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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디에 담아야 할까
컨텐츠팀 연나래 (wing85@yes24.com)
2010.12.15.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따뜻한 차가 마시고 싶은 고요한 시간, 부암동의 한 작은 가게에 들어섰다. 난간이 없으면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까마득하게 높은 계단을 휘청거리며 오른 그 곳엔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일본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카페 같기도 하고 북유럽 어딘가에 있는 소박한 밥집 같기도 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은 공간이었다. 들깨가 가득 들어간 버섯 덮밥과 정말 고양이들이 먹을까? 궁금해지는 고양이 맘마, 마치 마음씨 좋은 푸근한 아줌마가 뜨개질을 하며 기다려줄 것 같은 동화 속 한 장면에서 진정 나의 시선을 사로 잡은 건 바로 식탁을 가득 채운 찻잔과 접시, 그리고 주전자였다. 화려하게 멋을 부린 크리스탈도 기교를 부린 도자기도 아니었지만 여러 주인들을 거쳐왔을 세월과 더불어 이 곳까지 먼 시간 여행했지만 전혀 지쳐보이지 않는 북유럽의 그릇들이 얌전히 앉아있었다.
부암동에서 만난 그릇들에 대한 잔상이 남아있을 무렵, 이 책을 만났다. 셰프이자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는 저자가 일본,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의 그릇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바늘가는 데 실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그릇과 함께 꼭 붙어다닐 수 밖에 없는 음식 이야기를 함께 담았으니 도저히 놓칠 수 없는 일이다. 미슐랭에서 별을 받은 최고급 레스토랑부터 일본의 소박하고 정겨운 다방, 그리고 사람 냄새 나는 우리의 국밥집까지. 그들은 어떤 그릇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찾아간 쓰키지 새벽시장까지 아침바람을 맞으며 좀비처럼 마냥 걸어간 그들은 한 스시집 앞에 도착한다. 이른 시간부터 길게 줄이 늘어져 있는 그 곳은 백발의 아버지와 젊은 아들이 함께 하고 있는 스시집이다. 초밥은 도마 접시에 담겨져 나오는데 도마 접시는 주로 향나무와 대나무로 만들어진다. 나무가 수분을 흡수해 초밥이 무너지지 않게 하고 밥의 고슬고슬한 식감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소박한 나무 도마위에 올려준 스시지만 먹는 사람에게 새로운 맛과 감흥을 전달하기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미슐랭 1스타를 획득한 오모테산도의 하마사키. 프리젠테이션 플래터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골드 트림에 잔잔한 꽃과 줄기를 그려 넣은 본차이나 접시는 리처드 지노리의 최고가 제품인 라스칼라 라인이다. 지노리는 고전주의와 아르누보 디자인을 동시에 수용해 동시대의 로열 코펜하겐, 세브르와 함께 유럽의 도자기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유럽에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도자기 회사들이 하나둘 생겨났는데, 독일의 마이센, 영국의 로열 우스터,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 이탈리아의 리처드 지노리 등이 그것이다. 그릇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번 쯤은 들어봄직한 이름들인데 이 도자기들은 유럽의 문화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한 제품들이 많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조선시대만 해도 우리나라 도자기 산업은 꽤 발달했는데 그 기술은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지 않다. 조선시대 역사를 공부할 때 백자, 분청사기 등 도자기가 중요하게 언급 되곤 했는데.. 저자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책의 뒷부분에 실었다. 조선시대 중기에 반상의 규범화가 이루어져 조리법, 그릇, 식상들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고 백자, 분청사기 등이 발전하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급속히 쇠락하고 만다. 일본의 값싼 그릇인 '왜사기'가 들어오고 우리의 식생활은 일본에 의해 점령당하게 된다. 뒤이은 6ㆍ25 전쟁으로 식생활이 회복할 여유가 없이 열악한 상태를 계속 이어나갔고, 그리고 들어오게 된 중국, 일본, 서양의 식문화는 우리의 근본을 찾을 수 없게 변형시켰다.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요리의 모양과 의미가 달라진다. 음식은 그릇과 하나가 되어 완벽한 예술로 완성되는데 우리나라 유명 한식당에서조차 국적 불명의 그릇을 사용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이름을 뒷면에 새긴 그릇을 사용하는 식당,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명품 식기에 음식을 담는 고급 레스토랑, 아무런 무늬없는 실용적인 그릇이지만 그에 맞는 합리적인 음식을 담아내는 식당들을 보며 우리만의 그릇을 생각해본다. 음식을 먹기도 전에 그릇의 뒷면을 들춰본 경험이 있는 미식가라면 김광선 셰프의 맛과 멋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볼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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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홀릭dishholic 셰프, 그릇에서 진정한 미식의 의미를 묻다
한국에는 왜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 없을까? 요즘 우리나라 셰프들이 가장 깊이 고민하는 문제다. 일본의 경우, 2009년에 미슐랭 스타를 단 레스토랑이 여럿 쏟아졌을 때 혹 뒷거래가 있었던 건 아닌지 항간에서는 미심쩍은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도쿄의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먹어본다면 그 의문은 단번에 풀린다. 이제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레스토랑의 지정학적 위치부터 메뉴를 설명하는 서버의 반듯하고 능숙한 서비스, 격조 있는 인테리어와 분위기,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접시와 메시지 있는 스타일링의 퍼포먼스까지 모든 것이 맛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미식의 흐름은 ‘무엇을 담느냐’에서 ‘어디에 담느냐’로 변화하고 있다. 천재적인 셰프로 극찬을 받는 이들은 자신의 창의를 어떤 그릇에 담을지 고뇌에 빠진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이름 높은 고급 식기에서부터 자연재료, 혹은 물리적 균형의 무게중심까지 무시하는 포스트모던 그릇까지 테이블의 향연에 총동원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현대 미식의 흐름을 충실히 좇아가며 도쿄에서 시카고로 다시 서울로, 발로 뛰어 찾아낸 첨단 미식의 현장을 역동적으로 소개한다. 저자는 스스로를 주방의 ‘핀체 파모소’(스페인어로 ‘빌어먹을 딴따라’라는 뜻)라고 칭한다. 요리와 그릇에 빠져 새로운 요리를 배우고 서울의 내로라하는 미식가들이 입방아를 찧어댈 시크한 그릇을 찾아내는 일이라면 시간과 돈을 모두 써버리는, 요리에 미치고 그릇에 빠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디시홀릭 셰프의 맛깔난 이야기들은 요리가 단지 먹는 대상이 아니라 삶의 순간을 좀 더 아름답고 풍부하게 만드는 종합예술이라는 걸 실감하게 한다. 음식을 담아낸 그릇에 반해 그릇의 뒷면을 기어이 뒤집어 이름을 확인해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놋그릇에 담은 비빔밥과 도자기 그릇에 담은 비빔밥에서 맛의 차이를 경험해본 이라면, 셰프의 설명을 들어가며 도쿄의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먹는 간접 체험을 해보고 싶은 이라면 이 책은 진정 충만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도쿄의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의 스타일링을 훔치다! 일본은 거리의 라멘집조차 도자기 그릇에 음식을 내온다. 일반 가정에서도 계절별로 그릇을 달리 쓸 만큼 그릇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이들이 좋은 그릇, 특히 도자기에 열광하는 것은 밥그릇을 입술에 대고 먹는 그들의 식습관도 한몫했다. 입술이 그릇과 접촉하니, 그 감각이 예민해졌고 결과적으로 질 좋은 그릇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장신의 솜씨를 귀하게 여겨온 전통 때문인지 어시장의 작은 다방조차 찻잔에 자신의 브랜드를 새길 만큼 자기 가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미슐랭 스타를 받아 최근 급부상하는 인기 레스토랑에서부터 쓰키지 시장의 오래된 작은 다방까지 돌아보며 일본 전통의 맛과 세계 첨단의 요리를 두루 맛보며 그릇과 음식의 상관관계를 파고들어간다. 미슐랭 1스타를 받은 아오야마의 나리사와에서는 계절을 주제로 산과 바다, 숲에서 생산되는 자연 식재료로 아뮤즈 부슈부터 디저트까지 완성도 높은 창작요리를 맛본다. 테이블에 프리젠테이션 접시로 놓인 금색 테를 두른 큼직한 제이엘 코케 접시가 인상적인 니혼바시의 상파우에서는 재료의 맛과 향을 살리면서도 색채와 형태를 자유롭게 변형하는 스페인식 첨단 분자요리를 경험한다. 스페인 상파우 본점의 셰프 카르메 루스카예다가 보여주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예술적 스타일링의 정수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코스요리 하나하나는 요리에 미친 셰프로 살아온 저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롯본기에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2년 만에 미슐랭 2스타를 획득한 에디시옹 코지 시모무라는 프랑스 요리에 일본식 가이세키 요리를 접목시켜 상당히 모험적인 ‘Japanese French’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저자가 찾아간 이들 일급 레스토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일어날 때까지 섬세한 서비스와 도전적이고 특별한 맛, 창의적인 스타일링으로 책을 읽는 내내 우리를 흥분시킨다. 시카고의 스테이크하우스에서 미국의 맛을 경험하다! 새로 오픈하는 레스토랑에 쓸 그릇을 찾기 위해 하우스웨어 박람회가 열리는 미국 시카고까지 단숨에 날아간 저자. 풍부한 식재료가 지천에 널려 있고, 세계에서 패스트푸드가 가장 먼저 발달한 나라인 미국의 캐주얼 레스토랑에서 저자는 미국 식문화의 일면을 엿본다. 유명 레스토랑 블랙버드가 최근 새롭게 문을 연 캐주얼 와인 바 아베크에서 맛본 미국인의 컴포트 푸드 미트볼의 진미, 모튼 스테이크하우스에서 난생 처음 맛본 프라임 드라이 숙성 비프의 놀라운 육질, 롤과 미소수프 등 동양의 맛까지 고루 갖춘 H15의 먹다가 지쳐버릴 만큼 푸짐한 샐러드… 하지만 저자는 ‘음식=연료’라는 생각이 뿌리 깊은 미국인의 식탁에서 섬세한 미각이 발달할 수 없었던 미국식 자본주의 문화의 일면과 냉장·냉동식품의 대량생산 시스템이 가져온 획일화된 입맛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전통의 놋그릇과 뚝배기에서 한식의 숨은 미덕을 발견하다! 곰탕과 비빔밥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온도는 몇 도일까?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놋그릇의 놀라운 보온·보냉 효과는 우리 전통 그릇의 미덕을 재발견하게 한다. 예로부터 사시사철 풍부한 식재료가 넘쳐나고, 전통의 요리법이 지역마다 특색을 이루는 우리나라 요리의 진가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레시피를 매뉴얼하고 글로벌한 입맛에 맞도록 개발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릇의 효용과 아름다움에 집착해왔음을 드러낸다. 지방마다 장맛이 다른 만큼 뚝배기의 모양도 다르게 변화되어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저자는 놋그릇, 뚝배기, 목기 등 한식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들을 살펴보며 우리의 한식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지 대한 나름의 고민을 진지하게 풀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