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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됨의 학문을 세우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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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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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고전선집을 펴내며
이황은 누구인가

제1장 학문의 길에 들어서다
가재
들판의 연못
마음을 읊다
지산의 달팽이 집
가야산을 바라보며
김일손을 그리워하며 소나무

제2장 벼슬에 나아가다
봄날 고향을 그리며
연말에 고향에서 온 편지
청평산을 지나며
독서당의 매화
고향 가는 김인후를 보내며
일본 사신을 끊지 마소서
새벽녘 계장에 도착하여
진리를 기르는 암자
비가 갠 뒤에 느낌을 적다
한가하게 『무이지』를 읽고서
단양 군수로 나가는 길에
단양 산수에 대한 기록을 남기다
백운동서원 제생들을 위하여
백운동서원을 사액 서원으로 정해 주소서
소백산 유람기
주세붕이 보내 준 시에 답하다

제3장 산수를 벗하며 강학하다
한서암을 짓고
하루를 돌아보며
기꺼운 시골살이
도를 아는 사람이 드물구나
조용한 곳에서 수양해야지
우리나라 유학자의 계통
맑게 갠 아침에
계상서당서 강학을 시작하며
계당에서 흥이 일어
입춘을 맞아
함경도 순변사 이준경에게 내린 교서
조식에게 벼슬을 권하다
학교란 무엇인가
도가 행해지지 않는 이유는
도산서당 지을 터를 얻고서
이이에게 주는 시
이이를 격려하며 경계의 말도 함께하다
의(義)란 일의 마땅함입니다
이산서원 규정
이산서원 기문

제4장 교육과 저술에 힘쓰다
도산기
도산서당
완락재
시습재
뜰의 풀
사단칠정이란 무엇인가
왜 시를 짓는가
이담에게 주는 경계
아홉 서원을 총론하다
「도산십이곡」 발문
그대와 도리를 토론하니
유학의 도통을 노래하다
도산에서 매화에게 묻다
매화를 대신하여 답하다
기대승에게 처세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다
여섯 조목을 아룁니다
사심을 없애야 합니다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 시작한다
달밤에 깨어나 매화를 읊다
손자 안도에게
한평생을 읊다

제5장 사람됨의 학문을 세우다
「천명도」로 사람됨의 학문을 열다
주자의 편지는 사람됨에 절실하다
『주역』으로 밝힌 자연의 이법
자신을 성찰하다
선현들의 마음 공부
사람됨의 학문을 총정리하다
『심경』을 신명처럼
『성학십도』를 올리며

제6장 평가
『선조수정실록』에 실린 졸기
이이가 지은 「퇴계 선생 유사」
제자들의 기록
오현을 문묘에 종사하라
이식의 추록
이익의 「백두정간」에 실린 글
안정복의 『이자수어』 서문
정약용의 『도산사숙록』
일본의 요코이 쇼난이 남긴 말
중국의 장리원이 본 퇴계 철학
미국의 마이클 칼턴이 본 『성학십도』

연보
참고 문헌

저자 소개 2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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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 李滉 (1501-1570)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

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

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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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光虎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서양과 동양의 철학을 익혔다.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과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과 유학의 경전을 익혔다. 한림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유학과 동양철학을 가르쳤다. 고전을 익히며 인격을 완성하는 가운데 진리를 체험하는 유학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문학으로 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근사록집해』, 『국역 심경 주해 총람』, 『성학십도』, 『이자수어』 등을 번역하고,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를 편역하여 출간했다. 한국동양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8년 주자학상과 2013년 퇴계학 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제퇴계학회 회장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서양과 동양의 철학을 익혔다.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과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과 유학의 경전을 익혔다. 한림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유학과 동양철학을 가르쳤다. 고전을 익히며 인격을 완성하는 가운데 진리를 체험하는 유학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문학으로 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근사록집해』, 『국역 심경 주해 총람』, 『성학십도』, 『이자수어』 등을 번역하고,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를 편역하여 출간했다. 한국동양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8년 주자학상과 2013년 퇴계학 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제퇴계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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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1월 27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56g | 127*188*30mm
ISBN13
9788928404889

출판사 리뷰

퇴계 이황(1501~1570)의 글 중에서 그의 학문과 사상의 정수가 담긴 작품을 선별하였다. 퇴계의 생애를 네 시기로 나누어 그의 삶을 조망하고, 사람됨의 학문을 추구한 이황의 학문 세계를 소개하였다.

제1장 학문의 길에 들어서다

이슬 맺힌 아리따운 풀 물가를 두르고 露草夭夭繞水涯
맑게 흐르는 작은 연못 티끌도 없어라 小塘淸活淨無沙
구름 날고 새 지나는 것이야 으레 그렇지만 雲飛鳥過元相管
때때로 지나는 제비 물결 일으킬까 두렵네 只?時時燕蹴波
-「들판의 연못[野池]」중에서

? 18세이던 1518년에 지은 시이다. 동양의 학문은 대상에 대한 분석적인 이해보다도 주체인 마음에 대한 이해와 수양을 중시하였다. 조선조 유학의 특성이 마음을 중시한 것이라면 이러한 성격은 퇴계의 영향이 크다. 퇴계는 이 시에서 맑은 물을 보면 자신의 마음도 그렇게 맑기를 바라지만 외물에 흔들리기 쉬운 것이 마음이어서 날아가는 제비를 보고도 혹 물결을 일으킬까 두렵다고 읊었다.

제2장 벼슬에 나아가다

내가 이자현이 조정의 부름에 나아가기를 사양한 글을 보니, 그 글에 장자(莊子)의 말을 인용하여, “새로서 새를 길러서 종고(鐘鼓)의 걱정을 면하게 하여 주고, 물고기를 보고 물고기로 인정해서 강해(江海)의 즐거움을 이루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아, 이자현의 이런 흉금을 세속의 헐뜯는 자들이 어찌 그 만 분의 일이나마 엿볼 수 있었겠는가.
-「청평산을 지나며[過淸平山 有感]」중에서

? 42세이던 1542년 8월 퇴계가 강원도 재상어사(災傷御使)로 나가는 길에 청평산을 지나며 지은 시와 시의 서문으로, 청평사에 은거하였던 이자현의 삶을 새롭게 평가한 글이다.
우리나라에도 은둔하여 훌륭한 삶을 살아간 사람이 다수 있지만 세속의 좁은 안목으로 잘못 평가된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이자현의 삶과 행적을 보고 퇴계는 그의 고결한 마음을 느끼고 이해하는데 머물지 않고 잘못된 역사 기록을 비판하고 바로잡는다. 올바른 안목과 과단성 있는 용기를 가슴에 지닌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제3장 산수를 벗하며 강학하다

몸이 물러나 어리석은 내 분수에 편안하나 身退安愚分
학문이 퇴보할까 늘그막이 걱정일세 學退憂暮境
비로소 시냇가에 거처를 정하여 溪上始定居
흐르는 물 굽어보며 날마다 성찰하네 臨流日有省
-「하루를 돌아보며[退溪]」중에서

? 벼슬에서 물러나 편안한 마음으로 물가에 살며 성찰하는 모습을 상상하여 보라. 과연 유학을 통하여 성취하려는 학문과 삶의 세계란 어떤 것일까? 주객을 나눈 다음 객관적인 사물 세계를 분석적으로 이해하여 인간의 마음대로 지배하고 응용하고자 하는 현대의 학문과는 그 방법과 목적이 매우 다르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제4장 교육과 저술에 힘쓰다

새끼 새 날갯짓 익히듯 날마다 명과 성에 힘써서 日事明誠類數飛
시시때때로 거듭 생각하고 실천해야지 重思複踐?時時
깊은 희열 얻는 건 익히 공부하는 데 달렸으니 得深正在工夫熟
어찌 맛난 요리가 입에 즐거운 정도일까 何?珍烹悅口?
-「시습재[時習齋]」중에서

? 도산서당을 지으며 읊은 「도산잡영」의 칠언 절구 18수 가운데 제9수이다. 시습재(時習齋)는 『논어』「학이」의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구절에서 따와 붙인 이름이다.
생명은 왜 태어나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삶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일까? 퇴계에게 물으면 답은 명백하다. 천명을 부여받아 완수함으로써 우주 자연의 창조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 역시 타고난 천명인 본성을 온전히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제5장 사람됨의 학문을 세우다

옛 거울이 오랫동안 묻혀 있었기에 古鏡久埋沒
거듭 닦아도 빛이 잘 안 나지만 重磨未易光
밝은 바탕이야 그래도 흐려지지 않는 법이니 本明尙不昧
옛 선현이 밝히는 방법을 남겼다오 往哲有遺方
사람으로 태어나면 노소를 가릴 것 없이 人生無老少
이 일에 힘쓰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네 此事貴自彊
위나라 무공은 아흔다섯 살에 ?公九十五
아름다운 경계의 글을 규장에 새겨 간직했다네 懿戒存圭璋
-「선현들의 마음 공부」중에서

? 사람됨을 위한 학문의 목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유학에서는 학문을 통하여 사람이 선비로부터 현인으로, 현인에서 성인과 신인(神人)으로까지 변화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변화는 마음의 변화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외물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만 중시하고, 주체가 되는 인간의 마음이 무엇이며 마음의 근원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고경중마방』을 읽으며 마음을 닦아 나가다 보면 우주가 무한하듯 인간의 내면세계도 무한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제6장 평가

인류가 21세기를 눈앞에 두면서 세계 정치가 다원화되고, 경제가 망락(網絡)·일체화되자 도구이성은 팽창하고 가치이성은 위축되어 인류는 엄청난 생태 위기·사회 위기·도덕 위기·정신 위기와 가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아래서 인류가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이루던 정신적인 가정이 파괴되었으므로 우리는 이를 다시 세워야 한다. 퇴계 심성론의 현대적 출로를 탐구하고 그 현대적 가치를 찾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익한 계발(啓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장리원이 본 퇴계 철학」중에서

? 이 글은 『퇴계학보』 제106호에 실린 장리원[張立文] 교수의 『퇴계 심성관의 현대적 가치』의 일부분이다. 장 교수는 퇴계의 학문이 중국 대륙에 광범위하게 알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학자로서 이 글에서도 퇴계 심성 철학의 도덕적 주체 확립 문제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조명하며 그 장점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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