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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1829년 초판)
사형수 최후의 날 1829년 소설을 위한 서문 옮긴이의 말 |
Victor Marie Hu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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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과 상상이라는 문학형식을 빌어 사형의 잔인성과
야만스러운 단두대를 날카롭게 고발한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사형폐지 탄원서! 『사형수 최후의 날』은 ‘사형수!’라는 단어로 시작하여 ‘네 시,’라는 어구로 끝난다. ‘네 시’는 사형 선고를 받은 주인공 ‘내가’ 단두대에 올라서는 시간이다. 죽음 가까이 다가가는 ‘나’는 불안과 초조, 번민과 후회로 가득하지만, 순수했던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일인칭 시점과 ‘내면 독백’을 이용한 일기 형식의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한 사형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지만, 사형제도 폐지라는 메시지의 보편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위고의 열정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은 1829년에 다음의 아주 짧은 서문과 함께 익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이 출간된 경위를 우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누렇게 색이 바래고 크기가 고르지 않은 종이 묶음이 실제로 있었고, 그 위에 어느 불행한 사람이 최후의 순간에 생각한 내용들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면, 예술을 위해 자연을 관찰하는 데 몰두하는 어느 몽상가, 철학가인지 시인인지, 어쨌든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생각해낸 사람이 있었고, 그는 그 생각에만 사로잡혀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이 두 가지 설명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혹시 작가는 첫번째 가정, 즉 독자가 진짜 사형수의 원고임을 믿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초판이 출판된 지 3주 후에 나온 제3판에서 빅토르 위고는 자신의 이름을 밝혔으며, 많은 사람들은 놀라워하는 동시에 불안해하기도 했으며, 그를 향해 비판할 태세를 갖추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건너온 외국서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1832년 출판된 제5판에서 위고는 ‘1829년 소설을 위한 서문’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서문을 쓰고 사형 제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상세히 나타냈다. 1820년대 후반 이후 위고가 기록한 사형제도 반대의 격렬한 투쟁은 아직 이 제도가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인간이 인간의 인생을 앗아갈 권리는 없다! 2003년은 한국에도 사형제도 폐지의 움직임이 부산했던 한 해이다. 2003년 가을, 종교계 원로인사들이 사형제도 폐지를 건의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을 면담했으며, 사형제 대신 종신형제 도입에 찬성하는 국민도 65%수준으로 늘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또한 일본 도쿄에서는 아시아 지역 사형폐지촉구대회도 열려 공개처형제도가 남아 있는 중국, 북한을 포함해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의 민간 단체들이 공동대응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국제인권감시기구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에 따르면 사형제도를 폐지한 국가는 전세계적으로 112개국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 수치만 보아도 사형폐지는 세계적 추세이며, 사형을 폐지하거나 10년 이상 이 제도를 실시하지 않는 나라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 예로 『사형수 최후의 날』의 무대인 프랑스는 1981년이 되어서야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1981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프랑소와 미테랑 대통령은 그의 소속정당이었던 사회당과 함께 집권 2개월만에 전격적으로 사형폐지특별법을 제정하여 사형제를 폐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물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흉악범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동정도 느끼고 싶지 않을 만큼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흉악범이라고 해도 개선 가능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사형은 인간의 개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국가는 사형을 쓰지 않고도 흉악범의 위험성을 통제할 수 있는 시설과 능력을 갖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사형폐지를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범죄의 실태, 사형수의 삶과 개선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주장되는 것이다. 충분한 정보와 풍부한 토론은 사형수에 대한 부당한 선입관을 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기요틴이 존재하던 1800년대,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빅토르 위고는 이 문제들을 문학이라는 토양 위에서 논의하고자 했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을 펴낼 때 위고는 자신의 모든 생각을 바로 표현하는 것이 그리 적절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때를 기다린 것이다.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었을 때 위고는 『사형수 최후의 날』이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한 직접적, 간접적 변호라는 사실을 표명했다. 위고는 화자 ‘나’에 대한 구체적 배경을 극도로 자제했다. 어떤 사람이고,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함구했다. 그는 어느 선택된 죄수나, 어느 선정된 피고를 위한 특별한 변호 대신 지금 그리고 앞으로 있을 모든 피고인들을 위한 일반적이고 항구적인 변호를 하고자 했다. 그것은 모두를 위한 최고 재판소인 사회 앞에서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변론해야 할 인류의 중대한 법률 문제라고 여긴 것이다. 위고는 무죄든 유죄든 가능한 한 모든 피고들의 이름으로 모든 법정, 모든 재판, 모든 사법을 상대로 말하려고 했다. 이 책은 그가 누구든 재판을 하는 사람을 겨냥한다. 위고는 교수형이 집행되던 광장을 지나다 단두대 아래 흥건히 고여 있는 피를 바라보며 『사형수 최후의 날』이라는 숙명적인 작품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날 루이 울바흐라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한 소녀를 죽인 죄로 사형을 당하자, 이 사형수를 모델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사회는 ‘복수하기 위해 벌해’서는 안된다! ‘1829년 소설을 위한 서문’에서 위고와 사형제 유지를 도모하려는 사람들간의 공방전이 펼쳐진다. 사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위고는 우선 종신형을 제시한다. 사회공동체로부터 이미 해악을 끼쳤고, 또다시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성원을 떼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시 반박한다. 사회가 복수해야 하고 벌해야 한다고. 위고는 이 두 번째 항의에 ‘복수하는 것은 개인의 일이고, 벌하는 것은 신의 일’이라고 말한다. 사회는 그 둘 사이에 있다. 벌은 사회 위에 있고, 복수는 사회 밑에 있다. 사회는 ‘개선시키기 위해 교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가혹한 운명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모방하려는 사람들에게 겁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살인율이나 잔혹한 범죄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교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도덕이 타락하고 모든 미덕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위고는 몇 가지 가정을 통해 사형수의 인간적인 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우선 사형을 당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가족도 친척도 지지자도 없는 경우. 그는 어떤 교육이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고독하게 버려진 것을 부당하게 사형수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라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그 사람에게 가족이 있는 경우. 위고는 그가 사형을 당할 때 남아 있는 식구들에게도 상처가 남는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위고는 사형수의 영혼까지 들여다보고자 했다. 그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우리가 알 수 있을까? 혹시 우리가 그 영혼을 경솔하게 죽이려는 것은 아닐까? 『사형수 최후의 날』은 한 인간의 가장 깊은 심연을 엿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때로는 탁하고 더럽지만 동시에 순수함도 간직한. 사형수는 동시에 회개하는 자이기도 하다. 아무도 닮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를 닮은 익명의 사형수의 생각과 언어를 통해 우리는 어쩌면 더욱 강한 삶의 욕구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간, 사형은 벌써 이 세계를 떠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