는 ‘정치 철학’을 설교했을 때, 나는 제국주의가 결단코 식민지 인민을 평등하거나 공정하게 다룬 일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불쾌감을 드러내자 그 순간 독재자로 낙인 찍혔다. ‘마하티르’란 이름 뒤에는 종족주의에 대한 편향이나 내 부하들이 나를 대신해 감옥에 갔다는 등의 부정적 언급이 따라다녔다. ---p.「제3장 나는 말레이다」 중에서 @ 말레이 딜레마 극복 신경제정책 이전에는 수리공이나 기계공으로 일하는 말레이는 전무했다. 그러나 오늘날 에어컨 수리를 요청한다면 대개 찾아오는 전기 기술자는 말레이이다. 이들이 에어컨 수리를 위해 사다리를 펴서 올라가 공구를 다루는 모습에 나는 마음이 훈훈해진다. 또한 말레이는 국민차 공장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 직접 자동차를 설계하고, 점토 모델을 만들고, 원형을 모아 준비하고, 테스트하고, 조립 프로그램을 짜고, 대량으로 생산해 낸다. 이런 복잡다단한 기술을 불과 신경제정책 이후 17년 만에 습득한 것이다. 국산차의 성공은 말레이가 현대산업을 마스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을 입증한다.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나스PETRONAS의 걸출한 성과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법인인 페트로나스는 《포춘Fortune》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목록에 올랐을 정도이다. 페트로나스는 세계 40여 개국에서 메이저 석유 회사들과 경쟁하고 있다. 석유 채굴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쳐 있다. ---p.「18장 말레이 딜레마」 중에서 @ 동방정책의 성과에 대하여 하지만 첫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공무원을 비롯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가 일본을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일이다.”고 반응한 것이다. 훨씬 앞서간 유럽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유럽을 모방한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기보다는 아예 ‘원류原流’인 유럽으로 직행하자는 논리였다. 이들은 유럽이 200년에 걸쳐 서서히 발전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 일본은 방금 산업화를 이루었던 탓에 직면했던 역경과 고난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서구의 경험과 업적을 무시하자는 얘기는 아니었다. 우리는 반드시 배워야 하지만 이왕이면 최근에 경험한 나라로부터 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산업혁명의 과정을 기억하는 유럽인은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못했다. 반면 일본인과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그간의 어떤 과정을 거쳐 산업화의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동방정책’ 이전에 우리 국민들은 타인과 비교해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서구인들과 교류하거나 함께 있을 때, 스스로를 왜소하다고 느꼈다. 우리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추락했고 나는 무엇인가 해야만 했다. 억압된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도, 다른 누군가가 한 일이라면, 할 수 있고 나아가 더욱 잘 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20년 전에 당신이 말레이시아 기업에게 사우디아라비아에 발전소를 건설하라고 요청했다면 아마도 ‘그림의 떡’ 같은 허무맹랑한 얘기로 전해졌을 것이다. 우리가 클랑 항에서 쿠알라룸푸르로 이어지는 연방 고속도로를 건설하고자 했을 때 이 계약은 일본계 미쓰이三井가 따냈다. 단지 길 하나 놓으려고 해도 일본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국민들은 전 세계에 도로와 정유공장 그리고 발전소까지 건설하고 있다. 과거에 말레이시아에서 길을 만드는 최고의 재주꾼은 인도인이었지만 오늘날엔 우리가 인도에 길을 건설하고 있다. 우리가 동방정책을 시작하고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이뤄진 셈이다. ---p.「29장 동방정책」 중에서 @ 아시아적 가치의 천명 서양의 지식인들은 종종 ‘아시아적 가치’ 따윈 없다고 말한다. 어디서나 가치란 동일하며 특히 그들의 가치가 보편적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분명 보편적 가치란 존재할 것이다. 나아가 아시아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아시아식 풍습과 전통에 영향을 받은 강력하면서도 훈련된 아시아적 가치도 분명 존재한다. 아시아인이라면 서구인이 신봉하는 폭력적인 경쟁, 잔혹한 시합 따위는 믿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서구식 갈등해결 방법이란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파괴적이다. 예를 들어 전쟁이란 무력의 궁극적인 시험대가 된다. 과거의 끔찍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승자가 언제나 옳았던 쪽이 아니었다. 종종 악의 힘이 승리한다. 이는 이들의 살생 능력과 파괴 능력의 우위 덕분이다. 분명히 아시아인들도 전쟁을 벌였지만 서구인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로 동양적 또는 아시아적 가치에 있다고 확신한다. ---p.「제29장 동방정책」 중에서 @ 한국과의 관계 “나는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애썼다. 일본은 우리의 ‘동방정책’에 투자하고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오늘날 많은 말레이시아인들은 일본과 한국에서 공부하고 훈련을 받았다. 일본과 한국에서 그들은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그 두 나라의 성공의 근간이 된 근로 윤리를 배울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우리에게 낙후된 나라가 훌륭한 산업 국가로 도약을 할 수 있는 가장 최신의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산업화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p.「31장 말레이시아를 세계에 알리다」 중에서 @일본은 왜 실패했을까? 지나치게 서구의 비판에 귀를 기울였다 “내 일본인 친구들은 일본의 경기 불황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내가 여전히 일본을 바라보는지 궁금해한다. 나는 그렇다고 답한다. 누군가의 성공적 모험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수를 통해서도 그들의 대처방법과 극복하는 방안을 배울 수 있다. 유능하고 재주있는 사회와 지속된 문명에서는 언제나 배울 점이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전후 수십 년 동안 아주 잘해 왔다. 분명 그들이 채택한 제도나 정책 모든 측면에서 제대로 작동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경제를 관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불황 속에 몸부림쳤고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그 하락에 대응하지도 이를 반전시킬 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일본이 경제회복에 무력한 이유를 이후, 우리가 모방했던 그들만의 시스템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결론 내렸다. 어떻게든 일본은 스스로를 틀렸다고 인식했고, 이는 아마도 서구의 비판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서구의 권위자들이 제안한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장점을 갖다 버린 것이다. 더욱 심각한 대목은 급작스러운 변신을 꾀해 해악적인 후폭풍이 밀려왔다는 것이다. 일본의 장기적인 불황을 촉발한 원인이 된다. 경기회복은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잦은 행정부의 변화와 당혹스러운 정책 전환이 반복됐다. 일본이 놓친 것은 바로 일관성일 것이다..“ ---p.「제29장 동방정책」 중에서 @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한 반대 미국의 모든 악행은 ‘위대한 나라’에 대한 나의 증오심을 키워 냈다. 나는 어릴 시절 친미親美주의자였다. 모든 면에서 미국인을 존경했다. 그들은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했고 나는 미국의 핵무기가 말라야를 구했다고 믿는다. 당시 일본은 ‘초토화 전략’으로 연합군의 상륙에 대비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 끔찍한 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일으킨 공포를 감히 상상도 못했다. 전쟁 후에도 우리 국민은 미국을 존경했지만, 훗날 미국으로 인해 당황하기도 했다. 우리와 인도네시아가 대립하자 미국은 인도네시아를 지지했던 것이다. 훗날 미국이 수카르노 대통령을 하야시키기 위해 힘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는 CIA의 특기인 ‘정권 교체 공작’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와 우호적인 인도네시아 정부를 탄생시켰기 때문에 미국의 이웃나라 내정 간섭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p.「제31장 말레이시아를 세계에 알리다」 중에서 내가 볼 때 미국이 이라크에서 보인 행동은 백주대낮의 강도짓과 같았다. 특히 ‘적이나 혹은 한 나라가 자국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만으로도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신 개념이 소개됐다. 모든 국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세우고 있는 시대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의심에 근거한 전쟁이란 무시무시한 일이다. 누구라도 의심할 수 있지만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닌 단 한 국가만이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것이다. 약소국인 경우는 절대 선제공격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선제공격의 원칙을 정당화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무한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누구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p.「제51장 9?11, 그리고 무슬림 세계」 중에서 미국은 이제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 실수였다고 인정하지만, 진짜 실수는 자국의 군사력이 천하무적이라는 생각하는 것 그 자체일 것이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전쟁이란 더 이상 강자가 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며 평화를 보장하는 수단도 않는다. 그러나 유럽의 종족주의자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힘을 과시하는 것을 좋아한다. ---p.「제51장 9?11, 그리고 무슬림 세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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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티르를 모른다면 아시아의 절반 이상을 외면하는 것”
말레이시아의 박정희이자 김대중, 또한 노무현의 기질과 안철수의 정밀성을 지닌 마하티르를 만난다 ‘아시아의 대변자’ ‘반 서방주의자’ ‘동아시아 통합주의자’ ‘신자유주의’를 넘어 ‘아시아적 가치’와 상생의 비전을 세우다 1. 대통령선거가 코앞인 지금, 왜 마하티르가 주목받는가?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초미의 관심이다. 급변하는 세계 정치와 경제의 요동에서 한국과 한민족을 이끌어갈 대통령이 어떤 지도자이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말레이시아 근대화의 아버지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툰 닥터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의 자서전이 출간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책은 아시아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한 정치인의 자서전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하티르 말레시아 전 총리는 그야말로 말레이시아의 산업화를 만든 국부이다. 동남아시아의 농업국이자 빈국이었던 말레이시아를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잘사는 통상 국가로 만들었다. 이점에서 마하티르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궤를 같이한다. 심지어 22년간의 철권통치로 민주화나 인권 등의 문제가 제기된 것도 판박이처럼 똑같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인들은 여전히 그를 국부로 칭송하고 있다.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자이자 대표적 비주류 경제학자인 장하준도 인정하듯이 신자유주의에서 경제성장은 국가의 존립 자체이므로, 차기 지도자는 복지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성장이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마하티르가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1997년 IMF 경제위기에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IMF 처방을 받아들여, 막대한 국부를 잃어가며 이를 극복했지만 마하티르는 IMF가 요구하는 긴축재정 대신 금리인하와 고정환율로 위기에 맞섰고 결과적으로 성공하였다. 물론 우리와 상황이 다르지만 미국과 신자본주의에 맞서 ‘아시아적 가치’를 내건 상징적 인물인 것이다. 이점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철학적 기반이 맞닿아 있다. 실제로 서로 존경하는 사이로 알려진 같은 시대의 두 지도자는 아시아 중심 외교로 뜻을 같이한다. EAEC(동아시아 경제공동체 East Asia Economic Caucus)를 주창하며 One Asia를 외쳐 서방 중심의 세계에서 탈피하려 노력했다. 같은 지역에서 존경받는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의 친서방 정책과는 다른 맥락이다. 또한 말레이시아의 뿌리 깊은 종족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말레이시아를 성숙한 이슬람 국가의 상징으로 만든 점도 크나큰 업적이다. 마하티르의 정치적 행동력과 기질 또한 유명하다. 말레이시아의 독립 운동가이자 초대 총리인 툰쿠와 한판 대결을 벌이며 당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감수하기도 했던 마하티르는 신념 앞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기질과 과감함으로 어려운 정치적 순간들을 돌파해갔다. 기질적으로는 노무현과 비슷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원제가 ‘A Doctor in the House’이듯이, 마하티르가 의사 출신의 지도자라는 점이다. 묘하게도 한국 상황과 맞닿아 있어 흥미롭다. 의외로 의사 출신의 세계적 지도자가 많다. 중국의 손문, 쿠바의 체 게바라,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를 의사 출신의 세계 3대 지도자라 부른다. 책에서도 말하지만 의사이기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풍부했으며 외과의사의 정밀한 과학적 인식과 처방이 정치에도 적용되었다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마하티르 총리는 병든 환자를 수술할 것이 아니라 나라가 부패했으니 나라를 수술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라는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아시아의 거인은 22년의 철권통치 후 “단 몇 명의 국민이라도 나의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면 물러가는 게 순리”라며 드라마틱하게 권력을 이양한다. 이후 강연과 집필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에도 많은 인간관계를 갖고 있다. 최근 어느 일간지와의 자전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한국의 성장 동력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National Pride)이라고 여전히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2. ‘아시아적 가치’ 에 대한 논쟁은 끝이 났는가?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쟁은 시대에 뒤쳐져 보인다. 당초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찾기 위해 1970~80년대 서구에서 시작된 논의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1990년대 말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동아시아의 문화의 문제점(연고주의 정경유착 독재 등)이 거론되며 소강상태를 맞았던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동아시아의 독자적 발전방향에 대한 고민은 지속되어 왔다지만 그 담론에 ‘아시아적 가치’란 제목은 빠져 있었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야말로 당시 막 성장하던 아시아 각국들에게는 지우기 힘든 충격과 부끄러움이었다. 과연 아시아의 급성장과 쇠퇴는 모두가 ‘아시아적 가치’ 탓인가? 그 와중에 아시아의 민주주의 전통과 보편적 민주주의를 주장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리콴유 전 총리 사이의 국제적 논쟁은 「포린어페어tm」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이에 질세라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도 《타임》지나 APEC 회의 등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과 날카로운 각을 세운 바 있다. 특히 마하티르 전 총리는 IMF 구제금융 바람이 아시아를 휩쓸 당시 ‘IMF 모범생’이라고 불린 대한민국과는 정반대의 길인 ‘고정환율제’를 택해 한국에서도 큰 담론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서구에 할 말을 하는 마하티르의 존재는 무척 낯설었고, 때론 무식함의 상징으로 서술되기도 했을 정도다. “말레이시아의 독특한 처방을 그대로 놓아두기 바란다. 처방이 잘못되었다면 우리가 대가를 치를 것이고, 성공하면 세계가 우리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게 될 것 아닌가?” (1997년 11월15일, 마하티르) "헤지펀드(국제투기자본)가 우리 돈을 강탈해 갔다. IMF의 식민지가 되느니 차라리 굶어 죽겠다“ (1997년 10월, 마하티르) 전 세계의 우려와 달리 말레이시아의 저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의 현대화를 추진한 공을 널리 인정받는 또한 근검절약, 가족주의, 근면, 교육열 등의 가치가 아시아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아시아 가치의 옹호자’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가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한 역사적 배경이 무엇인지, 그의 철학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리고 IMF가 발생한 지 15년이 지난 오늘, 유럽에는 치명적인 금융위기가 닥쳤고 미국의 경제는 뚜렷하게 회복 기미가 없다. 유일하게 남은 동아시아가 미래의 세계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에 대한 모호한 해답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다시금 마하티르를 아시아의 중심 담론으로 끄집어내 본다. 그의 세계관이란 과연 구태의연한 아시아의 치욕과 오욕의 상징인지, 혹은 우리가 보고 참고할 거리가 남은 고전(古典)이 될 수 있을지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 왜 마하티르는 논쟁적인가? 무려 22년간의 말레이시아 총리 재임기간 동안 마하티르는 자신의 조국을 후진적 농업사회에서 전 세계 17위의 무역대국이자 산업국가로 바꿔놓았다. 이 같은 놀라운 성과가 아무런 논란 없이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마하티르의 남다른 비전과 철혈 통치는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정적(政敵)들과 동시에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양산해내기도 했다. “일본과 한국을 따라 배우자”는 ‘동방정책 Look East Policy’이란 마하티르의 근대화 프로젝트로 인해 동북아시아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서구사회에 순종적이지 않던 그를 ‘폭압적인 독재자(Tyrannical dictator)'나 'a b?te noir(기피인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종족주의자’ ‘반유대주의자’라고도 부른다. 이와는 정반대로 제3세계에서 그는 ‘최고의 선지자’ ‘제3세계를 우뚝 서게 만든 흔치 않은 지도자’ 심지어 ‘용맹무쌍하면서도 영감을 주는 속 시원한 수호자’로 통한다. 그의 극렬한 비판자들이라고 해도 그가 세계의 변방에 있던 국가들에게 용기를 건네고, 보다 희망찬 미래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한다. 그는 거의 모든 역사적 주요 국면에서 기존의 규칙을 새롭게 고쳐 쓴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이 책에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와 영국의 재침략 시절을 거쳐 독립과 산업화를 통해 현대적인 말레이시아 건설하는 대목, 나아가 199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와 그 이후에 이르는 역사 발전의 한가운데서 마하티르가 표출했던 비범한 사고와 행동의 근원을 차근차근 살펴 들어가고 있다. 이때까지 감춰져 있던 아시아의 거목의 진면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 아시아의 거인의 눈을 통해서 동남아의 주요 국가인 말레이이사의 정치 역사의 형성을 명쾌하고도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전달한다.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겪었을 법한 20세기의 아시아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총리 고문인 리콴유의 라이벌로 널리 알려진 그는, 여전히 말레이시아 정계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막후 실세다. 때문에 현직 정치인에 가깝기 때문에 설명은 변명이나 디펜스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마하티르가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위대한 성취를 했는지에 대한 강력하고도 때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런 성과가 아무런 논쟁 없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22년 집권 동안 그는 독재와 비전이란 양극단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그간 마하티르에 대해서는 ‘말레이시아판 박정희’라는 등식으로 설명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일생을 되짚어 보면 매우 다양한 마하티르의 모습을 만날 수가 있다. 초대총리인 툰쿠와 갈등을 빚고 당에서 축출될 때의 모습에서는 노무현이 떠오르고, 서방세계와 제3세계와의 줄타기 외교를 하는 모습에서는 마치 김대중이 연상된다. 의사로 20년간 봉직한 대목에서는 안철수가 오버랩되기도 한다. 여기에 외과의사의 정밀성을 가진 ‘닥터 마하티르’가 근대 말레이시아의 형성기 미묘했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이 수행했던 역할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토로한다. 4. 이슬람 혁신의 선두주자, 마하티르 마하티르는 전 세계 13억 이슬람 문화권 가운데 말레이시아를 가장 현대적인 국가로 개조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책의 34장인 ‘이슬람 그리고 이슬람화’에 그의 종교 이슬람에 대한 해석이 수록되어 있다. - 이슬람 문화의 정수란? “무슬림에게 약속을 지키고, 정직할 것이며, 쾌락을 얻지 말고, 지식을 추구하고, 움마ummah(전 세계 이슬람 공동체)를 지키고, 고아들을 돌보고, 유산을 정해진 대로 나누고, 화해를 받아들이고, 공정하게 판단하고, 의사 결정을 하는 데 있어 증오심이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며, 개종을 강요하지 않도록 명하는 명확한 절들이 있다. 이 밖에도 무슬림의 생활 방식을 이끌어줄 뿐만 아니라 명예롭고 강직한 사람이 될 수 있게 하는 많고 많은 절들도 있다. 무슬림은 또한 현세에서 자신의 노력을 통해 성공을 이루어야 하지만, 현세에서의 행동이 심판 받고 자신의 행동에 따라 벌을 받거나 보상을 받게 되는 내세를 잊어서도 안 된다.“ ---p.488 - 이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많은 무슬림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슬람은 ‘삶의 방식way of life’인 것이다. 이슬람은 단순히 ‘신앙faith’이 아니라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법에 관한 종합 안내서이다. 정해진 대로 살아간다면 인간의 내세來世, 즉 악히랏은 코란에 약속돼 있는 것처럼 만족스러울 것이다. ‘삶의 방식’이란 단지 종교 의식을 수행하는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p.488 -이슬람은 왜 서구문명에 뒤쳐졌는가? “나는 무슬림들이 뒤처진 이유 중 하나가 과학 분야에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므로, 이와 같은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고 여긴다. 모든 현상을 알라의 뜻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만, 과학의 ‘어떻게’를 공부하지 않음으로써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알라가 창조한 것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 문명에 가장 큰 해를 끼친 것은, 과학은 세속적이고 종교적이지 않기 때문에 공부해서는 안 된다고 식자들이 무슬림들에게 결론짓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한 가르침 직후에 무슬림들의 문명은 퇴보했고, 결국 무슬림들은 약해지고 스스로를 지킬 능력을 잃게 됐다. 더 나쁜 것은 그 식자들이 이와 같은 퇴보를 순전히 알라의 뜻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알라가 스스로를 돕기 위해 먼저 노력하는 움마ummah만을 도울 것이라는 가르침을 무시한다. 분명 과학 지식을 획득하는 것은 무슬림들에게 움마를 지킬 능력을 줄 것이다. 이를 행하지 않는다면 기도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p.495 - 이슬람 문명권이 서구에 뒤진 결정적인 이유는? “수세기 동안 무슬림들은 과학, 의학, 수학 분야에서 다른 문명을 크게 앞섰다. 하지만 서기 15세기 즈음에 독서는 종교 지식만을 읽고 습득하는 것을 말한다는 새로운 해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종교를 연구하는 것만이 학자들에게 가치가 있으며, 다른 연구, 다른 지식 분야는 모두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을 내린 자들은 종교를 깊이 연구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연구한 특정한 분야가 최고로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었음이 틀림없다. 종교 연구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15세기 무렵 무슬림 학자들이 다른 학문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 감소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슬림들은 그러한 다른 분야에 매우 무지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무슬림들이 과학 연구를 배척하기 시작한 바로 그 즈음, 암흑시대에 살고 있던 유럽 기독교인들이 무슬림 문명의 우월성을 알아채고 무슬림의 지식을 얻기로 결심했다. 기독교 사제들은 아랍어를 배우고 무슬림 세계의 거대한 도서관에서 과학 및 다른 분야의 책들을 연구했다.“ ---p.489 5. 수상이 된 외과의사, 닥터 마하티르 의사 출신의 세계 3대 지도자 ① 중국의 손문(孫文) ② 쿠바의 체 게바라 ③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 손문 [孫文] 1866 ~ 1925 쑨원이라고 부른다. 중국 혁명의 선도자·정치가. 공화제를 창시하였다. 그의 정치는 삼민주의(三民主義)로 대표된다. 호는 중산(中山)으로 중화민국의 아버지다. 홍콩과 하와이에서 서양의학 공부. * 체 게바라 [ Che Guevara ] 1928.6.14 ~ 1967.10.9 아르헨티나의 의사출신으로 쿠바 정치가·혁명가. 멕시코에 머무르면서 쿠바혁명에 참가하였다.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게릴라 부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붙잡혀 총살당했다. * 마하티르 빈 모하맛 [ Mahathir bin Mohamad ]1925 ~ 생존. 의사 출신의 정치인의 장점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법의 원리’와 ‘의학의 원리’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배우게 됐다. 변호사는 그들이 계약한 관점, 즉 의뢰인의 관점으로 모든 사건을 파악한다. 그에 반해 의사란 정확한 진단을 위해 환자의 질병을 여러 관점에서 따져 본다. 만일 변호사가 누군가를 변론해야 한다면 적확한 증거를 수집하고, 필요하다면 법의 맹점을 찾는 것도 불사한다. 설령 의뢰인이 유죄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의사는 모든 선입견을 무시하고 질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 들어간다. 직업적 필요에 의해 변호사는 편파적으로 사고하는 반면 의사는 객관적인 진리를 탐구한다. 적어도 객관적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만일 정치인들도 정책이나 개발 계획 그리고 선거 전략들에 영향을 끼치는 근본 원인을 추적해 실질적으로 해결하려면 의사와 같은 방식으로 해야 한다. 또한 의학이란 인간을 좀 더 잘 이해하게끔 도왔다. 특히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무엇이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무엇인지 알게 됐다. 모든 직업인이란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이 약해질 때는 반드시 의사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폭넓은 사회 집단과 교류하고 그들의 사적인 취약함을 알게 됐기에 인간 본성에 대해 더 나은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p.326 ○ 전 세계 지도자들이 존경했던 ‘오만한 아시아인’ 마하티르 ○ “제가 존경했던 해외 지도자들은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 중국의 장쩌민 등입니다. 물론 닥터 마하티르도 포함됩니다. 그는 1997년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고정환율제 실시라는 바른 결정을 한 사람입니다. 또한 그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은 분명히 밝혀졌습니다.” -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2008년 12월 24일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빈국 지원의 필요성’ 강연 중 “마하티르 총리께서는 동남아시아 10개국을 아세안에 모두 참여시키는 ‘아세안 10’의 성립을 주도하셨고, ‘아세안과 한중일’ 정상회의 역시 동아시아 협력의 미래를 내다본 각하의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아웅산 수지 여사의 연금해제가 이루어진 데에도 각하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평소 애창하시는 ‘마이 웨이’의 노랫말처럼 신념과 자존의 확고한 철학으로 말레이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이끌고 계신 각하에게 마음으로부터 찬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2002년 5월 23일,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실현과 공동번영’에 대한 연설 중- “한국 사람들은 말레이시아를 얘기할 때 처음 떠올리는 것이 바로 총리 각하의 이름입니다…오늘 ‘동남아국가연합ASEAN+한중일’ 정상회의에서 각하의 말씀을 듣고 특별한 감명을 받았습니다. 굉장히 커다란 철학적 토대가 있는, 미래를 내다보는 메시지를 밝힌 데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2003년 10월 7일, ‘미 달러화에 대항하는 아시아권의 독자 통화의 개발 필요성’에 대한 마하티르 연설에 대한 화답- “투철한 사명감과 강한 신념, 멈출 줄 모르는 추진력, 여기에 예리한 통찰력까지 갖춘 마하티르 수상을 나는 미래 정치인의 한 표본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 『신화는 없다』(1995) 가운데-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은 외과의사 출신입니다. 병든 환자를 수술할 것이 아니라 나라가 부패했으니 나라를 수술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거지요.” - 반기문 UN 사무총장·2012년 8월 13일 ‘의대생이여 세계를 치료하라’ 강연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