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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봄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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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도 시로 재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최봄샘의 시집『밥이 그립다』
1996년 〈열린문학〉으로 등단한 최봄샘 시인의 시집 『밥이 그립다』가 출간되었다. 최봄샘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밥이 그리운 여자』는 단절되고 중심을 잃어버린 삶 속에서 견뎌야 하는 절대가치가 사라진 상실의 시간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녀의 시 중 「제3병동 일기」나 「실험쥐 탈출하다」에서 보여준, 소외된 시간을 겪은 특별한 경험을 안고 시인이라는 주체가 되기 위해 얼마나 냉혹함을 감당해 왔을지 짐작할 수 있다. 생(生)과 사(死)는 자연의 궤도이지만 시집 속에 등장하는 이별이 가져다준 충격과 기억을 폐기물처럼 쉽게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끝낼 수 없는 통증의 내면은 성장하면서 기다림을 품게 되고 다행스럽게도 잃어버렸던 희망을 다시 꿈꾸게 된다. 최봄샘 시인은 스스로를 격리시킨 남다른 체험을 역동적 에너지로 딛고 일어나 스스로 적응과 정화의 과정을 거치며, 시라는 예술로 어떤 삶도 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언제부턴가 엔도르핀을 잃어버린 저녁이 걸어 들어오면 지워진 이름들을 자판 위에 올려놓고 두드린다 밥 밥 먹는 소리가 담을 넘어와 자판을 빼앗아 두드린다 모니터에선 금세 숟가락 젓가락들이 춤을 춘다 딸그락 딸그락 덜그럭 덜그럭 쓰린 물만 쿨렁이는 뱃속을 헤엄치다 독신의 모세혈관까지 터뜨리고야 마는 저 소리 유정이네 밥 먹는 소리 네 식구의 밥상머리 이야기가 모니터를 다 점령해 버린다 꿈속에서도 모락모락 춤추는 하얀 밥 전설이 되어버린 지 얼마인지도 모르는 밥솥이 골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느껴 운다 밥 밥 밥이 그리운 여자 표제작 격인 「밥이 그리운 여자」의 전문이다. 혼자서 맞는 저녁, 옆집에서 들려오는 밥 먹는 소리를 진술하여 이야기의 내용이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상생활의 고달픔이 깊은 저녁 시장기로 부연되고 있다. 옆집 유정이네 집에서 들려온 밥 먹는 소리가 시인의 뱃속에까지 들어와 헤엄치다 공복의 모세혈관을 터뜨린다. 시장기를 느낄 때, 함께 속을 채우거나 나눠줄 이 없는 고통스럽고 외로운 일상에 대해 드러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주어진 삶으로 자유롭고 정직하게 현실과 대응할 수만은 없는 소외된 마음을 잘 표명한 시이다. 못난이들이 들려주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래 뒤표지에 축하의 말을 쓴 고영 시인은 “어느 날, 갑자기, 못나서 너무나 이쁜, 시집 한 권이 내게로 왔다. 서로 잘났다고 우기며 사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못난이라 불러서 이쁜, 이 시집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못난 과일이 맛과 향이 더 짙은 법. 나도 못난이가 되어 시인의 발성법에 귀를 기울인다. 한낱 군고구마에게서 세상의 지혜를 배우는 마음가짐이라니…. 한없이 낮은 자세가 아니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뭇 생명들의 상처를, 시인은 저 자신 못난이가 되어 하나하나 어루만져주고 있지 않은가. 시집을 읽을수록 못난이들이 들려주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래에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 이 숭고한 못난이들의 축제에 자꾸 눈길이 간다”며 최봄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했다. 최봄샘 시인의 『밥이 그립다』를 읽어보면, 상처를 현실과 융화하고 치유로 바꾸는 일에 헌신하게 되기를 고심하는, 심적 평화에 대한 시인의 갈망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맞이하는 밤의 깃털을 머리에 꽂는다”라는 표현은 견디기 어려운 아픈 시간을 부정적 환경으로 외면하지 않고 웃음으로 승화시켜 끌어안고 수용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인간에게는 쾌락에 의한 행복, 지혜에 의한 행복 외에 노고를 겪은 뒤에 찾아오는 행복,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으로부터 원상태로 치유될 수 있는 행복, 혹은 조각나거나 부서진 마음을 붙이고 나서 얻는 당당한 행복도 있을 것이다. 이번 시집을 통해 최봄샘 시인은 한때 머물렀던 삶과 죽음 사이의 고비에서 한 발 물러선 상태가 되어 행복을 향해 한 단계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