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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
1934년 미래의 영광 여자가 거짓말을 더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비평가의 비평가 함부로 욕하다 ‘경파’와 ‘해파’ 북쪽 사람과 남쪽 사람 「이러한 광저우」 독후감 설 운명 크고 작은 사기 ‘어린아이 불가’ 옛사람은 결코 순박하지 않았다 법회와 가극 양복의 몰락 친구 청명절 소품문의 생기 칼의 ‘스타일’ 신종 가명법 책 몇 권 읽기 한번 생각하고 행동하자 나에 견주어 남을 헤아리다 문득 드는 생각 친리자이 부인 일을 논하다 ‘’ ‘????’론 보충 누가 몰락 중인가? 거꾸로 매달기 완구 군것질 이 생(生) 혹은 저 생(生) 때를 만났다 중역을 논함 중역을 다시 논함 ‘철저’의 진면목 매미의 세계 결산 수성 농담은 그저 농담일 뿐(상) 농담은 농담일 뿐(하) 글쓰기 독서 잡기 독서 잡기(2) 시대를 앞서 가는 것과 복고 안빈낙도법 기이하다 기이하다(2) 영신(迎神)과 사람 물어뜯기 독서 잡기(3) ‘대설이 분분하게 날리다’ 한자와 라틴화 ‘셰익스피어’ 상인의 비평 중추절의 두 가지 소원 시험장의 세 가지 추태 또 ‘셰익스피어’다 구두점 찍기의 어려움 기이하다(3) 메이란팡과 다른 사람들(상) 메이란팡과 다른 사람들(하) 욕해서 죽이기와 치켜세워 죽이기 독서 금기 해제_『꽃테문학』에 대하여(유세종) |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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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낳은 세기의 대문호 루쉰을 만난다!
―냉혹한 현실을 풍자한 루쉰 잡문의 수사학 1934년 1월~11월 사이의 잡문 61편이 수록된 『꽃테문학』 주로 신문?잡지에 기고한 짧은 단편을 가리켜 잡문(雜文)이라 일컫는데, 루쉰은 잡문집을 살아생전 14개나 편찬할 정도로 잡문을 세상과 소통하는 창으로 활용했다. 의학을 버리고 문학으로 전향할 때부터 죽기 바로 직전까지. 이렇게 평생을 함께한 잡문을 가리켜 전기작가 왕스징은 “어둠 속에서 전투의 빛을 발하는 비수”였다고 말한다. 짧지만 강렬한 은유와 풍자성을 띠고 있는 그의 잡문들은 지식인들에게는 논쟁적이었고, 당대 사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며, 민중과 약자들에 대해서는 애틋함을 표현하고 있다. 1934년에 집필한 『꽃테문학』 또한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제목 ‘꽃테문학’이란 루쉰의 글이 ‘꽃테를 두른 문체’라는 뜻으로, 당시 린모라는 루쉰과 같은 진영에 있는 청년이 루쉰이 다른 필명으로 쓴 글을 두고, 이래저래 치장을 했으나 결국엔 매판적이고 반민족적이라고 비판하며 한 말이다. 루쉰은 이 잡문집을 펴내며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인데, 이것은 루쉰이 짐짓 너스레를 떨며 자신을 낯추며 활자화하였음을, 그리고 몇 겹의 비틀기를 통해 하기 힘든 비판을 돌려 말했음을 드러내 준다. 당시는 일본의 중국 침략이 거세져 장성의 관문 산하이관(山海關)이 함락되고, 일본이 리턴보고서를 무시하고 국제연맹을 탈퇴하여 정세가 매우 급박한 때였다. 그럼에도 국민당 정권은 나라 밖에서는 나라를 팔아먹고 투항하며 나라 안에서는 민중들을 탄압하는 기만적인 정책을 폈으니, 루쉰은 수사적 방법을 동원하여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당시 루쉰은 60여 개의 필명을 사용하며 쉬지 않고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데, 많은 글에서 일부를 삭제당해 골기(骨氣)가 사라진 글을 발표하기도 하고, 아예 게재되지 못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언론 탄압이 거세져 '자유담'의 편집인이 사직당하고 '선바오'의 사장이 암살당하는 위기까지 맞이하지만, 작법을 고치고 다른 사람에게 베끼게 하는 방법까지 써 가며 지금 절박하게 요구되는 사안을 발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어떠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자유인 루쉰! '역문'(譯文)의 정간에 화가 난 젊은 작가에게 그는 나직하지만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네. 그런데, 우린 계속 싸워 나가야 할 것인가? 물론일세. 계속 싸워 나가야지! 상대가 누구이든지 간에 말일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