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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서문 I. 개관 1. 배경 2. 기록 목적 3. 구조 4. 주해 방법 5. 번역에 대한 소고 II. 본문 주석 제1장 복음의 기초: 이사야의 예언(마가복음 1:1-3) 제2장 복음의 기초: 세례 요한의 등장(마가복음 1:4-8) 제3장 복음의 기초: 예수님의 세례(마가복음 1:9-11) 제4장 복음의 기초: 예수님의 시험(마가복음 1:12-13) 제5장 예수님 사역의 요약: 하나님 나라 선포(마가복음 1:14-15) 제6장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부르심(마가복음 1:16-20) 제7장 귀신 축출(마가복음 1:21-28) 제8장 베드로 장모 치유(마가복음 1:29-31) 제9장 해 진 후 대중 사역(마가복음 1:32-34) 제10장 다시 찾은 광야, 그리고 순회하는 선포자(마가복음 1:35-39) 제11장 나병환자 치료와 광야로 모여든 사람들(마가복음 1:40-45) 제12장 죄 사함 논쟁(마가복음 2:1-12) 제13장 식탁 논쟁(마가복음 2:13-17) 제14장 금식 논쟁(마가복음 2:18-22) 제15장 안식일 논쟁: 안식일과 일(마가복음 2:23-28) 제16장 안식일 논쟁: 안식일 치유(마가복음 3:1-6) 제17장 더 넓게 퍼져 가는 예수님의 영향력(마가복음 3:7-12) 제18장 열두 제자를 세우심(마가복음 3:13-19) 제19장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마가복음 3:20-35) 제20장 네 종류의 땅에 떨어진 씨 비유(마가복음 4:1-9) 제21장 하나님 나라의 비밀(마가복음 4:10-12) 제22장 네 종류의 땅에 떨어진 씨 비유: 해석(마가복음 4:13-20) 제23장 ‘듣고 주의하라’(마가복음 4:21-25) 제24장 씨 비유들과 결론(마가복음 4:26-34) 제25장 첫 번째 배 여행: 풍랑 속의 예수님과 제자(마가복음 4:35-41) 제26장 거라사 광인 치유(마가복음 5:1-20) 제27장 야이로의 딸과 혈루병 앓는 여인 치유(마가복음 5:21-43) 제28장 고향 사람들의 거부(마가복음 6:1-6) 제29장 열두 제자의 사역과 세례 요한의 죽음(마가복음 6:7-30) 제30장 오천 명을 먹이심(마가복음 6:31-44) 제31장 두 번째 배 여행(마가복음 6:45-52) 제32장 게네사렛에서 치유(마가복음 6:53-56) 제33장 정결법 논쟁(마가복음 7:1-23) 제34장 시리아-페니키아 여인의 딸 축귀(마가복음 7:24-30) 제35장 귀 먹고 어눌한 이방 남자 치유(마가복음 7:31-37) 제36장 사천 명을 먹이심(마가복음 8:1-9) 제37장 바리새인과 논쟁(마가복음 8:10-13) 제38장 세 번째 배 여행(마가복음 8:14-21) 제39장 벳새다의 맹인 치유(마가복음 8:22-26) 제40장 첫 번째 수난 예고와 제자도(마가복음 8:27-9:1) 제41장 변화산 체험(마가복음 9:2-13) 제42장 귀신 들린 아이 치유(마가복음 9:14-29) 제43장 두 번째 수난 예고와 제자도(마가복음 9:30-37) 제44장 이어진 제자도 교훈(마가복음 9:38-50) 제45장 이혼 논쟁과 제자도(마가복음 10:1-12) 제46장 하나님 나라, 영생에 들어가는 길과 제자도(마가복음 10:13-31) 제47장 세 번째 수난 예고와 제자도(마가복음 10:32-45) 제48장 소경 바디매오 치유(마가복음 10:46-52) 제49장 예루살렘 입성(마가복음 11:1-11) 제50장 무화과나무 저주와 성전소란 행위(마가복음 11:12-26) 제51장 권위 논쟁(마가복음 11:27-33) 제52장 포도원 농부 비유와 새 성전(마가복음 12:1-12) 제53장 세금 논쟁(마가복음 12:13-17) 제54장 부활 논쟁(마가복음 12:18-27) 제55장 제일 큰 계명(마가복음 12:28-34) 제56장 다윗의 자손으로서 메시아 논쟁(마가복음 12:35-37) 제57장 서기관에 대한 경고와 가난한 과부의 헌금(마가복음 12:38-44) 제58장 성전 멸망과 종말 예언(마가복음 13:1-37) 제59장 살해 음모와 장례 준비(마가복음 14:1-11) 제60장 유월절 식사 준비(마가복음 14:12-16) 제61장 배반자 폭로와 마지막 만찬(마가복음 14:17-25) 제62장 제자들의 흩어짐과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하심(마가복음 14:26-31) 제63장 겟세마네에서 기도(마가복음 14:32-42) 제64장 체포와 도망(마가복음 14:43-52) 제65장 두 심문: 산헤드린 앞에 선 예수님과 대제사장의 종들 앞에 선 베드로(마가복음 14:53-72) 제66장 빌라도 앞에 선 예수님(마가복음 15:1-15) 제67장 군인들에 의해 희롱 당하심(마가복음 15:16-20) 제68장 십자가에 못 박히심(마가복음 15:21-32) 제69장 죽으심(마가복음 15:33-41) 제70장 장사되심(마가복음 15:42-47) 제71장 부활하심(마가복음 16:1-8) 제72장 추가된 종결(마가복음 16:9-20) III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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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의 예수님은 길 위의 예수님이다. 복음서 내내 그는 걸으시며 어디론가 이동해 가신다. 복음서 전체 구조에서 본다면 그의 길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10:32)으로 이어지지만, 보다 상세한 관측도 가능하다. 그의 출발지는 길이 없는 광야(1:9; 참조. 5절)였고 도착지는 막다른 길, 곧 무덤이었다(15:46). 광야를 출발지로 삼은 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려는 세례 요한의 선구자적 사역(1:2-4) 때문이고, 무덤이 그 종착지가 된 것은 아리마대 요셉의 자기희생적 배려(15:43-46)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여정은 수동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여정이 수동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있는 광야로 직접 찾아가시고(1:9) 또 다른 사람들을 불러 그가 걷는 길을 따라(1:16-20; 2:14; 6:1; 10:52) 혹은 함께(3:14; 참조. 15:67) 걷게 하신다. 무엇보다 그 너머에 무덤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 행은 그의 자발적 선택(10:1, 32-33; 11:27)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길이 없는 광야에서 출발하여 갈릴리와 예루살렘, 그리고 무덤으로 이어지는 여행과정은 사실 예수님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예수님의 길 여행에는 아이러니와 반전이 동시에 존재한다. 1:2-3에서 이사야의 예언을 빌려 마가가 말한 것처럼 예수님이 걸으시는 길은 사실 “주의 길”, 곧 하나님의 길이었다(3절). “주의 길”에 들어선 예수께서 보여주신 것은 역사 속에 난 하나님의 ‘로드맵’은 길이 없는 광야에서 출발하여 막다른 골목과 같은 무덤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길 위의 예수님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결국 가야할 곳은 길이 없는 광야와 막다른 골목인 무덤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 위의 예수님이 전한 복음에는 반전 또한 존재한다. 하나님의 복음의 담지자인 예수님이 결국 도착하신 무덤은 말 그대로 ‘길의 무덤’이 아니라 새 창조가 시작되는 ‘하나님의 모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서 들어간 곳이 살아 부활한 곳이 된 것이고, 여행의 종착지가 새 창조의 출발지가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길 여행은 무덤이 하나님의 모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복음 선포의 장 그 자체이다. 마가복음은 일인 단막극이 아니고 그 길 위에는 예수님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길은 하나님의 길로 이사야에 의해 예언되었고, 역사 속에서 세례 요한이 먼저 걸었고 예수님은 그 뒤를 따라 걷는다(1:7, 14).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다시 그의 길에 그의 제자들을 불러 함께 그 길을 걷게 한다. 그러나 제자들이 초대된 것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어진 길 여행만이 아니었다. 무덤에서 걸어 나오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시 갈릴리로 불러 모으시는데(14:28; 16:7), 이런 소환은 그를 메시아로 믿고 그의 부활을 믿는 자들이 걸어야 할 길이 있음을 알려준다. 제자들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여행을 다시 하도록 초대 받은 것이다. 두 번째 여행은 첫 번째 여행과 다를 것이다. 비록 첫 여행에서 제자들은 부름받은 여정을 완주하지 못하는데, 이는 무덤이 막다른 골목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여행에 초대 받은 제자들은 이제 죽어 무덤에 들어갔다가 살아 부활하여 나온 예수님으로 인해 무덤 또한 새 창조의 장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음이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마가복음은 메시아 예수 안에 새로운 차원의 길 여행이 있음을 알려주는 복음이자 사람들을 그 길에로 소환하는 초대장과 같다. 모든 해석에는 고유한 방법론이 있듯이 본 주석 역시 언어적, 역사적, 신학적 접근을 취하여 마가복음을 해석한다. 위 세 가지 방법론을 택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언어적, 역사적, 신학적 성경해석 방법은 벌코프가 그의 책 『성경해석학』 전체에서 일관되게 지적한 것처럼 모든 삶의 규칙과 원칙을 성경에서 찾으려 했던 종교개혁가들의 성경 해석의 삼중적 방법이다. 둘째, 본 주석은 삼중적 방법론이 성경의 성격 자체를 존중하는 접근이라 믿고 있다. 구약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해오신 하나님께서 주후 1세기 역사 속에서 특정 언어와 문법을 통해 이스라엘의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 계시하신 복음이 바로 마가복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 이해는 그것이 기록된 역사적 상황, 그것의 의사소통 매체인 언어와 문법, 그것이 전제로 하고 있는 구약 성경의 신학에 대한 고려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삼중적 접근 중 어느 것이 더 우선적으로 주해에 고려돼야 하는지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성경 본문이 언어와 문법으로 구성돼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언어와 문법적 방법을 주해의 출발점이 되도록 허락한다. 하지만 언어와 문법은 언어 사용자의 신학과 그것을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회와 역사와 분리된 채 존재하는 않는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본 주석은 마가복음을 주해함에 있어서 언어학적 접근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1세기 역사와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구약 (유대) 신학과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이다. 마가복음 주해에 대한 나의 관심은 마가복음 2:1-3:6을 현대 언어학 특히 틀 의미론(frame semantics)으로 분석한 박사학위 논문 나의 학위 논문은 2010년 Brill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Yoon-Man Park, (Leiden/Boston: Brill, 2010) 참조. 을 쓰는 동안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귀국 후 5년간의 나의 학문 활동은 학위 논문에서 사용한 언어적 방법론을 발전시키는데 집중했는데, 특히 현대 언어학의 결실들을 신약 성경의 언어와 문법 이해에 접목하여 본문의 의미를 언어학적으로 명료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데에 집중했다. 본 주석에는 박사학위에서 사용된 틀 의미론과 귀국 후 여러 학회지에 실은 그러한 논문들의 결실이 두루 반영되어 있다. 이후 최근 3-4년 동안 나의 학문적 궤도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마가복음 연구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방법론은 언어학에서 역사로 그 중심이 이동했다. 이런 변화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성경 해석의 삼중적 방법론은 성경의 성격 자체를 존중하는 접근이라는 나의 믿음 때문이었다. 따라서 본 주석은 역사적-신학적 해석에 집중된 그 같은 논문들의 연구 성과 역시 반영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가장 최근에 예수님의 신적 정체성과 관련된 논문 박윤만, “예수의 두 얼굴-마가복음의 고기독론 연구”, 『신약연구』 16/1 (2017), 35-69. 을 집필하고 모 학술지의 2017년 봄 호에 게재를 희망하며 투고해 놓은 상태에서 본 주석의 집필이 완료되어 그 논문의 내용이 주석에 각주처리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본 주석이 나오기까지 많은 이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다. 먼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심상법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마가복음 전공자이신 심 교수님은 나의 신학대학원 졸업 논문 지도 교수로서 내가 마가복음의 중요성과 매력에 눈을 뜨게 만들어준 장본인이었다. 그 후 저자의 유학 중에도 적잖은 충고로 학문의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더불어 김서택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저자는 신학대학원 시절부터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적절하게 주석되고 적용될 때 어떠한 은혜가 주어지는지 배웠다. 또한 광교산울교회 이문식 목사님께도 감사드린다. 저자가 대학교 재학 시절 활동했던 IVF(한국기독학생회) 수련회에 갔을 때 이 목사님이 해주신 ‘역사의 예수’에 대한 강의는 나에게 충격과 도전이었다. 그 후 그의 강해설교를 들으며 예수를 알아가는 일이 우리 시대 사회와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바쁜 중에도 본 주석을 읽고 추천을 해준 고신대학교 송영목 교수님과 학문의 선배이신 권연경 교수님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또한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정주환 목사, 성웅현 목사, 서양순 전도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주석의 여러 부분을 수업 중 함께 읽고 토론한 덕분에 내용의 많은 부분을 수정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본 주석을 처음부터 끝까지 몇 차례 읽으며 교정을 해준 한지선 전도사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꼼꼼하고 인내심을 요하는 교정을 그녀가 기꺼이 감당해준 덕분에 초고의 투박하고 서툰 여러 어투와 흐름이 정교히 다듬어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오타와 어설픈 표현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저자인 나의 책임이다. 하늘깊은샘교회 성도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간 주일 아침 예배 시 마가복음과 관련된 수십 편의 설교를 하는 동안 본 주석이 우리 시대에 치열한 삶의 현장에 있는 이들에게 보다 더 적실성을 가져야 함을 알려주었다. 사실 때론 그들의 삶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내용을 설교할 때도 ‘은혜’로 응답해준 것은 나를 행복한 목회자로 살아가게 한 원동력이었다. 교회는 또한 주석이 마무리에 들어갔던 지난 2년간 특별 여름휴가를 가져 주석 작업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배려까지 해주었다. 더불어 언제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묵묵히 인내하고 후원해 준 아내에게 감사를 드린다. 감사의 명단에 내가 사랑했고 존경했던 아버님이 빠질 수 없지만, 부친은 6년간의 암투병 후 이 주석이 나오기 몇 개월 전에 소천하셨다. 아버님이 살아내셨던 82년의 인생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무엇과 같은 것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신앙이 병을 낫게도 하지만 병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믿음임을 후손들에게 영적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끝으로 감사의 말을 해야할 사람은 나의 선생인 스탠리 포터(Stanley E. Porter)이다. 그는 주석에 있어서 언어와 문법적 이해의 중요성을 나에게 알려주고 또한 현대 언어학의 통찰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토록 해주었다. 사실 이 주석이 취한 언어적, 문법적 방법론은 1999년 영국 런던 소재 써리-로햄턴 대학교(The University of Surrey-Roehampton)에서 시작된 포터와의 첫 만남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그와 함께 캐나다로 옮긴 후 박사학위 논문을 완료한 2008년까지 현대 언어학과 신약 성경 해석의 접목을 위해 그가 해준 방향 제시와 비평적 충고는 나의 사고력과 연구 능력을 향상시켜 본 주석의 연구방법론을 체계화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이 주석을 그에게 바치기를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