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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마리야, 준표가 앉아서 잔디 기다리던 곳은 어디야?”
“아~ 거기? 저쪽이야. 가보자!” 준표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 있자니, 어느 샌가 일본 분들이 우리를 보고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우리가 비켜주자 한 분 한 분 준표 자리에 앉아 브이를 하는 일본 관광객들. 준표가 앉은 자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서울 시내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장소는 다 이유가 있다. 나의 서울 투어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지기 시작했다. --- p.18 마리가 가리킨 테이블 위에는 「시크릿가든」 촬영중에 어떤 배우들이 앉았었는지 표시해둔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 ‘하지원, 윤상현 테이블’ ‘김사랑, 윤상현 테이블’ ‘윤상현, 김사랑, 이종석 테이블’……. 어지간한 카페 장면들은 여기 양촌향교점에서 촬영했는지, 이름표에 출력된 장면만 봐도 여러 에피소드가 떠오를 정도였다. 그러다 드디어 원하는 자리가 눈에 띄었다. ‘현빈, 하지원 테이블’. (…)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우리에게 차례가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김주원은 비싼 남자였어. 쉽게는 자리를 안 내준다는 거지……. 우리 그냥 가자.” 포기하자는 내 말에 마리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 p.47 일본 지인들을 모시고 서울에 있는 궁이란 궁은 다 방문했지만 외전 바깥에 이렇게 넓고 무성한 녹지가 조성된 곳은 없었다. 우리 궁궐과 유럽식 공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느낌이라고 할까? 데이트하기에 가장 좋은 궁궐은 창경궁 아닐까 혼자 실없이 생각해본다. 창경궁 이곳저곳을 한참 걷다보니 ‘춘당지’라는 큰 연못이 보였다. 그러자 히로미 언니는 “여기야, 여기!”라며 함성을 질렀다. “이 연못이 려원이 헤니에게 장난으로 잉어 잡아오라고 한 곳이야!” --- p.77`78 Sometimes I feel so happy……. 지훈은 이곳에서 세경에게 벨벳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를 들려준다. 떠나간 연인을 원망하면서도 연인의 엷은 파란색 눈동자를 그리워하는 이 노래, 그의 마음이 자신에게 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세경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1978년부터 자리를 지켰다는 부루의 뜨락. 폭이 좁은 4층짜리 건물인데 1층에서 한류스타 상품을 팔고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치게 된다. 이름은 맞지만 도저히 드라마에서 봤던 장소라곤 생각되지 않아 쭈뼛쭈뼛 서 있는데, 안쪽으로 낡은 계단이 보였다. --- p.98 삼순이 집 앞에서 무언가 미적지근한 마음을 안고 왔던 우리 일행은 은성이 집 앞에서 크게 환호했다. 너무 좋아 떠들썩하게 기념촬영을 하고 있자니, 역시 동네 주민으로 추정되는 아저씨께서 관심을 보이신다. “아저씨, 여기 맞죠? 한효주 집이요.” “맞어! 요즘도 일본 아줌씨들 엄청 많이 와. 저 양반들도 일본에서 온 거지? 아주 요즘 부암동 일대가 일본 아줌씨들로 가득해서 시끄러워 죽겠어. 우리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웃으면 안 되는데도 아저씨의 긴 한숨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아저씨가 그림 좋은 데 사시는 탓이니 어쩔 수 없어요.” “그런가?” --- p.119 일본인 여행객들까지 이끌고 커피프린스 카페에 무사히 도착했다. 입구를 보자마자 ‘이제 환호성이 들려오겠지’라던 내 기대는 스에다 선생님의 한 마디로 산산이 무너졌다. “에? 진짜 여기야?” 엄마도 가세했다. “진짜 여기 맞아? 다른 데 아니야? 너무 작잖아!” 몇 배쯤 넓어보이게 만드는 카메라의 마술에 걸려든 순진한 시청자들. 얼떨떨한 건 우릴 따라온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일본과 한국에서 숱하게 촬영지를 오간 나조차 화면과 현실의 격차에는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데, 처음 이 상황과 맞닥뜨린 이들은 하늘이라도 무너진 기분일 테다. 하지만 실망감이 그리 길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 p.147~148 친구가 말한 그 쓸쓸한 관계가 어떤 건지 궁금해, 「연애시대」를 보기 시작했다. 첫 회부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결혼이나 연애에 대해 유난히 애틋하게 생각해온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마음이 아렸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회까지 시청을 마치고, 아직 해피엔딩은 아닌 그들의 시간 속으로 나도 걸어들어갔다. 분당에 촬영지가 많아 한꺼번에 돌아볼 수 있는데, 내가 들렀던 순서대로 소개한다. 분당선 서현역에서 내려 준표의 병원을 구경한 뒤(택시 이동) 동진과 은호의 집을 보고(택시 이동), 카페 숲에 들러 정자역까지 걷는 코스가 가장 효율적이다. 택시 요금은 각각 기본요금 정도이니, 낯선 곳에서 고생하지 말고 자신 있게 택시를 타자. --- p.163 주인아주머니와 담소를 나누는 동안 안타까운 소식므 하나 들었다. 유진의 집이었던 장소가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집을 새로 짓는 듯싶었다. 관광지로 잘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건, 그저 팬들만의 소망인가보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시던 센세, 그래도 유진이네 집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발걸음을 옮겼다. 공사용 천막이 이미 높이 둘러쳐 있어 안을 전혀 들여다볼 수 없었다. “수짱, 왠지 슬프다. 내 추억이 하나 사라지는 기분이야.” 늘 헌 것을 부수고 새 건물을 올리는 서울에 익숙해진 내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누군가에겐 한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슬픔일 수도 있구나. 문득 문득 추억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서울이 차갑게 느껴진다. --- p.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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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울 드라마 가이드는 안 써?”
『드라마 인 도쿄』를 출간하고 숨도 고르기 전에, 조수현에게 뜻밖의 요청이 쏟아졌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서울을 자기 집보다 사랑하는 일본의 지인들이, 조수현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서울의 드라마 촬영지가 너무나 궁금하다며 『드라마 인 서울』을 출간해보라고 종용해온 것이다. 서울을 소개하는 책은 이미 수없이 많고, 일본에도 서울 관광정보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드라마 속 서울을 보여달라 요구하는 이유는 아마 한 가지였을 것이다. 이야기가 있는 장소에 가고 싶다는 열망…….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던 기억이 깃든 장소, 그곳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일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여행이 또 있으려나.
서울의 재발견! 수많은 드라마 중에서 의미 있고 인기도 좋았던 드라마를 선별하고, 수십 곳의 촬영지를 선정해 직접 찾아가는 일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드라마 인 도쿄』를 쓸 때도 기대와 늘 다른 현장 상황 때문에 ‘삽질’을 밥 먹듯 하고, 드라마 속 장면과 꼭 맞는 장소를 찾기 위해 무리해 걷다가 훈장처럼 파스만 늘어나지 않았던가. 하지만 드라마 촬영지에 방문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조수현은 다시 서울의 드라마 속으로 뛰어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늘 본 체 만 체 했던 남산은, 구준표가 잔디에게 “토요일 4시 남산타워 앞!”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에게 반드시 가봐야 할 장소가 되었다. 「꽃보다 남자」에서 구준표가 앉았던 자리, 잔디가 뽑아와 3만 원짜리라며 내밀던 자판기 커피. 별 것 아닌 건물과 사물들이 서울에 사는 기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찾아가는 동안의 힘겨움과는 상관없이 ‘이곳에 내가 왔다’는 순수한 기쁨이 샘솟았다. 그저 허름한 대문밖에 볼 것 없어도, 유명하다 못해 모든 안내서에 다 등장할 만큼 뻔한 장소여도, 드라마 속 이야기와 결합되면 전혀 새로운 감동을 만들어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김자옥 하숙집과 「개인의 취향」에 등장했던 상고재는 북촌 한옥마을에 가봐야 할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주었고, 「내 이름은 김삼순」 「내조의 여왕」 「찬란한 유산」 등 좋아하는 드라마 주인공들의 집을 찾아가다보니 부암동이라는 새로운 아지트를 발견했다. 서울 바깥으론 생전 나가지 않던 그가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의 작업실을 보러 쁘띠프랑스까지 발걸음하고, 헤이리를 밥 먹듯 드나들었다. 거기에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카페와 산책로, 「찬란한 유산」과 「아이리스」에 나온 공원, 「태왕사신기」 세트장까지……. 서울을 즐기는 데, 이보다 드라마틱한 방법이 또 있을까?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서울을 안내한다는 책의 목적에 맞게, 조수현은 늘 취재현장에 지인과 동했했다. 한류 팬인 일본 지인들, 서울에서 유학 중인 일본 친구들, 어딘가에 가고는 싶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는 ‘서울 촌사람’들, 그리고 가족들. 「시크릿가든」 길라임의 집에 찾아갈 땐 가까운 후배에게 목적지도 비밀로 한 채 동대문구 창신동으로 향했다. 대단한 관광지도 아니지만 청테이프가 꼼꼼하게 붙은 길라임의 집 앞에서 드라마의 숨결을 만끽하던 후배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신나고 밝았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와는 「꽃보다 남자」 소이정의 공방이었던 유일레저타운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잔디를 벗 삼아 뛰어놀다가, 공방에서 비누를 만들 때면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일본 지인들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촬영지 투어에 나섰을 땐 당황스러운 일도 겪었다. 미호가 좋아하는 마트 정육코너를 견학시켜드린답시고 향한 곳, 난데없이 ‘한우’에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너무 행복해. 슨기(승기)가 나타나서 한우를 사줄 것 같아.” 서울에서 이렇게 사랑스런 표정을 짓는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시크릿가든」에서 두 주인공의 몸이 처음으로 뒤바뀐 찜질방은 도리어 한국에 유학 온 일본인 동생들이 일러주어 가볼 수 있었고, 난생 처음 남산타워에 올라갈 땐 친구 마리의 도움을 받았다. 이름도 생소한 벽초지문화수목원에서 멋진 조경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꽃보다 남자」에서 지후 선배가 바이올린을 켜던 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리 어머니의 부탁 덕분이었다. 타국의 여행자들, 그리고 서울에 살면서도 이 도시가 주는 기쁨을 온전히 누려보지 못한 이들이 숨김없이 내뱉은 감탄과 설렘은 그에게 서울을 새롭게 사랑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모두 나만의 드라마를 꿈꾼다 조수현은 서울 속 드라마 촬영지를 찾아가며 깨달았다. 이미 서울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원하는 건 기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경치도, 엄청나게 새로운 무언가도 아니라는 사실을. 필요한 건 단지 익숙한 이곳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 그것이었다. 사는 데 치여 마음껏 상상하고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없는 이들도 드라마에는 아주 쉽게 몰입하고 그 이야기가 꼭 자신의 일인 듯 화제로 삼는다. 조수현은 그 이야기에 기대어 독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덧붙이고 채색할 수 있길 바라며, 촬영지 정보를 최대한 친절하고 명료하게 담아내려 애썼다. 독자들도 그녀의 친근한 목소리를 읽어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꼭 가봐야지’ 다짐하게 되리라. 읽는 것만으로 재미있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게 만드는 가이드북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드라마 인 서울』은 훌륭한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