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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정의의 열 가지 얼굴1. 기본이 곧 정의다모든 영역의 기본은 정의로 통한다 | 정의가 무너진 사회 | 나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너그럽게 | 잘되도 내 탓, 못되도 내 탓이다 | 곧은 것을 굽은 것 위에 둔다 | 차이 나는 것들의 공존 방정식을 찾아라 | 정의는 바로 곁에 있다2 고른 분배와 파이 키우기세 모녀를 구하지 못하는 ‘세 모녀 법’ | 분배가 고르면 사회가 안정된다 | 흙수저 제자의 등을 두드려주다 | “히야, 이 떡 공평지게 농구자.” | 시장에 답이 있다 | 금수저 제자의 부를 격려하다 | 정의로운 재벌의 조건3 수제자의 요절과 기준선 재정렬쌀독이 자주 비던 수제자, 안회 | 부의 대물림과 수저계급론 | 존 롤스와 기준선 재정렬 | 기회의 균등과 중용4 공리주의와 공동체의 행복염유의 이유 있는 항변과 탐욕에 대한 심판 | 마땅한 것을 마땅한 자에게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 공리주의는 항상 옳은가 |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것들5 거룩한 분노와 화해누가 귀향을 가로막는가 | 제대로 미워해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 필리버스터와 거룩한 분노 | 화해에 이르는 용서6 애국심과 미덕에 대한 포상청년들의 애국심과 안중근의 신념 |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 | 국가 안보와 시민 윤리7 갓끈 씻는 물과 발 씻는 물흙수저 청춘, 공자 | 학문에서 밥이 나온다 | 정치는 참여로 바꾼다 | 큰 원칙을 세우기 위해 작은 원칙은 버린다 | 사문난적을 처단하다 |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탁한 물에는 발을 씻는다8 정의는 습관이다누구나 정의롭고 싶다 | 정의는 곧 존재의 이유 | 정의를 세우는 습관 | 정의는 외롭지 않다 | 정의롭지 못한 국가의 녹을 먹는 것 | 정의를 일깨우는 목탁 소리 |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9 정의 사회에 이르는 사다리칸트와 정의의 얼굴 | 나를 닦아 세상을 편안하게 한다 |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억누른다 | 배움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 절실한 제자에게만 가르침을 전한다 | 군자는 과녁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 | 두려움과 신중함으로 일을 행한다 | 누가 정의의 사다리를 흔드는가10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논어, 365일 곁에 두고 읽어라 -세 가지 대강大綱· 기정남면己正南面 · 불령이행不令而行 · 필야정명必也正名-여섯 가지 세목細目· 구이경지久而敬之 · 일언이상방一言而喪邦 · 각언기지各言基志 · 물기범지勿欺犯之 · 술이부작述而不作 · 중위불고重威不固-다섯 가지 지침指針·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 불천노不遷怒 · 광자진취狂者進取 · 가사남면可使南面 · 잉구관여仍舊貫如에필로그 | 법적 정의와 시적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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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책임성’은 『논어』의 다른 부분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공자는 수제자 안회와의 대화 도중 사람이 자기 허물을 통절히 깨닫고 보편적 예로 복귀하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仁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편견, 아집, 독단은 자기책임성 반대편에 존재하는 불인不仁의 표상들이다. 칸트가 말했듯 자기 준칙을 보편적 준칙에 맞춰야 기본으로서의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 --- p.2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기본은 인사다. 그래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나왔다. 천하를 다투던 춘추전국시대에도 능력 있는 인물을 등용해 국사를 맡기는 인사 정책이 모든 정책의 기본이었다. 당시 제나라를 최강 제국으로 만든 재상이자, ‘우정이 아주 돈독한 친구 관계’를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 관중은 “쟁천하자 필선쟁인爭天下者 必先爭人”이라 했다. ‘천하를 얻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사람 얻기를 먼저 다툰다’는 뜻이다. --- p.29 공자의 제자 번지가 ‘인仁’에 대해 물었다. 이에 공자는 “남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라 답했다. 번지는 다시 ‘앎’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남을 알아보는 것知人”이라 답했다. 선문답 같은 스승의 대답에 번지는 상세한 해설을 요구한다. 이에 공자가 말했다. “곧은 것을 들어 올려 굽은 것 위에 두면 굽은 것도 능히 곧게 된다.” 인사가 헝클어지면 국정이 난맥상에 빠진다. 위기를 벗어나려면 신속하게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누군가가 굽은 사람임을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하면 정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인사 실패로 위기를 자초한 권력자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왔다. --- p.29 금수저 제자와 흙수저 제자를 차별적으로 대우함으로써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려 한 공자의 생각은 공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정의관으로도 설명된다. 재벌 회장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해서 사회적 총효용이 늘지 않는다. 그렇지만 100만 원을 가난한 사람 여러 명에게 나눠주면 총효용은 크게 증대된다. 목마른 사람에게 주는 물이 갈증 해소에 더 효과적인 것과 같은 이치다. --- p.50 공자는 백성 모두를 부유하게 잘살도록 해주는 것이 정의의 기본 조건이라 여겼다. 그런 연후에 보편적 교육으로 문화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봤다.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 못지않게 파이를 키우는 것도 정의로운 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책무라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다. 『논어』 자한 편에 나오는 다음 대화에서는 상품의 유통과 거래를 중시하는 공자의 시장주의 관점을 읽을 수 있다.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여기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스승님께서는 이걸 상자에 넣어 숨겨두시겠습니까, 좋은 상인을 찾아 파시겠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좋은 값 쳐주는 사람을 기다릴 것이다.” --- p.55 『논어』에 나오는 분배의 정의는 일률적 평균주의가 아니라 다양성이 보장되는 질적 중용에서 찾을 수 있다. 『논어』 자로 편에서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 가능하다. ‘남과 사이좋게 지내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뜻의 이 말에서 ‘화和’에만 초점을 맞추면 원뜻을 제대로 짚을 수 없다. 뒤에 나오는 ‘부동不同’과 같이 엮어 구조적으로 살펴야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즉 두루 고르게만 한다고 분배 정의가 실현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다양한 구성원의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공정함을 유지할 때 비로소 분배의 정의가 실현된다. --- p.57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재벌들은 국민을 널리 구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그들은 실질적 나눔과 제중濟衆에 매우 인색하다. 국민 총소득 가운데 각 가정의 몫은 1990년 70.1%에서 2014년 61.9%로 줄었지만, 기업의 몫은 17%에서 25.1%로 오히려 늘었다. 반면에 이 기간 동안 정부의 몫은 변화가 거의 없다. 경제집중도를 감안할 때 각 가정의 몫에서 기업의 몫으로 바뀐 소득의 대부분은 기업들 중에서도 특히 재벌의 주머니로 들어간 거라 봐야 한다. 수치상 우리나라 재벌들은 국민을 위해 베풀기는커녕 오히려 국민들의 부를 빼앗아갔다. --- p.63~64 공자가 고른 분배뿐 아니라 파이 키우기에도 눈길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논어』 전편을 두루 살필 때 경제 정의에 관한 공자의 생각이 성장보다는 분배에 치우쳐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논어』 계씨 편에 나오는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고르지 못함이 문제’라는 구절은 경제 정의에 관한 『논어』의 강령이다. 공자는 금수저 제자의 부를 존중하고 격려했지만 그보다 끼니를 제때 챙겨 먹지 못하는 흙수저 제자의 등을 먼저 두드려줬다. --- p.73 『논어』에서 읽은 정의의 얼굴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다. 그는 ‘공정한 분배를 통한 평등 실현’을 정의의 핵심으로 봤다. 그렇다고 기계적 평등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금수저 제자의 부를 격려하면서도 흙수저 제자의 등을 먼저 다독여준 공자처럼 빈부 격차를 인정하되 기준선을 재정렬해 불평등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자유주의자였다. --- p.74 공리주의가 항상 옳은 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세월호 인양 문제를 생각해보자. 인양에 들어가는 비용은 수천억 원에 이른다. 이 돈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가족 수는 전체 국민을 놓고 보면 소수에 불과하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인양함으로써 유가족이 얻을 수 있는 고통의 감소보다 나머지 국민들이 세금 때문에 치러야 하는 고통의 증대가 훨씬 더 클 수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인양을 결정했고, 많은 사람은 이 결정이 정의에 부합한다고 여긴다. 사람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으며 생명의 존엄성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권리이기도 하다. 세월호를 인양하는 건 물에 빠진 정의를 인양하는 것이다. 맹자의 말처럼 우물에 빠진 아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환경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본성이다. --- p.97 “선원 10만 명이 장거리 항해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중 500명만 익사했거나 불에 타 죽었다면 그 비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씨씨의 대답은 이번에도 비슷했다. “죽은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그 비율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씨씨의 말처럼 절대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나 항해 도중 죽은 사람의 주변인에게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은 결코 공리주의로 설명이 안 된다. 공리주의로는 송파구 세 모녀의 자살 사건을 설명할 수 없고, 세월호 사고를 설명할 수 없다. 국가 전체가 아무리 행복해도 국민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 국가는 정의로운 국가라 할 수 없다. --- p.102 거룩한 분노는 정의의 외침이다. 그 외침이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바꾼다.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사회운동가인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은 『분노하라Indignez-vous!』라는 책에서 레지스탕스들의 거룩한 분노가 히틀러의 나치즘을 무너뜨렸다며 불평등을 심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에 시민들이 분노하고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2011년 9월부터 1년 이상 계속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의 밑바탕에도 금융권의 부도덕을 향한 거룩한 분노라는 정서가 깔려 있었다. 한편 경제학자 장하성은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의롭지 못한 분배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는 죽은 사회다.” --- p.115~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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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정의의 관점에서 다시, 논어를 읽다이 책 『다시, 논어』는 논어에서 찾아낸 정의의 얼굴을 열 가지로 정리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항목이 바로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것, 즉 ‘기본을 지키는 일’이다. 공자는 나부터 기본을 갖춰야 타인에게 정의를 부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견고한 자기책임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의한 세상을 고발할 수 없고 남들에게 정의의 사다리를 함께 오르자고 권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않으면 국가의 기강, 사회질서, 가정의 화목 등 공동체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군인이 권력을 넘보고, 재벌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넘보고, 학생이 스승을 넘보면 정의는 무너진다. 권력분립을 기초로 성립되는 민주주의에서도 대통령이 입법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거나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면 정의가 무너진다. 대통령 손안에 있는 정보기관에 권한을 지나치게 몰아주는 것도 사상의 자유나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같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높여 정의를 위태롭게 한다.] _본문 19쪽경제적 관점에서 『논어』를 보면 ‘부의 고른 분배’라는 정의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공자는 흙수저 제자의 등을 다독이고 쌀독이 빈 제자에게 온정의 손길을 베푸는 방식으로 분배의 정의를 구현했다.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기준을 ‘배부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보다 ‘굶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에 둔 것이다. [공자는 고른 분배를 정의의 기본이라 보고, 불평등을 사회불안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먹을 것이 많고 적은 게 문제가 아니라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것이 사회 안정을 해치는 주요인이라는 것이다. 내가 배를 곯을 때 남들도 같이 곯으면 문제가 없지만, 나와 내 가족은 배를 곯는데 내 앞집과 옆집, 뒷집은 배불리 먹는다면 소외감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 거꾸로 이웃은 굶고 있는데 나만 배불리 먹으면 그들은 나를 부러워하면서 속으로 불평불만을 갖게 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_본문 44쪽그렇다고 공자가 부富를 혐오한 것은 아니다. 그는 고른 분배 못지않게 성장도 중요한 가치라 봤다. 공자는 금수저 제자의 부를 격려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시장주의와 자유주의를 옹호했다. 이처럼 공자가 말하는 ‘정의’는 때론 메마른 공리주의로, 때론 모두를 위한 시장경제로 나타난다. _새로운 대한민국에 권하는 정의의 길이 책은 야당 의원들이 벌인 필리버스터, 세 모녀 법, 세월호 사건 등 ‘정의’의 가치를 둘러싸고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 논의를 ‘논어적 관점’으로 해석했다. 저자는 공자의 입을 빌려 “나라가 정의의 길에 미치지 못하면 국민이 행복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이때 ‘나라’의 주체는 ‘군주’와 ‘백성’을 가리지 않는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누구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진다. 서로에게 정의를 권유하는 것도 시민 의무 가운데 하나다. 나 혼자 법과 질서를 지킨다고 사회가 맑아지지 않는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논어에는 불의한 세상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게 하는 힘이 있다. 공자는 지식인이 학식을 쌓는 궁극적인 목적 역시 개인 수양이 아닌 사회정의의 구현으로 보았다. 시카고대학 법학도들은 플라톤과 세네카, 찰스 디킨스와 월트 휘트먼을 읽는다. 인문학적 상상력이야말로 메마른 법적 정의를 공감과 배려의 정의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논어를 곁에 두는 것도 마찬가지다. 냉정한 판단력 위에 공감과 배려라는 따뜻한 시적 정의를 접목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라다운 나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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