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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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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서장 후쿠자와 유키치 연구의 7대 불가사의
1. 정치 바깥의 천황 vs 친정親征하는 천황 2. “일신독립=일국독립”의 본뜻 3. 후쿠자와의 상황적 사고와 발언 4. 대상에 대한 내재화의 태만―학문적 과정으로부터의 일탈 5. 후쿠자와는 ‘원칙이 있는 철학가’인가 6. 빌려온 수식어―“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7. 일본 근대화의 스승, 혹은 가증스런 민족의 적

제1장 초기 계몽기 후쿠자와 유키치의 국제관계인식―마루야마 마사오의 ‘후쿠자와 유키치론’을 검토하다
1. 방약무인, 약자에 대한 횡포, 무정잔혹, 힘이 곧 정의이다 2. 초기 계몽기의 국제논쟁―대만 출병과 강화도사건 3. 아편전쟁의 인식과 평가―중국의 민족적 영웅 임칙서에 대한 비난 4. 메이지 정부와 후쿠자와의 관계―초기 계몽기 후쿠자와 사상의 정리와 평가

제2장 중기의 후쿠자와 유키치, 보수사상의 확립―임오군란, 갑신정변, 탈아론
1. 보수사상으로의 과도기―통속국권론과 민정일신 2. 보수사상의 확립―시사소언과 제실론 3. 임오군란갑신정변과 후쿠자와 유키치 4. 아시아 멸시사상과 문명사관에 의한 침략의 합리화, 탈아론 5. 청일전쟁으로 가는 길은 불가피했나

제3장 청일전쟁기의 후쿠자와 유키치―조선 왕궁 점령여순 학살사건 민비살해 대만정복전쟁
1. 후쿠자와 유키치의 전쟁 캠페인―‘거류민 보호’라는 구실 2. 다시 ‘문명사관’에 의한 침략의 합리화 3. 조선의 자립독립을 위해서라는 구실 4. 아시아에 대한 멸시편견마이너스 평가의 무차별 방류 5. 전쟁 승리에 대한 열중열광―전쟁보도의 나쁜 전통 6. 일관된 군비확대 요구 7. 메이지 천황의 적극적 전쟁지도와 그 찬미―야스쿠니사상 8. 대만정복전쟁, 무단적 식민지배와 후쿠자와 유키치 9. 저널리스트 후쿠자와의 은폐보도―조선왕궁점령, 여순운림학살사건, 민비살해

제4장 아시아 태평양 전쟁으로 가는 길―후쿠자와 유키치가 깔아놓은 ‘어두운 쇼와’의 궤도
1. 말년의 후쿠자와 유키치 2.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가는 길―‘밝지 않은 메이지’에서 ‘어두운 쇼와’로 3. 전쟁책임의 관점에서 학문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마무리글
역자후기
추천사―후쿠자와 유키치의 동아시아 침략사상을 바로 알기 위하여
부록주석 후쿠자와 유키치 아시아인식의 궤적

저자 소개 2

야스카와 주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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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unosuke Yasukawa,やすかわ じゅのすけ,安川 壽之輔

1935년 효고현에서 출생하여 1964년 나고야대학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후 미야기교육대학, 사이타마대학을 거쳐 1998년에 나고야대학을 정년퇴임할 때까지 사회사상사적 관점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교육사상 등을 연구했다. '일본 근대교육의 사상구조'(1970), '15년전쟁과 교육'(1986), '여성차별은 왜 존속하는가'(1986), '일본 근대화와 전쟁책임'(1997), '일본 근대 교육과 차별'(1998), '대학교육의 혁신과 실천'(1998) 등의 저작을 발표했다. 정년퇴임 이후 일본전몰학생기념회, 부전병사?시민의 모임 등에서 활동하며 시민운동을 펼쳤고
1935년 효고현에서 출생하여 1964년 나고야대학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후 미야기교육대학, 사이타마대학을 거쳐 1998년에 나고야대학을 정년퇴임할 때까지 사회사상사적 관점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교육사상 등을 연구했다. '일본 근대교육의 사상구조'(1970), '15년전쟁과 교육'(1986), '여성차별은 왜 존속하는가'(1986), '일본 근대화와 전쟁책임'(1997), '일본 근대 교육과 차별'(1998), '대학교육의 혁신과 실천'(1998) 등의 저작을 발표했다. 정년퇴임 이후 일본전몰학생기념회, 부전병사?시민의 모임 등에서 활동하며 시민운동을 펼쳤고, 기존의 후쿠자와 연구를 일본의 전쟁책임을 고발하는 아시아 민중의 관점에서 재검토하여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인식', '후쿠자와 유키치와 마루야마 마사오'(2003),'후쿠자와 유키치의 전쟁론과 천황제론'(2006) 등을 써냈다.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지금 일본에서 엄밀한 현실인식과 탄탄한 이론으로 무장하여 발언하고 행동하는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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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香哲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여 연세대 학부 및 대학원을 거쳐 1977년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대학원 경제학연구과 박사. 현재 광운대학교 국제통상학부 교수. 일본 교토대학 경제학연구과 객원교수 역임. 동서교류사와 동아시아 기층 문화 형성을 복합적인 관점에서 연구.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2011),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2015)를 번역했고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2016), 《동아시아 고등교육의 재구축》(2007)을 저술했다. 이외에 〈K-POP 한류와 산업적 이해관계: 중국과 일본 사례 비교분석〉 등 동아시아학 관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여 연세대 학부 및 대학원을 거쳐 1977년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대학원 경제학연구과 박사. 현재 광운대학교 국제통상학부 교수. 일본 교토대학 경제학연구과 객원교수 역임. 동서교류사와 동아시아 기층 문화 형성을 복합적인 관점에서 연구.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2011),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2015)를 번역했고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2016), 《동아시아 고등교육의 재구축》(2007)을 저술했다. 이외에 〈K-POP 한류와 산업적 이해관계: 중국과 일본 사례 비교분석〉 등 동아시아학 관련 역저서 및 논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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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4월 0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20쪽 | 678g | 153*224*30mm
ISBN13
9788976967282

출판사 리뷰

후쿠자와 유키치,
일본근대의 스승인가 침략전쟁의 선동가인가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일신(一身)독립해야 일국(一國)독립한다.”
―학문의 권유 중에서

지금도 일본의 최고액권 지폐 초상인물로서 존경받고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메이지의 스승”, 더 나아가 “일본 근대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메이지유신 당시 후쿠자와가 일본을 ‘국민국가’로 만들고, 그리하여 ‘주권국가’로 만드는 두 가지 과제를 추구했다고 주장하면서, “일신독립해야 일국독립한다”는 구절에서 “개인적 자유와 국민적 독립, 국민적 독립과 국제적 평등이 완전히 같은 원리로 관철되고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그것은 일본의 근대 내셔널리즘에서 아름답지만 짧았던 고전적 균형의 시대였다”라고 결론지었다. 침략전쟁과 패전으로 얼룩진 어두운 쇼와의 터널로 빠져들기 전, 활기차고 지적이며 영광스러운 메이지시대의 이미지를 후쿠자와에게 투영한 것이다. 이는 마루야마가 만들어낸 후쿠자와지만, 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최소한 침묵했던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 세대 모두의 후쿠자와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은 과연 후쿠자와의 본모습일까? ‘대일본제국’의 침략전쟁으로 고통 받은 아시아 민족들에게 후쿠자와는 “근대화과정을 짓밟고 파탄으로 내몬 우리 민족 전체의 적”(한국)이나 “가장 가증스러운 민족의 적”(대만)이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도 전에 죽은 한 인물에 대한 이 아찔한 평가의 온도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진실은 무엇일까?

“후쿠자와스스로말하게하라”
『후쿠자와유키치전집』에서발췌한400여개의주요발언수록

“일본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신(후쿠자와 유키치)과 그 신의 사제장(마루야마 마사오)의 우상숭배를 파괴하는 격렬한 내용이지만 『전집』에서 후쿠자와 자신의 말을 인용해 하나하나 필주(筆誅)를 가하는, 실로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을 택함으로써 쉽게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메하라 다케시, 『中日新聞』 2001. 1. 15

책 말미의 「후쿠자와 유키치 아시아인식의 궤적」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400여 개의 발언은 모두 후쿠자와 유키치가 평생에 걸쳐 남긴 것들이다. 국제관계인식, 전쟁지도, 아시아 멸시 등 각 발언의 요지에 따라 분류하여 시기마다 어떤 발언이 주를 이루었는지, 평생에 걸쳐 어떤 발언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을 정도이다. 저자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그동안 전후세대의 사상가들이 전쟁과 패전으로 얼룩진 시대를 넘어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자유주의자’라는 환상을 덮어씌우고, 그 이미지를 뒤흔들 만한 발언은 외면한 채 오로지 입맛에 맞는 문구들만 주목해왔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진정한 후쿠자와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다름 아닌 후쿠자와의 텍스트들에 정면 도전한다. 후쿠자와의 입으로 후쿠자와를 설명하는 그의 치밀하고 집요한 작업은 엄밀한 연구자의 성실성이 무엇인지 소리 없이 웅변해준다.

제국의 영광을 꿈꾼 국가주의자,후쿠자와 유키치
“어리석은백성을농락하는사술”천황제와“병신”을위로하는“종교”


그는 “고학파 방식의 충용의열은 (…) 칼날이 잘 드는 보도”이지만, “날이 잘 선 보도를 칼집에 깊숙이 넣어두고 빼지 않는 것이 태평성대를 사는 무사의 몸가짐”이라고 했다. 그리고 청일전쟁을 맞이하여 “인간의 씨가 마를 때까지 싸운다”는 “일본 신민의 각오”를 강조할 필요성을 인식하고서야 “내가 평생 침묵한 것은 오늘을 기다려 크게 한마디 내뱉기 위해서였다”라고 표명하고 천황 친정을 재론했던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천황제의 본질이 “어리석은 백성을 농락하는 사술(詐術)”(??제실론??)임을 일찍이 간파하고서도 적극적으로 선택했을뿐더러, 일생 동안 천황을 위해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충성의 맹세를 수없이 반복했다. 천황의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평소에는 정치 바깥에 신격화된 존재로 두다가, 결정적인 전쟁의 순간 천황이 직접 군대를 지휘하도록 한다는 발상 역시, 어리석은 백성들이 천황의 이름으로 국가에 목숨을 바칠 수 있도록 선동하고자 했던 정치적 속셈이었다.
후쿠자와 유키치에게는, 천황을 중심으로 국력을 결집시켜 아시아를 집어삼킨 뒤 서구열강과 겨루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무엇보다 앞섰다. 그러기 위해 “가장 긴요한 일은 전국 인민의 머릿속에 국가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것”이었고, “일국의 인심을 흥기하여 전체를 감동시키는 방편으로는 외전(外戰)에 필적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던껁도 아깝지 않다”, “압제도 내가 당하면 싫지만 남을 압제하는 것은 몹시 유쾌하다”고 외치며 백성들의 충성심을 일깨워 천황을 위해 한목숨 바치게 하는 한편, 차티스트운동이나 사회주의와 같은 서구의 흐름이 일본의 서민들에게 전해질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 “바보와 병신”들에게는 “종교가 꼭 맞는 구색”이라며 수백 편의 글로 종교진흥책을 펼쳤다. 물론 후쿠자와 유키치 자신은 철저한 무신론자였지만 말이다.

아시아 멸시와 침략의 선두주자
“멸망이야 말로 오히려 조선인민들의 행복을 크게하는 방편이다”


“조선은 본래 논할 가치도 없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당면의 적은 지나이기 때문에 우선 병사를 파견해 경성에 주둔 중인 지나 병사를 몰살하고, 바다와 육지로 대거 지나에 진입해 곧바로 북경성을 함락시켜라.”

“눈에 띄는 것은 노획물밖에 없나니. 온 북경을 뒤져 금은보화를 긁어모으고 관민 가릴 것 없이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빠뜨리지 말고 ‘창창 되놈’들의 옷가지라도 벗겨 가져오는 것이야말로 바라는 바이니라.”

『후쿠자와 유키치 전집』을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그가 초기부터 일관되게 아시아에 대한 멸시와 침략을 선도해온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제국주의자의 위선과 편견, 오만함, 다른 문화에 대한 멸시와 비하가 글마다 넘쳐흐른다.

후쿠자와는 막부 말기 젊은 시절에 세 차례에 걸쳐 구미를 여행했다. 그 도정에서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영국의 관리가 중국, 인도, 기타 아시아 지역에서 무력을 배경으로 현지인을 거의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방약무인한 식민지배의 현실을 목격했다. 정말로 후쿠자와가 혜안을 지닌 젊은이였다면, 동아시아 3국이 연대하여 서구 제국주의세력을 몰아낼 궁리를 했을 법도 하다. 그랬다면 아시아의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쿠자와 유키치는 “압제도 내가 당하면 싫지만 남을 압제하는 것은 유쾌하다”고 곱씹으며, 영국인이 현지인을 다루는 것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그 영국인까지 눌러 동양의 권세를 일본의 손에 움켜쥐자고 하는 제국주의적 권력정치의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또한 때를 같이 하여 중국, 조선, 대만 등 아시아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멸시, 편견의 발언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홍콩의 현지인은 풍속이 극히 비루하고 오로지 영국인이 시키는 대로 할 뿐”, “현금의 우두머리는 홍수전으로, 스스로 천황으로 칭하고 있다. 그 도당들이 인원은 많다고 하지만 원래 오합지졸로 용병의 법을 아는 자가 없다.”(?西航記?) “대만 야만인(…)은 금수와 같은 자로 사람 두서넛 잡아먹는 것은 보통이고 (…) 조선인은 그저 완고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으로 외국선만 발견하면 다짜고짜 발포하는 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지난날과 같다.”(?要知論?) 유치할 정도의 폭언과, 문명의 이름으로 미화된 침략의 욕망을 감추지 않은 노골적인 글들은, 과연 후쿠자와가 당대의 사상가로 불리는 이가 맞는지 의문마저 품게 만든다.

“밝은 메이지”의스승 후쿠자와,“어두운 쇼와”의 길을 연 유키치
아시아 민족들의 역사 인식의 소통을 위하여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인식의 간격은, 들여다보면 벌렁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심각하다.”
―운노 후쿠주

지금까지도 일본사회는 전쟁과 패전으로 얼룩진 “어두운 쇼와”시대의 기억을 “밝은 메이지”시대의 영광과 단절시킨 채 이해하는 풍조에 젖어 있다. 저자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밝은 메이지”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후쿠자와야말로 “어두운 쇼와”로의 길을 열어젖힌 장본인임을 폭로함으로써 일본인들의 자기최면을 깨고자 시도한다. 그것이야말로 메이지시대부터 싹을 틔웠던 일본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직시하면서 전 사회, 무엇보다 평범한 일본인 개개인의 전쟁책임을 절감하는 작업의 시작이자 단초가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판 서문 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제국주의시대에 잘못된 탈아입구 노선을 선택하여 아시아와 일본의 근대사에 불행한 균열과 분열을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을 극복하는 공동연구가 진전되기를 기대합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공동연구란,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의 역사인식의 차이를 좁혀가기 위해 진실된 역사적 언어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일 것이다. 일본 근대의 스승 후쿠자와 유키치의 언어에 정확한 맥락과 의도를 찾아주는 이 작업은 그 소중한 첫걸음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추천평

“집요하게 후쿠자와 자신의 말로 후쿠자와를 드러내면서 끝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들이대고 마는 추리소설 같은 흥미와 설득력을 이 책은 지니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국민국가 건설의 신화를 메이지유신에 빗대 창조하려고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이 서구화ㆍ근대화ㆍ무자비한 국가주의의 스승 후쿠자와를 찬양하는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경조부박한 일본 붐이나 그에 편승한 부국강병론과 근대화론이 득세하여, 그와 함께 후쿠자와에 대한 표피적이고 맹목적인 긍정론이 유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스카와 교수의 글은 일본과 한국의 근대를 되돌아보고 투철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서승, '추천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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