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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1_주도홍 박사(백석대학교 부총장) 6
추천사 2_김경진 박사(장로회신학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8 추천사 3_이재환 목사(구로동교회 담임) 10 서론: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14 1 _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민낯……………………………………… 22 2 _ 가톨릭의 부러운 점……………………………………………57 3 _ 서방기독교와 동방기독교………………………………………78 4 _ 개신교와 가톨릭…………………………………………………91 5 _ 개신교 종교개혁…………………………………………………124 6 _ 종교개혁의 성공요인……………………………………………155 7 _ 루터와 츠빙글리…………………………………………………165 8 _ 급진 종교개혁……………………………………………………185 9 _ 칼빈의 등장………………………………………………………191 10 _ 영국 성공회……………………………………………………212 11 _ 미국 개신교 ………………………………………………… 223 12 _ 개신교와 자본주의의 출현 ………………………………… 236 13 _ 오순절주의의 등장 ………………………………………… 244 14 _ 세계 기독교의 바뀌어진 지형 ……………………………… 253 15 _ 미국제 복음주의에 대한 비판 ……………………………… 271 16 _ 개신교 vs 가톨릭 ………………………………………… 285 17 _ 『천국의 열쇠』가 주는 교훈 ………………………………… 299 18 _ 다시 던지는 질문 …………………………………………… 317 글을 마치며 327 추천도서 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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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혼동이나 변화도 없다는 표현은 유티케스의 단성론을 겨냥한 표현이라면 구별이나 분리도 겪지 않았다는 표현은 네스토리우스를 겨냥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칼케돈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에 대해 그 어떤 적극적인 문제해결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그저 양 극단의 주장에 대해 배제한 것일 뿐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가 어떠하다는 적극적인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양극단의 이단적인 주장에 대해 정죄하면서 최종적인 해결을 시도하지 않고 있는 것이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간 그 어디에서 알아서 선택하라는 교리적인 관용의 폭을 보여 주는 것과도 같아 칼케돈의 주장이 아무 것도 적극적으로는 해결한 것이 없다는 비판이 조금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 p. 82 교권의 위협 앞에 분연히 저항한 자들이 바로 개신교 신앙을 형성한 자들이었으며, 세속 권력의 전횡에 맞서 항의한 자들에게 붙여진 이름인 이 개신교라는 말의 원래적인 뉘앙스를 우리는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가 보수적이다 못해 수구 세력을 대변하는 상태에까지 이른 것을 볼 수 있다.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는 매력이 없는 종교가 되고 만 것이다. --- p. 130 비록 루터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신칭의 교리는 당시 등장하고 있던 개인의 정체감에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종교개혁 이전의 중세교회에서는 교회에 속하는 것이 그 사람의 구원을 결정했다면 이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 문제였다.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 개인이 교회라는 제도나 교회의 성직자나 교회 의식이 중간에 끼어들 필요 없이 하나님과 직접 사귐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이 교리는 신앙을 각 사람의 사사로운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생각과 아주 잘 들어맞았다. 1520년대에 유럽 전역의 독자들은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를 이렇게 개인 중심의 시각으로 이해했다. --- p. 200 마크 놀에 의하면 미국 역사에서 복음주의 개신교는 네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가진다. 개인주의 유형의 기독교, 부흥적 유형의 기독교, 문화를 지배하는 기독교, 미국 문화에 잘 적응한 유형의 기독교가 그것이다. 이 특징들은 강점인 동시에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 p. 263 개신교의 역사에 대한 공부나 사전이해 없이 들여다본 우리나라 개신교회의 모습은 가톨릭교회와의 경쟁 상대가 되기에는 너무나 모자라는 모습이었다. 전 세계 기독교의 바뀌어진 지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단지 서구에서 비서구로 기독교의 주도권이 넘어간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미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회의 엄청난 부흥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특별히 이들 교회들의 부흥의 패턴이 19세기 미국 개신교회의 부흥의 패턴을 따라가고 있다는 해석은 흥미롭기까지 했다. 한국교회도 그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개신교회의 장점과 단점은 그대로 오늘의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p. 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