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아미르 티무르
닫힌 중앙아시아를 열고 세계를 소통시키다 양장
성동기
써네스트 2010.12.25.
베스트
역사 top100 2주
가격
20,000
10 18,000
YES포인트?
1,0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 본 도서의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추천사 01│대륙은 항상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추천사 02│미래를 생각하는 CEO들과 미래의 CEO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책
추천사 03│세계는 지금 중앙아시아로 모여들고 있다
지은이의 말│유럽 근세사 비밀의 열쇠 아미르 티무르
프롤로그│원정만 떠나는 군대

제1장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전략
1. 한 사람의 무슬림에게 명운을 건 유럽
2. 여왕이 사랑했던 무슬림 정복자
3. 진화하는 전략
4. 미국의 덫에 걸린 오사마 빈 라덴
5. 대영제국의 전략을 진화시킨 미국
6. 동일한 목표를 향해 진화하는 원천 전략

제2장 '샤히브키란'의 탄생
1. 800년마다 한 번씩 빛나는 별 '샤히브키란Sahibkiran'
2.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다
3. 중앙아시아 몽골동포 내전
4. 중앙아시아 통일전쟁

제3장 인류 최후의 정복자
1. 버림받은 자들의 저주로 만들어진 국가
2. 이슬람의 칼로 이슬람의 머리를 베다
3. 몽골의 후손, 칭기즈칸을 버리다
4. 대륙의 심장을 살려라
5. 인류 최후의 정복자: 위대한 실크로드 원정 170일 연승
6. 세계사가 지워버린 위대한 인물

제4장 위대한 대륙의 설계
1. 아미르 티무르의 리더십
2. 아미르 티무르가 만든 국가
3. 14세기 지구의 랜드마크landmark, 사마르칸트
4. 아미르 티무르가 만든 세계
5. 아미르 티무르의 대륙마인드

에필로그│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미르 티무르를 말해야만 하는가?
1. 이제 더 이상 섬은 없다
2. 뉴 판게아New Pangaea 시대
3. 대륙경영 마인드
4. 왜 아미르 티무르를 찾아야 하는가?
아미르 티무르 연표
14세기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
아미르 티무르의 가계도
인명 색인
참고자료

저자 소개 1

부산에서 태어나서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우즈베키스탄 국립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우즈베키스탄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이다.)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연구교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어과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초빙연구원, Pre-University in IUT(Inha University in Tashkent) 교장, IUT(Inha University in Tashkent) 대외협력실장 등으로 근무한 후 현재는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21세기 유라시아
부산에서 태어나서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우즈베키스탄 국립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우즈베키스탄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이다.)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연구교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어과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초빙연구원, Pre-University in IUT(Inha University in Tashkent) 교장, IUT(Inha University in Tashkent) 대외협력실장 등으로 근무한 후 현재는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21세기 유라시아 도전과 국제관계』(공저), 『우즈베키스탄 불멸의 고려인 영웅 김병화』, 『억지부리는 남자: 호자 나스레딘』(편역), 『우즈베크어-한국어사전』(공저), 『중앙아시아학 입문』(공저) 등이 있으며, 연구논문으로는 「시베리아 천연가스 개발의 방향성 연구: 유라시아의 국제정치학적 역학구도를 중심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정치적 협력관계 분석과 전망: 공조체제의 허와 실을 중심으로」, 「탈냉전기 미국의 대중앙아시아 정책의 변화와 연속성: 오바마 정부에 미치는 교훈을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 대외관계의 특수성 이해: 친(親)과 용(用)의 관계를 통한 재해석을 중심으로 」, 「체제전환기 카자흐스탄의 민족간 민족의식 및 민족동화 변화 연구: 카자흐인과 러시아인 대상의 설문조사를 중심으로」등이 있다.

성동기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2월 2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758g | 153*224*30mm
ISBN13
9788991958463

책 속으로

아미르 티무르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중세의 세계사는 설명될 수 없다.
그를 단순히 침략자, 학살자, 정복자로 덮어버린다면 세계사는 큰 구멍을 가질 것이며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중세에 존재한 아미르 티무르 이전과 이후의 시대를 살펴봄으로써 그의 가치를 살펴보자.
먼저 그의 출생 이전에 세계는 '낙후된 유럽과 혼란의 선진 아시아'로 정리될 수 있다. 11세기 십자군 전쟁의 여파는 유럽대륙에 권력 구도를 변화시켰다. 절대 권력의 교황권에 국왕들이 도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륙은 전쟁에 휩싸였다. 각국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정리되지 못한 영토문제, 상속권 등으로 소모전을 하고 있었다. 그 정점에 백년 전쟁(1337~1453)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서유럽은 중세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반면에 아시아는 중국의 첨단기술과 이슬람의 과학발전을 통해 유럽을 앞서고 있었다. 이슬람 사회가 철학, 의학, 과학을 발전시킨 것은 종교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신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슬람 압바스 왕조의 7대 칼리파인 '알 마문(786~833)'이 꿈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났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학자로부터 많은 것을 듣고 깨달았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즉시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연구하도록 명을 내리고 연구기관을 설립하였다. 이후 아랍 이슬람 사회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특히 과학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매우 필요하였다. 예를 들면, 하루 5번 예배 드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서 천문학 등 과학기술을 활용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이슬람 사회는 과학을 숭배하고 발전시켜 나갔으며 8∼10세기는 이슬람 과학의 부흥기였다.
유럽은 기독교 세계관으로 인해 정상적인 과학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11세기 십자군 전쟁 이후부터 아랍과 충돌하면서 이슬람 사회의 발전된 과학을 접하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아랍인들이 가지는 과학의 원천 기술이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것을 유럽 르네상스의 토대로 인식하였다. 놀라운 것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적 업적들이 아랍어로 복원되었다는 것이었다. 일찍이 아랍의 학자들이 고대 그리스 학자들의 명저를 아랍어로 번역해두어 축적하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는 이슬람의 과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이후 들어온 중국의 과학기술이 첨가되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 실제로 몽골제국의 통치하에 유라시아대륙은 과학 발전의 침체기였다. 그들이 대륙을 지배하기 이전에 과학적 성과가 높았으며, 그들이 대륙을 떠난 이후에 다시 과학이 부흥하였다. 특히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 부하라, 호레즘은 중세 이슬람 과학의 메카였다. 호레즘 출신으로 대수학을 완성한 알 호라즈미Al-Khorezmi(780~850), 시그마 공식을 체계화시킨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알 비루니Abu Rayhan Biruni(973~1048), 부하라 출신으로 서양의학의 토대를 만들어 낸 이븐 시나Ibn Sina(980~1037), 아미르 티무르의 손자로 중세의 위대한 천문학자이자 수학자로 유럽 과학계에 이름을 떨쳤으며, 사마르칸트에 높이 50m의 세계 최대 천문대를 건설한 울루그 벡Ulugh Beg(1394~449)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슬람 과학을 발전시킨 세계적인 학자들은 몽골제국의 지배시기 전후에 나타난다. 아미르 티무르는 이 지역이 가지는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 동시대의 학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했으며, 결국 그의 사후 자신의 제국은 세계적인 과학의 메카로 성장하였다.
아미르 티무르 자신도 문화와 과학에 관심을 기지고 있었다. 유목기병이 세계사에서 사라진 것은 총의 발명에서 비롯된다.총의 발명은 1354년 독일의 수도승인 베르트롤드 슈바르츠가 대포의 원리를 활용하여 발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수 차례의 개량을 통해 화승총 형태의 소총이 1500년경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 지역에 나타났다고 한다. 1389년 오스만제국이 코소보에서 전쟁을 할 때 화승총이 무기로 사용되었다. 대포와 다른 이 첨단의 무기는 아미르 티무르시대에 본격적으로 활용되지는 않았지만 서유럽 사회가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원천기술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아미르 티무르는 인도원정에서 화승총을 실험하였다. 그의 원정을 묘사한 인도의 한 화가의 그림에서 아미르 티무르가 총을 들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아미르 티무르가 화승총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알려진 내용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정복한 지역에서 가져온 새로운 기술과 제품
에 대해서 그는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미르 티무르의 이러한 성품은 1401년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그를 알현한 이븐 할둔에 의해서 전해진다.
"이 티무르왕은 가장 위대하고 현명한 왕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우 현명하고 통찰력이 있다. 그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해 토론을 즐겼다."
실제로 티무르제국의 마지막 후손인 보부르Zahiriddin Muhammad Bobur,(1483~1530)는 아미르 티무르가 실험한 화승총을 완성시켜 북인도를 침략하여 무굴 제국을 세울 수 있었다.14세기는 유럽과 아시아의 세력 판도를 전환하는 중요한 시점이었다.포스트몽골제국은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였다. 누가 패권을 장악하느냐! 아미르 티무르는 죽어가는 유라시아대륙을 극적으로 구하였다. 그는 몰락하는 아시아의 과학과 학문을 부활시켰다. 사마르칸트에 모든 첨단의 과학을 모아서 아시아의 우수한 과학기술을 부활시킨 것이다. 그리고 유럽은 그 혜택을 받은 것이다. 아미르 티무르 사후 유럽은 자신에게 전달된 아시아의 원천기술(나침반, 화약, 인쇄술)을 응용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였다.
아미르 티무르가 세운 티무르제국은 단명에 끝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영향력은 아시아가 아닌 유럽에서 다시금 부활하였다. 그의 사후 세계는 '몰락하는 유라시아와 신흥 선진강국 유럽'으로 정리된다.
오스만제국은 아미르 티무르의 전략을 반대로 수행하였다. 부활시킨
실크로드를 다시 죽여버렸다. 실크로드의 활기찬 소통은 유라시아의 성장이었으며 유럽을 종속시켰다. 그러나 정복이라는 야심으로 실크로드를 차단시킨 오스만제국에 의해 유라시아는 성장이 멈추어 버렸다. 그들이 원한 것은 이슬람의 승리와 정복이었다. 다른 목적은 필요하지 않았다. 유럽은 발칸반도를 빼앗기면서 새로운 무역로가 시급하였다.
1492년!
인도를 찾아 떠났던 콜럼부스는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였다. 아시아가 전해준 나침반과 화약을 응용하여 미지의 대륙을 발견하였다. 이후 유럽은 자신감을 가지고 바다의 실크로드인 해양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유럽 사회는 해양로를 통해 자본주의를 시작하였으며 중상주의를 통해 경제력이 급상승하였다. 마침내 제국주의로 탈바꿈한 유럽 열강들은 막혀버린 실크로드 때문에 후진성을 면치 못하던 아시아를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아미르 티무르의 전략과 리더십이 유럽제국, 특히 영국이 벤치마킹하였다고 앞에서 언급하였다. 그리고 유럽 르네상스의 원천에는 아미르 티무르가 달성한 실크로드의 부활이 있었다.아미르 티무르를 14세기에서 배제하고 세계사를 연결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유럽인들은 르네상스의 번영을 자신들 스스로 만든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 7∼10세기 동안 축적된 이슬람의 선진 과학과 여타 학문은 당대에 유럽에 전해지지 못했다. 이후 몽골제국의 유라시아통일과 유럽대륙의 정치적 격변을 통해 이슬람과 중국의 첨단기술들이 유럽에 전수될 수 있었다. 그러나 13세기 이후 몽골제국이 흔들리면서 이슬람과 중국의 과학기술은 발전하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14세기 아미르 티무르가 근세로 넘어가는 격동기에 유라시아를 지배하면서 과학기술을 집대성하였기 때문에 15세기 이후 유럽의 르네상스는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실크로드를 부활시켰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세계사는 실크로드의 번영을 통해 발전한 대륙세력과 해양로를 통해 현재도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해양세력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이 두 세력간의 위상이 바뀌는 데는 아미르 티무르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그의 최대 목표인 길의 소통이 국가를 번영케 한다는 전략은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그 길을 여는데 아미르 티무르의 실크로드 부활이 큰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세계사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간의 투쟁으로 본다면 이 연결고리는 아미르 티무르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세계사에서 아미르 티무르를 제외한다면 근세의 유럽은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칭기즈칸을 넘어선 14세기가 배출한 위대한 대륙의 설계자, 아미르 티무르
유럽인들은 왜 그의 존재를 숨기면서 그를 좇으려고 했나?
대한민국 최고의 중앙아시아 전문가 성동기 박사가 5년간 심혈을 기울인
위대한 영웅에 관한 평전과 그 역사적 재해석


아미르 티무르 Amir Temur(1336-1405)는 14세기 중앙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든 사람이다. 만약 아미르 티무르가 없었다면 다민족의 다양한 문화를 만들고 있는 현재의 중앙아시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지금의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다양한 민족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이전에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던 사람들이 이민족이라면 그는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난 중앙아시아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중앙아시아를 통일시켰다. 그의 통일은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던 다른 민족들을 자극하였고 그렇게 유럽과 중동 그리고 아시아와는 다른 문화의 중앙아시아를 건설할 수 있었다.

아미르 티무르는 위기에 빠진 유럽을 구원한 구세주였다. 그는 유럽을 침략하려는 오스만투르크를 상대해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하였다. 서쪽으로 계속해서 진군하지 않을까 하는 유럽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서쪽으로 공격을 하지 않고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오스만투르크는 재기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만약 아미르 티무르가 그 시점에 오스만투르크를 굴복시키지 않았다면 유럽은 어쩌면 역사 속의 왕국들로 남아있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몽골제국에 의해서 소통되었던 실크로드의 아미르 티무르에 의한 재건은 유럽을 다시금 아시아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유럽의 르네상스의 발화점이 되었다. 유럽은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발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다시금 오스만투르크에 막혀서 아시아와의 소통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유럽인들이 신대륙 개척의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

아미르 티무르는 유라시아대륙 실크로드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 부근의 작은 마을인 케쉬Kesh(현재는 샤흐리사브스Shakhrisabz)에서 1336년에 몰락한 역적 가문인 몽골계 바를라스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종교에 심취하여서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서 야생마처럼 혼자 자랐지만 중앙아시아 초원의 점성술사들이 800년마다 한 번씩 빛나는 '행운의 별'이라고 일컫는 '샤흐브키란Sahibkiran'의 기운을 받아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용맹하여 청년기에 이미 중앙아시아 몽골동포들의 차세대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다.

중앙아시아 몽골동포의 내전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며 급기야 세이스탄 전투에서 화살을 맞아 오른쪽 팔다리에 부상을 입고 평생을 절름발이로 살아야만 했다. 그의 서양식 이름인 태멀레인Tamerlane은 절름발이 티무르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침내 중앙아시아를 통일하고 나아가 칭기즈칸 이후 대륙의 마지막 정복자가 되었다.

그는 120여 민족이 공존하는 중앙아시아의 다민족ㆍ다문화 사회를 소통과 화합으로 이끌면서 수니와 시아에 염증을 느껴 발생한 이슬람 수피즘을 장려하여서 국가적인 종교로 성장시켰다. 천재적인 군사전략과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1,000일이 넘는 유라시아 원정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였다. 그는 실크로드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륙을 설계하였다.

그는 제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를 14세기 당대에 최고의 도시로 만들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유라시아의 경제, 무역, 문화를 발전시켰다. 특히 1402년 중세 최대의 전투인 '앙카라 전투'에서 유럽을 넘보던 오스만제국을 초토화시켜 유럽의 구세주가 되었으며, 이후 유럽 사회는 그의 대륙을 향한 전략과 설계를 배워서 근세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닫힌 중세의 중앙아시아를 열고 세계를 소통시켜 근세의 발판을 만든 아미르 티무르는 1404년 중국의 명明을 정벌하러 떠났다가 오트라르에서 병으로 위대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나이 69세였다. 이후 그는 역사 속에서 철저하게 누군가에 의해서 사라졌지만 그의 대륙을 향한 위대한 전략과 설계는 지금도 살아남아 진화하고 있다.

노마디즘의 완성은 칭기즈칸이 아니다! 14세기에 출현하여 성을 쌓는 유목민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노마디즘을 업그레이드시키고 대륙을 지배한 아미르 티무르(Amir Temur)를 우리는 이제 만나야 한다. 유라시아대륙은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지평선, 높이를 상상할 수 없는 산맥들, 그리고 깊이를 측정하기 어려운 강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약한 바람을 순식간에 대지를 휘몰아치는 태풍으로 변화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태풍을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게도 한다. 이러한 법칙은 대륙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그 존재조차 찾을 수 없었던 집단이 어느 순간 대륙의 지배자가 되기도 하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제국이 한 순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대륙에서 영원한 권력을 가지고 신화를 창조한다는 것은 사실상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대륙이라는 바둑판과 체스판에는 셀 수 없는 무한의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륙은 역사 속에서 미약한 인간이 자신 위에 역사의 흔적을 새길 수 있도록 허락해왔다. 유감스럽게도 인류의 역사에서 단지 세 사람만이 대륙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겨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스스로 대륙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륙을 설계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경영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어야 대륙은 한 인간의 지배를 허락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즈칸이 이러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 인물이자 대륙이 허락한 인류 최후의 정복자는 누구일까? 바로 1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배출한 아미르 티무르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두 영웅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책들과 자료들로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미르 티무르는 그렇지 못했다.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즈칸만큼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그를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역사 속에 사라지게 만들었을까? 아니 방치하도록 만들었을까?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를 천재적인 군사전략가이면서 잔인한 학살자라고 평가한다. 천재적인 군사전략가라면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처럼 평가가 있었을 것이고, 한 번도 국제전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 칭기즈칸처럼 분석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 과정에서 파괴와 학살을 자행했다면 칭기즈칸과 히틀러처럼 연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이다. 그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설사 자료가 있더라도 자료들을 서구인들이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인들은 그의 전략과 전술을 진화시키고 발달시켜나갔다. 우리는 그러한 예들을 영국, 미국 등에서 볼 수 있다.

14세기의 유라시아 대륙을 설계하고 경영하였던 아미르 티무르는 중세에 번영한 아시아의 마지막 선과 근세를 만든 유럽의 출발선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한 세기에 걸쳐 동시대를 지배했던 그를 배제하고 근세의 출발과 발전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를 들면, 아미르 티무르 사후에 진행되었던 정화(鄭和)의 대항해, 근세 유럽의 출발선인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와 유럽 국가들의 해양로 개척, 인도의 무굴 제국 등은 그와 연관성을 가진다. 실제로 위의 사건들과 연관된 역사문헌들은 아미르 티무르를 배제하고 시작한다. 서구학계는 근세 유럽의 르네상스와 이후 근대로의 발전은 자체적인 역량에 의해서 탄생한 것이라고 대부분 주장한다. 그러나 문헌을 살펴보면 유럽의 중세는 오늘로써 끝나고 내일부터 바로 유럽의 근세가 시작되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세상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신(神)만이 할 수 있다. 장기간에 걸쳐 중세 기독교의 암흑기를 경험한 유럽사회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근세라는 거대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이러한 논의가 지금 진행되고는 있지만 아미르 티무르는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20세기 말 거대한 구소련이 무너지고 대륙이 긴 잠에서 깨어나 다시 움직이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인도 등 과거 대륙국가들이 부활하고 대륙 전체가 요동치고 있다. 그런데 14세기 아미르 티무르가 중앙아시아를 발판으로 국가를 세우고 제국을 만든 시점이 이와 유사하다. 다시 말하면 거대한 몽골제국이 무너지고 대륙이 복잡하게 진행되던 상황이 지금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에는 중세를 넘어 근세가 들어서는 초입이었으며, 현재는 현대를 넘어 또 다른 세기로 들어가는 문턱에 있다는 공통점도 가진다. 이 시점에서 이제 역사 속에서 사라진 그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도대체 어떠한 인물이었기에 역사가 그를 숨겨야만 했는지를 밝혀야만 한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역사 속에서 철저하게 누군가에 의해서 사라졌지만 그의 대륙을 향한 위대한 전략과 설계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지금도 살아남아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21세기는 세계를 움직였던 위대한 인물을 복제할 수 있지만 21세기를 움직이려는 자는 위대한 인물의 전략을 진화시키고자 한다는 것을.

추천평

무엇보다 아미르 티무르가 위대한 것은 다민족ㆍ다문화 사회를 소통시키고 화합으로 이끌어 대제국을 건설한 점이다. 이미 우리나라 기업체들은 다민족ㆍ다문화 조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양상은 사회 곳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의 양탄자 리더십과 전략은 우리 사회에서도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태원(한진중공업 전무)'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위대한 정복자였던 아미르 티무르가 마침내 국내에 소개되어 반가웠고, 그의 전략과 리더십이 21세기 급변하는 국제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성학(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 책은 잊혀진 세계에서 영감과 교훈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화려했던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비즈니스 세계를 접목하여 엮어내는 저자의 통찰은 치밀하고도 절제된 양탄자처럼 오래도록 깊은 여운을 남길 것으로 기대한다.
'박찬욱(연구원)'

리뷰/한줄평2

리뷰

9.0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