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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1
추천의 글 2_ 바람아, 불어라! 한국어판 서문 서문: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본 일 제 1 장: 선교지로 가는 도중에 자동차가 주저앉으면 어찌할 것인가? 제 2 장: 이 세상이 바로 새로운 저 세상이다 제 3 장: 지옥 제 4 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될 것인가? 제 5 장: 살기 위해 죽다 제 6 장: 지천에 널린 바위 제 7 장: 복음은 그렇게 작지 않다 제 8 장: 이제 끝이 왔다 감사의 말 더 읽을 것들 오피니언 리더들의 리뷰 |
Rob 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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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책의 역자입니다.
2011-09-02
양혜원/<사랑이 이긴다> 역자
랍 벨의 "Love Wins"를 처음 받아들고 읽으면서, 나의 오랜 의문들을 이렇게 활자로 속 시원하게 뻥뻥 터뜨려주는 그의 글이 반가웠다. 차마 내뱉을 수 없었던 말들을 그가 이렇게 표현해준 것이다. 랍 벨이 말하는 ‘사랑’이 경계가 없어 보이는가? 내 생각에 이미 교회는 그런 경계 없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일단 교회가 말하는 협의의 구원관을 받아들이고 교회 문턱만 넘어서면 그 사람에 한에서는 무한한 자비와 관대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공직자가 거짓 증언을 해도, 목사가 성도를 성추행해도, 공의는 모르고 오직 성장과 경쟁만 추구하며 사람의 숨통을 죄어도, 사람 죽어나가는 거 우습게 알아도, 그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 간다’고 믿고 그저 아멘하고 열심히 교회 다니면, 다 용서가 된다. 회개하면 다 용서해주신다고 믿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그렇게 읊조리면 지금 이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라도 천국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계 없는 사랑에 대해서 교회는 무엇이라고 자기변명을 할 수 있을까? 개혁주의를 접하고 배운 나로서도 벨의 주장이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구원의 경계를 너무 확장시키는 것 같은 그의 접근법은 오히려 구원이 정말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우회적 접근법이 아닐까 라고. 말하자면 더 깊은 진실로 가는 과정이 아닐까 라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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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았던 수십억의 사람들 중에 선택된 몇 명만이 ‘더 나은 곳으로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영원한 고통과 형벌 속에서 괴로워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돼도 하나님은 괜찮단 말인가? 하나님은 영원히 고통당할 수많은 사람들을 수십만 년에 걸쳐서 창조하셨단 말인가? 그렇게 하시고도, 아니 그것을 허용하시고도, 여전히 자신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실 수 있단 말인가? --- pp.29-30
예수는 ‘이교도’와 ‘이방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설득하려고, 그래서 그들이 죽어서 불에 타는 일이 없게 하려고 지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예수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라고 하신 소명과 정체성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경고하기 위해서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을 향해 지옥을 말씀하셨다. --- p.129 그렇다고 해서 지옥이 날카롭고 긴급한 경고가 아니라거나, 우리가 실제로 믿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예수는 자신은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옥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지적하려 할 뿐이다. 예수는 그들의 굳은 마음이 ‘그들이 안에 있다는 정체성’을 어떻게 위험에 빠뜨리는지를 경고하셨다. 그리고 ‘선택받음’이 무엇을 의미하건,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특권에 가까운 지위를 누린다고 믿건, 관건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 살과 피를 입으면 어떤 모습인지를 그들을 통해 이 세상에 보여주실 수 있도록 그들이 변화된 사람, 자비롭고 사랑 많은 사람들이 되는 것임을…그것이 전부임을 상기시키셨다. --- pp.129-130 사람들이 ‘예수’라는 말을 쓸 때 어떤 예수를 말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부류에 속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로써 예수를 말하는 것인가? 자기 민족이 되찾아야 하는 가치가 무엇이건 간에 그것을 선전하며 깃발을 흔드는 길들여진 예수를 의미하는가? 제국주의적 충동의 근원으로 예수를 언급하는 것인가? 그런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다른 대상을 정복하고 싶어 한다. 권력에 대한 자신들의 욕심과 탐심을 정당화하는 정치, 경제, 군사 제도의 상징이나 표어로써 예수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가운데 계셨고 자신의 사랑과 권능과 은혜와 힘으로 지금도 모든 것을 보존하시는, 이 우주의 생명의 근원 자체를 의미하는 예수인가? --- p.218 복음이 ‘천국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축소되면 기쁜 소식은 문지기를 지나 클럽 안으로 들어가는 티켓으로 축소된다. 복음은 그렇게 작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다 지옥에 가지만 자신은 천국에 간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그리스도인이 벌이는 잔치는 재미가 없다. 복음을 즐거운 참여가 아니라 천국 입장권으로 이해하면, 폭발적이고 해방감 넘치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기쁨과 창조의 끝없는 순환이신 이 하나님을 말이다. 인생이 단순히 ‘들어가는 것’의 문제였던 적은 없다. 인생은 하나님의 선한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의 문제다. 잘 산다는 것은 고요함과 평화 그리고 영혼이 안식을 누리는 그런 느낌이면서, 동시에 질문하고, 배우고, 창조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 선한 세상에서 같이 살면서 같은 기쁨을 발견하는 그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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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죄도, 교리도 아닌, 사랑이 이긴다
내세주의와 정죄주의를 넘어 즐거운 참여와 새 창조의 기쁨으로 “하나님은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 천국에 보내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도록 하기 위해 수십억의 사람들을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에게는 이것이 최선인가? 이것이 어떻게 ‘좋은 소식’, 곧 복음인가?” 이 질문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심판 사이에서 혼돈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는 핵심적인 문제이자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배타적? 독선적이며 편협한 종교로 보는 이유의 핵심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은, 결코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기도 하다. 랍 벨이 이 책에서 제기하는 무수한 질문들, 예를 들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갑자기 죽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의식적인 고통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가? 사랑이신 하나님은 죽음의 순간에 잔인한 존재가 되시는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 회개와 그리스도 영접 기도를 한 번도 드리지 않았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도 하지 않지만, 일부 그리스도인보다 더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등의 질문들은,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거나 교회에서 가르친 바 그대로 수용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과 전능하심이 결국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며, 사실 이것은 교회사에서 무수히 많이 다루어온 주제들이다. 이 주제에 대해, 랍 벨은 실제 자신이 목회하고 있는 현장에서 교인들 각자의 씨름과 전쟁으로부터 문제와 답변을 길어 올려 그 특유의 은유적 논법과 시적 통찰로 풀어나간다. 천국과 지옥이 과연 황금으로 장식된 공간/영원한 고통의 불구덩이와 같은 공간적인 내세 개념에 국한되는 것인지, 하나님이 최종 심판자임을 인정하면서도 우리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구원 여부에 대해 스스로 재판하고 타인을 정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우리가 배워온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가 성경이 아닌 다른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어찌할 것인지 등 첨예한 이슈들을 대면하여 랍 벨은 대담하고 정직하게 파고든다. 그는 궁극적으로 천국과 지옥의 개념, 참 구원의 의미,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나가며,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의 경계를 넘게 해준다. ♠ 내세에 집착하는 기독교 복음은 단지 ‘천국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인가. 랍 벨은 미국 복음주의권과 보수주의권에 널리 그리고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지나친 내세주의에 대해 균형을 잡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땅에서 천국을 발견하고 이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어가는 소명에 대해서 망각하지 않도록, 그는 내세의 천국과 지옥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현세의 천국과 지옥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또한, 복음을 ‘천국에 입장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천박한’ 세계관이라 말하고, 천국은 우리가 죽으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죽음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을 지금 경험하는 것이라 말함으로써, 천국과 지옥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새롭게 한다. ♠ 정죄주의에 오염된 기독교 거듭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구원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누가 구원받지 못할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태도는 곧바로 배타적인 말과 행동을 만들어낸다. 무서운 눈빛과 말투, 행동으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전하는 이들의 외침과 “오늘 당장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전도자의 질문 속에도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에 대한 정죄와 위협이 배어 있다. 벨은 이런 독선적이고 파괴적인 정죄주의를 드러내고 이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구하려 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지옥에 가지만 자신은 천국에 간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그리스도인들과, ‘죄’와 ‘심판’과 ‘정죄’에 대한 이야기로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 오해하게 만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는 궁극적으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사랑과 용서와 새 창조의 혁명이 일어나는 은혜와 기쁨의 집으로 들어가자고 설득한다. ♠ 논쟁의 한복판에 선 랍 벨 2011년 3월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출간 즉시 신학적 논란과 화제의 중심이 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복음주의권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 존 파이퍼는 이 책의 출간 직후, 트위터에 “잘 가시오, 랍 벨Farewell, Rob Bell!“이란 글을 올려 랍 벨에 대한 복음주의권의 결별을 선언했다. 미국 시사 잡지 『타임』지는 이 책에 대한 찬반 논쟁을 미국판 4월 25일자 표지 기사로 실었고, 벨의 책을 반박하는 책들도 잇달아 출판되었으?, 남침례교 연차 회의에서는 2011년 6월 15일 ”지옥에서의 영원하고도 의식적인 징벌을 믿는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양극화되어 있는 미국 복음주의권에서 벨의 책은 그만큼 널리 그리고 깊이 영향을 미쳐, 천국과 지옥, 구원에 대한 문제를 이 시대의 뜨거운 화두로 등장시켰다. 랍 벨은 이 책으로 인해 “지옥과 영벌의 개념을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순화하여 결국 ‘다른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복음주의를 벗어나 보편구원론(모든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구원받는다)이란 신학의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등의 비판적인 평가와 “복음주의자들이 고민해야 하는 근복적인 문제들을 제기했다”, “인색한 정통주의에서 벗어나 관대한 정통주의로 사람들을 초청하고 있다” 등의 긍정적인 반응 등 두 갈래로 첨예하게 갈라진 평가를 받고 있다. 그와 그의 책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각종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 각종 매체 들을 뜨겁게 달구었다. 랍 벨에게 쏟아지는 거센 반론은 “지옥의 존재를 부인하는가?”와 “보편구원론을 옹호하는가?”로 압축되는데, 이에 대해 유진 피터슨은, 결국 랍 벨이 복음주의를 향해 하고자 하는 말은 사람을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교조적 평가를 내리지 말라는 것이라 평했으며, 벨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에게 그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예수를 보내셨고,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데 있다고 밝혔다. 그가 결국 강조하려는 바는 하나님의 사랑, 복음의 보편성, 현재의 삶, 그리고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이는 배타적이고 정죄적인 분위기를 혐오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세계 속에서 전통적 사고를 좀 더 풍요롭게, 포용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응도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