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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혼인의 참된 모습
1. 신비한 연합 I 2. 신비한 연합 II 3. 혼인의 신비함 4. 사랑과 복종의 실상 5. 한 몸의 교회적 의미 6. 자녀와의 관계 2부 타락한 사회에서의 혼인 7. 종의 혼인의 경우 8. 여인에 대한 존중 9. 성적 순결의 중요성 10. 이혼 증서의 문제 11. 죽은 형의 후사를 이어주는 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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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표상을 사용하지만, 여기서 사도가 특별히 사용하는 표상은 한 몸으로서의 그리스도와 교회의 표상이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태도를 보여주기 위하여 사도가 사용한 표상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의 표상인데, 여기 아내에 대한 남편의 태도를 논하는 부분에서 사도가 취한 표상은 몸인 그리스도와 그 지체인 교회이다. 참으로 창조적인 사고의 전환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근거 없이 무원칙하게 표상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맺는 관계의 이 두 가지 측면이 아내와 남편과 관련하여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사랑의 성격은 자신의 몸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바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에 비교되는 사랑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참된 원형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 p. 16 아담과 하와 이후의 어떤 부부도, 아내가 남편의 갈비뼈로 지음 받은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한 몸’은 그 이후의 모든 부부가 원형으로 삼아야 할 ‘한 몸’이다. 24절 허두의 ‘이러므로’라는 말은, ‘아담과 하와가 그런 방식으로 피조되어서 세상에 등장하여 그런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로부터’ 라고 풀어 쓸 수 있다. 즉 아담과 하와의 ‘한 몸’은 계시의 도구로 사용된 원형적 관계의 한 몸이다. 그러므로 모든 부부 관계는 그 계시의 관계를 닮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과 동일한 방법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아담의 육체의 일부를 가지고 만든 것은 혼인 관계의 본질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p. 32 요컨대 가정은 교회와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각각의 가정은 그 자체가 작은 단위가 되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드러내야 하지만, 그 각각의 가정들은 다시 하나의 공동체인 교회가 되어서,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와 관계를 가지며, 이런 관계를 통하여 가정은 다시 그 가정을 위한 규범을 배우게 된다. 가정과 교회는 그런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어떤 형태의 공동체들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혼인 관계는 많은 경우에 교회에 의존적이 된다. --- p. 50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이와 같이 상대방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조항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하여 서로가 지는 의무 조항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논쟁은 사라질 것이다. 물론 에베소서의 이 구절을 공부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남편은 아내에 대한 사랑의 화신이 되고 아내는 남편에 대한 순종의 화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아내에게 쏟을 수 있는 남편, 이렇게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가 되기 위하여 다른 묘방을 찾아도 효과는 없다. 우리는 다시 이 구절을 묵상하고 다시 이 구절을 읽으면서, 사도에게 영감을 주셔서 이 구절을 기록하게 하신 그 성신께서 이 구절을 사용하여 우리 안에 그런 사랑과 순종의 정신을 일으켜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 p. 68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간단한 말을 통하여 사도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리와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여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이 말은 깊이 음미할 만한 내용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부모가 잘 빠지는 폐단 중의 하나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녀가 자신의 몸을 통하여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아이의 존재와 생명이 자신을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부모는 부지불식간에 자녀에 대하여 마땅히 행사하여야 할 이상의 권위를 행사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으며, 그런 착각으로부터 기인되는 모든 행동은 궁극적으로 자녀를 노엽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녀를 노엽게 하는 부모의 행동이란, 자녀가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권리와 존엄성을 인정하여 그를 존중하고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함을 망각하는 모든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 p. 80 히브리인 남종에 대한 규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히브리 남자가 종으로 일할 수 있는 최장 기간은 6년이다. 여하한 이유로 종으로 팔렸더라도 그는 7년째에는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가 종으로 봉사하는 기간 중간에 희년이 끼어 있다면 그는 6년을 다 채우지 않고 해방되어야 한다. 희년에는 모든 종이 무조건 해방되어야 하고 모든 토지가 원래의 가문에게 돌아가야 하는 까닭이다. 둘째, 만약 히브리 남자가 종으로 올 때에 혼인한 상태였든지, 혹은 종이 된 다음에 자기 힘으로 혼인했다면 그는 해방될 때에 가족과 함께 나간다. 셋째, 만약 히브리 남종이 상전이 준 여인과 혼인하였다면 그가 나갈 때에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나가지 못한다. 넷째 그러나 그가 주인 및 자기 가족과 헤어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일정한 예식과 서약에 의해서 평생 동안 영원히 그 주인의 종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남종에 대한 규례이다. --- p.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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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초판이 나온 지 사반세기가 지났다. 초판이 나온 후 절판할 때까지 8년간 8쇄를 찍었으니 8년간 평균 1년에 1쇄를 찍은 셈이다. 이제는 혼인을 하여 자녀를 둔 그리스도인들이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은 책을 쓴 사람으로서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초판을 낸 몇 년 후에 필자는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초판에 현학적인 옷을 입혀서 학위 논문을 썼고 그것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런 점에서 초판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책이었다. 초판이 필자의 학위 논문의 뼈대였던 셈이다. 물론 초판을 쓸 때에는 일이 그렇게 발전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초판을 낸 후에 늘 느끼는 아쉬움은 그 책에서 다룬 이상적인 혼인과 현실의 혼인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였다. 오늘날 많은 부부의 현실은 거기서 멀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날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고대에도 그러했다. 그런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처방을 내리셨는지를 이 책의 2부에서 다뤘다. 1부는 초판에서 연구 방법론을 논한 1장을 빼고, 한글개역 성경 본문을 개역개정 성경 본문으로 바꾸고 어색한 표현을 고치는 정도의 수정을 가했다. 2부에서는 출애굽기와 신명기에서, 타락한 현실의 실제적인 혼인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떤 처방을 내리셨는지를 살핌으로 우리의 현실에 대한 빛을 구하려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든 언제나 인간의 최고의 지혜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람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르게 행하신다. 그런 사례에서 신성한 지혜를 배우는 것은 여간한 즐거움이 아니다. 이 책이 그런 즐거움의 기회가 되기 바란다. -재판 서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