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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남의 자식들이 와도 그냥 맘이 설레요” l신안 가거도 외딴섬에 숨어들어 한세상 살다 가는 사내처럼 l신안 만재도 구경 삼아 싸득싸득 걷는 길l신안 도초도, 비금도 지독하게 고독한 섬 l진도 독거도 2장 /바람이 분다, 떠나야겠다/ 옛날 군산에 갔다 l군산 선유도, 무녀도 초월은 없다 l군산 명도, 방축도, 말도 “바지락 긁고, 굴 찍어 묵고 살아” l당진 대지도 소지도 “풍도가 2번 고향이에요” l안산 풍도 3장 /삶에 기적은 없다/ 한산도에서 난중일기를 읽다 l통영 한산도 연산군과 왕족의 유배지 l교동도 원나라 황제의 유배지 l옹진 대청도, 소청도 심청이는 효녀였을까 l백령도 낙원의 꿈 l완도 당사도 4장 /여행이 가르쳐주는 세 가지/ 바다의 황금광 시대, 연평 파시 l옹진 연평도 생선 한 토막에도 선원들 목숨 값이 l신안 재원도 위로의 섬 흑산 l신안 흑산도 순간인 줄 알면서 영원처럼 l신안 홍도 5장 /바람이 불어오는 곳/ “굿당의 신령님들 마귀가 아녀, 다 우리 조상님들이지” l옹진 문갑도 수컷인 아비들을 어찌할 것인가! l통영 사량도 노인들을 위한 섬은 없다l옹진 소야도 수상가옥에 불이 켜지면 l통영 용초도 한 여자 이야기 l완도 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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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마시다 남긴 됫병 소주를 담장 밑에 숨기고 허위허위 마을길로 사라진다. 섬에서 나서 섬 밖으로 한 번도 나가 보지 못한 사람도 뭍의 사람들이 겪는 일을 다 겪으며 살아간다. 온갖 세상 풍파에 떠밀려 다니던 저 사내도 끝내 섬이 되지 않았는가. 섬에 있어도, 섬을 떠나도 사람은 삶에서 터럭만큼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삶이란 것이 오늘은 외딴섬으로 숨어들어 한 세상 살다 가는 사내처럼 외롭다. 「“남의 자식들이 와도 그냥 맘이 설레요”-신안 가거도」 중에서
숙소가 있는 도초항까지는 아직도 5킬로미터나 남았다.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무릎 아픈 것을 핑계로 차를 얻어 탈 생각을 했다. 네 대째, 지나가는 차에 손을 들었지만 아무도 세워주지 않는다. 여러 번 거절당할수록 자꾸 자동차 앞에서 비굴해진다. ‘무릎 좀 아프다고 이러면 쓰나.’ 퍼뜩 정신이 되돌아온다. 그래 천천히 쉬엄쉬엄 가자. 급히 가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차 얻어 탈 생각을 버리니 나그네는 다시 길의 주인이 된다. 풍경의 주인이 된다. 밤길인들 어떠랴.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구경삼아 싸득싸득 걷는 길 - 신안 도초도, 비금도」 중에서 탄항도 산비탈에 자리잡은 집은 네 채. 하지만 상주하는 가구는 한 집뿐이다. 나머지는 미역철에만 들어와 작업하고 나간다. 탄항도 해변에도 미역 건조 작업이 한창이다. 곡식 심을 밭 한 뙈기 없는 그야말로 절해고도다. 오로지 바다밖에 의지할 곳 없는 섬. 처음 저 섬에 정착한 이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고독을 견디고 살아온 자들의 후손들. 조상들이 외로움과 고통을 견디며 섬을 지켰던 보람을 이제 후손들이 얻는다. 한 달 벌어 일 년을 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음덕인가. 「지독하게 고독한 섬 - 진도 독거도」 중에서 다예는 풍도가 마냥 좋기만 하다. “맑은 공기도 마실 수 있고, 꽃게 잡을 때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어요. 봄이면 꽃들이 많이 피어요. 가을에는 달래도 많이 따 먹어요. 컸을 때도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다예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학생이 한두 명만 남으면 학교가 없어진대요.” 다예는 고구마 순을 벗기는 엄마 곁에 앉아 저도 껍질을 벗긴다. “애가 풍도를 너무 좋아해요. 커서도 여기 살겠대요. 그래서 여기 살려면 여기 사람하고 결혼해야 한다고 했더니 발전소 사람하고 결혼해서 살겠대요, 글쎄.” 섬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에는 젊은 사람들이 근무한다. 그런데 다예가 클 때쯤이면 발전소 사람들이 다들 나이가 들어 늙을 텐데, 걱정이군. 어쩌지! 「“풍도가 2번 고향이에요.” - 안산 풍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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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나에게 길을 묻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인생의 답을 찾고 싶다면, 지금 당장 섬으로 가라. ‘섬 순례자’로 유명한 강제윤 시인은 2006년 가을 우리나라의 유인도 500개를 모두 걷겠다고 결심하고, 지금껏 2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을 걷고 또 걸어왔다. 단순히 섬을 여행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섬사람들을 통해 사람살이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는 순례의 길이었다. 따라서 그의 글은 단순한 ‘섬 여행 정보’가 아니다. 지금의 자리에서 당장 떠나고 싶어 하는 도시인들을 섬으로 이끌고, 그리하여 외딴섬처럼 외로움을 타는 나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장차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낮으나 온유한 목소리로 일깨워주는 철학서에 가깝다. 2년 전 『섬을 걷다』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떠나는 섬 여행’을 통해 도시인들의 팍팍한 삶을 달래주는 따뜻한 위안거리를 제공한 저자는 이번 책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에서 섬 안에 깊이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또 한 번 진정으로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섬사람들의 주름진 얼굴에서 도시인의 삶을 되돌아본다. 외딴섬처럼 고독한 우리네 일상을 위로해주는 감성에세이 화려했던 연평 파시의 추억으로 우울한 연평도 노인들, 교회와 굿당이 공존하는 문갑도에서 파란에 찬 인생을 돌아보는 만신 할배, 임금 왕(王)자의 모습을 한 당사도에서 민중의 왕이 나오길 바랐던 주민들, 다양한 모습의 섬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독자는 현재 삶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다. 책에서, 시인은 이렇게 묻는다. 섬에서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밤하늘 가득히 쏟아지는 별을 가슴에 품어본 적이 있는가. 별이 나에게 길을 묻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질문 끝에 시인은 도시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답을 찾고 싶다면, 지금 당장 섬으로 가라. 이 책이 주는 최대의 기쁨은, 별은커녕 밤하늘마저 바라볼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내가 밤하늘의 별에게 인생의 길을 묻는 게 아니라 별들이 나에게 길을 묻는 목소리, 그 아우성을 듣다 보면 문득 찾게 되는 나만의 길,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독자에게 제공하는 최대의 미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