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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제5부 제6부 제7부 옮긴이의 말 |
Emmanuel Carr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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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어떤 열차가 올 시간에 맞추어 역사 근처에서 어슬렁거렸으리라. 어떤 멍청이가 금지 사항을 위반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 멍청이는 저들을 위한 것이니까. 저들은 그를 가지고 별짓을 다 하며 놀다가 결국 그가 뒈져 버리면, 다음 놈을 기다린다. 물론 그는 이렇게 이성적으로 차근차근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며 몸을 꼼짝할 수도 없는 어떤 궤짝 속에서 정신을 차리게 된, 그리고 얼마 후에는 자신이 생매장되었음을, 자신의 삶이라는 꿈이 결국 이른 곳은 여기이며, 이것이 바로 현실, 그가 결코 깨어나지 못할 마지막의, 진정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람처럼 중얼거릴 것이다.
그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 --- p.16~17 나는 헝가리인의 이야기가 내게 그렇게 큰 충격을 준 것은, 이것이 이 어머니의 꿈에 실체를 부여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역시 1944년 가을에 사라졌고, 그 역시 독일 편에 섰었다. 하지만 그는 56년이 지난 후에 돌아왔다. 그는 코텔니치라는 곳에서 돌아왔고, 나는 그곳에 갔으며, 또 한 번 가야 할 거라고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서 코텔니치는 사라진 누군가가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 p.69~70 우린 이 아늑하게 느껴지는 경찰 사무실에서, 금발의 서장이 가볼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면서도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하는 프랑스와, 그로서는 우리가 대체 무얼 하러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코텔니치에 대해 건성으로 얘기를 나눈다. 우리가 영화를 촬영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자 그는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이 되지만 적의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헤어질 때에는 다시 그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제목 하나를 제안한다. Tut zhit’ nel’zia, poka zhivut, 즉 [여기는 사람 살 곳이 못 되지만, 어쨌든 우린 살고 있다]라는 뜻이다. --- p.211 필리프의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자마자 대부분의 상인들과 고객들은 자신은 촬영되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한 정육점 주인은 파리들이 윙윙대는 좌판을 박차고 나와 우릴 위협하기까지 한다. 손이 솥뚜껑만 하고, 지역 제재소가 폐쇄되기 전에 거기서 일했다는 이 노인은 자기의 모습이 TV에 나오면 체포될 것을 걱정한다. 그에게 그런 일로 사람을 체포하는 게 아니며, 그리고 어차피 우리 영화는 러시아 TV가 아니라 프랑스에서 상영될 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여기에 온 이후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그 넋두리가 또 튀어나온다. 너희들은 천국에서 사는데, 우린 여기서 개같이 살고 있어! 그런 우릴 촬영하러 온 너희들은 정말로 나쁜 놈들이야! --- p.221 내가 동료들에게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무의식적 거부 반응 같은 것이 나로 하여금 러시아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그들은 어깨를 으쓱한다. (……) 하지만 나는 이것은 분명히 모종의 거부 반응이라는 것을, 내 속의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이 모어로의 회귀를 두려워하고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여기에는 어떤 수수께끼가, 헝가리인의 이야기로 시작되었고, 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되찾기 위해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계속되어 왔고, 지금 여기 코텔니치에서는 후퇴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이 작업이 결국에는 내게 그 열쇠를 내주게 될 어떤 수수께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코텔니치에 온 것은, 내가 코텔니치에서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 p.228~229 난 외조부의 서신 사본들이 든 파일을 가지고 왔고, 가끔 다른 이들이 촬영을 떠났을 때 혼자 집에 남아 그것들을 읽어 보곤 한다. 거기에 전개되고 있는 것은 프랑스어로 써졌건 러시아어로 써졌건 그 특유의 언어인데, 너무나도 개성적이어서 보통의 언어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그것은 그의 교양과 총명함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56년 동안 이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 자신만의 언어로 혼자서 웅얼거려 왔던 언드라시 토머의 언어와 비슷하게 되어 버린 어떤 개인적인 언어이다. 그의 강박적인 생각들과 쓰라린 한과 과대망상과 자기혐오를 곱씹기 위해 나의 외조부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언어를 만들어 낸 것인데, 이 서신들을 읽고 있으려니 이것은 어떤 광인이 쓴 편지들이라는 무서운 생각이 스친다. --- p.230~231 넌 항상 겉돌고, 항상 발레리 같은 여자를 질투해. 무려 『엘르』의 기자씩이나 되는 발레리는 모든 것을 자신 있게 얘기하지. 분노와 모멸감으로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곤 하는 너와는 달라.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너야. 그래서 넌 기쁨을 느끼고, 난 네 안에 이는 그 기쁨을 이따금 언뜻 느끼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 기쁨이란 것도 네가 근본적으로 사생아이기 때문에, 태어났을 때 - 그때 넌 새카만 털북숭이, 못생긴 아기였다지 - 네 어머니께서 널 봐줄 사람이 자기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울었기 때문에 결국 어두운 것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랑, 바로 너라고. --- p.327~328 그 음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죠. 넌 믿었지. 소피의 사랑이, 러시아어가, 내 삶과 내 죽음에 대한 조사(弔詞)가 널 해방시켜 줄 거라고, 네 것이 아니지만 네 것이 아니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욱 집요하게 네 안에서 반복되는 과거를 청산할 수 있게 해주리라고 믿었어. 하지만 사랑은 네게 거짓말을 했고, 넌 여전히 러시아어를 못하고, 내 안의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부분은 계속해서 너희들을 망가뜨리고 있고, 너희들, 내 손자들을 하나하나 죽여 가고 있어. 죽기 위해서는 굳이 창문으로 뛰어내릴 필요조차 없는 것이 다른 녀석들도 너처럼 산 채로 아주 잘 죽어 가고 있단 말씀이지. 네게 해방이란 것은 없어. 네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공포와 광기는 널 기다리고 있어. 내 어린 매 새끼야, 실컷 지랄하고 난리를 쳐봐, 넌 결코 벗어날 수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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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했다. 이젠 끝났어. 이제 난 다른 것으로 넘어갈 테야.
난 바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로, 삶으로 가겠어. 에로틱한 꿈과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무단이탈한 어느 모험가의 비극이 등장하는 『러시아 소설』의 도입부는 단연 압도적이다. 시종일관 이 작품을 지배하는 음울한 분위기와 더불어 무의식을 파헤치는 카레르의 묘사력이 돋보인다. 본능적인 충동에 따라 금지 구역에 들어선 자의 비참한 최후는 카레르 그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회고와도 같다. 카레르는 작중에서 『적』(2000)의 탈고 이후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기까지 7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적』은 프랑스를 충격에 몰아넣은 실제 범죄 사건을 두고 쓰인 르포르타주다. 18년에 걸친 사기 행각과 일가족 몰살이라는 끔찍한 짓을 저지른 인물 장클로드 로망을 카레르는 작가 본인의 1인칭 시점으로 심도 있게 재조명했다. 광기로 점철된 인간 내면을 끈질기게 탐조하며 심적 고통을 겪고, 책으로 묶기까지 여러 난관에 부닥치며 그는 오랫동안 침잠해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바깥으로, 삶으로 나서는 첫걸음으로서 카레르는 암중모색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여행을 선택한다. 목적지에는 베일에 싸인 한 남자가 존재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끌려가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러시아 오지 한 정신 병원에서 50년을 산 헝가리인. 오직 [언드라시 토머]라는 이름만 밝혀진 이 남자는 단 한마디의 러시아어도 할 줄 모르며, 끝내 모국어조차 잃어버린 인물이다. 르포르타주 제안을 받은 엠마뉘엘은 영화 촬영 팀을 꾸려 남자가 생활했던 정신 병원이 있는 곳, 러시아의 작은 마을 코텔니치로 향한다. 어둡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절망적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은 바로 이 순수하고도 강력한 진실의 힘 때문이 아닌가 한다. ― 옮긴이의 말 [러시아 소설]이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우선 긴 여정의 출발점이 된 헝가리인의 사연과 별개로 엠마뉘엘의 의식 한편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두 인물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1944년, 언드라시 토머가 고향을 떠난 해에 실종된 외조부 조르주 주라비슈빌리와 애인 소피. 실제 엠마뉘엘 카레르의 어머니인 엘렌 카레르 당코즈는 프랑스 학술원의 종신 원장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그 덕에 카레르는 남부러울 것 없는 상류층의 자제로 성장했다. 그러나 나치 부역 혐의로 납치된 외조부의 실종 사건은 오랜 세월 집안에 어둠을 드리운다. 대물림된 생래적인 죄의식과 수치심은 내내 카레르를 따라다닌다. 외조부의 망령을 떨치고자 엠마뉘엘은 어머니의 땅이자 실종자들의 유배지와도 같은 [러시아]로 향한다. 과거에 죽음을 선고하고 새 삶에 뛰어들려는 엠마뉘엘의 기대와 환상은 진짜 현실을 비켜나 있다. 여행길에 오른 그가 몰두하는 것은 광기와 공포가 지워진, 모든 것이 가능한 [소설]의 세계다. 그리하여 끝내 현실로 귀환해 비극으로 남을 소설이 시작된다. 열차 안에서 펼쳐지는 에로틱한 열정의 향연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지옥 같은 고통 한편, 르포르타주 제작을 위해 멀리 떠나 있는 동안 엠마뉘엘은 애인 소피를 그리워한다. 서로를 안 지 불과 2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둘은 열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자격지심은 때로 관계의 걸림돌이 된다. 또한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소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길 없는 문제들에 내적으로 몰두하는 엠마뉘엘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자신에게 새 남자가 생겼다 고백하기에 이른다. 엠마뉘엘은 마침 『르 몽드』에서 들어온 단편소설 원고 청탁을 받아들여 소피에게 전하는 긴 편지로 내용을 채운다. 『러시아 소설』 제3부를 통째로 차지한 사랑의 헌사는 실상 포르노그래피 그 자체다. 엠마뉘엘은 자신이 휴가를 보내는 라로셸로 소피가 기차를 타고 올 시간에 맞춰 『르 몽드』 게재일을 정한다. 그러나 소피가 여행을 포기하면서 그를 들뜨게 했던 공개 프러포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절망적인 재회 이후,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는 엠마뉘엘의 요구에 끈질기게 버티던 소피는 결국 임신 사실을 알린다. 그렇게 갈등은 일단락된다. 소피는 끝내 엠마뉘엘이 『르 몽드』에 게재한 단편소설을 읽지 않는다. 끔찍한 불안과 자기혐오에 빠진 엠마뉘엘과 달리 그녀는 어느덧 평정을 되찾는다. 각자가 원하는 사랑 방식이 양극단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도 두 사람은 얼마간 관계를 지속하지만 불행의 연속일 뿐이다. 엠마뉘엘의 지독한 자기기만과 집착은 소피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고 만다. 『러시아 소설』은 예측 불가능한 현실에 투입된 자아를 대담하게 해체하고 분석한다. 두 가지 강박의 기원을 추적하는 기나긴 여행 정면으로 응시하는 존재의 슬픔 언드라시 토머를 둘러싼 엇갈리는 증언과 정체가 모호한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표류하던 코텔니치에서의 영화 작업은 팀과 인연을 맺은 현지인 아냐의 죽음으로 돌연 완성에 이른다. 아냐의 부고를 전해 들은 엠마뉘엘과 촬영 팀은 허연 눈발과 헐벗은 나무들뿐인 코텔니치로 또다시 발길을 돌린다. 정보기관 FSB의 요원인 샤샤와 결혼한 아냐는 어린 아들과 함께 미치광이의 손에 살해되었다. 더는 이야기할 것이 없었던, 그 불모지 같은 곳에서 벌어진 참사에 자극을 받은 엠마뉘엘 일행은 마침내 흩어진 영상의 조각을 모아 편집 작업에 착수한다. 엠마뉘엘은 외조부의 운명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이야기하는 문장 10여 개가 들어간 자장가로 영화의 엔딩을 장식한다. 낯익고 친밀한 모어(母語)이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러시아어로 읊조리는 자장가. 침묵으로 그의 작업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던 어머니는 시사회장에서 감동의 눈물을 내비친다. 엠마뉘엘은 근원적 고통의 동반자이자 자신의 또 다른 아픔이었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로 『러시아 소설』을 끝맺는다. 파리와 코텔니치를 배경으로 한 『러시아 소설』은 카레르가 품은 두 가지 강박의 기원을 추적한다. 외조부의 실종과 끝내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애인에 대한 에로틱한 열정을 다룬다. 『러시아 소설』은 자전적 이야기의 씨실과 날실을 [내면 여행기]로 엮은 품격 있고 격정적인 산문이다. 도보 여행, 고백, 성애를 콜라주한 역작이다. 이 두려움을 모르는 심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회피하기 위해 고안한 장치와 그것의 존재로 인해 치러야만 하는 대가(代價)를 조명한다. 『러시아 소설』은 폐쇄적이고 누추하며 잔인한 개인의 슬픔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언어로 치환한다. [계속해서 살아가고 싸울 것]. 『러시아 소설』은 지옥 같은 고통을 돌파한 승리의 기록이다. 추천사 엠마뉘엘 카레르는 한없는 슬픔에 관해, 지옥 같은 질투에 관해, 격렬한 열정에 관해 썼다. 『러시아 소설』은 그야말로 황홀하다. - 르 몽드 우아하고 감성이 풍부한 자기 성찰이다. 절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거짓과 사랑의 타협에 대한 진실한 통찰력이 엿보인다. - 더 타임스 알프레드 히치콕과 이탈로 칼비노를 연상하게 한다. - 디테일스 이번에는 카레르 그 자신을 적으로 삼은 걸출한 책이다. 작가는 자기를 놀라우리만큼 명쾌하게 폭로하고 대담하게 분석한다. - 르 피가로 아마존 독자 리뷰 별점: ★★★★★ 엠마뉘엘 카레르의 탁월한 회고록이자 소설이다. 별점: ★★★★★ 내가 접한 소설 가운데 가장 용기 있고 진심이 담겨 있으며 정확한 기록이다. ` 별점: ★★★★★ 매혹적인 서사다. 별점: ★★★★★ 세련되고 섹시하며 패러독스가 있는 소설을 원하는 당신을 위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