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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_소설을 쓰지 않는 경멸 대신, 소설을 쓰는 경멸
완전히 불완전한 이멜다 마르코스의 항변 우주인 좋게 헤어지는 건 없다 발광하는 입술 작별의 예식 성년의 날 요리 수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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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에게는 색처럼, 수학자에게는 숫자처럼, 언어는 골칫거리이자 실재이며 어떤 에너지다. 모든 단어는 관심을 받아야 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며 소중히 다루어져야 하지만, 그 각각은 질투심 많은 남편, 요구가 지나친 연인, 믿을 수 없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찾을 수 있는 최대치의 단어들로 언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감정을 사용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소설을 쓰는 것은 언어 자체의 문제였다. --- 「책 머리에」 중에서
아빠가 한 달 동안 나에게 말을 걸지 않은 적이 있었다. 내가 아빠한테서 생일 선물로 받은 구찌 구두가 맘에 안 든다고, 보테가 베네타 백이 갖고 싶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사실 보테가 베네타 옷은 별로다. 영양 결핍된 아홉 살 소년 옷 같으니까. 핸드백은 다르다. 누가 나에게 세계 평화와 보테가 베네타 백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세상은 그 순간 멸망했을 것이다. --- 「완전히 불완전한」 중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1,000달러를 구두 한 켤레에 썼을 때의 전율을 나만큼 아는 여자는 없어요. 답은 간단해요. 그 구두가 나에게 윙크했다는 것, 내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다는 것. 그럴 때 구두 매장은 나에게 실락원이고, 구두는 성모 마리아의 찬란한 창작품이니까요. --- 「이멜다 마르코스의 항변」 중에서 출산대에 누워 땀으로 범벅된 채 위를 올려다보는 꿈을 꾸었다. 산도가 거의 열리는 순간 아기들은 내 눈앞에 나타났다. 태양의 형상을 띤 수술 램프 바로 아래 형형색색의 열대어처럼 아기들은 빛을 발하며 떠 다녔다. 전부가 아니라 얼굴만 보였다. 누워 있어서 그 3차원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 「우주인」 중에서 소송을 사랑하는 사회의 재판관은 식품 가게 계산원이 화장지 가격을 스캔하듯 이혼을 처리했다. 숭고한 법률가란 사소하고 부도덕한 행위가 늘어진 노출 영화 속에나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판사도 참 울적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좋게 헤어지는 건 없다」 중에서 병오의 양복은 소파 위에서 아주 느리게, 시속 10센티미터의 속도로 마르고 있었다. 우리는 반쯤 멍한 상태였지만 무엇인가를 공유했고, 충분하진 못했지만 눈이 부셨다. 내 어깨에 기댄 채 병오가 옹알이하듯 턱을 움직였다. 나는 오히려 병오의 볼에 내 머리를 기댔다. 우리 몸은 커피잔 모양을 한 야자나무 같았다. --- 「성년의 날」 중에서 나는 작은 아스파라거스 줄기를 칼로 썰고 각 봉오리의 밑동을 잘라 조각조각 나누었다. 작게 잘라낸 아스파라거스 줄기를 다시 별 모양으로 다듬었다. 그 과정은 요리책에서 본 환상과는 약간 달랐지만, 나에겐 완벽한 요리의 첫 번째 순서였다. --- 「요리 수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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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미지와 생경한 언어들의 독특한 조합
‘이충걸식 글쓰기’로 일군의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GQ KOREA》 편집장 이충걸의 첫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 언어의 위태로운 절벽 앞에서 시간과 구조를 생경하게 조합하여 달콤한 함정을 마련하다 남자를 위한 최고의 패션매거진 《GQ KOREA》 편집장으로 매달 문화계 전반에 강렬한 콘텐츠를 선물해 온 에디터 이충걸의 첫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2011)이 생각의나무에서 출간되었다. 국내 최고의 잡지 에디터에서 소설가로 첫 발을 내디딘 이충걸은 이번 소설집 전체를 통해 언어 속의 시간과 구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부사는 길을 막고, 형용사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에 실족했으며, 명사는 여태껏 알았던 세계와 사뭇 다른 위태로운 절벽’이었던 소설 쓰기 동안, 작가는 사용 가능한 최대치의 단어들을 끌어내어 언어로 존재하는 대부분의 감정을 글 속에 녹여 내었다. 그리고 낯선 이미지와 생경한 언어들을 독특하게 조합하여 마니아층까지 형성하고, 한편으로 불편한 조임까지 느끼게 된다는 ‘이충걸식 글쓰기’는 소설가 이충걸의 특별한 무기가 되어 현대적 서사 구조 곳곳에 달콤한 함정을 만들어 놓았다. 이제 그 함정 속으로 마음껏 빠져 들어 보자. 현대인이 겪는 무미건조한 삶의 편린이 반사한 빛의 발광(發光)하는 그림자 ‘이충걸식 글쓰기’로 표현된, 언어로 존재하는 대부분의 감정들 이충걸의 첫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에는 작가가 수년 동안 갈고닦은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꽤 자주 낯설게 느껴지는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고독과 불안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소비에 충실하면서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몸을 떨고, 때로는 스스로 발광(=?하기도 한다. 익숙한 현대적 삶에 대한 낯선 이야기 속에서 다소곳하면서도 현란한 단어들의 만찬을 만끽하다보면 어느새 언어로 존재하는 대부분의 감정들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렇다고 현란한 수사의 갈래길 사이에서 길을 잃을 걱정을 미리 할 필요는 없다. ‘이충걸은 이충걸이고 이충걸의 소설은 이충걸의 소설’이기에. 소재의 보편성과 수사의 독자성 틈에서 소설가 이충걸이 전하는 이야기는 여덟 가지 스펙트럼으로 펼쳐진다. 아버지를 연인이자 아이처럼 돌봐주는 딸이 아버지의 선배, 아버지의 새 애인과 스스럼없이 연애하며 겪는, 완전히 평범한 일상의 불완전한 이야기(「완전히 불완전한」), 구두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의 자전적 고백(「이멜다 마르코스의 항변」 ), 갖은 노력 끝에 얻은 아이를 결국 사산하게 된 여자의 현실과 어두운 환상(「우주인」), 부인의 바람과 이혼선고를 대책 없이 받아들이는 남자의 힘없는 자기 항변(「좋게 헤어지는 건 없다」), 성악가 출신 남편과 함께 살며 평생 음치로 지내 온 여자가 목소리를 되찾는 의외의 과정(「발광하는 입술」), 오랫동안 죽을 준비를 해 온 엄마와 이별의 준비가 덜 된 딸이 만들어 가는 내밀한 작별의 방정식(「작별의 예식」), 무미건조한 남자 친구와 자의식 강한 여자 친구가 겪는 은밀하고 유쾌한 모텔 체험기(「성년의 날」), 입맛 까다로운 남편과 함께 사는 여자가 요리를 통해 보여주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 이야기(「요리 수업」). 스스로 발광하는 이충걸의 여덟 가지 이야기는 현대인이 겪는 무미건조한 삶의 편린이 반사한 빛의 그림자다. 그리고 그 발광의 기저에는 대한민국 문화계에 축복처럼 쏟아진 ‘이충걸식 글쓰기’가 도사리고 있다. ‘완전히 불완전’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