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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B.A.W.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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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에는 여가라고는 거의 없다. 사람들이 옛날보다 열심히 일해서 그런 게 아니라 오락도 일처럼 수고로운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영리한 사람은 많아졌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지혜란 천천히 생각하는 가운데 한 방울 한 방울씩 농축되는 것인데 누구도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 p.72
사실 낙관주의는 신뢰할 만할 때는 유쾌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엄청 짜증스럽다. 특히 짜증스러운 것은 우리의 곤경을 나누지 않아도 되는 자들이 우리의 곤경에 대해 낙관주의를 피력하는 경우다. 타인의 곤경에 관한 낙관주의는 그것을 사라지게 하거나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제안이 병행되지 않는 한 대단히 위험하다. --- p.133 세계사에는 네 종류의 시대가 있었다. 모두가 자기는 다 안다고 생각했던 시대, 아무도 자기가 아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시대, 현명한 사람들은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던 시대, 어리석은 사람들은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현명한 사람들은 아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던 시대. 첫 번째 시대는 안정의 시대고, 두 번째는 서서히 쇠퇴하는 시대고, 세 번째는 진보의 시대고, 네 번째는 재앙의 시대다. --- p.195 학창 시절에 회초리나 채찍으로 매를 맞았던 이들은 거의 한결같이 그 덕에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이렇게 믿는 것 자체가 체벌이 끼치는 악영향 중 하나다. --- p.215 칠면조에게 사고력이 있었다면 크리스마스를 과연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는 종종 궁금해진다. 아마도 평화와 우호의 계절로 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아는 한 저명한 생물학자는 쥐들이 동물계의 패권을 장악하여 인간을 퇴위시키는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한다. 인간의 이익이 동물들의 이익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이유는 전혀 없다. 동물들이 우리를 박멸하는 것보다 우리가 그들을 더 손쉽게 박멸할 수 있다는 것, 우리의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는 탄탄한 근거라고는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 우리가 예술과 과학과 문학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우리가 훨씬 잘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래는 물 뿜기를 소중하게 여길 것이고, 당나귀는 요란한 나귀 울음이 바흐의 음악보다 훌륭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전제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그들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결국 모든 윤리 체계는 전쟁 무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 pp.220-221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100년 전 사회는 자선을 독립보다 우위에 놓았다. 오늘날 우리의 눈에는 이상한 관점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관점은 지금도 새로운 형태들로 잔존하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여전히 막강하다. 바로 이런 시각 탓에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들에게 공공 기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합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보다는 민간의 선행으로 실업자들이 생존하게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정의로운 세상이라면 '자선'의 가능성조차 없을 것이다. --- p.239 역사를 돌이켜보면, 실패하고 나서 그 실패의 진짜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에 들어가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 사람들이 드물게 몇 명 있기는 하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람이 디즈레일리였다. …… 이런 능력은 매우 드물어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역사상 성공한 사람들은 애초 성공한 상태에서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실패의 교훈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 pp.302-303 존 D. 록펠러 시니어의 경우를 살펴보자. 나는 그가 오랜 세월을 살면서도 소년 시절 다니던 침례교 주일 학교에서 금지한 일들을 하나도 범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록펠러는 어린 시절 배운 기준대로 언제나 도덕적으로 엄격했다. 어렸을 때 배운 선을 넘지 않았다. …… 그가 배운 기독교인의 의무에는 불공정한 수단으로 경쟁자를 파멸시키는 행위나 정치적 부패를 삼가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았다. 의무란, 록펠러가 품었던 생각처럼, 단지 그와 하느님 간의 사안일 뿐이었지 그와 공동체 간의 사안은 아니었다. --- p.367 앤드류 카네기는 극빈층 가정에서 자수성가한 인물로 가혹하고 무자비한 고용주였다. 카네기는 자신이 가장 불리한 여건에서도 자신의 길을 개척했으므로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도 똑같이 여건이 불리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어떤 이점도 없이 출발했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사람은 19세기를 통틀어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며, 이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투쟁의 강도를 누그러뜨리는 데 반대했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이 자신을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만든 체제에 대한 지지치고는 얼마나 빈약한 주장인지는 깨닫지 못했다. --- p.430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모험심을 배출할 수 있는 해롭지 않은 출구를 제공해야 한다. 모든 정치인이 주말마다 위험한 스포츠에 빠지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들이 일할 때는 안전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최상의 계획은 그들을 부추겨 서로 결투를 벌이도록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모험을 제공하도록 하자. 다만 조용한 생활을 더 좋아하는 이들에게 그 비용을 치르게 하지는 말자. --- p.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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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줄 몰랐던 반전운동가, 자유로운 영혼을 키우고자 했던 교육자
정의를 요구했던 사회개혁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수학과 논리학의 신기원을 이룬 학자 러셀의 수많은 모습이 이 한 권의 책에 녹아 있다! 버트런드 러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의 직업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나의단어로 규정하기에는 그는 너무도 많은 영역을 넘나들었고 그 모든 영역에서 쉽지 않은 업적을 이룬 사람이기 때문이다. 러셀은 자유로운 교육을 실험했고, 컴퓨터 발명의 뿌리가 되는 수학의 체계를 세웠고, 논리학의 근본을 뒤집었고, 핵무기의 확산을 저지하고자 싸웠던 '100인 위원회'를 이끌었고, 반핵 시위를 주도하여 90이 다 된 나이에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100년에 가까운 삶을 살면서도 한순간도 열정을 잃지 않았던 사람. 그의 칼럼을 모은 『런던통신 1931~1935』는 그처럼 다양한 러셀의 모든 것을 단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러셀이 남긴 마지막 책, 그 책을 만나기 위해 세상은 40년을 기다려야 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1931년에 미국 허스트 그룹 소유 신문들의 고정 필자가 되어 1년에 1,000파운드나 되는 원고료를 받으면서 4년 동안 칼럼을 썼다. 그중 몇 편은 훗날 영국 잡지들에 다시 실렸지만 대부분은 책으로 출판되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런던통신 1931~1935』는 그 에세이들을 모아 러셀의 승낙을 얻은 다음 그의 사후인 1975년에 펴낸 책이다. 마지막 글이 씌어지고 40년이 지난 다음에야 출판될 수 있었던 것이다. 편집자 해리 루자는 "잊혀서는 안 될 것들"이 잊혔다면서 "솔직하고 현명한 독자라면 이 판단에 동의하리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편지처럼 친근한 135편의 에세이 러셀이 쓴 가장 쉬운 책으로 20세기 최고의 지혜를 만난다! 러셀은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기로 이름 높은 작가이며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읽기 쉬운 책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행복의 정복』 등의 에세이가 한국에 소개되었지만 그 책들은 몇 번을 곱씹어야 소화할 수 있는 철학책에 가까웠다. 그러나 『런던통신 1931~1935』는 러셀이 남긴 어떤 책보다도 쉽고 친근하고 유머 있는 책이다. 네 쪽을 넘는 글이 거의 없는 이 책은 분량도 부담이 없지만 소재도 일상에서 찾은 것들이어서 러셀의 명성 때문에 오히려 부담을 느꼈던 독자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러셀이 다룬 소재들은 우리 모두의 생활과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러셀은 「우리는 사고 싶지 않았다」에서 휴가를 가는 대신 그랜드 피아노를 사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도'에게 습격당한 가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피아노를 놓을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지만 강도는 벽을 조금만 헐면 거실에 놓인 피아노의 꼬리가 멋진 침실로 튀어나오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처량하면서도 웃긴 이야기의 결말은 생산과 소비의 관계가 역전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악순환을 향한 비판이다. 러셀의 저서로는 거의 유일하게 대중 칼럼의 형식을 택하고 있는 『런던통신 1931~1935』는 러셀을 처음 만난 독자에게는 20세기 가장 깊었던 지혜와 조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이미 러셀을 만난 독자에게는 근엄한 철학자의 유쾌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기쁨을 전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