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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 전에
<하멜표류기>의 다른 판본에 관하여 하멜일지 1653 / 1654 / 1655 / 1656 / 1657 / 1658 / 1659 / 1660 / 1661 / 1662 / 1663 / 1664 / 1665 탈출 후의 상황 조선국에 관한 기술 지리적 위치 / 어업 / 기후와 농업 / 군주제 / 병마 / 수군 / 행정 / 형법 / 종교 / 주택 / 여행과 환대 / 교육 / 장례 / 국민성 / 무역 / 주변 세계 / 농업, 광업 및 한약 / 도량형 / 동물군 / 문자와 인쇄 / 산술 및 부기 / 국왕의 행차 / 중국 사신의 방문 / 결어 연표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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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년 전에 그들은 담배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때 일본인들이 그들에게 담배 재배술과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일본인들은 그 담배 씨를 남반국에서 가져왔다고 말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남반코'라고 부른다. 이 나라에서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여자들은 물론 네댓 살 되는 아이들도 담배를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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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스님들과 사이가 가장 좋았는데 그들은 매우 관대하고 우리를 좋아했으며, 특히 우리가 우리 나라나 다른 나라의 풍습을 말해 주면 좋아했다. 그들은 외국 사람들의 삶에 대해 듣기를 좋아했다. 만약 그들이 원하기만 했다면, 그들은 밤새도록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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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정해진 후 곧바로 국왕(효종) 앞에 끌려갔다. 왕은 벨테브레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우리는 왕에게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일본으로 보내, 동포도 만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왕은 벨테브레를 통해 “외국인을 국외로 내보내는 것은 이 나라 관습이 아니므로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며, 대신 너희들을 부양해 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왕은 우리더러 네덜란드 식으로 춤을 추게 하고 노래도 부르게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보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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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총독은 선량하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따금씩 그는 우리를 불러 우리말로 이것저것 묻게 했고 뭔가를 쓰도록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우리에게 향연을 베풀어 우리의 시름을 달래 주려고 노력했다. 그는 또 부상자도 치료받도록 조처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기독교인이 오히려 무색할 정도로 이교도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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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조선 땅에서 보낸 13년 20일의 기록-하멜표류기]에 관하여
"너희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외국인을 국외로 보내는 것은 이 나라 관습이 아니다." [낯선 조선 땅에서 보낸 13년 20일의 기록-하멜표류기』는 이런 책 [하멜 표류기]의 원제는 [야하트 선 데 스페르베르 호의 생존 선원들이 코레 왕국의 지배하에 있던 켈파르트 섬에서 1653년 8월 16일 난파당한 후 1666년 9월 14일 그 중 8명이 일본의 나가사키로 탈출할 때까지 겪었던 일 및 조선 백성의 관습과 국토의 상황에 관해서]이다. 원제 그대로 [하멜 표류기]는 헨드릭 하멜이라는 선원이 제주도에 표류해, 그때부터 약 13년간 조선에서 겪은 경험담을 쓴 기록문이며 보고서이다. 이것을 보고서로 쓴 목적은 조선에 억류된 기간의 임금을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함이었다. [하멜 표류기]는 지금까지 여러 권 출간되었으나, 이 책들은 모두 하멜이 쓴 원본이 아니라 하멜의 글을 흥미 위주로 각색한 이본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반면 이번에 펴내는 하멜 표류기는 하멜이 쓴 네덜란드어 정본을 고증해 펴낸 후틴크의 1920년판을 텍스트로 하였다. 표류기의 구성을 보면, 하멜의 경험담을 쓴 「하멜일지」와 조선에 대한 보고를 담은 「조선국에 관한 기술」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원다운 소박하고 솔직한 문체로 기록된 하멜 표류기에는, 우리도 몰랐던 우리 조상들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상과 함께, 당시 조선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