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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머리말 인물 소개 지도 1부. 개혁을 향해 가는 길 1483/1484-1521 1. 나의 고향 2. 나의 모든 존재와 소유 3.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거룩한 4.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는 아닌 5.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습니다 6. 최고의 신학자들 7. 내 마음의 돛 8. 그분께만 종속된 2부. 새로운 비전을 추구하며 1522-1546 9. 천 가지 술책의 달인 10. 나 같은 유명한 애인 11. 폭동은 용납할 수 없다 12. 상스럽고 난폭한 민족 13. 새로운 노래 14. 세상에 대하여 죽은 15. 참된 종교 16. 더 나은 쪽으로 17. 교황주의자들에게 빚진 18. 어마어마한 죄인 맺음말 약어 주 참고문헌 도판 출처 찾아보기 연표 옮긴이의 말 |
Scott H. Hendr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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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명성 때문에 드러난 면모를 제외하면, 그의 개인적 인간관계는 동시대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가 악명 높은 영웅이 되기 전에도 그의 친척, 친구, 동료, 원수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에게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분노를 안겼다. 그가 이런 평범한 관계에 둘러싸인 사람이었다는 인식은 종교개혁의 수많은 사건 속에서 그가 감당한 기념비적 역할 때문에 가려져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편지글이나 식탁 대화를 보면 편안한 인간관계가 루터의 일과 행복에 얼마나 필수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바르트부르크 요새에 안전하게 은신해 있던 10개월(1521-1522)의 시간을 제외하면 고립된 상태로 지낸 적이 거의 없다. 거기서도 루터는 손님을 맞고, 하루에도 여러 통의 편지를 쓰고, 간단한 성명서를 작성하고, 심지어 비텐베르크에 몰래 다녀오기도 했다. 그의 일상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졌다.
--- 「1. 나의 고향」중에서 이 에르푸르트-비텐베르크 연결 고리를 인정하는 것이 루터를 고립된 영웅처럼 여기는 신화에서 벗어나고 그에게 영향을 끼친 관계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첫걸음이다. 루터의 에르푸르트 시절에 대한 통속적인 견해는 대개 이런 식이다. 루터는 류트를 연주하는 대학생이었는데, 천둥 번개를 만나 기겁한 나머지 갑자기 수도원에 들어가겠다고 서약했다. 그는 에르푸르트의 독방을 거의 떠나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기 죄를 헤아리고 용서를 갈구하고 사탄과 싸웠다. 이런 식의 스토리 라인은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수가 된 1512년 이후를 기술할 때도 거의 달라지지 않는다. 그가 초반에 가르쳤던 과목들 정도나 언급될 뿐, 대학교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안에서 그가 감당했던 일상적 업무나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루터는 그저 갑자기, 혼자서 “종교개혁의 발견”에 이르러 95개 논제를 붙였으며, 원하건 원치 않건 로마와의 갈등을 촉발시켰다는 것이다. 이렇게 혼자 힘으로 종교개혁을 시작한 영웅 루터의 신화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 「3.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거룩한」중에서 루터가 다시 태어난 날, 루터가 종교개혁을 발견한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단정 지을 수 없다. 루터 자신도 그 시간과 장소를 분명하게 알릴 수 없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때가 빠르면 1512년, 늦어도 1518년일 것이라고 어림잡는다. 루터의 발견은 탑 체험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루터가 수도원 탑의 화장실에서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정의를 새롭게 파악하게 되었다고 전하는 『탁상담화』의 한 구절 때문이다. (…) 하지만 좀더 나은 기록 자료는, 루터의 깨달음이 오히려 루터가 로마서 강의를 준비하고 직접 강의했던 1515년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찾아왔으리라는 암시를 준다. 그 강의는 펠라기우스의 입장을 변호하는 스콜라 신학자들에 대한 최초의 명백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 --- 「4.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는 아닌」중에서 그는 교회의 개혁자이기 이전에 신학의 개혁자, 종교적 관행의 개혁자였다. 하나님은 가혹한 분이 아니라 선을 베푸는 분이시며, 기독교는 천국 입장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루터의 일차 목표였다. 1518년 루터는 자신의 개혁안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나는 사람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자신의 기도나 공적이나 선행 등 어떤 것도 신뢰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 「6. 최고의 신학자들」중에서 그때부터 루터에게 자유란 그리스도께 묶여 사는 것을 의미했고, 그 자유로 인해 루터는 단순히 면벌부에 저항하는 사람, 교황을 비판하는 사람 이상의 인물이 되었다. 이제 그는 종교에 대한 더 큰 비전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며,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만듦으로써 그 비전을 실현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루터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은 95개 논제나 보름스 제국의회가 아니었다. 그 사건은 루터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었던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된 바르트부르크에서 일어났다. 그 사건은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비전, 루터가 추구하기로 마음먹은 그 비전에 기초한 것이었다. --- 「8. 그분께만 종속된」중에서 루터는 독신 사제, 수녀, 수도사를 “종교인”이라고 부르는 전통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결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상태라고 주장했다. “성령께서 다스리시는 마음속에서 존재하는 그런 믿음의 내적인 삶이 아닌 다른 어떤 것도 종교적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위는 칭찬받을 만한 어떤 업적이 아니며, 종교적 활동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정의를 추구하고 사랑을 나타내는 것은 기도, 성경 읽기, 설교를 전하거나 듣는 일, 성만찬을 받는 일과 똑같이 종교적인 일이다. --- 「12. 상스럽고 난폭한 민족」중에서 루터의 생애를 기록한 초기의 저자들도 루터의 과격한 언사를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런 말이 하나님의 목적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테지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선택하신 도구 안에 저런 타오르는 열정을 일으키신 분도 주님이시니, 그분의 종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비텐베르크 성교회에서 거행된 루터의 하관식 때는 멜란히톤도 이렇게 말했다. “덕망 있는 분들 가운데 몇몇 분조차도 루터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사람이라고 불평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과도, 거꾸로 그런 루터를 편드는 사람들과도 논쟁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에라스무스가 종종 했던 말로 대답하고자 합니다. ‘병이 너무 지독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아주 거친 의사를 보내셨다.’” --- 「18. 어마어마한 죄인」중에서 헨드릭스의 꼼꼼한 역사적 재구성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루터는 인생의 중요한 시간 대부분을 글 쓰는 데 할애한 사람이다. 헨드릭스의 재치 있는 역사 서술을 통해 우리는 루터가 소중한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 뭉치를 새삼 주목하게 된다. 그 수많은 편지들은 인간 루터의 ‘흔적’을 담담히 응시할 수 있게 해 주는 훌륭한 역사적 자료로서 빛을 발한다. 헨드릭스는 루터의 대담한 행적과 경이로운 업적을 루터의 인간적인 흔적과 절묘하게 결합시켜 하나의 맥락을 제공한다. 그것은 루터의 사상을 포괄적이고 다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이해의 맥락이면서, 다양한 관계와 감정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던 루터의 삶을 좀더 친숙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감의 맥락이다. --- 「옮긴이의 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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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렇게 멋진 루터 전기를 만난 적이 없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 관한 선입견에 도전하는, 빈틈없는 단 한 권의 전기! 루터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남았을까? 유명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 대해 이미 수많은 책과 이야기가 있으니, 누구라도 이렇게 물을 법하다. 그러나 인간 마르틴 루터는 여전히 미지의 인물이다. 프린스턴 신학교의 종교개혁사 명예 교수로, 일평생 루터와 종교개혁 연구에 매진해 온 스콧 헨드릭스는 루터가 쓴 수많은 저술과 편지들, 루터에 대한 방대한 자료들을 섭렵하고 심지어 루터의 전기를 쓰고 나서도 “나는 지금도 루터라는 사람의 생애에 매료된다”고 고백한다. 1517년 루터가 ‘95개 논제’로 불을 붙였던 종교개혁은 종교와 문화, 정치 영역에까지 격변을 불러일으켰으나, 정작 그 사건 이전과 이후로도 역동적으로 살아갔던 루터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지는 못한다. 오랜 학문 경력을 마무리하며 쓴 이 독보적인 전기에서, 헨드릭스는 어느 한 사건이나 특정 시기에 치우치지 않고 루터의 삶 전체를 빈틈없이 통찰한다. 영웅도 악당도 아닌 한 인간, 루터를 만나다 헨드릭스는 영웅도 아니고 악당도 아닌 한 인간 마르틴 루터를 생생하게 그려 냈다. 분명 비범한 면이 있었지만 비판받을 만한 결점도 지녔던 한 사람, 고립되어 홀로 두각을 드러낸 영웅이 아니라 수많은 친척, 친구, 동료, 조언자들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으며 함께 개혁을 이루어 낸 개혁의 지도자, 오늘날 우리의 입맛에 맞는 모습이 아니라 16세기를 살았던 그 모습 그대로의 루터가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그는 기뻐하고 슬퍼하며, 건강하다 아프고, 부드럽게 말하다가 폭풍 같은 분노의 말을 토해 내는 사람이었다. 믿지만 의심하고, 대담하지만 두려워하며, 저주하지만 기도하고, 감동으로 몸을 떨지만 또한 낙심하는 사람이었다. 종교개혁을 시작한 사람은 영웅적 로봇이 아니라 원기 왕성한 삶을 살아간 역동적 인간이었다”(‘머리말’ 중에서). 헨드릭스는 루터가 직접 쓴 수많은 편지들을 인용하며 루터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신학뿐 아니라 생애와 인간관계, 정치적 동기 등에 초점을 맞추어 루터에 대한 과감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세밀한 역사적 재구성과 생생한 현장 묘사로 그려지는 루터와 그의 시대 그러나 헨드릭스가 이 책에서 보여 주는 것은 오로지 루터라는 한 인물만이 아니다. 그가 품었던 원대한 비전과 당시 종교·문화·정치적으로 끼쳤던 막대한 영향력을 보면 루터는 그가 살았던 시대와 결코 분리하여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헨드릭스는 사료를 바탕으로 한 세밀한 역사적 재구성과 직접 발로 뛰며 그려 낸 생생한 현장 묘사를 통해 루터의 시대, 그를 둘러싼 사회·정치·문화적 정황을 실감 나게 펼친다. 더욱이 정치와 종교의 소용돌이 속에서 종교개혁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는 이슬람 세력(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큰 역할을 했음을 명시하는 대목들에서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미시적으로 몇몇 인물 중심으로만 바라보는 종교개혁이 다소 공허할 수 있음을 통렬하게 지적하는 듯하다. 개혁은 이제 시작이다! ― 21세기의 ‘루터들’을 위하여 이 책은 총 2부로 나뉘는데, 루터가 종교개혁자가 된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제2부는 흥미롭게도 흔히 종교개혁의 출발점으로 기념되는 1517년(95개 논제)이 아니라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성에 유배되어 있던 1522년부터 시작한다. 또한 개혁의 실행과 보완에 멜란히톤, 부겐하겐 등 루터의 동료들이 기여한 바를 꼼꼼하게 조명하여, 종교개혁이 한 사람의 영웅이 단번에 이루어 낸 쾌거가 아니라 복잡한 상황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수정·보완되며 이루어진 지난한 작업이었음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이 개혁을 오늘날 우리 안으로 들여오는 일 역시도 단번에, 힘찬 구호를 몇 번 외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일은 신학자나 목회자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각자의 신앙을 부여잡고 루터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비전을 꿈꾸며 실천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이를 위해, 평생 학생들과 소통해 온 탁월한 교사 헨드릭스는 가장 최근의 연구 성과까지 반영하면서도 난삽하지 않고 잘 읽히는 최상의 교재를 집필했다. 이 책은 개혁의 씨앗을 심고 양분을 제공하여, 21세기의 ‘루터들’을 길러 내는 모판이 되어 줄 것이다. |