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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형도 미발표시
겨울 · 눈 · 나무 · 숲 / 달밤 / 허수아비 - 누가 빈 들을 지키는가 / 입 · 눈 · 바람 속에서 / 가을에 1 / 시인 2 / 가을 무덤 - 제망매가 / 우중의 나이 - 모든 슬픔은 논리적으로 규명되어질 필요가 있다 / 레코오드판에서 바늘이 튀어오르듯이 / 새벽이 오는 방법 /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 비가 - 좁은 문 / 도로시를 위하여 - 유년에게 쓴 편지 1 / 388번 종점 / 노을 / 우리는 그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걸어갔다 2. 숲으로 된 푸른 성벽 <단편소설> : 빈집 / 정녕 소나기는 그쳤는가? <시> : 폭탄주 잔이 작아질 때 / 설렁설렁 / 그 까페 - 기형도 시인에게 / 피지 않는 꽃 / 정거장에서 / 진눈깨비 / 두 사람의 척탄병 / 희망 913 / 고의적 형벌 - 짧은 여행의 기록에 답함 / 귀로 / 물에 대한 추억 - 형도에게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산문> : 숲으로 된 푸른 성벽 - 기형도, 미완의 매혹 / 기억할 만한 질주, 혹은 용기 / 묵시와 묵시 - 상징적 죽음의 형식 / 기형도의 시세계 연구자료읽기 / 기형도, 삶의 공간과 추억에 대한 경멸 |
奇亨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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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913
기형도가 죽었다. 기형도는 시인이다. 기형도가 묻혔다. 기형도를 땅속 깊이 묻었다. 곧 많은 열매가 맺히리라. 기형도는 땅에 떨어졌고 묻혔고, 썩었다. 그 첫열매의 얼굴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형도는 자지가 있었다. 기형도의 자지는 내 자지다. 자지가 썩었다. 어머니말고 기형도 자지를 본 여자가 보고 싶다. 그런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가 달고 있는 자지 반대도 썩을 것이다. 기형도가 벌떡 일어나 걸어다닌다. 문학이 어떻고 시가 뭐고 하고 싶다고 하다가 한 많은 이 세상을 부르고 있다. 기형도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묻힌다. 터질 듯한 유방과 엉덩이가 찢어질 듯 발기한 자지가 묻힌다. 더럽고 또 더럽고 세 번 더러운 서울이 내 고향 경기도 안성의 한 구릉에 묻힌다. 폼페이처럼 베수비오스 화산처럼. 기형도에 묻힌다. 기형도가 괜히 죽었다. 기형도가 멋있다. 기형도를 제외한 그 모든 놈들은 다 나쁜 놈이다. 기형도가 제일 착하다. 조금은 착한 나는 또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고 나는 싼다. 이 자지 반대 같은 세상에 기형도가 찍 싸진다. 기형도가 내 자지 속에서 나와 자지 반대의 그 어떤 부드러운 곳으로 쏙 들어간다. 기형도가 잘 죽었다. (pp. 121-122, 김영승의 추모시)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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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내 정든 포도밭에서 어느 하루 한 알 새파란 소스라침으로 떨어져 촛농처럼 누운 밤이면 어둠도, 숙주인 희망도 내게는 너무나 거추장스러웠네. 기억한다. 그해 가을 주인은 떠나 없고 그리움이 몇개 그릇처럼 아무렇게나 사용될 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짧은 촛불들을 태우곤 했다. 그렇게 가을도 가고 몇잎 안남은 친구들마저 천천히 힘을 잃어갈 때 친구여, 나는 그때 수천의 마른 포도 이파리가 떠내려가는 놀라운 空中을 만났네
--- p.197-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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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느 늦은 겨울날 저녁
조그만 카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누구를 기다리기로 작정한 것도 아니었다 부르기 싫은 노래를 억지로 부르듯 흑인가수의 노래가 천천히 탁자에는 시든 꽃 푸른 꽃 위에는 램프 어두웠다 벽면에 긴 팽이모자를 쓴 붉고 푸른 가면들이 춤추며 액자 때문은 아니었다 예감이라도 했던들 누군가 나를 귀찮게 했던들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나는 대학생이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래서 더욱 무서웠다 가끔씩 어떤 홀연한 계기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전청춘이 한꺼번에 허물어져버린 것 같은 슬픔을 맛볼 때가 있듯이 레코오드판에서 바늘이 튀어오르듯이 그것은 어느 늦은 겨울날 저녁 조그만 카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천천히 탁자 아래로 쓰러졌다 (1984.2.17) --- p.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